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교계 비평 분류

우상숭배를 조장‧방치하는 사이비 삯꾼 목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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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3년 11월호>

근래에 들어 우리나라에 미신과 우상숭배가 독버섯처럽 돋아나고 있다. 대학가에는 전통이란 이름 아래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 두 장승이 수호신마냥 버티고 서 있으며, 건축 공사장에는 물론 컴퓨터 가동식에도 고사를 지낸다. 자동차를 새로 사고서도 무사고를 위해 고사를 지낸다. 입시철, 선거철이면 각종 미신적 행위가 우후죽순처럼 고개를 쳐든다.
문제는 그러한 각종 미신이 전통이니, 종교니 하는 이름으로 교회에까지 들어와 상당한 세력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도 남보다 앞장서서 미신과 우상숭배를 몰아내야 할 목회자들이 앞장서서 우상숭배를 조장하고 있다. 이름하여 ‘추모예배’니 ‘추도예배’니 하는 따위가 그것이며, ‘축복기도’니, ‘송구영신예배’니 하는 따위가 그것이다. 이제 성경적으로 추도예배나 추모예배가 우상숭배임을 밝혀보자.
추도(追悼)란 죽은 사람을 생각하여 슬퍼하는 것이며, 추모(追慕)란 죽은 사람을 그리어 생각하는 것이다. 다같이 죽은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행위로서, 추도가 슬픔에 역점을 둔다면 추모란 그 정도가 덜하다는 차이가 있을 따름이다. 인간적으로 보면 죽은 사람이나 돌아가신 조상을 추도하고 추모하는 일은 매우 아름다운 풍습이다. 그러나 그것이 종교적인 의식일진대 우상숭배냐 아니냐는 매우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예나 지금이나 우상 숭배를 엄격히 금하셔서 『너는 내 앞에 다른 신들을 있게 하지 말라』(출20:3)하시고, 또한 우상을 만들거나 그것에 절하지 말라고 하셨으며,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마귀의 엎드려 절하라는 유혹을 물리치실 때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너는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오직 그 분만을 섬기라.’고 하였느니라.”』(마4:10)하신 대로 하나님께만 경배드려야 한다고 가르쳐 주시며, 큰 계명을 묻는 율법사에게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네 마음을 다하고, 생명을 다하고, 지성(知性)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첫째이며 큰 계명이라(마22:37)』고 대답하심으로써 하나님을 사랑함이 우선임을 밝혀 주셨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그러면 조상님께 제사하는 것이 우상숭배란 말인가라고 항변하며, 나아가 그것은 전통이며 효도(孝道)의 표현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제사는 효도도 아닐 뿐더러 성경적으로는 명백한 우상숭배임을 알 수 있다. 성경은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이방인들이 제사하는 것은 귀신들에게 하는 것이지 하나님께 하는 것이 아니니라. 나는 너희가 귀신들과 교제하는 자들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아니하노라. 너희는 주의 잔과 귀신들의 잔을 함께 마실 수 없으며, 너희는 주의 식탁과 귀신들의 식탁에 함께 참여할 수 없느니라』(고전10:20,21)고 분명하게 밝혀 주고 있다. 더 이상의 어떤 다른 설명도 필요하지 않다. 글자 그대로 제사는 우상숭배이다.
제사가 종교적인 우상숭배임은 그들의 제사 의식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우선 지방(紙榜)의 내용을 보면 ‘현고학생부군신위(顯考學生府君神位)’라고 쓰는데, 돌아가신 아버지 조상신이 나타나 굽어살펴 달라는 뜻이다. 분명하게도 조상신을 묘사하고 있고, 참신(參神), 강신(降神), 초헌(初獻), 축문(祝文) 등은 모두가 산 사람이 아닌 죽은 조상의 신에게 해당하는 말들이다. 제사가 자기들의 주장대로 효도라면 중국으로부터 제사가 들어오기 전에는 제대로 효도를 하지 않았다는 얘기 밖에 안되며, 제사를 지내지 않는 서양이나 다른 나라의 사람들은 모두 불효자인 셈이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으며 오히려 효성으로써 제사를 지내기보다는 제사를 안지내면 자손에게 화가 미친다는 지극히 미신적인 동기에서 제사를 지내는 사람도 적지 않다.
사람이 한 번 죽으면 그 가는 길은 둘 가운데 하나다. 하늘[樂園]이 아니면 지옥(地獄)이다. 그리고 그가 예수 그리스도 밖에서 죽었다면 그는 말할 것도 없이 지옥행이다. 하늘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補血)로 죄씻음받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가는 곳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없기에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며, 나아가 하늘에 갈 수 없기 때문이다. 성경은 사람이 한 번 죽으면 그 뒤엔 심판이 있다고 가르치며(히9:27),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정죄(情罪)의 심판에 이르지 않는다고 가르친다(요5:24).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그 아들을 믿지 않는 자는 생명을 보지 못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진노가 그 사람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요3:36). 『그 아들이 있는 자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는 생명이 없느니라』(요일5:12)라고 밝힌 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만이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다. 뒤집어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 밖에는 생명이 없다는 말씀이다.
주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조상신에게 제사함으로써 마음의 위안과 조상신으로부터의 축복을 받고자 한다. 그들은 이 세상 신인 마귀에게 속고 있기 때문에, 또한 그들의 마음이 완고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지옥에 가게 되는데 그것은 전적으로 그들 자신의 책임이다. 문제는 교회에서 행해지고 있는, 예배의 탈을 쓴 미신이요, 우상숭배인 이른 바 ‘추도예배’와 ‘추모예배’이다. 성경에는 돌아가신 조상을 추모하라고 가르친 곳이 전혀 없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사람들은 하늘에 가 있고 지금 현재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들의 후손이나 친척, 친지들은 하늘에 가면 자연히 다시 만나게 될 것이라면 굳이 추도하고 추모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그럴 필요가 없다. 그것은 세상과 타협하는 첫 단계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모해야 할 분은 오직 주님 한 분 뿐이며, 우리가 사모해야 할 곳은 더 좋은 본향 곧 하늘이다. 즉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 그 분 앞에 모이는 것과, 그 분과 함께 영원히 사는 것을 소망하고 사모해야 한다. 그외에 어떤 존재나 대상을 사모하는 것은 명백히 우상숭배이다.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나의 사모할 자가 없나이다』(시73:25). 사도 바울은 추도예배와 같은 미신적인 우상숭배를 하지 못하도록 데살로니가 교회에게 편지하였다. 『형제들아, 잠든 자들에 관해서는 너희가 모르게 되는 것을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가 소망이 없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는 것이라. 예수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것을 믿는다면 그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예수 안에서 잠든 자들도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살전4:13,14). 왜 소망 없는 사람들처럼 추도, 추모를 하는가? 그것도 신앙심이 좋은 것인양 추도예배니 추모예배니 하면서 말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부활에 대한 확신이 없거나 적기 때문이다. 말로는 믿노라 하면서도 마음으로는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것을 믿지 못하는 여인들에게 두 천사가 나타나 그들에게 『어찌하여 너희는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그 분은 여기에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눅24:5,6)고 일러 주었다. 오늘날 많은 자칭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재림을 믿지 않기에 그리스도인들의 영광스러운 휴거(携擧;Rapture)의 소망을 그리지 않고 살다가 죽는다. 그리하여 그 후손들과 친척, 친지들은 그의 죽은 날을 기념하여 추도 또는 추모를 하여 예배를 드린다. 실로 산 사람을 죽은 것으로 알고 죽은 자 가운데서 시체를 찾는 것과 다르지 않다.
진실한 그리스도인은 언제 어디서든지 하나님께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릴 수 있다. 특정한 날에 특별히 더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더욱이 불신앙의 기초에 세워진 그런 예배는 미신이며 우상숭배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죽은 사람의 죽은 날을 기념하고 지키는 것은 이른 바 주일성수(主日聖守)보다 더 웃기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나라의 대다수 목회자들은 주일성수를 잘해야 복받는다고 가르치지만 성경에는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말이 전혀 없고, 주일은 유대인들이 지키는 안식일도 아니다. 어떤 목자는 추석절을 추모예배로 드리라고 친절하게 가르쳐 준다. 그래서인지 필자가 아는 어떤 장로교인은 거듭나지도 않았으면서도 그 유인물에 따라 설, 추석, 제사 때마다 지성으로 조상님께 추도예배를 드린다. 그의 조상들은 전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도 않았거니와 지옥에 있음이 분명한데도 “오늘은 00년 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하늘에 간 0자 0자 할아버지를 추모하는 추모예배를...”하면서 유인물을 읽어가며 예배(?)를 드린다.
그야말로 민중과 연합하는 라오디케아 교회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주는 것이 아닌가!
추석은 한가위, 가배(嘉俳)라고도 하며 그 유래는 아득히 신라 유리왕 때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애당초 그것은 지금과 같은 추수감사의 의미나 조상숭배의 의미는 전혀 없었다. 그 뒤로 세월이 흘러흘러 조선시대에 와서 유교의 제례가 보급되고, 나아가 무속신앙이 결합됨으로써 마침내 추석 한가위는 오늘날과 같이 한해 동안 농사를 짓게 도와주신 조상님[祖上神]께 감사드린다는 명목으로 우상에게 제사하는 종교적 행동으로 변화되었고, 산업사회의 핵가족들의 향수(鄕愁)를 달래 주는 절기로서 그 현대적 의의마저 더욱 두터워지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추석을 미화하고 제사를 예찬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하나님 앞에 명백한 우상숭배요 미신과 다름 없다. 그럼에도 앞을 다투어 목회자들이 추석절을 지키게 해 주셔서 감사하다느니, 추석은 조상의 은덕을 기리고 추모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는 날이라느니 하며 추모예배를 권장하고 있다. 일제때 신사참배를 국가적인 의식일 뿐 우상숭배는 아니라고 한 것과 마찬가지다.
추석은 한민족(韓民族) 최대의 명절일 뿐 그리스도인의 명절은 결코 아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한민족이 따로 없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모두 다 같은 형제이기 때문이다. 또한 주님의 은혜 안에서는 율법적 절기는 물론 기타 절기를 지킬 필요가 없다. 더욱이 그것이 우상숭배의 연장이요 변형이라면 단호하게 끊어버려야 하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사도 바울을 통하여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들이 어찌 일치되겠느냐?.... 너희는 그들에게서 나와 따로 있고 더러운 것을 만지지 말라』(고후6:16,17)고 하시며, 퍼가모 교회의 발람의 가르침, 곧 우상숭배의 가르침을 지키는 자들을 책망하신다(계2:14).
추도예배니 추모예배니 하면서 우상숭배를 조장하는 목자들은 발람과 같은 거짓 선지자요 삯꾼 목자이다. 신실한 목자라면 우상숭배를 금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해야 한다. 또한 신실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삯꾼 목자의 거짓된 가르침을 옳게 분별하고 오직 주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2:15).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영접하였으니 그의 안에서 행하라. 그의 안에서 뿌리를 내리고 세움을 받아 가르침을 받은 대로 믿음 안에서 확고히 되어 그 안에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아무도 너희를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노략질하지 못하도록 주의하라. 그것들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유치한 원리를 따른 것이며 그리스도를 따른 것이 아니니라』(골2:6-8).
『너희는 이 세상을 본받지 말고 너희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써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입증하도록 하라』(롬12:2). 마라나타! 아멘, 그러하옵니다. 주 예수님 오시옵소서(계22:20).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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