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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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의 위기, 제자훈련으로 극복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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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4년 12월호>

한국 교회의 위기, 제자훈련으로 극복할 수 있는가?

최근 사랑의교회 원로목사인 옥한흠 목사가 CBS 창사 50주년 기념 심포지엄에서 한국 교회 개혁에 대한 방향을 제시해서 눈길을 끌고 있다. 그 방향이란 다름아닌 이른바 "제자훈련"으로, 이것만이 한국 교회를 살릴 수 있는 길이라고 역설했다. 이것은 지난 25년 동안 이루어 왔던 그의 제자훈련 사역에 대한 스스로의 평가이기도 한데, 참조로 사랑의교회는 교인수가 수만 명 이상 되는 대형 교회이다. 그러니까 자신이 했던 "성공적인" 목회 방법에 대한 소개이기도 했다.
그러나 필자가 여기에서 다루고자 하는 것은 사랑의교회나 옥한흠 목사 자신에 대한 비평만이 아니다. 오히려 "제자훈련" 사역 자체를 짚어보고자 하는데, 필자 또한 과거 선교단체에 있을 때 제자훈련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사람으로서 이 사역에 대한 평가를 성경적으로 내리고자 한다.
제자훈련이라는 것은 <개역성경>의 마태복음 28:19에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을 제자로 삼아..."라는 말에서 시작되었지만, 그 기본 정신은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그리고 네가 많은 증인들 가운데서 내게 들은 것들을 신실한 사람들에게 맡기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딤후 2:2)고 말한 것에서 유래한다. 다수의 청중들에게 설교하는 것만으로는 그들을 변화시킬 수 없기에, 소수의 신실한 자들을 가르쳐 그들을 지도자로 삼고 그들을 통해 지속적으로 복음을 전파하고자 하는 원리이다. 즉 누군가를 지도자로 세우는 것이 제자훈련인데, 그러려면 그 소수의 사람들은 철저하게 제자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 "지도자"들은 전임사역자들, 즉 목사들일 필요는 없다. 오히려 이 세상의 각종 직업, 각 위치에 있는 "평신도"들이 각자의 삶 가운데서 헌신한 가운데 지도자 훈련을 받게 된다. 그러다 보니 이 제자훈련은 네비게이토, C.C.C. 같은 선교단체들에서 시작되고 확산되었다. 주로 다른 사람들보다 시간이 많은 대학생 선교단체들에서 활성화되었는데, 이들은 학교 내에서 전도하며 소그룹을 중심으로 기초적인 육성을 하고, 그들을 자기들 단체의 목적에 맞추어 훈련시키곤 했다. 그러다 보니 초기에는 강단 중심이었던 기성 교회들과 다소 마찰을 빚기도 했다. 하지만 영성 없는 설교에 지친 무력한 교인들의 눈으로 볼 때, 어쨌든 이들은 자기들의 위치에서 전도를 하는 등 역동적으로 보였고, 그래서 급기야는 교회들에서도 소그룹 운동을 중심으로 하는 제자훈련을 시키게 되었다. 물론 이렇게 된 데에는 그 선교단체 출신들이 목사가 되어서 그 방식으로 "성공적인" 목회를 한 것도 한 몫을 한다. 앞에서 제시한 사랑의교회도 그 방식을 채택해서 "성공"한 예이다. 이들 교회들은 선교단체에서 사용하던 용어들을 그대로 사용하기까지 한다. 이를 테면 소그룹 모임을 지칭하는 "순"(筍)이나 "셀"(cell) 같은 용어들은 선교단체에서 사용하던 용어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역이 참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일이었을까? 그들은 제자훈련을 위해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마련하지만, 그러한 프로그램들로 진정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양성되고 있는 것일까? 교회들은 참으로 이 사역을 통해서 부흥되고 있는 것일까? 제자훈련의 내용을 알면 이러한 질문들에 회의가 들 것이다.

제자훈련의 문제점
먼저, 제자훈련이란 "그 집단(선교단체든 교회든)의 사람"으로 만드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하나님의 사람"이란 겉으로 내세우는 말일 뿐이다. 어느 조직이나 자기 조직을 이끌고 유지하기 위해 철학이 필요하기 마련인데, 이들도 역시 자기들의 철학, 자기들의 운동 목표에 맞춘 "맞춤형 인간"을 양성한다. 이는 세상의 기업들이 자기 조직에 맞는 사람을 만들기 위해 직원들을 재교육시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특히 선교단체의 제자훈련은 더욱 그렇다. 일례로 네비게이토나 C.C.C. 같은 경우는 주일에 지역 교회에 가지 않고 자기들끼리 채플을 만들어 운영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일반 회원들은 주일에 자기 교회에서 봉사하면서 평일에만 선교단체에서 일하지만, 좀더 헌신된 회원들은 지역 교회를 포기한다. 그들은 자기들 집단으로의 헌신을 주님께로의 헌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둘째는 목적의식의 문제다. 제자훈련의 표면적인 목적은 이 땅에 주님의 지상명령을 성취하는 것인데, 과거에는 주로 복음 전도 자체였다. 이것은 그나마 제자훈련의 긍정적인 면이었다. 즉 헌신된 사람에게 전도 훈련을 시켜 직접 복음을 전파케 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비록 간략하지만 전도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초기에는 선교단체에서 하는 이런 일들이 교회들을 다소 자극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목적은 점차로 퇴색되기 시작했고, 언젠가부터는 자기 회원 확보 및 유지의 목적으로 변질되기 시작했으며, 그러다 보니 선교단체들은 친교단체로 전락하기도 하였다. 그러는 사이 제자훈련은 교회들에서 활성화되기 시작했는데, 교회는 이것을 교회 성장의 목적으로 활용하게 된 것이다. 오랫동안 강단 설교 중심으로 목회를 하다 보니 자연히 모든 교인들을 끌어안을 수 없게 되었다. 목회자와 교인 개인들 간의 인격적인 교제는 큰 교회일수록 유지하기 어렵다. 오래전부터 교회들은 이미 지역 중심으로 구역이나 속회 등의 소그룹 성경공부를 하기는 했지만, 별로 친하지도 않은 사람들을 억지로 묶어 놓으니 제대로 될 리가 없다. 그러던 차에 제자훈련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소수의 헌신된 사람들을 역동적으로 움직이게 하니 교회가 좀 활기차게 되었다. 소그룹 모임도 공통의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 예를 들어 학생이나 주부나 직장인이나, 혹은 어떤 활동을 같이할 수 있는 사람들로 묶어 놓다 보니 교회는 활성화되는 것처럼 보인다. 즉 외형적으로 교회는 부흥되고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 사랑의교회 같은 몇몇 교회들이 이 같은 방법으로 성장하다 보니 여러 교회들에서 앞다투어 이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것은 참으로 당연하다. 그러나 이러한 프로그램으로 교회가 외형적으로 커지는 것과 회원들이 영적으로 성장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셋째는 훈련방식이다. 제자훈련의 프로그램은 성경적으로 아주 제한적이다. 인격적인 면, 인간관계면, 활동적인 면들에서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갖추어 놓지만, 정작 성경에 대한 내용은 아주 제한적이어서, 전도하는 방법 및 기초 성경공부에 만족한다. 조금 수준 높은 성경공부를 한다고 해도 결국은 그 단체의 목적에 맞춘 학습만이 이루어진다. 기도하는 법, 성경을 읽는 법, Q.T.(경건의 시간)를 갖는 법 등의 기초 지식을 얻으면 전도 훈련을 받게 되고, 그 다음에는 그 운동을 이끌 수 있는 방법을 배운다. 그러면 지도자가 된다. 성경 전반에 걸친 지식은 굳이 필요없다. 가끔가다 책별 성경공부, 주제별 성경공부 등이 이루어지지만 거의 특강 형식으로 그치기 일쑤다. 필자가 제자훈련을 받으면서 계속 들었던 성경 구절은 디모데후서 2:2이었다. 그러니까 모든 성경공부는 제자훈련에 맞추어서 제공되는 것이다.
그러나 디모데후서 2:2을 말씀하신 하나님께서는 동일하게 디모데전서 2:4도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의 지식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또 에베소서 4:13에서는 『우리 모두가 믿음의 하나됨과 하나님의 아들을 아는 지식의 하나됨에 도달하게 하고 온전한 사람이 되어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한다. 이것은 영적 지식으로 인한 것인데, 제자훈련에서는 진리의 지식의 충만한 모습은 보기 어렵다. 그 지도자들에게 성경의 주요 교리를 물어보면 자기들의 운동과 관련 없는 것들은 대부분 대답을 하지 못하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우리가 누군가를 제자라 한다면 그리스도의 제자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제자훈련에서 말하는 제자는, 그 가르치는 스승의 제자, 혹은 그 운동의 창시자에 대한 제자일 뿐이다. 리더들이 성경적으로 오류를 범해도 무조건 따라간다. C.C.C.에서는 그 철학 가운데 "절대 순종, 절대 헌신"이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성경 말씀에 절대 순종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 지도자의 말에 절대 순종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제자훈련 프로그램은 "사람의 종"을 만드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킹제임스성경> 즉 바른 말씀은 설 자리가 전혀 없다. 영적 성장을 위해서 필수적인 바른 성경을 거부하고 변개된 성경을 사용하면서도, 이것이 바른 성경이다, 왜 바른 성경을 써야 하는가, 변개된 성경은 이러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 하는 말들이 그들에게는 한갖 논쟁으로밖에 비쳐지지 않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문제는 그들의 제자훈련 프로그램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회원들이 단순하게 시키는 대로만 따라오기 원하는데, 그들이 진리의 지식을 향해 나아가면 "목적의식"을 상실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진정한 개혁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시작된다. 유다의 요시야왕도 성전에서 율법책을 발견함으로써 개혁을 이루었고(왕하 22장), 독일의 마틴 루터도 성경을 번역함으로써 개혁을 이루었다. 영국에서 <킹제임스성경>이 번역된 후 그 성경을 통해 3세기 이상 위대한 부흥을 가져온 것은 누구나 아는 일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개혁, 진정한 제자의 삶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온다. 그러나 이들은 말씀을 던져 버렸다. 제자훈련에 필요한 구절들만 사용할 뿐이다. 결국 그들은 첫단추부터 잘못 끼운 셈이다.

교회 성장에 맞춘 제자훈련 프로그램
한국 교회는 모든 것이 교회 성장에 맞춰져 있다. 이번에 옥한흠 목사가 CBS 심포지엄에서, 설교 중심의 목회를 탈피해서 제자훈련 중심으로 목회해야 한다고 말한 것은, 그렇게 해야 교회가 성장한다는 말을 다르게 표현한 것 뿐이다. 이에 대해서는 이 날 심포지엄에 참석한 이승영 목사(한국교회언론회 대표)도 "[제자훈련의] 양육은 다분히 교회성장을 위한 것으로 보여진다."고 정확히 논평하기도 했다.
한국 교회의 "교회 성장 콤플렉스"는 말할 수 없을 만큼 크다.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가 우리 나라에 있고, 교회 숫자와 그 회원들의 양적 성장으로 말한다면 세계 제일이다. 그러나 요즘 교회 성장은 조금씩 침체되어 간다. 이러다가 언젠가는 교회가 텅텅 비는 현상이 일어날지 모른다. 그들은 이 위기감을 서구 교회에서의 교훈으로 연결시킨다. 즉 영국이나 미국 교회들이 한때는 세계적인 부흥을 주도할 만큼 컸지만 이제는 쇠퇴했는데, 한국 교회가 그 전철을 밟을까봐 걱정하는 것이다. 다른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옥한흠 목사도 똑같은 것을 걱정하고 있었다. "18,19세기 영국 교회는 요한 웨슬리, 스펄전, 윌리암 캐리, 허드슨 테일러 등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영적 거장을 배출하며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다. 그러나 20세기로 들어서면서 영국 교회는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으며 초기 증상은 노령화다." 옥목사의 진단은 오늘 한국 교회가 겪고 있는 문제가 바로 이런 것이며, 특히 청년들이 교회에서 빠져 나가는 것을 걱정하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제자훈련의 필요성이라고 역설한다.
그러나 틀렸다. 한국 교회와 영국 교회는 비교 자체가 안 될 만큼 다르다. 한국 교회의 문제를 영국 교회와 비교하는 것 자체가 교회 성장, 특히 양적 성장에 초점을 맞춘 잘못된 진단인 것이다.
일단 우리 나라는 영국처럼 부흥한 적이 없다. 단지 양적 성장만 이루었을 뿐이다. 영국의 교회들은 <킹제임스성경>을 바탕으로 부흥을 이루었다. 그때의 설교자들은 오직 성경만을 설교했고, 죄들을 지적했으며, 지옥과 심판을 강조했다. 복음의 불길이 휩쓴 곳에서는 술집과 극장이 문을 닫기도 했다. 성령의 역사는 도덕적 각성도 일게 했다. 그러나 우리 나라는 그런 적이 없다. 여기저기서 부흥회가 난립하던 70,80년대, 교회에는 사람이 모이고 대형 교회가 생겨났지만 술집과 극장의 숫자는 더 많이 늘어났다. 교회들은 "성령, 성령"은 외쳐댔지만 정작 그리스도와 그분의 보혈, 그리고 지옥에 대한 설교는 점점 줄어들었다. 바른 성경은 처음부터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우리 나라는 세계 최대의 교회를 갖고 있다고 자랑하게 되었다. 이것은 참으로 "기적"이다. 오순절 운동은 오늘날도 그칠 줄을 모른다. 이 세상의 죄악이 더욱 만연해지는 것과 더불어... 결국 한 번도 복음화를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한국 교회는 영국 교회와 비교해서는 안 된다.
제자훈련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서구 교회가 몰락하게 된 원인도 결국 제자훈련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것은 크나큰 오판이다. 물론 그리스도의 제자가 더 이상 양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몰락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제자 "훈련"을 하지 않아서 몰락한 것은 아니다. 제자는 "제자훈련 프로그램"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스펄전이나 웨슬리, 윌리암 캐리가 제자훈련을 받고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었다는 말은 들어 본 적이 없다.
서구 교회가 몰락하게 된 것은 변개된 성경과 관계가 있다. 변개된 성경이 <킹제임스성경>의 자리를 차지해 버리고, 그와 더불어 진화론과 자유주의 신학 사상이 신학교와 교회에 침투하자 강단에서는 죄에 대한 책망과 복음이 사라져가게 되었다. 말씀의 자리를 철학과 온갖 세상적 사상이 차지하게 되었다. 자연히 거리에서 복음을 전파하는 모습도 사라졌다. 아니, 복음을 전하는 것 자체가 금지되었다. 그러면서도 과거의 찬란했던 기독교 유산들만을 자랑한다. 즉 기독교 신앙은 "기념비"가 되어 버렸다. 실제로는 이교도화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이들은 제자훈련 프로그램이 없어서 몰락한 것이 아니다. 진정한 제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변화받고 헌신을 하게 된다. 과거에 그들은 강단에서, 거리에서, 어떤 종류의 모임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강력히 전파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이 그 청중들을 변화시켰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제자훈련은 짜여진 프로그램 속에서 회원 상호 간의 인격적인 나눔만이 있다. 성경 말씀은 그들 대화의 주제를 위해, 혹은 그들 운동의 방향을 위해 사용될 뿐이다. 삶을 나누고 마음을 나누는 가운데 그들 집단은 친숙해 갈 수 있지만, 진리 안에서 참된 변화는 이룰 수 없다.
그럼에도 그들이 제자훈련을 통해 변화받았다고 한다면, 그 변화는 제자훈련 프로그램 안에 있을 때의 변화뿐이다. 제자훈련의 맛을 본 사람은 그 프로그램을 떠나지 못한다. 만약 떠나게 되면 그는 힘을 잃고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 버린다. 수많은 대학생들이 학교 안에서 선교단체로부터 제자훈련을 받는다. 그동안은 아주 열심이고, 역동적인 것처럼 보였다. 그들은 졸업하고 세상에 나가면 아주 훌륭한 제자로 살 것이라고 다짐한다. 그러나 실제로 졸업 후에 제자는커녕 교회에 남아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들에게 제자훈련은 "한때의 열정"에 불과하다. 교회는 학교처럼 졸업하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조금 더 지속적이기는 하지만, 그들 역시 그 프로그램 내에서만 제자가 되기는 마찬가지다. 오히려 교회 안에서의 제자훈련이 더 폐쇄적일 수 있다.

제자가 되지 못하게 하는 제자훈련
마지막으로 지적하고 싶은 제자훈련의 문제점은 신학의 부재이다. 그들에게는 신학이 없다. 교리가 없다. 이 운동의 커다란 한계점 중 하나는 지나치게 "평신도 중심"이라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성경적 깊이가 없게 만드는 요소이다. 평신도라는 말은 목사, 선교사 같은 전임 사역자 외에 생업에 종사하면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달리 말하면 안수받지 않은 성도들일 뿐이다. 하지만 실제적으로 많은 교회들에서 이들은 성직자들보다 지식과 믿음이 떨어지는 사람들, 아니 좀더 심하게 말해서 떨어져야 하는 사람들로 분류된다. 이들은 목회의 대상일 뿐이다. 이들은 교회 성장의 도구일 뿐이고, 교회에다 돈을 내야 하는 사람들일 뿐이다. 이들이 없어지면 교회는 큰 타격을 받는다. 그래서 교회는 어떻게 해서든 이들을 잡아 두어야 한다. 오죽하면 교회 성장 이론에서 "뒷문을 잠궈라."는 말이 나올 정도겠는가?
그래서 이들에게는 큰 지식이 필요없다. 신학적 지식은 많은 교인들을 다루는 데에 방해가 될 뿐이다. 그들에게는 찬양과 나눔만 있으면 된다. 찬양도 깊이 있는 찬송가보다는 가벼운 복음성가들이 좋다. "사랑해요, 사랑해요," "감사해요, 감사해요"만 반복하는 노래면 더 좋을 것이다. 말씀은 Q.T. 정도면 충분하다. 자,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제자"가 과연 그리스도의 제자일 수 있는가? 교회 성장을 염두해 둔 목사의 제자가 아닌가? 이들이 마귀와 그의 계략을 알아 영적 전쟁을 수행할 수 있겠는가? 세대적 진리는 고사하고라도 신약 교회의 임무와 실행에 대해 분별력을 갖출 수 있겠는가? 필자는 수년 동안 제자훈련을 받아 봤지만, 전천년 교리나 그리스도의 재림을 소망하는 믿음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들어 본 적이 없다. 그리스도의 심판석에 대해서도 전혀 듣지 못했다.
성경의 건전한 교리는 성도에게 분별력을 준다. 그러나 제자훈련을 통해서는 전혀 영적 분별력을 갖지 못한다. 대부분의 제자훈련 프로그램은 초교파적이기 때문에 어떤 교리를 강조할 수가 없다. 또한 초교파라는 것은 에큐메니칼 정신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에 이 훈련을 통해서는 어떤 영적 분별력도 기대할 수 없게 되어 있다.

진정한 그리스도의 제자란 어떤 사람인가?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사람이다. 그는 헌신한 사람이요, 담대한 사람이며, 진리를 선포하는 사람이요, 영적 전쟁의 군사이다. 따라서 누군가를 그리스도의 제자로 양육하기 위해서는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그분의 제자들에게 항상 말씀으로 설교하셨으며, 대적자들을 말씀으로 물리치셨다. 성령님께서 오신 것도 제자들에게 그 말씀을 깨닫게 해 주시기 위함이었다(요 14:26).
성경은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훈육』하기 위해 기록되었다. 그렇게 말씀으로 훈련받은 자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되며, 모든 선한 일에 철저히 구비』된다(딤후 3:16,17). 진정으로 제자를 양성하고 싶다면 성경을 가르쳐야 한다. 기도하는 법, Q.T.하는 법, 삶을 나누는 법 같은 것 말고, 불 같고 망치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야 한다. 성도들을 평신도로 격하시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진 부스러기"만 주는 행위를 그치라. 그렇게 해서 양성된 제자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아니요, 사람의 종일 뿐이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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