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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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키야처럼 하나님을 신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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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1년 08월호>

『히스키야가 이스라엘의 주 하나님을 신뢰하였으니 그의 이후로는 유다의 모든 왕 가운데 그와 같은 자가 없었으며 그의이전에도 없었더라』(왕하 18:5).


땅을 파서 생산적인 것들을 얻어 내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하나님을 대적하기 위해 땅을 파는 사람들도 있다. 한 부류는 “화석학자”들이고, 또 한 부류는 “고고학자들”이다. 물론 화석 연구를 통해 진화론이 허구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과학자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화석을 연구하는 자들 대부분은 “하나님의 창조”를 부정하기 위해 끊임없이 “잃어버린 중간 고리”를 찾아 일생을 낭비한다. 또한 고고학을 통해서도 성경의 역사적인 기록들이 사실이라는 것을 밝혀내는 학자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고고학자들 대부분은 “성경의 역사적 기록이 틀렸다”는 증거를 찾기 위해 발굴과 연구에 일생을 낭비하고 있다. 설사 성경의 기록과 유사한 결과가 나오더라도, 그들은 그 해석을 왜곡하여 성경이 틀린 것처럼 만듦으로써 밥벌이를 하는 것이다.


1930년대 “여리코 유적”을 본격적으로 발굴하기 시작했던 “존 가스탕”(John Garstang)은 이 여리코 유적이 성경과 일치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1950년대에 발굴 작업을 진행했던 “캐슬린 케니언”(Kathleen Kenyon)과 “토머스 홀랜드”(Thomas Holland)는 적절한 근거도 제시하지 않은 채 여리코 붕괴의 시기를 성경보다 200년 정도나 앞선 것으로 추정하면서, 붕괴의 원인도 “지진”으로 보았다. 게다가 대영박물관 발굴팀은 당시에 규모 6.0의 “지진”이 발생하여 여리코 성이 붕괴되었음을 보여 주는 “지질 구조”가 발굴됐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틀렸다! 발굴 조사에 의하면 여리코 성벽은 모두 바깥으로 넘어졌는데, 만약 여리코가 지진에 의해 무너졌다면 결코 성벽이 바깥으로만 무너져 내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스탠퍼드대학교의 지구물리학자 “아모즈 누르”(Amoz Nur)는 이스라엘 민족이 여호수아의 인도로 요단강을 건넜을 때 요단강의 물이 끊어지고 물 무더기가 되어 쌓인 기적을(수 3:13) “지진”에 의한 “산사태”로 물길이 막혀서 일어난 현상으로 설명한다. <국제표준성경백과사전>의 어리석은 편집자들도 구원받지 못한 과학자들의 말을 성경보다 더 신뢰하여 요단강의 물이 멈춘 것은 “지진”에 의한 “산사태” 때문이었다고 적어 놓았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틀렸다! 만약 그것이 “지진”에 의한 것이었다면, 이스라엘 민족이 결코 성경대로 『마른 땅』(수 3:17)을 건널 수는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지 않는 고고학자들의 이러한 성향은 비단 “여리코의 기적”이나 “요단강의 기적”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들은 주님만을 신뢰했던 히스키야 왕에게 하나님께서 보여 주신 기적들도 한낱 우화 정도로 취급하고 있다. 남왕국 유다에서 일어난 다섯 차례의 개혁 중에서 네 번째 개혁을 주도했던 “히스키야”는 아하스의 아들이었다. 그의 아버지 아하스는 하나님을 분노케 한 왕이었다. 『아하스가 하나님의 전의 기명들을 한 데 모아 하나님의 전의 기명들을 산산조각내었으며 주의 전의 문들을 닫아 버리고 예루살렘의 모든 모퉁이마다 그를 위한 제단들을 만들었으며 또 유다의 각 성읍에 다른 신들에게 분향할 산당들을 만들어 그의 조상의 주 하나님을 분노케 하였더라』(대하 28:24,25).


반면에 히스키야는 하나님께 인정받은 왕이었다. 『히스키야가 그의 조상 다윗이 행한 모든 것을 따라 주의 목전에 옳은 것을 행하니라』(대하 29:2, cf. 왕하 18:3). 히스키야는 그의 아버지 아하스의 사악한 행실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임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이에 그것을 돌이키려고 했다(대하 29:5-11). 또한 히스키야는 주님을 신뢰한 왕이었는데, 성경은 히스키야 이전이나 이후에 그와 같은 자가 없었다고 기록하신다. 『히스키야가 이스라엘의 주 하나님을 신뢰하였으니 그의 이후로는 유다의 모든 왕 가운데 그와 같은 자가 없었으며 그의 이전에도 없었더라. 그가 주께 밀착하고 그를 따르는 데서 떠나지 아니하였으며, 주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그의 계명들을 지켰더라』(왕하 18:5,6). 하나님께서 히스키야를 “하나님을 신뢰한 사람들” 중에서 단연 “최고”였다고 인정해 주신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을 신뢰한 히스키야”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몇 가지 각별한 일들을 행하셨다. 첫째, 앗시리아 왕 산헤립이 유다를 치러 왔을 때, 산헤립의 군대를 물리쳐 주셨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히스키야가 전쟁을 해서 승리하게 하신 것이 아니라, 아예 전쟁도 하지 않고 185,000명을 죽여 주셨다. 『그때에 주의 천사가 나가서 앗시리아 진영에서 십팔만 오천 명을 쳤더라. 사람들이 아침에 일찍 일어났더니, 보라, 그들이 모두 죽은 시체더라』(사 37:36). 둘째, 수명을 15년 더 연장해 주셨다. 『가서 히스키야에게 말하라. 네 조상 다윗의 하나님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보라, 내가 네 연수에 십오 년을 더해 주겠노라』(사 38:5). 하나님께서는 그분을 신뢰하는 사람의 기도를 진지하게 들으시어 원래의 계획도 변경하실 수 있는 분이신 것이다. 셋째, 표적으로 해시계가 10도 되돌아가게 해 주셨다. 『보라, 내가 아하스의 해시계에 내려갔던 그림자 각도를 십 도 뒤로 다시 가져오리라.” 하시니라. 그러므로 태양이 내려간 각도로 십 도 되돌아갔더라』(사 38:8). 물론 하나님께서 히스키야를 위해 행하신 일들에는 이것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병을 고치셨고(왕하 20:7), 그를 매우 부유하게 만들어 주셨다(대하 32:27-29). 이런 일들을 볼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님을 신뢰하는 사람”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신뢰한 히스키야”를 사랑하시어 많은 일들을 행하시고 부유하게 해 주셨는데, 특히 그에게 내려 주신 더 큰 복은 “지혜”와 “담대함”을 주시어 통치자로서의 소임을 다하게 하신 것이었다(대하 32:7,8). 그래서 히스키야는 산헤립의 공격을 미리 내다보고 성읍 밖에 있는 물의 근원을 막아 버렸으며(대하 32:3,4), 지하 수로를 만들어서 성안으로 물을 끌어들여 물의 안정된 공급을 확보했다(왕하 20:20). 또한 성벽을 쌓고 보수했으며 창과 방패도 많이 만들었다(대하 32:5). 그리고 그의 군대 대장들과 백성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며 위로하기도 했다. 『“강건하고 담대하라. 앗시리아 왕과 그와 함께 있는 무리들로 인하여 무서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는 우리와 함께하는 자들이 그와 함께하는 자들보다 많음이라. 그와 함께하는 것은 육신의 팔이나 우리와 함께하시는 분은 주 우리 하나님이시니 그분께서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의 싸움을 싸우시는도다.” 하니 백성이 유다의 히스키야왕의 말에 안도하더라』(대하 32:7,8). 이처럼 히스키야는 진정으로 하나님을 신뢰했고, 지혜와 담대함으로 백성들이 하나님을 신뢰하도록 만들었다. 그렇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의 믿음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친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주님을 온전히 신뢰한 히스키야를 높이셨다. 『많은 사람이 예루살렘으로 주께 예물을 가져와서 유다의 히스키야왕에게 바치니라. 그러므로 히스키야가 그때부터 모든 나라의 목전에서 높임을 받았더라』(대하 32:23).

그렇다면 “하나님을 신뢰한 히스키야”는 어떤 일을 수행했기에 이러한 복을 받았는가? 그가 왕이 된 것은 25세 때였다. 그는 왕이 된 첫째 해 첫째 달에, 즉 왕이 되자마자 자기 아버지가 닫아 버린(대하 28:24) 주의 전의 문들을 열고 그것들을 수리했으며(대하 29:3),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모아 성전을 성결케 하고 성소에서 모든 더러운 것을 끌어냈다(대하 29:4-19). 그리고 주의 성전의 모든 온전한 기능이 원래대로 수행되도록 회복시켰다. 또한 유월절도 지키게 했는데, 성경은 제사장들의 기도가 하늘에까지 닿았다고 기록하신다. 『그후에 레위인들인 제사장들이 일어나 백성을 축복하였는데 그 소리가 들린 바 되었으니 그들의 기도가 그분의 거룩한 거처 하늘에까지 닿았더라』(대하 30:27).


히스키야가 왕이 된 첫째 달에 곧바로 개혁을 시작했다는 것은 그가 왕이 되기 전부터 개혁을 구상하고 있었다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아마도 그는 자기 아버지 아하스가 주의 전의 문들을 닫아 버렸을 때부터 나중에 왕이 되면 어떻게 개혁할지를 구상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주님을 진노케 하는 일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cf. 대하 29:8-10). 어린 히스키야가 그것을 안 것은 아마도 그의 어머니 “아비야”(대하 29:1)의 영향이 컸을 것으로 보인다. 종종 “어머니”가 자녀들의 믿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딤후 1:5).

한편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Herodotus)는 산헤립 군대의 병사 수가 줄어든 것을 두고 “들쥐 떼가 몰려와 무기들을 갉아 먹어서” 그렇게 되었을 것으로 추측했다. 무기를 갉아 먹으면 병사 수가 줄어드는가?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급성 전염병”을 그 원인으로 제시했다. 유대인이면서도 성경을 믿지 않는 학자였음을 여실히 드러낸 것이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것은 “주의 천사”였지(사 37:36) “들쥐 떼”나 “급성 전염병”이 아니었다. 학자들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겠는가? 그들은 끊임없이 “성경과 다른 것”을 생각해 내려고 몰두한다. “성경과 같은 것”은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명성을 유지하고 수입을 늘리려면 “성경과 달라야 한다.” 그들은 그저 자기들의 배를 섬기는 자들일 뿐이다. 『그들의 종말은 파멸이며 그들의 하나님은 자기들의 배요, 그들의 영광은 자기들의 수치 속에 들어 있고 그들은 땅의 것들을 생각하느니라』(빌 3:19).


고고학자들과 역사학자들은 히스키야의 기도를 경청하신 하나님께서 “주의 천사”를 보내시어 산헤립의 군대 185,000명을 죽이신 사실을 믿지 않는다. 히스키야가 백성들에게 『우리와 함께하는 자들이 그와 함께하는 자들보다 많음이라.』(대하 32:7)라고 말한 것은 단지 허풍에 불과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선지자 엘리사도 이 말을 하면서 그의 종에게 “산을 가득 채운 말들과 불병거들”을 보여 주었다(왕하 6:16,17). 물론 학자들은 이것도 믿지 않을 것이다. 히스키야의 믿음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는 그들은 “히스키야가 하나님을 신뢰했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과 히스키야의 믿음을 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을 향한 주님의 도우심을 알게 해 준 히스키야처럼 우리도 하나님만을 온전히 신뢰하는 신실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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