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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락한 현대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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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6년 05월호>

우리는 요 몇 년 사이에 CCM (Christian Contemporary Music)이라는 말을 자주 들어 왔다. 이것은 말 그대로 “기독교 현대음악”인데, 교회의 많은 젊은이들에 의해 애용되고 있다. 이러한 음악은 클래식한 분위기의 찬송가가 세상과 너무 동떨어져 있어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속에 있을 때 그들의 음악과는 너무 이질감이 있다는 것과, 기독교 음악도 세상 가운데서 한 문화로 자리잡아야겠다는 생각에서 등장한 것이다.
교회에 다니는 많은 젊은이들은 세상 가운데 있을 때 어디에 앉아야 할지를 모른다. TV를 켜도 세상 음악이 있고, 커피숍에 가도 세상 음악이 있으며, 공원이나 거리, 심지어 버스나 전철역에서도 세상음악이 흘러나온다. 그래서 건전한 기독교 문화가 자리잡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가스펠 커피숍을 차리기도 하고, 가스펠 콘서트를 열기도 하면서 기독교 음악을 대중문화의 한 요소로 정착시키고자 한다. 심지어 그들은 믿지 않는 사람들의 입에서도 찬양이 나오기를 원한다. 그러려면 당연히 젊은이들의 취향에 맞는 음악이 만들어져야 하고, 그 가수들도 세상 가수들의 모습과 닮아야 하며, 콘서트 형식이나 사용하는 악기 및 노래 형태도, 약간만 건전할 뿐, 세상 음악과 닮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CCM, 즉“기독교 현대음악”이다.
이 용어가 본격적으로 사용된 것은 몇 년 되지 않지만, 미국에서는 이미 “가스펠”이라는 것이 대중음악의 한 장르처럼 취급되어 많은 인기를 누려 온 지 오래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음악들이 “복음성가”나 “가스펠송”이라는 이름으로 오래 전부터 교인들 사이에서 불려왔으나, 일반적으로 예배용 찬송가와는 구별된 상태에 있었고, 보수적인 교회들에서는 세상적인 냄새가 많이 나는 음악이나 악기는 사용을 금해왔었다.
대중음악이 그 시대 대중의 사고와 문화를 반영한다면, 기독교 현대음악은 그 시대의 대중음악을 반영한다. 왜냐하면 기독교 현대음악은 대중음악과 전혀 구별되지 못한 채 대중음악의 흐름과 형태를 그대로 반영해 왔기 때문이다.
60년대에는 주로 한국 민족의 정서에 맞게 한(恨)이 담긴 복음성가들이 있었다. 또한 아직은 일제시대나 전쟁을 거쳐온 목회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핍박 가운데 주님의 고난이나 성령의 위로를 노래하는 찬양들이 많았다. “서쪽하늘 붉은 노을”이라든지 “낮에나 밤에나 눈물 머금고 내 주님 오시기만 기다립니다” 등의 노래들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을 것이다. 후자의 경우는 흔히 말하는 “뽕짝” 음악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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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70년대에는 전자기타와 드럼의 사용이 소개되면서 교회음악은 일대 혼란을 가져오게 되었다. 교회에서 드럼을 사용하는 문제를 두고 자유주의냐 보수주의냐를 판단할 정도로 그 문제는 심각했다.
젊은이들은 대중 음악적인 형태의 복음성가들에 심취하기 시작했고, 대부분의 학생들은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다. 이 당시의 대중음악은 TV나 라디오나 콘서트 등을 통하여 통기타 가수들의 활약과 더불어 록음악이 크게 보급되던 때였고, 여러 종류의 가요제들이 열리던 때였다. “한 눈먼 사람이 소리쳤네” “미칠 것 같은 이세상” 등의 노래들은 그 시대를 살아온 젊은이들에게는 유행가와도 같았다.
이와 발맞춰 이 당시에 교회에서 크게 인기를 누리던 것은 은사주의 운동과 기도원이었다. 이 기도원은 은사주의 운동의 온상이 되기도 했다. 많은 교회들에서 전자기타와 드럼을 반대했었으나 은사주의 운동이 그러한 악기들을 결국 대중화시키고 말았다.
80-90년대에 이르러서는 대중음악이 그렇듯이 어느 한 종류의 음악이 아니라 여러 종류의 음악들이 교회에서 사용되게 되었다. 크리스챤 록음악은 더욱 발전하게 되었으며, 일부 어린이 단체와 학생 선교단체들에서는 다소 건전한 통키타 율동 찬송이 보급되기도 했고, 여전히 “뽕짝” 스타일의 가스펠송도 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90년대 중반을 지나 어느샌가 이 모든 음악들은 “경배와 찬양”이라는 새로운 음악에 의해 “평정”되었는데, 그 음악은 전자악기의 사용을 극대화한 상태에서, 다소 복잡하지만 대중음악에 익숙해 있는 젊은이들에게는 부르기에 전혀 어렵지 않은 리듬을 사용하고 있다. 이 음악은 시끄러운 가운데 통성기도와 방언을 사용하기에 용이하기 때문에 은사주의자들에게 환영받게 되었고, 사회 변화와 각종 유행에 민감한 대학생들 및 젊은 층에게도 각광받게 되었다. 따라서 이 “경배와 찬양” 음악은 점차 확산되었는데, 이미 은사주의가 대부분의 보수교단에 침투해 있는 상태이고 사회 변화에 민감한 소위 “지성인” 그룹인 대학생 선교단체들의 성장으로 인해 이 음악은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을 제외한 전체 한국교회의 음악이 되고 말았다.
이러한 가운데서 전문성을 띤 가스펠 가수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이들이 바로 CCM 가수들이다. 이들의 음반은 이전 복음성가 음반들과는 달리 상당히 진보적이며, 외국의 유명한 CCM 가수들의 음악을 많이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CCM 음악들은 앞에서도 언급한 것과 같이 대중음악과 너무나도 비슷하기 때문에, 하나의 기독교 대중문화로 자리잡을 수 있고 비기독교인들도 자연스럽게 공유할 수 있을 정도이다.
교회음악이 이처럼 구별되지 못하고 세상적이 되는 현상에 대해서 일부에선 비판하기도 하지만, 이러한 현상을 하나의 문화로 이해하는 사람들은 예배 때 사용되는 찬송가에 대해서도 똑같은 적용을 한다. 즉 지금 불려지는 가스펠송들이 현대 대중음악을 반영한다면 1700년대, 1800년대의 찬송가들, 예컨데 무디와 함께 생키나 블리스가 불렀던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라든가 “주 날개 밑 즐겁도다” 같은 찬송가들도 그 당시에는 대중음악을 반영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클래식 음악도 그 당시에는 유행가와 같았으며, 사실 그러한 찬송가들도 그 당시의 전문 음악인들로부터는 유치하고 조잡하고 예배용 찬송으로 불려지기에는 부적합하는 평가를 받았었다. 그러므로 현대의 가스펠송들을 받아들이는 것은 기성세대와 신세대 간의 문화의 차이일 뿐, 그러한 음악들을 예배용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전적으로 부적합하지는 않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BB 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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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같은 이유를 들어 CCM을 옹호하는 것은 세상의 대중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의 말처럼 찬양이 대중음악 스타일을 따라가도 좋다면, 젊은이들의 취향과 비트가 점점 빨라지고 있는 현대음악의 추세에 맞추어 랩 음악으로도 찬양할 수 있고, 또 다른 종류로는 발라드를 지나 뉴에이지 음악으로도 찬양할 수 있어야 한다. 실제로 현대의 CCM 음악들은 이 선을 넘어, 일부 음반업체와 가수들은 랩음악으로 찬양을 부르기도 한다.

우리는 우리가 어떤 종류의 찬양을 해야 할 것인가를 성경에서 찾아야 한다. 『시와 찬송과 영적인 노래들을 지어 말하고, 너희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아름다운 곡조를 만들고』(엡 5:19).
사람들은 여기서 “시”(Psalm)는 시편을 말하고 “찬송”(hymn)은 예배용 찬송가를 말하며 “영적인 노래들”(spiritual songs)은 복음성가들을 말한다고 한다. 물론 이러한 구분이 전혀 틀리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위에서 지적한 크리스챤 록이나 “랩 찬양”, CCM의 음악들이 과연 성경이 말하는 “영적인 노래”가 될 수 있는가? 아무 곡조에다 기독교적 색채가 나는 가사들을 붙이기만 하면 영적인 노래가 될 수 있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러한 노래들은 가사에 있어서도 그리스도의 피와 구속과 재림을 노래하는 것보다, 사랑과 평화와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자는 것에 관한 내용들을 많이 담고 있어, 가사면에서도 비성경적인 것이 많다. 그러나 개중에 성경적이고 올바른 가사를 담고 있는 것이 있어도 그 가사는 세상의 육신적인 음악으로 인해 전혀 빛을 발하지 못하여, 그 노래를 부르거나 듣는 이들은 가사보다 음악에 취해 음악 자체가 주는 메시지를 따라가게 되는 것이다.

성경이 말하는 “영적인 노래”는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들로 하여금 하나님과 영적인 교통을 가능하게 해 주고, 성도들 간에 영으로 화답할 수 있게 해 주는 노래들이어야 한다. 그 노래를 부르거나 듣는 사람은 영적으로 감동을 받거나 하나님께 헌신하고 싶은 마음이 들거나 하나님과의 교제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 비록 음악 자체가 거룩하지는 못해도 그 음악으로 인해 거룩한 감동이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성가”라고 부르는 음악에 대한 정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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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성가”에는 육신적인 음악이 사용되어서는 안된다. 세상의 유행에 민감해져도 안된다. 왜냐하면 세상은 마지막 때를 향해 달려갈수록 더욱더 육신적이 되고, 감각적이 되며, 사람의 마음 속 깊은 곳을 어루만지기 보다는 육신적인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것으로 향해 달려나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CCM을 포함한 기독교 대중음악들은 “영적인 노래”가 아니라 “육신적인 노래”이다.
찬송가에 들어있는 대부분의 17-19세기에 만들어진 곡들은, 비록 그 당시에 전문 음악인들이 평가했던 것처럼 다소 예술적이지 못한 곡들이 있어도, 적어도 그 곡들은 육신적인 음악들이 아니었다. 생키와 블리스는 그 곡들을 노래하면서 청중들의 마음을 주님께로 향하게 했고 설교되는 복음을 받아들이게 했다.
물론 지금도 CCM이나 록 음악이 연주되는 집회를 통해 사람들이 주님을 영접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집회에서 선포되는 메시지가 성경적이지 못한 경우가 허다하고, 또 비록 성경적인 메시지가 선포된다 해도, 밀폐된 공간에서 귀가 멍할 정도로 시끄러운 전자음악을 듣고, 육신적인 노래들을 반복하여 장시간 부르다보면 정상적인 정신과 마음으로 주님을 영접하기 보다는 혼미한 정신상태에서 손들고 일어나 주님을 영접한다고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것은 일종의 자기 최면 및 집단 최면의 영향으로 방언을 하는 경우와 같을 것이다. 그러한 사람들은 집회 장소를 벗어나면 집회 때 느끼던 것과 다른 감정을 느끼거나 매주 집회 때마다 영접하기도 한다. 그래서 찬양 집회에서 예수님을 영접했다고 하는 사람들이 과연 진정으로 거듭났는지는 의문이다.
17-19세기의 곡들이 영적인 노래들로 인정되는 것에는 그 시기가 교회사에서 가장 위대했던 “필라델피아 교회시대”라는 이유가 가장 크다. 하나님께서 보존하신 <표준원문>이 긴긴 암흑기를 지나 다시 빛을 보았고 <루터성경>과 <킹제임스성경>이 번역되었다. 그 이후로 복음은 더욱 활발히 전파되었고 유럽, 특히 영국과 미국은 성령의 역사로 가득찼다. 실로 하나님께서 축복하신 시대였다. 음악에 있어서도 바하, 헨델, 모짜르트 등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작곡가들이 줄을 이었다. 우리가 부르는 예배용 찬송가에는 전문 음악인이나 비전문 음악인이나 이 시대의 음악가들의 작품들이 많이 들어 있다. 그 곡들의 대부분은 육신적인 곡들이 아니어서 영적인 노래들로 활용된다. 그러나 “라오디케아 교회시대”인 20세기, 특히 지금의 20세기 말은 배교한 시대로, 인본주의가 극대화된, 타락한 문화의 시대이다.
타락한 문학, 타락한 미술, 타락한 음악, 그 한가운데 서 있는 “기독교 현대음악”, 그것은 가히 세기말적 풍토를 따라가는 음악이라 아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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