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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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자가 양성될 수밖에 없는 신학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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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8년 07월호>

가벼운 바람이 사늘하게 자꾸 불거나, 그 때문에 이파리들이 살살 흔들리는 모습을 두고 "살랑거린다"라고 말한다. 잎사귀들 사이를 살랑대던 바람은 언제든 광풍이 되어 나무의 머리채를 헝클어 놓고, 그 줄기를 격심히 흔들어 몸살을 앓게 할 수 있다. 미풍일 때는 대수롭지 않던 것이 폭풍일 때에는 걷잡을 수 없게 되어 나무를 뿌리째 뽑아 버릴 수도 있다. 그것이 바로 바람이다. 바람은 임의로 불기에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다(요 3:8). 온 세상에 충만해 있는 대기가 어느 미지의 지점에서 흐르기 시작하더니 언젠가 파괴적인 결과를 낳는 것이다. 『그러므로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면 사망을 낳느니라』(약 1:15). 죄는 작은 욕심에서 시작된다. 그것은 욕망의 태 속에서 미미하게 잉태되지만, 시간이 지나면 태아가 자라듯 커져서 죄를 낳는다. 그 죄를 방치하면 장성하여 사망을 낳는데, 죄를 지은 장본인은 그 죄로 인해 죽게 되는 것이다(롬 6:23). 사망은 죄의 아들이며, 죄는 욕심의 아들인 셈이다. 성도라면 거듭나기 전의 사악한 욕구를 버리고 『하나님의 가족』답게(엡 2:19) 살아야 한다(갈 5:22-26, 엡 5장, 골 3장). 온 세상에 충만한 죄들 가운데 하나를 욕심내면 그 죄에 삼켜져 사망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늘 경계해야 한다.

국내 신학대학교들에 동성애가 파고들고 있다는 기사가 났다. 어느 기독교 언론에 따르면, 지난 5월 17일("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 장로회신학대학교의 공식 채플 시간에 일부 학생들이 동성애를 상징하는 무지개 색깔 상의를 각각 빨주노초파남보 색깔별로 입고서 한 줄로 앉아 퍼포먼스를 펼쳤다는 것이다. 예배 도중에 무지개 색깔의 천을 몸에 두른 자도 있었으며, 무지개 깃발을 들고서 십자가 형상 아래 모여 기념 촬영도 했다고 한다. 비판이 쏟아지자 학교 측은 "학교와 교계에 매우 중차대한 문제이므로 조사하겠다."라고 밝혔다. 신학교들에서의 동성애 문제가 그 학교들의 음지에 똬리를 틀고 있는 "동성애 동아리"를 통해 공개적으로 불거질 태세다. 현재 장신대에는 "암하아레츠"라는 동성애 지지 동아리가 있고, 총신대에는 친동성애 모임 "깡총깡총," 백석대에는 "백설기," 감신대에는 "무지개 감신"이 있다. 그 밖에도 한신대의 "고발자," 성공회대의 "무아지경" 등이 친동성애 모임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의 존재는 이미 밝혀졌다. 이런 비공개적 모임들의 활동이 드문드문 포착되는 것은, 언젠가 이들이 소돔의 동성애자들처럼(창 19:4-9) 수치심도 없이 소위 신학대학교라는 데서 시위할 날이 올 것임을 짐작케 한다. 이들이 해마다 동성애 축제를 벌이는 죄인들과 소통하고 있을 것이라는 데에는 전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신학교를 세워 교육하는 목적은 그리스도인 학생들에게 진리를 가르쳐 이런 쓰레기 같은 죄들이 교회에 발붙이지 못하게 하려는 데 있다. 신학교는 교회를 지키는 진리의 첨병들을 양성하는 엄격한 그리스도의 군사 학교이지(딤후 2:3) "짖지 못하는 개들"의 훈련소가 아니다(사 56:10). 바른 진리로 양육된 학생들은 지역 교회를 죄로부터 사수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데, 위의 신학교들과 연관된 교회들에서는 왜 이런 일을 수행하지 못하는 것인가? 신학교와 교회들이 총체적으로 부패했기 때문이다. 『누가 더러운 것 가운데서 깨끗한 것을 가져올 수 있나이까? 아무도 없나이다』(욥 14:4). 모두가 부패해 버린 곳에서는 결코 선한 것을 기대할 수가 없다. 더러운 걸레로 땀 흘려 청소해 보라. 더러움만 가중될 뿐이다. 그들의 교육은 아니 한 만 못한 일이다. 장신대 측은 일부 학생들의 기괴한 돌출 행동에 대해 "학교와 교계에 매우 중차대한 문제이므로 조사하겠다."라고 했지만, 조사한다 해서 될 일이 아니다. 조사를 해서 어쩌겠다는 것인가? 그들의 교육이 낳은 "실패작들"을 무슨 수로 계도하겠다는 것인가? 조사를 하려거든 자신들의 교육 시스템을 파헤치고 뒤엎어서 그 오물들을 퍼내 버려야 한다. 나름대로 헌신하여 신학교의 문을 두드린 학생들이 그렇게 된 데에는 학교 측의 책임이 가장 큰 것이다.

장신대는 교양필수 과목으로 "철학입문"이라는 3학점짜리 과목을 개설했다. 학생들은 학기 중 일주일에 3시간을 부득불 철학을 공부해야 한다. 그것도 "입학하자마자" 수강해야 한다. 2학년 때는 "철학사"라는 3학점짜리 과목이 또 기다리고 있다. 이 역시 필수이다. 소위 신학교라는 데서 "철학과 헛된 속임수"를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아무도 너희를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노략질하지 못하도록 주의하라. 그것들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유치한 원리를 따른 것이며 그리스도를 따른 것이 아니니라』(골 2:8).

철학이라 하면 고대 그리스가 그 발원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대 그리스는 동성애를 공공연히 인정하는 나라였다. 이 나라 신학교들은 쓸데없이 가르쳐 온 철학이 동성애자들에게서 나왔다는 사실을 한 번이라도 숙고해 본 적이 있는가? 고대 그리스에서는 이성애를 더럽게 여기고 동성애를 아름답게 여기는 사회적, 사상적 분위기가 편만했다. 당시의 사회에서는 여성이 악, 어둠, 육체, 불순 등을 상징했고, 남성은 선, 밝음, 정신, 순수 등을 상징했다고 한다. 따라서 그들에게 이성애는 악하고 어둡고 육체적이고 불순한 것이었으며, 비정상적인 동성애는 오히려 선하고 밝고 정신적이고 순수한 것으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흔히 철학의 대부라 일컬어지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토는 동성애자였다. 필자는 대학 시절에 <소크라테스의 변명>이라는 플라토(소크라테스의 제자)의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 책에 등장하는 미소년에 관한 이야기가 무척이나 의아스러웠다. 그것이 "동성애적"으로 읽혔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 책은 동성애를 찬미하는 책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그리스에서는 스승과 제자(미소년)의 관계가 정치, 문화, 철학 등에 대한 가르침을 넘어 동성애로까지 발전했던 것이다. 그들은 이러한 교육적 관계를 "에로스적 사랑"으로 지칭했고, 소년의 아버지가 아들의 스승을 지정해 줄 정도로 사회적으로 흔한 일이었다고 한다. 그들은 정신적 관계와 육체적 관계를 동시에 추구하는 스승과 제자의 동성애적 관계를 "순수한" 일로 받아들인 사악한 죄인들이었던 것이다! 『악한 일에 대한 징벌이 속히 집행되지 않으므로 사람들의 아들들의 마음이 그들 안에서 악을 행하기로 완전히 정해졌도다』(전 8:11).

소크라테스와 플라토뿐 아니라 오늘날 잘 알려진 철학자들 가운데도 친동성애 혹은 동성애자들이 존재했다. 프란시스 베이컨도 동성애자였다. 전설적인 신비의 철학자라 불리는 비트겐슈타인도 동성애자였다. 버트란드 러셀은 동성애에 대한 관용을 부르짖었다. 에이즈로 사망한 미셸 푸코 역시 동성애자였다. 롤랑 바르트도 동성애자였다. 이들은 자신이 친동성애자 혹은 동성애자임을 공공연하게 드러냈다. 살다 보면 "벌레 몇 마리"가 기어가는 것이 보이는 낡은 판자 밑에 "벌레들이 바글대는" 것을 못 보고 지나칠 때가 있다. 이 세상 그늘에 숨어 있는 "동성애자들"이 꼭 그와 같다.

소위 신학교라는 곳에서 철학을 가르친다는 것은 그들이 처음부터 세상을 수용했다는 증거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성경을 믿지 않는 자유주의자들이 교수직을 꿰차고 앉아 옛 교부들처럼 학생들에게 철학으로 신학을 설명하는 우습지도 않은 일들을 벌여 온 것이다. 그들은 영이 거듭나지 않았기에 하나님께로부터 온 성령을 받지 못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값없이 주신 것들을 학생들에게 알려 줄 수가 없다(고전 2:12, 요 16:13). 그들 안에 있는 세상의 영, 곧 불순종의 자녀들 안에 역사하는 공중 권세의 통치자를 따라 이 세상의 철학적 풍조를 가르쳤기에 학교 담장 안의 학생들이 육신의 정욕들 가운데서 행하게 되었고, 육신과 마음의 욕망들을 이루어(엡 2:2,3) 급기야 하나님께 예배드린다는 공식 채플 시간에 친동성애적 퍼포먼스를 저지르기에 이른 것이다. 철학을 받아들이면 철학자들과 동일한 영으로 움직이게 된다. 이것은 세상과 타협하여 세상에 귀를 내준 신학교들이 당면해야 하는 불가피한 현실이다.

2017년 9월 21일, 대한예수교장로회의 제102회 총회에서 발표한 "예장 통합 총회 동성애와 동성결혼 합법화에 대한 입장"에 이런 내용이 있다. 『동성애자들을 혐오와 배척의 대상이 아닌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존재임을 인정하면서 그들을 사랑의 대상으로 받아들이고 변화시켜 나갈 것이다.』 말하자면 이런 통합 총회 산하 신학교에서 동성애 학생들의 반란이 있었던 것이다. 인간들끼리 모여 "당신은 총회장 하고, 당신은 서기장 하고, 당신은 사무총장 하라."라는 식의 소꿉놀이를 하는 교단 총회가 동성애자들을 "사랑의 대상으로 받아들이고 변화시키겠다."라고 선언했는데, 동성애자들의 변태성욕을 사랑으로 변화시키겠다는 것인가? 동성애자들도 서로 "사랑"한다고 말하는데, 어떤 사랑으로 그들을 변화시키겠다는 것인가? 솔로몬 역시 "사랑으로" 이방 민족들과 결합했고(왕상 11:2), 솔로몬의 그 죄로 인해 이스라엘이 멸망해 버렸다는 것도 모른단 말인가?

동성애자들은 아담의 타락으로 하나님의 형상이 파괴된 자들이다(창 5:3). 이들을 받아들이고자 한다면, 소위 "성소수자"라 불리는 성 전환자, 수간자, 양성애자 등 온갖 성 변태들도 받아들여야 한다. 학생들의 동성애 퍼포먼스에 대해 "학교와 교계에 매우 중차대한 문제이므로 조사하겠다."라고 했던 말을 되짚어 보면, 그들은 실로 철저히 조사를 해서 "총회의 선언에 따라" 동성애 학생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강의실에 앉혀 놓고는 그들을 "사랑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비록 성 전환자나 수간자라 해도 다른 학생들과 함께 밥 먹고 기숙사에서 씻고 잠자며 공부하게 해야 한다. 그런 성도착자들을 "칼빈의 예정론에 따라 창세전에 구원으로 예정된 자들"이라고 가르쳐서 그들을 인정하라고 촉구해야 한다. 더러운 바이러스에 감염된 채 "사랑의 대상"을 은밀히 사냥하러 다니는 그런 가증한 이리들을 선의의 학생들이 혐오스럽고 싫다고 해도 오직 "사랑으로" 한 우리에 갇혀 지내라고 해야 한다. 어리석은 자들이여, 총회의 선언에 따라 그렇게 해야 하지 않겠는가! 『어리석은 자에게 그의 미련함에 따라 대답하라. 그가 스스로 현명하다고 생각할까 함이라』(잠 26:5).

신약성경은 음행하는 자들을 교회에서 쫓아내라고 말씀하며(고전 5:2), 동성애자들에게 죽음을 경고하고 있다(롬 1:26,27,32). 구약 시대에는 "가증한" 동성애자들을 "반드시 죽이라."라고 명령하셨다(레 18:22; 20:13). 사실이 그러함에도 그들은 사랑이면 다 된다는 식으로 정반대의 논리를 펴고 있는 것이다. 말씀을 거부하면 하나님과 한없이 멀어질 뿐이다. 사실 그들이 주장하는 사랑처럼 모호한 말도 없다. 모든 것을 포용하는 듯하지만, 모든 진리를 변질시키는 DNA가 사랑이라는 말 깊숙이 감춰져 있는 것이다. 그러한 사랑은 마귀의 발톱이다. 발톱이 파고들면 잘라내야 하듯이, 비성경적인 것들이 파고들면 교회든 신학교든 그곳에서 잘라내야 한다. 동성애자들을 포함하여 경건치 않게 행한 모든 죄인들이 심판을 받고(유 1:15) "제거될" 날이 이제 곧 다가오고 있으니,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다(계 19:11-15). 물론 주님께서는 완악한 죄인들이 지금이라도 회개하고 돌이키길 원하신다(겔 33:11).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인권" 뒤에 숨어서 끝까지 버티고 있다면 재림 때에 가차 없이 불못으로 던져 넣으실 것이다(살후 1:7-9).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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