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신학논단 분류

"표준원문"이 왜 "표준"인가?

컨텐츠 정보

본문

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1년 07월호>

외국 상품에 대한 거부감이 적은 요즘에는 제조국을 고려하지 않고 가격 대비 품질을 고려하여 물품을 구매하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에 국산 물품 구매를 권장하는 것이 오히려 불합리하게 생각될 수 있다. 하지만 한창 국가의 경제적 발전을 지향하던 1970년대와 1980년대는 수출을 많이 하고 수입을 적게 하여 외화 보유량을 늘림으로써 국가의 경제적인 역량을 향상시키려던 시절이었기에 국산 물품의 구매를 매우 적극적으로 권장하기도 했다. 또한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국제 표준”에 맞춘 “한국표준공업규격”(나중에 “한국산업규격”으로 명칭을 변경함)을 만들어 제조업체들에 권장함으로써 국가의 수출 경쟁력을 향상시키고 외국 공업 부품의 수입을 감소시키기 위해 노력하기도 했었다. 더욱이 “한국표준공업규격”에 맞추어 제작한 물품에는 일명 “KS 마크”(㉿)라는 표시를 붙이게 하여 국가가 제시한 “표준”에 맞는 물품임을 보증해 줌으로써 “한국표준공업규격”을 따르는 기업의 물품이 더 잘 팔리도록 도움을 주기도 했다.


제조업 등의 산업 현장에서 어떤 부품이나 물품이 “표준”이라고 할 때, 그것은 그 규격이 “범용적으로 사용되기에 가장 합리적인 규격”이라는 것을 여러 가지 기준과 자료를 통해 규정해 놓은 것임을 의미한다. 그래서 과거에는 제조사들이 제품을 광고할 때 경쟁적으로 “KS 마크 획득!”이라는 문구를 써넣기도 했다. 곧 “표준”에 맞춘 우수한 물품이라는 생각을 구매자들에게 심어 주려 했던 것이다. 이러한 기준을 만드는 것은 비단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며, 일본의 “일본산업규격”이나 미국의 “미국국가표준”처럼 다른 많은 국가도 자국의 산업을 위해 시행하고 있다. 이처럼 “표준”이라는 것은 국가 기관이나 객관적으로 인정할 만한 협의체가 주체가 되어 합리적인 기준과 자료를 바탕으로 규정하는 것으로서, “표준”이라는 명칭이 붙기 이전부터 이미 그 영역의 전문가들로부터 “인정”되어 왔던 규격이 적절한 절차에 따라 “확정”되는 것이지 어떤 이론이나 추론의 새로운 산물이 아니다. 다시 말해 이미 합리성을 가지고 현실적으로 받아들여지던 것이 필요에 따라 “표준”으로 “확정”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확정”된 “표준”은 그때부터 다른 것을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이처럼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표준”이라는 단어의 용례로 볼 때, <킹제임스성경>의 저본이 된 “표준 원문”이 “표준” 원문으로 불리는 것은 매우 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 한편 “표준 원문”은 그냥 “표준 원문”이라고 불리기도 하지만, “공인 표준 원문” 또는 “공인 원문”이라고도 불린다. 이것은 “텍스투스 리셉투스”(Textus Receptus, Recieved Text)라는 말이 “많은 사람에게 널리 받아들여진 원문”이라는 의미를 지니기 때문에, “공인”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것이 본 명칭에 부합된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 같다. 그러나 “널리 받아들여져서 이미 확정되었다”는 의미로 붙여진 “표준”이라는 단어가 오히려 그 모든 의미를 함축적으로 대변하고 있다.


“표준 원문”은 데시데리우스 에라스무스(Desiderius Erasmus, 1466-1536), 로버트 스테파누스(Robert Stephanus, 1503-1559), 테오도르 베자(Theodore Beza, 1519-1605), 보나벤투라 엘지버(Bonaventura Elzevir, 1583-1652) 등이 당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던 헬라어 원문들을 수집하여 펴낸 “헬라어 신약성경”이다. 이들이 살았던 시대는 로마카톨릭이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던 시절이었고, 이들이 로마카톨릭으로부터 다양한 어려움을 겪었던 것을 생각한다면, 돈을 벌기 위해 “헬라어 신약성경”을 펴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금방 직감할 수 있다. 현대의 배교한 신학자들이 계속 새로운 성서를 펴냄으로써 “돈벌이와 명성을 얻는 것”에 혈안이 되어 있는 것과는 달리, “표준 원문” 출판자들은 순수하게 “보존된 원문”을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보급하겠다는 일념으로 “헬라어 신약성경”을 출판했으며, 그렇기에 이들이 출판한 “표준 원문”은 서로 간에 미묘(微眇)한 차이만 있을 뿐 거의 유사한 본문을 제공하고 있다.
<킹제임스성경>이 “표준 원문”에서 나왔다고 했을 때, 마치 “표준 원문의 출판본들”을 대조하여 짜 맞추기식 번역을 한 것처럼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킹제임스성경>의 번역자들이 “표준 원문” 출판자들보다 더 많은 필사본을 확인하고 대조할 수 있었으며, 또 그러한 작업을 통해 “표준 원문”이 “올바르게 보존된 필사본”을 통해서 편집된 것임을 확인했기에 그들은 “표준 원문”을 존중할 수 있었다.


믿음의 선진들을 통해 섭리 가운데 보존되어 온 “올바른 원문”을 저본으로 번역된 <킹제임스성경>의 “권위”를 훼손하려는 자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킹제임스성경> “헐뜯기”를 시도하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저본”인 “표준 원문”에 대한 공격이다. 특히 “에라스무스”를 공격하길 좋아하는데, 이는 다른 “표준 원문” 출판자들에 대해서는 흠조차 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의 공격의 초점은 에라스무스가 로마카톨릭으로부터 분리하지 않고 계속 그 안에 머물러 있었다는 사실과 그가 출판한 “표준 원문”이 불완전한 본문으로부터 나왔다는 사실로 향한다. 그러면서 막강한 로마카톨릭의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에라스무스가 가지고 있었던 “표준 원문” 출판에 대한 열정과 그로 인해 감수해야 했던 많은 어려움을 고의로 외면하고 있다.


“표준 원문”을 공격하는 자들은 어떤 자들인가? 그들은 하나님께서 성경을 영감으로 기록은 하셨지만 보존하실 능력은 없으셨다고 믿는 신현우, 권동우, 정택주 같은 자들이다. 그들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능력을 무시하고 메츠거나 카슨 같은 학자들을 숭배한다. 그들이 숭배하는 메츠거는 어떤 학자인가? 메츠거는 RSV(개정표준역)와 NRSV(신개정표준역) 초판, 카톨릭판, 영국판, 카톨릭 영국판, 이렇게 5개의 번역본을 출판했는데, 그들에게는 번역본을 5개나 출판한 메츠거가 “한 가지 성경”만을 쓰신 하나님보다 위대해 보였던 모양이다. 그렇다면 그 5개의 번역본 중에서 어떤 것이 더 올바른 번역본인가? 혹시 5개가 다 올바른가? 5개가 다 옳다면, 하나님께서 서로 다른 5권의 성경을 쓰셨다는 말인가? 한 인터뷰에서 메츠거는 창세기 1,2,3장은 실제 역사가 아니라고 말했으며, 창세기에 나오는 족장들의 이야기도 고대의 전통들을 보존한 것일 뿐 실제 역사는 아니라고 주장했다. 또한 엘리야와 엘리사의 이야기도 전설적인 요소가 많다고 주장했는데, 그가 아예 성경을 믿지 않는 사람이라는 점은 이런 주장들에서 확연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메츠거에게 그 5권의 번역본 중에서 오늘은 어떤 번역본을 읽고 묵상했는지 물어보라!

메츠거가 5개의 번역본을 번역하는 데 사용한 저본은 무엇인가? 그가 사용한 원문은 소위 “절충 본문”이라 불리는 본문이었다. 메츠거는 어느 한 필사본이나 어느 한 계열의 필사본들만을 존중하지 않았으며, 특히 여러 필사본에서 차이가 나는 부분에서는 자신이 보기에 “더 올바른 본문이라고 판단되는 부분”을 선택해서 “절충”된 본문을 구성한 다음 그것을 저본으로 번역본을 만들었다. 메츠거는 5개의 번역본을 출판했으므로 5개의 “절충 본문”이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다면 그중에서 어떤 “절충 본문”이 “가장 올바른 본문”인가? 여기에 더하여 우리는 이 “절충”이라는 말의 속임수에 넘어가서는 안 되는데, 이는 메츠거가 필사본의 95%에 해당하는 “다수 필사본”보다는 5%도 안 되는 “소수 필사본”의 본문을 주로 선택했기 때문이다. 이 “소수 필사본”을 대표하는 사본이 바로 “시내 사본”과 “바티칸 사본”이다.
메츠거와 같은 사본학자들은 <킹제임스성경>의 번역자들이 당시에 참고한 “표준 원문”이 “열등한 필사본”이었고, 4세기 필사본으로 추정되는 “시내 사본”과 “바티칸 사본”이 “더 우수한 사본”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들이 그렇게 주장하는 근거는 이 사본들이 “오래된 사본”이라는 이유, 이 한 가지뿐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들이 우수하다고 주장하는 필사본들보다 더 오래된 필사본이나 번역본, 성구집 등의 반대 증거들은 의도적으로 언급을 회피한다. 자기들에게 불리한 정보는 은폐해 버리는 것인데, 참으로 자기들의 주장을 그럴듯하게 보이려고 “기만적인 술책”을 쓰는 것이다(고후 11:13).


그렇다면 메츠거 등이 숨기는 객관적인 정보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현존하는 신약성경 필사본들의 절대다수가 “표준 원문”을 지지한다는 사실이다. “도널드 웨이트”(Donald A. Waite) 박사는 파피루스 필사본 88개 중 13개(15%)는 절충 본문에 부합하고 75개(85%)는 표준 원문에 부합하며, 대문자 필사본 267개 중에서는 단지 9개(3%)만이 절충 본문에 부합하고 258개(97%)는 표준 원문에 부합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또한 소문자 필사본 2,764개 중에서는 23개(1%)만 절충 본문에 부합하고 2,741개(99%)는 표준 원문에 부합하며, 성구집 필사본 2,143개는 100% 모두 표준 원문에 부합한다고 밝혔다. 그의 연구를 종합해 보면, 신약성경 필사본 5,262개 중 단지 45개(1%)만 절충 본문에 부합하고 나머지 5,217개(99%)는 표준 원문에 부합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것이 바로 “표준 원문”과 “절충 본문”에 관한 올바른 진실이다!


개역성경을 옹호하고 <킹제임스성경>을 폄하하기 위해 “표준 원문”을 거론하는 자들은 “필사본”에 관한 객관적인 사실을 숨기고 “표준 원문”을 비평한다. 더욱이 그들은 메츠거 같은 사본학자들의 거짓되고 기만적인 논리를 등에 업고 “절충 본문”이라는 본문이 비평학적으로 올바른 본문인 것처럼 주장한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지키시겠다고 약속하신(시 12:6,7) 성경 필사본들을 세상의 인본주의 사본학 논리에 맞춰 연구하는 “어리석은 자들”일 뿐만 아니라, 그들의 주장에 어긋나는 “필사본 증거들”은 고의로 은폐해 버리는 “기만하는 일꾼들”이다(고후 11:13). 그들의 이러한 “기만적인 논리”는 그들이 먹고살기 위해 거짓말하는 자들임을 분명히 보여 준다(고후 2:17).


<킹제임스성경> 번역자들은 올바르게 보존된 필사본들에 따라 편집된 “표준 원문”을 존중했고, 1481년에 발견된 바티칸 사본은 변개된 사본임이 너무나 분명했기에 <킹제임스성경>의 저본이 되는 헬라어 필사본들의 목록에서 처음부터 그것을 배제했다. 더 오래된 사본이라서 더 정확하다는 학자들의 거짓말에 속지 말라! 사탄이 교회 시대 초기부터 오리겐, 유세비우스, 제롬 등과 같은 마귀의 종들을 이용하여 필사본에 변개를 가했음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신실한 성도들의 필사를 통해 섭리로 보존하셨고, 정하신 때가 되었을 무렵 그 보존된 말씀을 섭리 가운데 “표준 원문”에 담으셨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성경을 보존하실 능력이 없으셨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의 말에 속지 말라! “표준 원문”이 모든 헬라어 신약성경 필사본들의 “표준”임을 확고하게 믿어야 하는 것이다! BB

전체 926 / 11 페이지
RSS
번호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