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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최고의”(?) 신학자 하비콕스 서울에 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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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6년 10월호>

지난 8월 26일 연세대 백주년기념관에서는 국제신학연구원과 순신대 주최로, 「성령과 교회갱신」을 주제로 한 <제 5회 국제신학학술세미나>가 열렸다. 그 세미나에는 20세기 최고의 사회학자 겸 신학자(?)라고 불리우는 하비콕스 박사의 주제발표 및 총신대 총장 김의환 교수 등이 참여했는데, 9월 10일자 <순복음가족신문>에서는 그 모임을 이렇게 평가하고 있다. “교회일치와 화합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시점에서 마련된 금번 세미나는 국내외의 초교파 석학들이 한 자리에 모여 성령운동을 통한 교회 갱신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가진 세미나로서 한국 교계에 크게 공헌한 가운데 진행됐다.” 또한 총신대 총장 김의환 교수는 세미나 발표후 주제토론에서 “성령과 교회갱신이란 주제하에 교파를 초월하여 학술적인 논의를 할 수 있게 된 것은 한국 신학의 큰 수확이다.”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교파를 초월한 학술적인 논의”라는 말은 그가 배교한 신학자라는 것만을 여실히 보여줄 뿐이다. 이 시대는 “화합”을 좋아하고 “일치”를 좋아하고 “초월”이라는 단어를 매우 좋아한다.(“초월명상”이 얼마나 유행되는가?) 서로 화합하고 양보하며 일치하자는 캐치프레이즈는 모든 무지한 사람들에게 좋은 느낌으로 다가오고 있으며, 교회는 재빨리 이를 이용하여 신학계 내에서 도태되지 않고 자신들의 입지를 세우려 하는 것이다. 보수신학으로 유명했던 총신대 총장이 여러 교파, 더군다나 이단이라 경시했던 순복음교회와, 또 거듭나지 않은 사회신학자와 연합하여 21세기 성령운동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한다는 모습은 실로 코메디가 아닐 수 없다.
20세기 세계 최고의 종교, 사회학자 하비콕스의 주제발표의 제목은 「구주이시며 생명의 수여자이신 성령」이었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하비콕스는 생명의 수여자이신 성령으로부터 생명을 부여받지 못한 죽은 사람이다. 그가 거듭나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의 말에서 잘 드러난다. 그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을 위해 예수께서 오셨을 것이다”라고 말했는데, 이러한 말들은 70년대 민중신학이나 오늘날의 자유주의 신학에서 너무도 많이 듣던 말들이다. 오늘날 기독교를 사회학의 틀 속에서 연구하려는 사람들은 교회가 “민중”들에게 끼친 영향들을 연구하기 마련인데, 그러한 틀 속에서 바라본다면 예수 그리스도는 죄인들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사회의 안녕을 위해 오신 것이 된다. 이러한 신학사조는 소위 보수주의자들에게는 더 이상 거론될 가치가 없는, 지나가 버린 이슈일 뿐이다. 그러나 이제 다시 “연합”이라는 이름 하나로 자유주의자들과 보수주의자들을 합쳐버린 그 끈은 무엇인가? 하버드 대학의 교수이며 20세기 최고의 신학자라고 불리는 하비콕스의 명성인가? 장로교인들은 그 끈을 학문적 힘에서 찾으려고 하고, 오순절교인들은 그 끈을 “성령운동”에서 찾으려 한다. 순복음신문에서 자유주의 신학자의 방문을 그토록 떠들고 있는 이유도 바로 그가 성령운동의 체험자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그는 한국교회 성장의 바탕을 무속신앙으로 보았다가, 순복음교회를 본 후 “성령의 역사”라고 수정하기도 했으며 조용기 목사를 하버드 대학에 초청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자, 오순절 성령운동이 사회학적으로 인정받는 순간이다. 은사주의자들이 그와 연합하지 않을 이유가 있겠는가?
그래도, 기독교 신문에서는 성령을 운운하며 종교적인 색체를 띠었던 하비콕스가 중앙일보의 다음 인터뷰에서는 거듭나지 못한 그의 본질을 여실히 드러냈다. “신은 종교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의 현장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종교인은 사회정의에 관여해야하는 것이다... 샤머니즘은 그 지역의 민중문화로 이해하고 기독교가 토착화하기 위해서는 이를 거부하기 보다는 순화하여 연관성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 “사회와 종교의 결합, 역사성과 초월성의 결합이란 고리 없이 진정한 자유와 공동체적 화합은 불가능하다.” 또한 그는 종교다원주의에 대해 묻는 기자의 질문에 한국교회에 다양한 종교 현상이 종교다원주의를 이루는데 긍정적으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단지 사회학자일 뿐 전혀 거듭나지 않은 신학자인 하비콕스의 주제발표로 우리의 유명한 교수님들은 과연 어떤 성령의 감동을 받았는가? 총신대 총장이 과연 하비콕스로부터 무엇을 얻었으며, 도데체 무엇이 20세기 한국 신학계의 큰 수확인가?
깃털이 같은 새는 함께 모인다는 말이 있다. 교파를 초월하여 함께 모였다는 것은 대단한 이변도 아니고 칭찬받을 만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 왜냐하면 거짓 영에 미혹당하고 이끌리는 자들은 함께 모이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바리새인과 사두개파도 예수님을 대적하는 일에 있어서는 그들의 교파를 초월하여 함께 화합했다는 사실을 주목하라(마 16:1). 그들이 함께 뭉친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할 때 뿐이었다. 마찬가지로 이 시대의 교파 연합은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길로 뭉쳐지기 마련이다. 거듭나지 못한 하비콕스와 순복음교회와 보수 장로교단이 서로 연합한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다.
이 시대는 배교의 시대이고, 배교의 길을 함께 걷기 위한 동지를 모으는 시대이다. “함께 모이고 서로 화합하자” “서로 사랑하자” “서로 존중하자”는 것은 진리를 대적하기 위한 다수를 만들어내는 선전일 뿐이다. 마지막 때에는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파멸의 길을 따르고 진리의 길을 비방할 것이다(벧후 2:2).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고 계신다. 『아무도 너희를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노략질하지 못하도록 주의하라. 그것들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유치한 원리를 따른 것이며, 그리스도를 따른 것이 아니니라』(골 2:8). 성경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여금 그들의 길에서 떠나라고 하신다. 그리고 그 거짓 교사들에 대해서는 더 무섭게 말씀하신다. 『그러나 누구든지 무지하다면, 무지하게 내버려 두라』(고전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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