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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운동으로 다가오는 사탄의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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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7년 01월호>

마지막 때가 가까워오면서 그리스도인들을 믿음에서 떠나게 하는 사탄의 계략은 그 단수를 더욱 높여간다. 처음에는 박해로 시작했다가 나중에는 유혹으로 바꾸고 이제는 그리스도인을 세상과 닮게 하려는 시도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 중 하나가 기독교계에서 일고 있는 “문화운동”이다.
이 운동은 세상의 문화가 악하다는 것을 인정한 상태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이 미혹당하기 쉽다. 그러나 이 운동은 세상을 악하다고 하면서도 세상 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할 때” 세상은 바뀔 수 있다고 말하는 후천년주의 교리와 연결되어 있으며, 그 방법에 있어서도 지극히 세상적이다.
많은 사람들이 마지막 때의 큰 미혹의 세력인 뉴에이지 운동을 연구하고 또 경계하고는 있지만 그들 역시 문화운동의 차원으로 결국은 뉴에이지 운동의 세력하에 들어가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악한 세상 음악에 반대해서 “기독교 음악”을 하고 있지만 그 음악들은 가사에 있어서도 비성경적일 뿐 아니라 음악 자체에 있어서도 세상 음악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 기독교 기업체들도 주일 또는 일요일을 지킨다고 광고는 하면서도 세상의 패션을 그대로 닮은 제품을 만들고 있으며, 기독교 잡지들은 조금 건전하긴 하지만 역시 세상의 문화잡지의 성격을 그대로 닯고 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이 운동이 가져온 결과는 사탄이 주관하는 세상 문화의 한 장르로서 기독교 문화를 형성한 것뿐이다.
이러한 기독교 문화잡지의 대표적인 예로 <빛과 소금>이라는 월간지가 있다. 이 잡지가 문화공보부에서 우수 잡지라고 수상까지 한 것을 보면 얼마나 세상을 즐겁게 해 주었는지 알 만도 하지만, 잡지의 성격이 점점 더 세상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을 보노라면 안타깝기만 하다.
최근에 이 잡지는 「대중문화, 제사장 기능을 살릴 때다」(이문식 목사, 희년선교회 총무)라는 기사를 실은 적이 있는데, 보통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종교의 제사장적 기능, 예언자적 기능을 따져가며 기독교가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해야 한다고 말하는 반면, 이 목사는 문화 자체가 제사장적 기능을 가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96년의 문화를 비판하면서 “온 국민으로 하여금 지난 80년대를 차분하게 되새겨보며 오늘 이 시점에서 우리 국민이 청산해야 할 과제가 무엇인가를 설득력있게 암시했던 ‘모래시계’, ‘제3공화국’ 같은 국민적 드라마가 ’96년에는 거의 찾아볼 수 없고 오히려 개인의 무의식 속에 숨어있는 욕망만을 극대화한 ‘애인’같은 드라마가 대중의 관심을 끌었던 한 해였다”고 말하며, 드라마, 토크쇼, 가요 등 “단절과 퇴폐, 분열, 성 혼돈으로 얼룩졌던 1996년 대중문화”를 크리스챤들이 끌어올려 문화의 제사장적 기능을 회복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그의 말에 따르면 문화가 아무리 하나님을 배격하고 비성경적으로 흐른다 할지라도, 퇴폐적이고 상업적이 되지 않는 한 그리스도인이 참여하고 또 주도해나갈 수 있다는 말이 된다.
비단 이 기사만이 아니다. 문화적인 측면을 다루는 모든 기사들이 마찬가지다. 이러한 기사들에서는 악한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그리스도인의 “성별”은 제시되지 않는다. 오히려 세상에 참여하고 함께 어우러지면서 그들을 회복시켜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것이 이 목사가 말하는 제사장적 기능이며, 창세기 1:28을 “문화명령”으로 받아들이는 모든 후천년주의자들의 사고다.
문화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커다란 특징 중 하나는 성경의 의미를 임의대로 바꾸는 것이다. 창세기 1:28의 왕국 명령을 “문화명령”이라고 말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으며, 그것을 제사장적 기능이라고 명명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제사장이 하는 일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중보하는 일이다. 도대체 대중문화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어떠한 역할을 하기에 저주받을 대중문화에게 그처럼 큰 “영예”를 씌워주는 것인가? 하기야 바알에게도 “제사장”이 있었고, 로마 카톨릭에도 “제사장”이 있다. 그 제사장들은 사탄의 문화를 세상에 보급하는 사람들이었다. 대중문화의 제사장적 기능은 그런 의미에서 말할 수밖에 없다. 도저히 그리스도인의 영역은 아닌 것이다.
우리가 문화에 대해서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세상 문화는 기본적으로 사탄의 관장 아래 있다는 것이다. 어떤 작가는 “사탄은 마침내 대중문화를 선택했다”라고 말했는데, 사실 사탄은 “원래부터” 세상 문화를 주관해 왔다. 카인의 종교를 만들고(창 4:3-5), 카인의 자손을 통해서 음악을 고안하고(창 4:21), 도시와 탑의 문화를 만들고(창 11:4), 통합 운동을 주도했다(창 11:4-6). 그리스도인들이 “크리스챤 문화”를 운운하며 대중문화를 변화시키려고 하면 할수록 오히려 그들은 사탄이 주관하는 세상 문화로 빠져들고 말 수밖에 없음을 알아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관심이 세상문화로부터 멀어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사탄은 문화에 관심을 갖는 반면 하나님께서는 각 개인의 영혼과 그분의 통치에 관심을 두신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의 관심도 이 악한 세상 자체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을 구령하는 것에 있어야 하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을 통치하시기 위해 재림하시는 그 날을 사모하고 기다려야 한다.
날이 가고 해가 바뀔수록 세상 문화는 더욱 악해진다. 하지만 그럴수록 주님의 다시 오시는 날은 점점 더 가까워진다. 어쩌면 금년에 주님이 오실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 날이 하루 빨리 오기만을 기다린다. 이러한 소망 앞에서 세상 문화니, 대중 문화니, 크리스챤 문화니 하는 것들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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