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신학논단 분류

육체의 부활을 부정하는 무천년주의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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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8년 02월호>

부활은 사후의 삶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사후"(死後)라는 손에 잡히지 않는 영원의 개념을 넘어서, 자기 육체를 입고 다시 살아난다는 구체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은 사람이 죽으면 흔히 "영면에 들어갔다."라고 하는데, 사람이 영원히 잠들었다는 말은 죽은 자가 눈을 감고 누워 있기 때문에, 그래서 아예 못 일어날 것이라는 발상에서 나온 듯하다. 그렇게 잠들어 있는 듯하던 자가 자기 몸으로 다시 살아나면 그것이 곧 부활인 것인데, 세상에 이런 "육체의 부활"을 믿는 사람이 누가 있겠으며, 심지어 교회라고 하는 곳들에서도 육체의 부활을 믿고 가르치는 곳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그들은 그저 "아무개가 소천(召天)했다."라는 말 정도로 그치는 것이다. "부를 소"에 "하늘 천" 자를 합하여 "아무개를 하늘로 부르다," "아무개가 하늘의 부름을 받았다."라는 의미로 사용하는데,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고 하지 않고 하늘의 부름을 받았다고 하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세속적이고 미개하기까지 하다. 쓸 단어가 없으면 한글로 쓰면 될 것을, 소천이라 하여 하늘과 하나님을 동급으로 다루는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이것이 바로 그들에게 진리의 지식이 부재하다는 증거다. 아마득한 하늘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숭배, 그리고 밤하늘을 향해 두 손을 비벼대던 토속 신앙이 반영된 것이다. 이것은 천국(Kingdom of Heaven )과 하나님의 나라(Kingdom of God )를 동일하게 보는 그릇된 습성이 작용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무척이나 막연한 『알지 못하는 신』(행 17:23)에 불과한 것이다.

부활을 다룰 때는 어김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말하게 된다. 주님의 부활은 육체의 부활이었고, 그것은 모든 부활의 표본이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도마에게 말씀하시기를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나의 손을 보고 너의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요 20:27)라고 하셨으며, 여인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뵙고서 그분의 발을 "붙잡고" 경배를 드렸으니, 분명 육체의 부활을 보여 준 사건이었던 것이다. 『또 여인들이 제자들에게 말하려고 갈 때에, 보라, 예수께서 그들을 만나서 말씀하시기를 "모두 평안하냐?"라고 하시니 여인들이 나아와 그의 발을 붙잡고 주께 경배하더라』(마 28:9). 이와 같은 사실들은 『내 피부의 벌레들이 이 몸을 멸한 뒤에라도 내가 내 몸을 입고 하나님을 보리라.』(욥 19:26)라는 말씀의 진리를 입증해 주는 것이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부활은 분명 육체의 부활인 것이다! 하지만 한글개역성경 같은 변개된 성경들은 『 내가 내 몸을 입고 하나님을 보리라.』라는 말씀을 『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로 변개시킴으로써 육체의 부활을 철저히 부인해 버렸다. 그러니 육체의 부활을 알 턱이 없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십자가에서 그 경탄스러운 능력이 발휘됐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큰 음성으로 소리 지르신 후 숨을 거두시자, 그때 "많은 구약 성도들의 몸"이 무덤에서 일어나는 사건이 발생했던 것이다. 『무덤들이 열리며 잠들었던 많은 성도들의 몸이 일어났으며』(마 27:52). 이 일은 예수님의 십자가에 얼마나 큰 능력이 있는가를 보여 주었는데, 주님께서 부활하시기도 전에(마 27:52,53) 이미 많은 구약 성도들이 부활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는 것이다. 한 가지 주목할 것은 그때 "혼들"이 아니라 『성도들의 몸』이 일어났다는 점이다. 이 역시 육체의 부활을 천명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뒤 그분을 증거했던 사도들의 사역의 중심에는 단연 "부활"이 있었다. 누구의 부활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었다! 부활 이후 사도들의 행적을 다룬 사도행전에는 그에 관한 증거들이 넘쳐나고 있다. 『그러므로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신 모든 기간 동안 즉 요한의 침례로부터 시작하여 우리를 떠나 들려 올라가신 날까지 줄곧 우리와 더불어 지냈던 이 사람들 중에서 한 명을 뽑아 우리와 함께 주의 부활의 증인이 되게 해야 하리라』(행 1:21,22). 『그가 미리 앞을 내다봄으로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하여 말한 것은, 주의 혼이 지옥에 버려지지 아니하였으며, 또 주의 육신도 썩어짐을 보지 아니하였다는 것이라. 이 예수를 하나님께서 살리셨으니 우리 모두가 그 일에 관한 증인이라』(행 2:31,32). 『너희가 생명의 통치자를 죽였으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들이라』(행 3:15). 『너희 모두와 이스라엘 모든 백성은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았고, 하나님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신 나사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곧 그분으로 인하여 이 사람이 온전하여져서 여기 너희 앞에 서게 되었느니라... 그리하여 사도들이 큰 능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니 큰 은혜가 그들 모두에게 있더라』(행 4:10,33). 이외에도 여러 구절들에서 부활의 증인들로서의 사도들의 사역을 조명하고 있다(행 5:29-32; 10:39-41; 13:28-31; 17:1-4,31,32; 22:6-8; 26:19-23).

그렇다면 사도들은 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그토록 강조했던 것일까? 그것은 부활이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께서 보내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강력한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거룩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롬 1:4).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분께서 동정녀 마리아에게 성령으로 잉태되어 죄 없이 태어나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눅 1:35) 증명한 사건이었다. 만일 그분께 죄가 있었다면 부활하지 못하셨을 것이나, 죄가 없으셨기에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으셨고(행 2:24), 죽음에서 부활하여 아버지께로 가신 그 일은 하나님께서 인류를 위해 죄로 삼으셨던 예수님의 본질이 죄가 아닌 "의"이심을 입증했던 것이다(요 16:10). 이로써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간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의로 여겨지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죄를 알지도 못하는 그를 우리를 위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5:21).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우리에게 던져 주는 의미는 얼마나 심오한 것인가! 주님의 부활이 없었다면 우리는 여전히 죄들 가운데서 멸망을 기다리고 있어야만 했을 것이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일으켜지지 못하셨다면 우리의 믿음도 헛되고 우리는 여전히 우리의 죄들 가운데 있는 것이며, 우리 앞서 그리스도 안에서 잠든 모든 성도들 역시 완전히 멸망해 버린 것이 된다(고전 15:17,18). 그러나 분명히 그리스도께서는 부활하셨고, 또한 우리가 그분 안에서 바라는 것은 이생뿐이 아니기에, 우리가 이 멸망해 가는 세상에서 성별하여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려고 고난과 박해 속에서 분투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이렇게 참된 성도들이 육체의 부활을 믿으면서 고난을 굳이 면하려 하지 않고(히 11:35) 주님을 위해 싸우고 있을 때, 다른 한편에서는 부활에 관한 거짓 교리를 가르치는 자들이 있는 것이다. 세상과 야합한 "무천년주의자들"이 그들이다. 현 기독교계에 편만해 있는 그들은 디모데후서 2장의 "후메내오와 필레토" 같은 자들이다. 『비속하고 허황된 말장난을 버리라. 이는 그것들이 더욱 불경건함으로 나아갈 뿐임이니라. 그들의 말은 종창처럼 퍼져 나갈 것이며 그들 가운데는 후메내오와 필레토가 있느니라. 그들은 진리에 관해서는 정도를 벗어나서 부활이 이미 이루어졌다고 말하여 어떤 사람들의 믿음을 뒤엎고 있느니라』(딤후 2:16-18). 후메내오와 필레토가 부활에 관해 가르친 오류는, "부활은 과거에 이미 영적으로 이뤄졌으므로(엡 2:5,6) 이후로는 부활이 없을 것이다."라는 것이었는데, 이는 요한계시록 20:5의 "첫 번째 부활"을 완전히 부정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살아서 그리스도와 함께 천 년을 통치하더라. 그러나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 나머지는 천 년이 끝날 때까지 다시 살지 못하리라. 이것이 첫 번째 부활이라』(계 20:4,5). 이 구절의 『첫 번째 부활』은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천 년 통치에 참여할 성도들의 부활을 언급하는 것으로, 구약 성도들의 부활(마 27:50-53)과 신약 성도들의 부활(살전 4:13-18)과 환란 성도들의 부활(계 11:7-12)을 포함하고 있다. 이 세 가지 부활을 첫 번째 부활이라 칭하는 것이고, 고린도전서 15장에서도 그 부활을 "서열"에 따라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각자 자기의 서열대로 되리니 그리스도가 첫열매들이요[구약 성도들의 부활], 그 다음은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 그분께 속한 사람들이라[신약 성도들의 부활]. 그후에는 끝이 오리니[환란 성도들의 부활]...』(고전 15:23,24). 이처럼 성경은 첫 번째 부활에 관하여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있지만, 무천년주의자들은 이 "첫 번째 부활"을 영적인 부활로 오인하여 성경의 부활을 오직 "영적인 경험"으로만 해석하고, 모든 부활을 에베소서 2:5,6의 부활에만 끼워 맞추고 있는 것이다. 『죄들 가운데서 죽었던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으니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니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천상에 함께 앉히셨으니』(엡 2:5,6). 사실 이 구절은 죄인이 그리스도를 믿고 거듭날 때 경험하는 "영의 부활"을 다루고 있다(요 3:5-8). 성경에 있는 모든 부활을 포괄하는 구절이 아닌 것이다! 무천년주의자들이 이 구절을 근거로 뭐라고 주장하든 "첫 번째 부활"은 분명 육체의 부활이다. 성경이 부활에 관해서 『내가 내 몸을 입고 하나님을 보리라.』(욥 19:26)라고 했다면 그대로 되는 것이다. 이 진리를 믿는 성도들이 첫 번째 부활에 참여해서 자기 몸을 입고 주님의 왕국 정부에 속하여(사 9:6,7) 문자 그대로 천 년 동안 통치하는 영예를 누리게 되는 것이다(계 20:4). 무천년주의자들은 "천 년"을 "비유적으로" 해석하여,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이후에 교회를 통해 복음으로 세상을 "영적으로" 통치하는 기간이라고 가르치는데, 그런 자들에게는 물리적인 왕국의 통치권이 결코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후메내오와 필레토 같은 무천년주의자들에 관해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사도 바울이 그들을 사탄에게 내어 주었다는 사실이다. 『믿음과 선한 양심을 붙들라. 어떤 사람들은 믿음에 대한 선한 양심을 내던지므로 파선하였느니라. 그들 가운데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있는데 내가 그들을 사탄에게 내어준 것은, 그들로 하나님을 모독하지 못하도록 배우게 하려는 것이라』(딤전 1:19,20). 무천년주의자들은 믿음에 대한 선한 양심을 내던지므로 파선한 자들인데, "육체적인 부활"이라는 명백한 사실을 부정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의 믿음을 뒤엎어 버렸던 것이다. 그런데 바울은 후메내오와 필레토에 관한 경고를 주기에 앞서서(딤후 2:16-18) 다음과 같이 "세대주의적"으로 아주 중요한 말씀을 기록해 두고 있다.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이 "디모데후서 2:15"은 "성경 공부법"을 제시한 구절로서 성경을 올바로 나누어 공부할 것을 명령하고 있다. 바울은 이 말씀을 기록한 뒤에 육체의 부활을 부정하는 "두 무천년주의자들"을 언급했던 것이다. 문맥상 부활과 관련되어 있기에, "구약 성도들의 부활"과 "신약 성도들의 부활"과 "환란 성도들의 부활," 곧 각 세대별로 부활을 『올바로 나누어』 가르쳐야 성경을 정확하게 가르치는 것이 된다. 성경이 부활에 대해 두루뭉술하게 가르치지 않고, 하나님의 경영 방침에 따라 각 세대별로 나누어 가르친다는 것을 알았다면 무천년주의자들은 꼬리를 내리고 사라져야 한다. 성령이 없는 그들이 이런 진리를 깨달을 수 있겠는가? 부활의 진리에 관해 입도 뻥긋 못하는 짖지 못하는 개들이(사 56:10) 교회를 하겠다고 나섰기에 수많은 교인들이 지옥에 떨어지고 있다. 육체의 부활을 부인하면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부인하게 되고, 심지어 멸망하게 된다는 점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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