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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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안의 속이는 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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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1년 09월호>

『실로, 하나님은 참되시나 사람은 모두 거짓말쟁이라.』(롬 3:4)라는 말씀을 볼 때마다 “사람”은 그 근본이 “속이는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 “사람의 속임수”는 그의 일상에 도배되어 있어서 상대방이 어떤 것을 제안하거나 거래할 때 그 이면에 속임수는 없는지 의심부터 하게 되고, 또한 이것이 인생을 사는 법임을 실제로 속으면서 체득할 때도 있다. 실로 다양한 속임수들이 쌓이고 쌓여 형성된 지난 6천 년간의 인류 역사는 속임수들의 “퇴적체”라 할 수 있다. 역사의 고비마다 퇴적된 속임수의 층들은 그것을 캐내고 손에 넣는다 해도 유익할 게 전혀 없는 허상에 불과하다. 철학과 사상의 속임수, 정치의 속임수, 로마카톨릭, 개신교, 이슬람교, 불교, 여호와의 증인, 몰몬교, 안식교 등의 종교들의 속임수는 마귀에게 넘겨진 현 세상을 왜곡과 변질의 날카로운 협주로 소름 돋는 곳이 되게 했다. 곧 흑암 속에 앉아 있는 죄인들은 빛을 보지 못한 채 멸망해 갔고, 성도들은 그러한 세상에서 고난을 겪어야 했던 것이다. 믿음의 선진들이 악한 현 세상에서 당했던 고난은 마귀적인 속임수들에 저항하려는 고통스러운 몸부림이었다. 이로써 그들은 현 세상이 성도들에게 얼마나 적합하지 않은 곳인가를 몸소 증명해 보였다(히 11:36-38).


인생에서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이 바로 “속임수”이다. 생의 순간순간마다 방심하지 않고 속임수를 밝혀내서 그에 저항하고 또 저항하는 일에는 “인내”가 필요한데, 성도가 주님을 섬기는 일에 있어서 더욱 그렇다. 『내가 너의 행위와 수고와 인내를 알며, 또 네가 어떻게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지만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들이 거짓말쟁이임을 찾아낸 것과 또 네가 참고 인내하며 내 이름을 위하여 수고하고, 지치지 않은 것을 아노라』(계 2:2,3). 속임수가 가장 많은 곳은 “영적인 영역”이며, 그 중심 타깃이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지 않으면 울부짖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아 두루 다니는 마귀에게 삼켜질 것이라는 경고는 바로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주어진 것이다(벧전 5:8).


한편 창세기 3장에 의하면 “속임수”는 인류가 오늘날처럼 타락하게 된 근본 원인이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들의 어떤 짐승들보다도 더욱 간교한 뱀이 그 원흉이었는데, 그가 여자에게 『참으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동산의 모든 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지 말라.’ 하시더냐?』(1절)라고 한 말에서 “참으로”라는 긍정적인 단어에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의심을 불러일으키려는 속임수가 배어 있었던 것이다. “죄”는 긍정적으로 다가온다! 그 뱀이 여자에게 했던 『너희가 반드시 죽지는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의 눈이 열리고 너희가 신들과 같이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되는 줄을 하나님께서 아심이라.』(4,5절)라는 말에는 “진실과 거짓”이 교묘하게 혼합되어 있었다. 뱀의 그러한 수법 이면에는 여자를 기필코 범죄하게 하려는 고도의 속임수가 깔려 있었다. 말하자면 선과 악의 지식의 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자, 실제로 “눈이 열렸고”(『그들의 눈이 둘 다 열려』, 7절) “선과 악을 알게 되었지만”(『그 사람이 우리 중 하나와 같이 되어 선과 악을 알게 되니』, 22절), 뱀이 말한 것처럼 “신들과 같이” 되지는 않았던 것이다. 뱀은 인류를 타락시키려고 “진실에 거짓을 혼합하는” 속임수를 사용했는데, 그로 인해 타락해 버린 인류는 마귀의 손아귀로 넘어갔고, 그의 통치를 받는 세상 역사의 페이지들 역시 속임수의 잉크로 기록되었으니 그 기간이 무려 “6천 년”에 달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기만의 욕망으로 가득한 세상은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그들은 도리어 우리를 “속이는 자”로 여기고 반박하며 모독하고 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무리를 보자 시기로 가득 차서 바울이 말한 것들을 대적하여 반박하고 모독하여 말하니라』(행 13:45). 바울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자신의 사역을 설명할 때 자신이 “속이는 자 같으나 진실하다”고 말했다(고후 6:8).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은 세상과 그 안의 타락한 교회들을 향해 진리를 전파함에도 불구하고 속이는 자로 여겨지고 반박을 당한다. 최초의 창조, 루시퍼의 반역, 우주적인 홍수 심판, 재창조, 인류의 타락, 예수 그리스도의 피에 의한 속죄, 주님의 부활, 믿음으로 인한 구원, 교회의 휴거, 대환란, 재림, 천년왕국, 새 예루살렘, 영원 세계 등 이 모든 성경적 진리들이 속임수로 여겨져 거부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듣든지 그만두든지 간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주 하나님께서 이같이 말씀하신다.』(겔 3:11)라고 외치는 것이며, 또한 교회 안의 속이는 자들에 관해 강력히 경고함으로써 그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이는 불복종하는 자들과 헛된 말을 하는 자들과 속이는 자들이 많기 때문』(딛 1:10)이다. 이렇듯 땅의 것들을 생각하면서 짐짓 하늘의 것들에 소망을 두고 있는 것처럼 행세하는 무리가 교회들 안에 득실거리고 있으므로(빌 3:18,19), 우리는 그들의 얼굴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 십자가의 원수들을 향해 진리의 외침을 비수처럼 꽂아야만 한다.


오늘날 한국 교회의 문제점 가운데 하나는 교인들이 목사라는 자들에게 속아 무작정 그들을 추종하는 데 있다. 생계를 위해 목사직을 선택한 자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바른 성경을 치워 버린 채 교인들에게 성경을 가르쳐 주겠다며 변개된 개역성경을 들고 호들갑을 떨고 있지만, 진리에 관하여 혼란과 우유부단함만 야기할 뿐, 단 한 번이라도 하나님의 마음에 흡족하게 말씀을 가르친 적이 없다. 자신들도 성경을 배우겠다고 이 신학교, 저 신학교, 특히 해외까지 기웃거리면서 돈 주고 박사 학위를 따 왔지만, 결국 항상 배우나 진리의 지식에는 이르지 못하는(딤후 3:7) 자신들의 실체만 노정하고 있을 뿐이다. 월간 <성경대로믿는사람들>이 1992년에 창간된 이래로 한국 교회의 목사들이 언론들에 기고한 글과 인터뷰한 내용을 바른 성경을 잣대로 판단하여 비평해 오니까, 언제부턴가 목사들이 내뱉는 “교리적인” 언사들이 꼬리를 감추기 시작했고, 언론들은 시답잖은 종교 행사들에 관한 기사들로 대체하기 시작했다. 다시 말해 소위 “유명 목사”라는 자들은 자신이 성경의 진리에 관해 뭐나 아는 듯이 아무렇게나 지껄였다가 바른 말씀의 큰 망치로(렘 23:29) 된통 얻어맞았던 것이고, 언론에 대문짝만하게 실었던 그들의 얼굴에 스스로 먹칠한 것을 알고서 알아서들 “자중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듯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할 수 없는 자들이 목사직을 꿰차고 앉아 자기들과 똑같이 무지한 교인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겠다면서 목에 힘을 주고 있는 현실이 이 시대의 교회들이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다. 교인들은 스스로 성경을 찾아 읽고 깨닫는 것이 아니라 그 목사들이 강단에서 던져 주는 것을 아무 의심 없이 받아먹고 “참, 은혜로운 말씀이었다!”라는 말만 연발하면서 그 목사들의 비위를 맞추기에 여념이 없다. 목사들이 뭐라고 하든지 그저 받아먹기만 하고 시키는 대로 따라 하기만 하며 이끄는 대로 질질 끌려다니기만 하는바, “노예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인데, 목사든 교인이든 그들 모두 “행악하는 거짓말쟁이들”임이 분명한 것이다(잠 17:4).


바른 성경을 치워 버린 자들이 성경을 가르치겠다고 나서는 것은 “로마카톨릭”에게서 배운 잘못된 습성이다. 로마카톨릭은 그들의 신도들에게서 성경을 빼앗은 뒤, 매주 미사 때마다 라틴어로 설교함으로써 그들의 회중을 우롱했다. 마귀에게 점유되어 지성과 이성이 마비된 카톨릭교도들은 사제들이 알아듣지도 못하는 라틴어로 설교해도 매주 예수님의 실제적인 살과 피가 된다는 성체와 와인을 받아먹기 위해 성당으로 찾아왔고, 시체처럼 죽어 버린 그런 신앙이 오늘날 자칭 “프로테스탄트들”에게도 전염되어 습관적으로 교회에 출석하여 알아듣지도 못하는 잡설에 “아멘!”을 연발하는 교인들이 양산되고 말았다. 왜 그들은 그런 헛된 짓을 하는 것인가? “속 사람”이 형성되지 않은 “혼적인 종교인들”이기 때문이다. “속 사람”이란, 영이 죽은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을 때 성령님께서 그 사람 안으로 들어가시어 살려 주신 “거듭난 영”을 가리키는데, 이렇게 영이 거듭난 죄인은 그 속 사람을 따라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는 성도로 변모가 되고(롬 7:22), 그의 겉 사람은 썩어질지라도 속 사람만은 영의 양식인 바른 말씀을 먹고 날마다 새로워지는 영적 성장을 경험하게 된다. 하지만 한국 교회의 교인들은 성령 하나님에 의해 혼이 죄의 몸에서 분리되고(골 2:11) 허물과 죄들 가운데서 죽었던 영이 다시 살아나는(엡 2:1) 영적인 변화를 겪어 보지 못한 채 교회로 몰려들었기에, 부패한 한글개역성경을 보고서도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 맹신하게 되고, 거기서 구원과 진리를 찾으려 하나 정작 아무것도 얻지 못한 영적 노숙자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또한 교단 교회의 전통에 따라 교단에서 시키는 대로 종교 행위만 할 뿐 그들 안에서는 어떤 영적 생명의 흔적도 발견되지 않는다.

바른 성경을 거부한 영적 소경들은 배교한 신학교들에서 배운 거짓 목사들의 말을 잣대로 삼아 하나님을 섬기려 하고 있다. 말하자면 자신들이 보는 개역성경조차 믿지 않으면서 목사들이 지껄이는 것들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이다. 그들 교인들은 강단에서 속이는 자들의 말에 단단히 세뇌되어 있어서 바른 진리를 제시해도 그것을 이단시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것이 바로 그들이 단단히 마귀에 들려 있다는 증거다. 일례로, 사도행전 24장에서 변사 터툴로가 바울에 대해 『우리가 알고 보니 이 사람은 전염병자가 되어 세상에 있는 온 유대인 사이에 소요를 일으킨 자로서 나사렛 이단의 두목』(5절)이라고 했을 때, 사도 바울은 『그들이 이단이라고 하는 그 도를 따라서 내가 내 조상들의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과 선지서들에 기록된 모든 것을』(14절) 믿는다고 변론했다. 바울을 나사렛 이단이라고 고소했던 터툴로와 장로들은 마귀 들린 자들이 분명했지만, 그들이 이단이라고 하는 도를 따라 성경에 기록된 모든 것을 믿었던 바울은 신약 교회사에서 가장 위대한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이었다. 특히 바울은 그 자리에 있던 유대인들이 의인과 불의한 자 모두에게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는 소망을 받아들였던 것처럼 그 자신도 그러한 소망을 하나님을 향해 갖고 있었는데(15절), 그 부활과 관련하여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했다는 이유로 나사렛 이단의 두목으로 정죄되었다. 부활을 믿는다는 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증거를(고전 15:3-8, 행 22:6-8) 믿지 않고 그 메시아를 끝끝내 거부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들은 부활하신 메시아로서의 예수님을 증거하는 바울에 관해 『저런 자는 이 세상에서 없애 버리라. 그는 살 자격이 없도다.』(행 22:22)라고 하지 않았던가!


오늘날 목사라는 자들이 바로 그런 짓들을 하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에 관해 이야기하면서도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계시하신 성경의 진리를 전혀 믿지 않는다. 지난 8월 12일, 여의도순복음교회 이영훈 목사와 아홉길사랑교회 김봉준 목사, 은평제일교회 심하보 목사 등이 오세훈 서울시장을 만나 신종 코로나로 인해 계속되는 예배 제재에 대해 항의했는데, 그중 김봉준 목사가 모 기독교 신문과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 실로 가관이었다. 내용인즉슨 “지금 우리가 독감하고 같이 살듯이, 코로나 바이러스와도 ‘영원히’ 같이 살아야 할 것 아니냐.”라는 것이었는데, 필자는 코로나 바이러스와의 “영원한 동거”라는 말에 그의 실체를 단박에 알 수 있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실제로 믿고 그에 따라 실행하는 자가 아니었다. 그 세 명의 순복음 목사들에게는 재림과 천년왕국과 영원 세계가 실체 없는 허상에 불과했던 것이다! 주님께서 재림하시면 이 세상은 아담의 타락 이전으로 회복되어 “주의 지식”으로 충만해질 것이고(사 11:9), 병자가 치유되며 자연 만물이 회복될 것인데(사 35:1,5,6), 이런 성경적 믿음이 없는 자들은 코로나 바이러스와 영원히 살 생각만 한다. 한편 그들이 진짜 신유를 행하는 자들이라면 왜 코로나 환자들을 못 고치는가? 이제 곧 교회가 휴거되면 그리스도인은 바이러스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초자연적인 몸을 입게 된다(고전 15:50-54). 그뿐 아니라 “영원 세계”에서는 바이러스가 없다! 세상에서 복이나 누리려고 땅의 것들만 생각하는 순복음 은사주의자들을 위한 경고로는 다음의 말씀이 적격이다. 『내가 자주 너희에게 말하였고 지금도 눈물로 말하지만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들로 행하고 있느니라. 그들의 종말은 파멸이며 그들의 하나님은 자기들의 배요, 그들의 영광은 자기들의 수치 속에 들어 있고 그들은 땅의 것들을 생각하느니라』(빌 3:18,19).

바울을 이단이라고 하면서 눈물 흘리게 했던 자들은 오늘날에도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을 이단이라고 하면서 가슴 아프게 한다. 그들은 십자가를 앞세우고서 정중한 말과 그럴듯한 언변으로 자기들을 영적인 것처럼 보이게 하지만, 실상은 눈이 땅에만 꽂혀 있어 땅의 것들만을 생각하는 영적인 철부지들이다. 그들은 오세훈 시장에게 한국 교회가 활화산처럼 살아 있음을 보여 줬다고 자화자찬했지만, 필자가 보기에 한국 교회에는 교인들을 향한 속임수만 활화산처럼 타고 있을 뿐이다. 교단 신학을 배운 가짜 목사들의 속임수는 휴화산이었던 적이 없다. 오히려 붉은 마그마 같은 “비성경적인” 교단 교리가 수십 킬로미터씩 하늘로 솟구치는 활화산 같았을 뿐이다. “비성경적”이란 말은 “속임수”라는 말과 통한다.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하지 않는 모든 교리는 “거짓”이다. 칼빈주의, 알미니안주의, 은사주의 등 모든 교단 교리가 성도들의 영적 성장을 가로막는 “속임수”인 것이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속이려고 숨어서 기다리는 온갖 교리의 풍조에 밀려 이리저리 다니지 아니하고 오직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며... 모든 일에 성장하여... 그리스도』(엡 4:14,15)께 이르러야 한다고 권면한다. 그러므로 강단에서 속이는 자들을 경계하라! 그들이야말로 교회 안의 “진짜 이단들”이기 때문이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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