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신학논단 분류

어떤 장로교 목사의 “신문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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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1년 04월호>

한 인간으로 태어나서 할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일은, 사람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해 주는 일이다.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이 있지만,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접점”이 되는 일보다 더 소중한 일은 없는 것이다. 스위치를 누르면 내부의 접점 부위가 서로 맞닿아 불이 켜지듯이, 제대로 된 한 사람의 역할로 인해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찾고 빛 가운데 살게 된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이어 주는 사역은 모세와 사무엘 같은 선지자들의 일이었고, 특히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나타나신 분(딤전 3:16), 곧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이었는데, 주님께서 그분의 십자가 사명을 완수하시고 부활 승천하신 뒤로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그 소중한 일이 맡겨졌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며 그분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스스로 우리와 화해하셨고 화해의 직분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즉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셔서 세상을 자신과 화해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과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우리에게 화해의 말씀을 맡겨 주신 것이라』(고후 5:18,19). 하나님과 세상을 화해케 하는 화해의 직분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맡겨진 일이며, 복음을 전파하여 많은 사람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한 성도들에게는 놀라운 약속들이 주어져 있다. 『현명한 자들은 창공의 광명처럼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의로 돌이키는 자들은 별들처럼 영원무궁토록 빛나리라』(단 12:3). 복음 전파는 자칫 소홀하기 쉽지만, “자랑의 면류관”(살전 2:19)과 “천년왕국에서의 통치” 등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상급과 유업을 생각하면 그보다 더 탐나고 또 하고픈 일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접점이 되는 일은 교회를 맡아 운영하며 말씀으로 양 무리를 먹이는 “목사”에게도 맡겨졌다. 주님을 부인했던 베드로의 사랑을 재차, 삼차 확인하신 주님께서는 『내 양들을 먹이라.』(요 21:17)라고 하시면서 그에게 목사의 직분을 부여하셨는데(장로, 벧전 5:1), 베드로는 그의 서신에 양 무리의 본이 되어 목사 직분을 잘 섬긴 사람들에게 “영광의 면류관”이 주어질 것이라고 기록했다. 『너희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양무리를 치고 돌보되 마지못하여 하지 말고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익을 위하여 하지 말고 준비된 마음으로 하며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자들을 지배하려 하지 말고 오직 양무리의 본이 되라.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 너희가 시들지 않는 영광의 면류관을 받으리라』(벧전 5:2-4). 이 영광의 면류관을 받을 수 있는 “목사 직분”은 그가 받을 면류관의 이름처럼 매우 영광스러운 직분이다. 따라서 그 직분은 충분히 사모할 만한 것이며, 사람에 따라서는 그것을 스스로 원할 수도 있는데, 성경은 그 일이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말씀한다. 『만일 어떤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원하면 그가 선한 일을 사모한다는 그 말은 참되도다』(딤전 3:1).

하지만 세상에는 목사직을 도둑질하듯 취하여 지역 교회를 자기 멋대로 운영하는 날강도들도 있고, 교단 명패를 내건 신학교를 졸업한 뒤 그 교단에서 주는 자격증을 가지고 목사 노릇을 하는 생계형 목사들도 있으며, 영향력 있는 목사를 하겠다며 이 교단 저 교단을 배회하는 떠돌이들도 있다. 목사는 그렇게 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서 규정하는 조건들을 충족시켜야 목사가 될 수 있다. 즉 목사는 비난받을 일이 없어야 하고, 한 아내의 남편이어야 하며, 절제하고 신중하며, 예의 바르고 대접하기에 힘쓰며, 가르치기를 잘해야 한다. 또한 술을 즐기지 않고, 구타하지 않으며, 더러운 이익을 탐내지 않고, 오직 잘 참고, 다투지 않으며, 탐욕스럽지 않고, 자기 집안을 잘 다스려서 온전한 위엄으로 자기 자녀들을 순종케 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초신자를 목사로 세워서도 안 되는데, 이는 그가 교만으로 높아져서 마귀처럼 행동하다가 정죄를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딤전 3:2-6).

이 나라에는 스스로 높아져서 목사가 된 “자칭 목사들”이 수두룩하고 그들의 뒤를 따르는 “자칭 예비 목사들”도 넘쳐 난다. 너 나 할 것 없이 치킨 가게를 차리는 것처럼, 너 나 할 것 없이 빨간 십자가를 세워 놓고 교회 놀이를 하는 곳이 바로 이 한국이라는 나라다. 그들은 성경에서 말씀하는 자격 조건을 전혀 갖추지 않은 자들임에도 불구하고, 목사직을 탐내어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만나게 해 주겠다고 나서서는 정작 성경은 옆으로 치워 버리고 비성경적인 교단 신학과 세상 인문학으로 회중을 오염시킨다. 그런 사기꾼들은 강단에서 끌어내려 생계를 위해 다른 일을 찾아보라면서 내쫓아 버려야 한다. 그렇게 할 일이 없어서 목사를 하며 배를 채우려고 하는 것인가! 그들의 종말은 파멸이며 그들의 하나님은 자기들의 배다!(빌 3:19)

얼마 전 모 일간 신문에 “땅이여! 땅이여! 땅이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지어다!”라는 전면 광고가 실렸었다. 언론 매체가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에는 소위 “벽보” 같은 것들이 백성들에게 무언가를 알리는 데 사용되곤 했는데, 요즘은 돈 있는 이들이 거액의 광고비를 주고 신문 지면을 이용하여 자기 입장을 국민에게 배달하고 있다. “땅이여! 땅이여! 땅이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지어다!”라고 해서 무슨 대성통곡할 일로 이 땅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는가 했는데, 실상은 코로나19로 인한 지구적 재앙이 주는 의미를 아직도 모른다며 우리에게 뭔가를 깨우쳐 주겠다고 나선 어떤 한심한 목사의 글이었다. 굳이 성명을 거론할 필요도 없는 이 사람은 대한예수교장로회 소속 목사인데, 충북 진천에 교회 하나를 세워 놓고 자기를 맹종하는 교인들을 모아 진리도 아닌 것을 무슨 신비롭고 대단한 것인 양 가르치는 자였다.

광고 끝에 가서 「참고 참고 또 참아 보다가 다시 한번 세 번째 땅을 쳐 보는 것이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땅이여! 땅이여! 땅이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지어다!”(렘 22:29) 하면서 땅을 세 번 치는 것과 같은 애끓는 심정으로... 한국 교회 목회자들과 성도들에게 함께 깨어 회개하자고 세 번째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한 것을 보면 나름대로 이 나라 교회들을 염려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가 자신의 억지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인용한 성경 구절들과 그 적용을 보면 실로 엉망이어서 그야말로 “지식 없는 열성”(롬 10:2)으로 자신을 치장한 자칭 목사임을 알 수 있다.

첫째, 그는 코로나19가 창궐하는 「지금은 하늘의 권능이 흔들리는 재림의 때이다(마 24:29)」라고 했다. 그가 참고 구절로 제시한 마태복음 24:29, 즉 『그 날들의 환란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그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고, 또 하늘들의 권능들이 흔들릴 것이라.』라는 말씀은 대환란이 끝날 무렵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기 전에 있을 하늘의 현상을 보여 준다. 왜냐하면 이어지는 구절에서 『그후에 하늘에 있는 인자의 표적이 나타나리니, 땅의 모든 지파들이 통곡할 것이며, 또 그들은 인자가 권세와 큰 영광으로 하늘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보리라.』(마 24:30)라고 말씀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7년 대환란이 다 지난 후에 있을 일이기 때문에 지금이 재림의 때라면 교회가 이미 환란을 통과했다는 얘기가 된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교회는 대환란이 있기 전에 휴거가 된다는 사실이다(살전 4:13-18, 계 4:1,2). 교회는 아직도 땅에서 섬기고 있으므로 교회 시대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대환란도 아직 도래하지 않은 것이다. 대환란 끝에 있을 지상 재림은 여전히 나중 얘기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한 가지만 보아도 광고를 낸 목사의 신학 실력은 들통나 버렸는데, 하물며 그다음에 이어지는 주장들은 얼마나 비성경적이겠는가!

둘째, 그는 「지금은 둘째 화의 끝자락이다. 지금은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때다(계 11:14, 마 24:29, 막 13:24,25). 둘째 화가 끝나면 지체하지 아니하고 창세 이래로 전무후무한 환난이 일어난다(계 11:14; 10:6,7). 그 환난은 이 나라, 이 민족이 앞으로 겪어야 할 전재이다. 북한의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은 666의 육적(肉的) 상징이다. 그들을 믿는 것은 마귀를 믿는 것과 같음을 알아야 한다」라고 했다. 그가 말한 “둘째 화”는 요한계시록 8:13에 언급된 세 가지 화 중 하나다. 『내가 보고 들으니, 하늘 한가운데로 날아가는 한 천사가 큰 음성으로 말하기를 “땅에 사는 자들에게 화 있으리라, 화 있으리라, 화 있으리라! 이는 세 천사가 이제 불려고 하는 다른 나팔 소리들 때문이라.”고 하더라.』 이것은 앞선 구절들에서 불렸던 “네 나팔”(계 8:7-12) 이후로 불리게 될 다른 “세 나팔”에 관한 언급인데, 성경은 그 “세 나팔”을 가리켜서 “세 가지 화”라고 말씀하고 있다. 말하자면 “첫째 화”는 다섯째 나팔이 불림으로써 닥치는 재앙인데, 끝없이 깊은 구렁에서 초자연적인 메뚜기들이 올라오는 것이다(계 9:1-11). “둘째 화”는 여섯째 나팔이 불림으로써 일어나는데, 큰 강 유프라테스에 결박하여 놓은 네 천사가 풀려나서 2억 명의 기병대가 예비되고 그들이 사람들의 삼 분의 일을 죽이는 재앙을 가리킨다(계 9:12-21). 이 두 가지 화가 지나고 나면 “셋째 화”를 위해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 것인데, 그것은 다름 아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그분의 영원한 통치를 의미한다. 『둘째 화는 지나갔으나, 보라, 셋째 화가 속히 오리라. 그 후에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하늘에서 큰 음성들이 있어 말하기를 “이 세상의 나라들이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왕국들이 되어서 그분이 영원무궁토록 통치하시리라.”고 하더라』(계 11:14,15). 성경의 저자이신 성령님께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적그리스도를 따르는 죄인들에게는 “화”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주님의 재림은 둘째 화 이후에 있을 문자적이고 가시적이고 물리적인 사건으로서, 주님께서는 구약 시대에 『자기의 종들인 선지자들에게 선포하신 것과 같이』(계 10:7) 장차 재림하시면 물리적인 지상 왕국을 이 땅에 수립하시어 영원한 통치를 시작하실 것이다.

그런데 광고를 낸 그 장로교 목사는 둘째 화가 끝나면 창세 이래로 전무후무한 환난이 일어난다고 하면서 그 환난이 “남한과 북한 사이의 전쟁”이라고 했다. 둘째 화가 지나가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천년왕국이 펼쳐지는 것이 성경에서 가르치는 진리인데, 생뚱맞게도 한반도 전쟁이 웬 말이란 말인가? 그런 것을 성경의 진리라고 가르치는가? 무슨 근거로 그 쓸데없는 잡설을 진리의 지식인 것처럼 포장해서 교회들에게 전달하는 것인가? 한편 비성경적인 교단 교리를 넘어서 자기만의 “특별 계시”를 강조하는 자들은 모두 하나같이 “재림주”를 들고나온다. 전면 광고를 낸 자도 예외가 아니어서 그의 기가 찬 횡설수설을 짧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한국 기독교인들은 대한민국이 영적 이스라엘이라고 말한다. 그렇다! 진실로 대한민국은 영적 이스라엘이다(마 21:43). 그렇다면 재림주는 이스라엘 감람산이 아닌 이 나라를 “천국을 이룰 제 밭”으로 삼아 역사하는 것이다. 번개가 동에서 서까지 비취듯 재림주의 영광이 나타나기 전에 도적같이 오셔서 역사하는 때가 있는 것이다. 그 빛의 역사가 끝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초림 때 엘리야의 능력과 심령으로 온 세례 요한에게 그랬듯이, 이 땅의 목회자들은 그 빛을 임의로 대했다... 마지막 재림의 마당에서 해를 입고 살아 역사하신 이 땅의 주는 구속사의 끝을 이룰 수 있는 구속사의 청사진을 가지고 오신 분이다... 그를 하늘의 두 이적 중 하나인 해를 입은 여인이라고 칭하는 것이다(계 12:1-17). 그러나 그분은 도적같이 오신 분이다(계 16:15)... 그는 이 땅에서 노아처럼 자신의 방주를 지었고 자신의 성을 쌓았다(사 24:13, 계 11:8). 그 방주와 그 성을 통해 도적 같은 역사를 하고 도적처럼 홀연히 사라졌다. 마치 해를 입은 여인이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고 광야로 사라진 것처럼(계 12:14)..」

그 장로교 목사가 참고로 제시한 구절들은 대부분 요한계시록인데, 요한계시록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지 않고 비유와 상징으로 해석할 때 위와 같은 헛소리를 하게 된다. 그의 책에 따르면 그가 말한 재림주는 어이없게도 “멜키세덱”이며, 그는 멜키세덱이 한국 땅에 도둑같이 왔다가 도둑같이 사라졌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그는 멜키세덱을 알아보았단 말인가? 왜 그때 자신만 알고 가만히 있었는가? 세상 사람들은 그 광고를 보면서 그를 미쳤다고 하지 않겠는가!

그는 멜키세덱을 가리켜 요한계시록 12:1-17의 해를 입은 여인이라고 주장했는데, 해로 옷 입고 달을 발밑에 두며 머리에 열두 별이 있는 면류관을 쓴 여인은 요셉의 꿈에서 드러나듯 “이스라엘”을 상징한다. 요셉이 한 꿈을 꾸고 아비와 형제들에게 『보소서, 내가 또 꿈을 꾸었는데, 보소서, 해와 달과 열한 개의 별들이 내게 경의를 표하더이다.』(창 37:9)라고 했을 때, 그의 아버지 야곱은 『네가 꾼 이 꿈이 무엇이냐? 나와 네 어미와 네 형제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10절)라고 했다. 이것은 “해”와 “달”과 요셉을 포함한 “열두 별들”이 상징하는 것이 야곱, 곧 이스라엘의 집안임을 보여 주며, 그것들과 밀접하게 관련된 여인이라면 당연히 이스라엘 민족을 상징한다. 그가 광고에 게재한 주장들을 일일이 다 다룰 필요도 없이,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열매로 그 나무를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는 하나님께서 부르시지 않은 자칭 목사요 자칭 성경 교사인 것이다! 그런 글을 광고하는 것은 헌금을 낭비하는 것이요, 그것을 읽고 수용하는 것은 마귀 들림의 첩경이다.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누구든지 그 올무에 걸려들어 마귀에게 정복당하게 된다. 자유를 약속하나 자기들 자신은 타락의 종들인 자들에게 속으면, 그 즉시 마귀에게 점유당해 마귀의 종으로 살게 됨을 잊지 말아야 한다(벧후 2:19).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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