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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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야 면장(免牆)을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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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1년 09월호>

이렇듯 꽉 막힌 벽처럼 아는 게 없고 견문이 좁은 고집불통의 벽창호를 가리켜 “면장”(面牆)이라고 한다. “벽창(碧昌)호” 역시 평안북도 “벽동”과 “창성” 지방의 힘세고 억센 소, 즉 “벽창우”(碧昌牛)에 “벽의 답답함”이 더해져서 생겨난 말이다. 다시 말해 꽉 막히고 식견이 좁은 답답한 담벼락 신세를 면(免)하려면, 그에 필요한 학식이나 실력을 갖추기 위해 부지런히 배우고 공부해서 잘 “알아야” 한다는 의미의 속담인 것이다.
위 속담은 문재인 정부가 반드시 마음에 새겨 두어야 할 속담이다! 현 정부의 실정(失政)을 보고 있으면 그저 “답답함”만 밀려온다. 어느 언론 보도에 따르면, 오늘날 우리는 “지독한 상실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이를테면 그 어느 시대보다도 더 암울하고 잔인한 현실 속에서 보편적 가치가 무너지고 상식이 통용되지 않는 모습, 그러면서도 대통령을 위시하여 누구 하나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 모습, 그야말로 도덕적 가치는 물론 최소한의 양심마저 실종되고, 자유민주주의의 가치와 정부의 품격, 정의, 공의 등 한 나라가 갖추고 있어야 할 모든 가치가 무너져 내리는 위태로운 모습을 사회 전반에서 목도하게 된다는 것이다.


“코로나19 재앙”이라는 도무지 그 끝을 가늠할 수 없는 길고 긴 터널 속에서 음식업, 도소매업, 숙박업, 여행업 등 서비스 분야 영세 자영업자들은 직격탄을 맞아 숨만 겨우 붙어 있는 채로 헐떡거리는 물고기 신세가 되었고, 청년 실업률이 계속 증가하는 가운데 작년에 무려 22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으면서 “고용 상황”은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최악의 성적표를 기록했다. 또한 네 차례에 걸친 추경으로(2020년) 국가채무는 850조 원에 육박했고, 국가채무비율은 약 44%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국가의 부채와 세금 폭탄에 대한 부담을 다음 정권 내지는 이후 세대가 고스란히 떠안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소득 주도 성장”이라는 뜬구름 잡는 경제 정책으로 실물 경제는 더욱 피폐해져서 가난한 사람들은 더 가난해지고 부유한 사람들은 더 부유해지는 “빈익빈 부익부” 소득 양극화 현상도 심화되었다. 지난해 서울 아파트 평당 가격이 사상 처음으로 4천만 원을 넘어섰고, 자고 일어나면 오르는 집값 상승 현상은 정부의 계속되는 규제 대책에도 불구하고 수도권과 지방으로 확산되었으며, 길바닥에 나앉게 생긴 자영업자는 당장 월세도 못 내는 형편인데 다른 한쪽에서는 부동산으로, 또 주식으로 수억 원을 벌었다는 배부른 소리를 하고 있다.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아무리 월급을 모으고 모아도 집을 사기는커녕, 전세도 구하기 힘든 실정이어서 젊은이들은 미래에 대한 꿈조차 꿀 수 없는 “희망이 상실된 시대”라고 울부짖고 있다. 참과 거짓을 공정한 잣대로 판단해야 할 최종 심판자인 사법부의 수장은 국가 권력의 눈치나 살피다가 거짓말이 탄로 났으면서도 버젓이 자리를 지키고 있고, 정의를 수호해야 할 전직 법무부 장관 가족은 각종 비리로 감옥 신세를 지고 있는 등 “공정과 정의가 상실된 시대,” 더 기막힌 건 그런 죄를 저질렀으면서도 부끄러움을 전혀 모르는 “염치가 상실된 시대,” 또한 정부와 여당의 지독한 내로남불에 따른 “상식이 상실된 시대,” 거대 여당의 독주로 협치는 사라지고 야당은 존재감 없이 표류하는 “정치 상실의 시대”까지 그동안 우리 사회를 든든하게 지키던 가치들이 하나둘씩 무너져 버린 것이다. “코로나19” 확산 초기 “K-방역”을 세계만방에 알린 우리나라는 네 번에 걸친 대유행과 백신 “늑장 확보”로 인해 언제 “코로나19”가 종식될는지 갈피를 못 잡고 있다. 특히 백신 부작용에 대한 국민들의 우려조차 확실하게 해소해 주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신종 변이 바이러스까지 확산되고 있으니, 전문가들은 올해도 우리는 여전히 “상실의 시대”에 갇혀 살 수밖에 없다고 경고한다. 그런데도 문재인 대통령은 꽉 막힌 “면장”(面牆)처럼 입만 꼭 다문 채 이 모든 사태에 대해 무한 책임을 지고 있는 국정 최고 책임자로서 이렇다 할 사과 한마디조차 하지 않고 있다. 언젠가 문재인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리는 한 측근 인사가 “고집이 세기로는 노무현 대통령보다 문재인 대통령이 훨씬 더 세지요.”라고 말한 적이 있다. 도대체 알아야 면장(免牆)을 할 것 아닌가!

한편 이런 “꽉 막힌 답답한 모습”이 정치, 사회적인 현안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이 마지막 배교한 교회 시대를 살아가는 교회들의 실상을 보라! 또한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생의 자랑에 사로잡혀 간신히 숨만 붙은 채로 영적인 기근과 갈증으로 허덕이는 현대 그리스도인들의 실상을 보라! 과연 이 마지막 교회 시대에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는가?(눅 18:8) 선지자 엘리야의 시대처럼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7천 명과 같은 사람들을 찾아볼 수 있겠는가? 과연 이 세상 교회들 안에서 무슨 희망을 찾을 수 있는가? 자칭 그리스도인들은 온갖 죄들과 거짓 교리와 위선과 형식주의와 탐욕과 타락과 우상 숭배와 세상 풍조라고 하는 쓰나미에 휩쓸려 더럽고 냄새나는 쓰레기더미에서 뒹굴고 있다. 이 시대는 그 어느 때보다도 영적으로 암울하고 잔인한 시대다. 중세 암흑시대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경건의 능력”이 상실된 시대, “영적 감각”이 상실된 시대, “바른 성경”과 “진리”와 “성경적 가치”가 상실된 시대, “주님을 향한 뜨거운 열정과 사랑”이 상실된 시대, “높은 곳으로부터 오는 능력”이 상실된 시대, “진정한 헌신과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 복종”이 상실된 시대, “복된 소망,” “거룩한 성별,” “순교자의 정신과 자세,” “선교와 구령의 열정”이 모두 상실되어 버린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진리의 말씀으로 성도들의 양심을 일깨워 주어야 할 설교 강단이 죽었기 때문이다. 왜 죽었는가? 가장 큰 원인은 “변개된 성경들”과 <한글킹제임스성경>을 흉내 내는 흠정역과 같은 “짝퉁 성경들”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기독교가 처음 들어올 때부터 변개된 성경(로스역)으로 시작된 불행한 나라이고, 더군다나 1994년에 하나님께서 섭리로 보존하신 <한글킹제임스성경>이 출간된 지 27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 나라 교회들은 변개된 성경인 개역성경과 개역개정판을 붙들고 있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미국의 배교한 근본주의자들과 손을 맞잡고 있는 정동수 목사는 그가 번역한 흠정역이 마치 하나님께서 승인하신 바르게 보존된 성경인 양 교계 앞에서 진실을 호도하고 있다. 과연 그 책이 하나님께서 쓰시는 성경이라면 그 성경이 출간된 이래로 어떤 열매를 맺었는가?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게 되리라』(마 7:20). 그 성경을 쓰는 자들은 복음을 들고 거리로 나가 혼들을 하나님께 이겨오고 있는가? 정 목사의 교회는 거리에서 설교하고 구령(Soul Winning)하는 교회인가? 과연 그들은 1년에 몇 명이나 구령하는가? 또한 이 땅에 진리의 지식을 보급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가?


2천 년간의 교회사에서 위대한 부흥의 시대요, “열린 문”(계 3:8)의 시대이자, 영적으로 가장 찬란했던 시대인 “필라델피아 교회 시대”(1500-1900)에 전 세계를 누비며 복음과 진리의 기치를 드높였던 믿음의 용사들은 오직 <킹제임스성경> 한 가지 책만을 믿었고, 이 책만을 읽고 묵상하고 암송했으며, 이 책만을 설교하고 가르쳤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거리설교자들”이요, “구령자들”이었다! 그들이 맺은 “구령의 열매”는 <킹제임스성경>에서 비롯된 열매였다. 그렇다면 정 목사의 교회와 그의 흠정역을 칭송하고 환호하는 교회들은 어떠한가? 구령의 열매가 있는가? 없다면 왜 없는가? 구령의 열매도 맺지 못하는 “성경”이 과연 하나님께서 승인하신 성경이겠는가? “성경”은 살아 있고 능력이 있는 하나님의 말씀인데(히 4:12), 죽은 영을 살리지도 못하고 지옥으로 가는 혼을 불구덩이에서 구원하지도 못하는 성경이라면, 그런 성경이 왜 이 땅에 나와야 하는가?

더욱이 우리말로 바르게 보존된 <한글킹제임스성경>이 이미 출간되어 지난 27년 동안 구령의 열매를 위시한 많은 열매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 드리고 있는 상황에서, 가장 기본적인 구령의 열매조차 맺지 못하는 흠정역이 왜 나와야 한단 말인가? “시기심” 때문이다! 사실 시기심은 사탄 안에서 발현된 최초의 죄로서 “죄의 뿌리”라 할 수 있다. 처음에 사탄이 타락했을 때, 그의 마음속에는 다음과 같은 시기심이 발동했었다. 『이는 네가 네 마음속에 말하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가서 내가 내 보좌를 하나님의 별들보다 높일 것이요, 내가 또한 북편에 있는 회중의 산 위에 앉으리라. 내가 구름들의 높은 곳들 위로 올라가, 내가 지극히 높으신 분같이 되리라.” 하였음이라』(사 14:13,14).


마귀는 하나님을 “시기”했고, 거기에서 모든 문제가 시작되었다. 대개 시기는 좌절된 야망에서 비롯된다. 주로 어떤 것을 시기하는가? 나에게는 없지만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권위나 힘을 시기한다. 다른 사람이 가진 돈과 재능을 시기한다. 다른 성도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 것을 시기한다. 다른 성도의 의로움과 열매와 영적 성장을 시기한다. 다른 성도가 하나님과 함께하는 풍성한 교제와 기도의 응답을 시기한다. 그러나 이러한 시기심이 그 사람을 망쳐 놓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카인은 시기로 인해 아벨을 살해했고, 사울도 시기 때문에 다윗을 죽이려 했다. 헤롯 역시 유대인의 왕으로 태어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시기하여 그분을 죽이려 했으며, 빌라도는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시기해서 그분을 재판에 넘겼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스테판을 돌로 쳐서 죽인 것도 시기 때문이었다. 『진노는 잔인하고 성냄은 사나우나, 시기 앞에 누가 설 수 있으리요?』(잠 27:4) 『분노가 미련한 자를 죽이고 시기가 어리석은 자를 죽이느니라』(욥 5:2). 또한 사도 바울이 사역했던 당시에도 그를 “시기”하면서 그의 사역을 흉내 내는 자들이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심지어 시기와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며 또 어떤 사람들은 선한 뜻에서 전파하니』(빌 1:15). 무엇보다도 바르게 보존된 성경이 출간된 이후로 등장한 모든 변개된 성경 및 짝퉁 성경들 역시 그 배후에는 이러한 “시기심”이 도사리고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시기심에 사로잡혀 있는 정 목사는 바르게 보존된 성경을 이 땅에 정착하고 확산하는 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다! 복음을 전파하고 진리의 지식을 확산시키는 데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어떻게 하면 이 나라 기독교계 안으로 들어가 영향력을 행사하고 인정받을 수 있는지, 또한 어떻게 해야 성경을 많이 팔아 이익을 남길 수 있는지에만(고후 2:17) 관심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그는 변개된 성경과 거짓 교리로 점철된 이 나라 기독교계와 손을 잡는 일을 주저하지 않는다. 일례로 지난 2019년 11월 29일에, “대한예수교장로회 백석 교단”에서 정동수 목사에 대해 이단 결의를 한 적이 없다는 “2019년 총회 결과”가 담긴 편지를 그의 “사랑침례교회” 측에 보낸 적이 있는데, 그때 정 목사는 그러한 결정을 진심으로 환영한다는 내용의 답신을 보내면서 이단성 시비에 관하여 “면죄부”를 발부해 준 것에 대해 감사를 표명했다.


과연 이게 감사할 일인가? 그가 번역한 “흠정역”은 그의 그런 행보가 잘못되었다는 것도 안 가르쳐 주는가? 그렇다면 그것은 “죽은 성경”이다! 그러나 바르게 보존된 살아 있고 능력 있는 <한글킹제임스성경>은 그의 어리석은 행보에 대해 강력하고 단호한 어조로 다음과 같이 경고한다. 『내가 이제 사람들에게 호감을 사랴? 아니면 하나님께 사랴? 아니면 내가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고 하겠느냐? 내가 아직도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고 한다면 나는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갈 1:10). 『실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모든 사람은 박해를 받을 것이라』(딤후 3:12). 『이제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권고하노니 너희가 배운 교리에 역행하여 분열을 일으키고 공박하는 자들을 주의하고 그들에게서 떠나라』(롬 16:17). 『마음이 부패하고, 진리를 상실하며, 이익이 경건이라 생각하는 사람들 사이에 무익한 논쟁이 일어나느니라. 그런 데서 네 자신은 빠져 나오라』(딤전 6:5). 도대체 뭘 알아야 면장을 할 것 아닌가!


또한 그는 정치 참여에도 적극적인지라, 정치 참여와 연관된 모임에 초청 강사로 가서 설교 아닌 설교를 하는가 하면, 진리의 말씀을 설교하고 가르쳐야 할 교회 강단을 정치인들에게 버젓이 내어 주기까지 한다. 심지어 자기 교회 교인들에게 전광훈 목사가 주도하는 광화문 집회에 참여하라고 적극적으로 독려하면서 전 목사를 지지하는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리기도 했다. 말하자면 그는 미국의 배교한 근본주의 목사였던 “제리 폴웰”과 한통속인 것이다!


1645년 “헐버트” 경은 인본주의의 아류인 “이신론”(Deism)의 5대 교리를 이렇게 제시했다. 첫째, 하나님은 존재하신다. 둘째, 인간은 하나님을 예배해야 할 의무가 있다. 셋째, 예배의 핵심은 “도덕을 실천하는 것”이다. 넷째, 도덕을 실천하지 못한 인간은 죄를 회개해야 할 의무가 있다. 다섯째, “도덕성 실천” 여부에 대한 상벌은 사후에 온다. 이 그럴듯해 보이는 이론은 성경적 신앙과는 거리가 멀고, 오히려 기독교를 하나의 “도덕적인 종교”로 전락시키는 원인이 되었다. 그래서 이와 같은 “도덕성 실천”이 마지막 배교한 교회 시대에 교회들이 해야 할 “시대적인 사명”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이와 연관해서 1980년대에 미국의 “제리 폴웰” 목사가 “도덕적 다수”(Moral Majority)에 관한 정치적 호소를 했을 때, 이것은 또 하나의 영적 파멸을 예고했으니, 곧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이 정치적, 사회적 이슈에 적극적으로 가담해야 한다는 호소였던 것이다. 그러나 참된 신약 지역 교회는 죄에 대해 설교하고 하나님께서 진리에 반대하는 자들의 계략을 분쇄해 주시도록 기도하는 것 외에 당대의 사회적, 정치적 이슈에 “직접 개입”해 본 적이 없다. 말하자면 정동수 목사가 <킹제임스성경>을 운운한다고 해서 바르게 보존된 성경을 사랑하고 지키는 사람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아무리 일을 해도 끝나지 않는 직업을 가져 본 경험이 있는가? 일하면 일할수록 할 일이 더 많아지는 직장에 대해 알고 있는가? 물론 할 일 없이 따분하게 앉아 있는 직장보다는 할 일이 계속 있는 직장이 더 좋은 직장이다. 그런데 죄인들을 예수 그리스도께로 이겨오는 사역을 보면, 아무리 많은 죄인을 주님께 이겨온다 해도 끝이 없는 일임을 알게 된다. 누군가를 구령하고 진리의 말씀으로 양육하는 일은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죄인들은 계속 태어나고 있어서 여전히 구원받고 진리로 성장해야 할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오늘 밤 죽는다는 것을 안다면 남은 시간 동안 무엇을 하겠는가? 우리가 마지막으로 힘을 쏟아야 할 일은 무엇인가? 사과나무 한 그루를 심겠는가? 광화문 집회에 참석하겠는가? 아니다! 우리는 단 한 명의 죄인이라도 더 주님께로 이겨와야 한다.


구령을 소홀히 하는 것은 “죄”이다. “영적 살인”을 범하는 죄인 것이다! 몇몇 성도만이 “설교자”로 부름을 받지만, 모든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죄인들을 예수 그리스도께로 이겨오는 “구령자”로 부름을 받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자기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신실하게 구령한다면 참으로 엄청난 부흥과 대각성의 역사가 일어날 것이다. 작게는 지역 사회에서, 크게는 나라 전체에서 부흥을 일으키는 데 구령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은 없다. 그래서 우리 모든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은 “구령의 열정”을 지녀야 한다.


<구령의 열정>을 쓴 “오스왈드 스미스”는 이렇게 말했다. “지역 교회의 목사가 자신의 메시지로 사람들을 회심시키며 구원받게 하고 있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함으로써 얼마나 많은 혼이 구원받았는가? 우리는 수많은 교회 활동으로 지칠 정도로 일하지만, 정작 교회의 진정한 과제인 복음을 전파하고 잃어버린 혼들을 이겨오는 일은 거의 무시하고 있지 않은가?” 이것이 바로 이 세상에 있으나 마나 한 교회들의 현주소이고,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고 세상 정욕으로 마음을 채우고 있는 모든 육신적인 그리스도인들의 실상이다. 정 목사와 그의 교회 및 그를 추종하는 교인들 역시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신실한 구령자의 복음 전파를 통해 수많은 죄인이 회심하고, 진실한 회개의 눈물을 흘리며, 술병을 내던지고, 창녀 짓을 그만두며, 도박을 중단하고, 자살하러 가던 사람이 돌아서며, 폭력을 멈추고, 추악하고 더럽고 음란한 일을 중단하게 된다고 할 때, 그래도 여러분은 가만히 앉아만 있을 것인가? 그렇다면 그러한 “구령의 열정”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하나님께서 섭리로 보존하시고 승인하신 “바른 성경”에서만 나온다. 하나님의 말씀, 곧 진리의 성경은 바위를 부수어 조각내는 “큰 망치”일 뿐만 아니라 소멸시키는 “불”이며(렘 23:29), 강력하게 찌르는 “막대기”와 단단하게 고정하는 “못”이며(전 12:11), 무엇이든 단번에 베어 버릴 수 있는 예리한 “칼”이고, 강력한 “폭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 교회들과 죄인들을 향해 죄를 죄라고 부르짖지 못하고 담대하게 복음을 외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변개된 성경을 변개되었다고 책망하지도 못하고, 비성경적인 교단들과 가짜 교회들로부터 성별하지도 못하는 그런 나약해 빠진 목사와 교회가 있다면, 과연 그런 자들을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시겠는가? 왜 “흠정역”은 그런 정 목사와 교회들을 바로잡지 못하는 것인가? 하나님께서 승인하신 성경이 아니기 때문이다. 왜 그 성경으로는 이렇다 할 열매를 못 맺는 것인가? 죽은 성경이기 때문이다. 진실을 호도하는 정동수 목사에게 속지 말라! 도대체 뭘 알아야 면장을 할 것 아닌가!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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