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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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기에 긴장한 성경, 안티오크의 “권위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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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7년 02월호>

「도서출판 안티오크」에서는 지난해 12월 10일 <권위역성경>이라는 이름으로 성경 문제로 골치 아픈 한국 기독교계에 또 하나의 잘못된 성경을 선사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권위역성경>이라고 이름 붙인 책을 <킹제임스성경>에서 번역했노라고 밝혔다. 그러나 “킹제임스성경에서 성경이 번역되었다면 기쁜 일이 아니겠는가?”라고 생각하는 독자가 있다면 그는 다음의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권위역성경>을 기뻐하지 않으시고, 그것으로 영광받지 않으시는가?”



먼저 우리는 <권위역성경>이 누구를 위한 성경인지 묻고자 한다. 누군가가 <킹제임스성경>에서 번역을 한다면 당연히 “한글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최종권위로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자세로 번역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도서출판 안티오크」의 대표 박만수는 이 새로운 번역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물론, 최선을 다하여 출간할지라도 실수나 오류가 전혀 없을 수는 없고, 더더욱 최종권위라는 말은 감히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다만, 저희가 번역한 한글 권위역 성경이 많은 사람에게 신뢰받고 널리 읽혀져 주님께서 수많은 사람의 갈급한 영적 필요를 채우시는 데 사용해 주시기만을 소원할 따름입니다...”(「월간 안티오크」 제 29호, 44쪽, 성경번역을 기다리는 독자 제위께)
한글로 성경을 번역해 놓고 그것이 한글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최종권위가 될 수 없다면 도대체 그것은 무엇이며, 또 누구를 위한 성경이라는 말인가? 하나님께서 보존하신 성경은 언제나 모든 믿음과 실행에 있어서 최종권위의 자리를 지켜 왔다. 그러나 자신들도 최종권위로 인정하지 않는 성경을 번역해 놓고 나서 누구에게 그것을 읽으라는 말인가? 또 <권위역성경>이 “최종”권위가 아니라면 도대체 “어떤” 권위인가? 알렉산드리아 이단들에 속한 학자들은 항상 두 개 이상의 권위를 제시해 왔으며, 상반된 두 권위를 판단하는 최종권위로서 학자 자신을 내세워 왔다. 「안티오크」는 “영어킹제임스성경”만이 최종권위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이 모든 것을 판단하는 자신들이 최종권위가 되고 싶은 것이다.
미국에는 “TR주의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영어 <킹제임스성경>이 아닌 헬라어 <표준원문, TR>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한다고 해서 그렇게 불려진이름이다. 「안티오크」에서도 TR주의자들이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다(「질문에 답하여」, 안티오크간, 123-126쪽). 그렇다면 한글을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영어 <킹제임스성경>을 최종권위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미국의 “TR주의자”와 하나도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이 아닌가?
그들이 자신들의 번역을 최종권위라고 말하지 않는 진짜 이유는 그것을 최종권위라고 했을 때 따르는 엄청난 책임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자신들이 번역한 성경이 최종권위가 아니라면 거기에는 그리 큰 책임이 따르지 않는다. 어차피 최종권위도 아닌데 좀 틀리면 어떻고 좀 말이 안되면 어떤가? 변개된 성경을 펴 내는 알렉산드리아 계열의 학자들은 자신들의 번역을 결코 “절대적”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원본만은 못하지만 그래도 그런대로 괜찮은 성경이니 그냥 읽으라고 한다. 우리는 이러한 작태를 지난 반세기 동안 「대한성서공회」를 통해서 볼 수 있었다. 「대한성서공회」는 최초의 헬라어 원본만이 최종권위라고 주장하고, 「안티오크」는 영어 <킹제임스성경>만이 최종권위라고 주장한다. 이만하면 세상에 둘도 없는 단짝이 아닌가? 아예 이번 기회에 두 기관이 자매결연을 맺으면 어떨는지!
그들은 <권위역성경>을 정확한 직역의 원칙하에 “읽힘성”을 고려해서 번역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의 주장과는 달리 이 새로운 역본이 얼마나 열악한지 몇 가지만 짚어 보고자 한다. 어떤 부분은 자기들의 말과는 달리 직역의 원칙에서 벗어나기도 했고, 어떤 부분은 “지나치게 직역”한 나머지 우스운 번역이 되기도 했으며, 어떤 부분은 이미 한글을 사용하는 성도들에게 최종권위가 되어 있는 <한글킹제임스성경>을 흉내내기도 했다.
1. 로마서 1:14 - “그리스인이나 바바리인이나, 지혜있는 자나 지혜없는 자에게나 다 내가 빚진 자라.”
그들은 “Barbarians”이라는 단어를 번역하지 않고 음역해 놓았다. 그러나 그 단어는 “야만인”이라는 분명한 뜻으로, 음역을 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이것은 그들이 주장한 “읽힘성”을 전혀 고려치 않은 처사인 것이다(또 다른 음역의 예 - 마 3:1,6,10-14, 5:15, 6:24 등).
2. 에베소서 3:20 - “우리의 생활은 하늘에 있는지라. 우리가 또한 하늘로부터 구주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러나 불행하게도 현재 우리의 “생활”은 하늘에 있지 않다. 우리의 생활은 누가 성경을 어떻게 변개시키더라도 “땅”에 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면 하늘에 있는 것은 우리의 “생활”이 아니라 우리의 “시민권”인 것이다.
3. 사도행전 2:38 - “베드로가 말하되, 회개하고 각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밥티슴을 받아 죄들의 사면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님을 선물로 받으리라.”
침례는 죄들의 사함을 받기 ‘위해서’ 받는 것이 아니라 죄들이 사해졌기 ‘때문에’ 받는 것이다. “for the remission of sins”는 “죄들을 사함받은 것으로 인하여” 라고 번역되어야 한다(마 26:28, 막 1:4, 눅 3:3, 롬 3:25).
4. 요한계시록 3:14 - “라오디케아인들의 교회의 천사에게 편지하라. 아멘이요, 신실하고 진실한 증인이요, 하나님의 창조의 시작인 이가 이것들을 말하노라.”
여호와의 증인들이 이 구절을 보면 만세를 부르며 서로 부둥켜 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릴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아리안주의자들이 어떻게 주장할지라도 결코 “하나님의 창조의 시작”이 아니다. 우리의 주님은 만왕의 왕이시고 만주의 주이시다(계 19:16). 예수님은 여호와의 증인들과 <권위역성경>의 번역자가 주장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창조의 시작”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를 시작하신 분”이신 것이다.
5. 그 외 언뜻 보기만 해도 웃음을 자아내게 번역한 부분들은 다음과 같다.
1) “증거”(evidence)를 “증서”로 번역(히 11:1).
2) “안개”(vapour)를 “수증기”로 번역(약 4:14).
3) 누룩(leaven)을 “뜸씨”로(고전 5:6).
4) 이단들(heresies)을 “파당”으로(고전 11:19).
5) “비유”(allegory)를 “알레고리”로 음역(갈 4:24).
6) “침례”(baptist)를 “밥티슴”으로 음역(마 3:11).
7) “침례인 요한”(John the Baptist)을 “밥티스트 요한”으로 번역(마 3:1).
8) “하나님께서는 육신으로 나타나셨고”(God manifest in the flesh)를 “하나님께서 육체 안에서 나타나시고”로 번역(딤전 3:16).
9) “성령을 소멸하지 말라”(Quench not the Spirit)를 “성령을 억제하지 말라”로 번역(살전 5:19).
이러한 부분들은 허다하지만 지면 관계상 더 많은 부분을 다루지 못함이 아쉬울 뿐이다. 그들은 『...너희가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낙타는 삼키는구나』라는 마태복음 23:24을 “...너희가 모기에는 긴장하고, 낙타는 삼키는도다.”라고 번역했다. 잘못된 성경을 바로잡아 올바른 번역을 한다는 자들이 만든 작품은 이와 같이 모기처럼 조잡하게 되었다. 모기에 긴장한 성경, 과연 이 번역본이 <킹제임스성경>에서 번역한 “권위역”으로 자리잡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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