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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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력이 비성경적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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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3년 01월호>

최근 20여 년 동안 교회력은 한국 교계에서 점차 정착되고 있다. 물론 부활절이나 성탄절을 지키고, 미국 선교사들의 영향으로 추수감사절 등 몇 가지 절기들을 지켜왔다. 그러나 “로마카톨릭의 교회력”을 본격적으로 지킨 것은 교황 요한 23세가 “카톨릭의 쇄신(현대화)과 교회(신․구교) 일치”를 표방하여 1962년 개회한 제2차 바티칸 공회 이후 수행되고 있는 에큐메니칼(교회일치) 운동이 확산되면서부터이다.

따라서 교회일치운동이 교계를 주도하고 있는 상황에서, 목사가 교회력에 따라 목과 어깨를 두르는 스톨의 색상을 바꿔가며 걸치고 강단에 서서 이렇게 말하는 것을 자주 들을 수 있다. “교회력에 따라 이번 주는 OO주일입니다. (또는 OO절입니다.) 따라서 OO말씀을 통해 그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한 주간 동안 OO을 유념하면서 지냅시다.” 또한 교회력에 따른 성서일과(聖書日課), 즉 성구집을 낭독하거나 읽도록 하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듯이 한 교계 신문에서 2003년 교회력을 소개하면서 목회자들에게 이렇게 권하고 있다. 「2003년 교회력은 2002년 12월 1일 대강절 첫 주부터 시작된다. 교회는 신년도 목회 주제를 설정하고 교회력에 따른 설교에 주력해야 한다」(기독교연합신문, 12월 1일). 그러나 현재 대부분의 한국 교회들이 따르고 있는 교회력은 성경적인가? 한마디로 비성경적이며, 또한 인간의 전통일 뿐이다. 따라서 성경적인 신약 교회들은 당연히 교회력과 절기를 지키지 않는다.

그동안 한국 교계에서 교회력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하며 무지한 목회자들과 교인들과 신학생들에게 악영향을 주고 있는 대표적인 사람이 장신대의 정장복 교수이다. 정교수는 그의 책, <교회력과 성서일과>(대한기독교서회, 1996)에서 ‘교회력을 지키는 것이 성경적 근거가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이렇게 주장한다. 「성서에서도 교회력이 지켜졌는가 하는 질문... 그 대답은 바울이 고린도전서에서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를 말하면서 “명절을 지키라”(고전 5:7-8)고 권하고 있는 사실만으로도 명확하다」(p.47). 그러나 이것은 교회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성경을 왜곡한 주장일 뿐이다. 정교수는 마치 “명절을 지키라”는 명령이 성경에 있는 것처럼 말하지만, 고린도전서 5:7,8을 전부 인용하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일부라도 정확히 인용하지 않았다. 개역성경도 정교수의 인용처럼 기록하고 있지 않다.

고린도전서 5:7,8의 말씀은 전후 문맥을 통해 그 의미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먼저 고린도전서 5:7,8을 보기 바란다. 『그러므로 묵은 누룩은 떼어내 버리라. 그래야 너희가 누룩을 넣지 않은 새 반죽이 되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희생되셨으므로 우리가 그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이나 또 악하고 가증한 누룩으로도 말며 오직 누룩 없는 성실과 진리의 빵을 가지고 지키자.』 7,8절의 누룩은 무엇인가? 성경에서 누룩은 거짓 교리(마 16:11, 갈 5:9)를 말하며, 또한 죄, 곧 타락한 생활(고전 5:2,6,9-11)을 뜻한다. 특히 고린도전서 5:7,8의 『묵은 누룩은 떼어내 버리라.』는 말씀과 『묵은 누룩이나 또 악하고 가증한 누룩으로도 말며』라는 말씀은 전후문맥을 보면 음행의 죄를 지은 형제를 쫓아내라는 뜻이며(2,9절), 9-11절의 죄들로부터 성별되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7절의 말씀이 의미하는 바는 그리스도인들이 죄들과 타락한 삶을 청산함은 물론, 그들 가운데 그러한 자들이 제거되어야 한다는 것이며, 그럴 때에만 유월절 양이신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심으로 형성된 교회가 누룩 없는 반죽, 즉 죄들과 타락한 삶으로부터 성별된다는 말씀이다. 고린도전서 10:16,17은 『...우리가 떼는 이 빵은 그리스도의 몸의 교제가 아니냐? 이는 우리 많은 사람이 한 빵이요, 한 몸이기 때문이며 우리가 모두 그 한 빵에 참여하기 때문이라.』는 말씀처럼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영적으로 한 빵이요, 그리스도의 한 몸을 이룬다. 따라서 고린도전서 5:7에서 『너희가 누룩을 넣지 않은 새 반죽이 되리라.』는 말씀은 죄들이 제거된 교회가 된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8절에서 그 명절을 지키되 누룩 없는 성실과 진리의 빵을 가지고 지키자는 말씀은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기념하여 주의 만찬을 하되, 그리스도인은 자신을 살펴보고 나서 그 빵을 먹고 그 잔을 마셔야 한다는 원칙대로(고전 11:27-29) 죄들을 제거하고 주의 만찬을 하라는 의미이다. 죄를 자백하지 않거나 고린도 교회처럼 음행의 문제를 교회적으로 처리하지 않은 상태에서 주의 몸의 교제에 참여하는 것은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죄를 짓는 것이다. 따라서 정교수가 왜곡하여 인용한 것처럼 이 구절은 교회가 지켜야 하는 교회력에 따른 명절, 즉 절기가 있다는 것을 전혀 말씀하고 있지 않다. 성경 어디에도 교회력에 나오는 절기들을 지키라는 말씀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러한 헛된 종교 행위들을 경고하고 있다.

한국 교회들이 지키고 있는 교회력이 비성경적인 이유는 첫째, 신약 교회가 지켜야 하는 절기나 특정한 날을 성경은 전혀 말씀하거나 가르치고 있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교회력은 교리적으로 잘못된 해석과 적용을 통해 헛된 종교 행위들을 조장하기 때문이다. 신약 교회는 어떠한 날로부터도 자유롭다. 골로새서 2:16,17은 이렇게 말씀한다. 『그러므로 음식으로나 마시는 것으로나 거룩한 날이나 새 달이나 안식일들에 관해서는 아무도 너희를 판단하지 못하게 하라. 이런 것들은 다가올 것들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둘째, 교회력은 부패한 로마카톨릭에 의해 제정된 인간의 전통이기 때문이며, 또한 그 절기가 이교도의 우상 숭배에서 기원하기 때문이다. 교회력의 형성 과정과 내용은 철저하게 로마카톨릭의 비성경적이고 이교도적인 전통임을 알아야 한다.

로마카톨릭에 의해 제정되고 확산된 교회력
교회력을 설명하는 정교수의 주장은 이와 같다. 「4세기 전까지의 초대교회에서는 교회력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았다」(p.30). 「4세기에 접어든 교회는 로마의 국교로서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였다. 화려한 성전과 규례를 최대한으로 활용하는 예배의 현장은 실로 초대교회의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형태에 이르렀다... 예배 예전의 엄숙성과 의미 부여는 고조되어 교회력을 기초로 활용하였다. 바로 이때 교회력도 많은 구체적인 발전을 가져왔다」(p.32). 「교회력의 대부분이 제정되던 4세기에는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구속의 역사, 그리고 성령에 의한 교회의 발전을 좀더 극대화하고 거기에 맞는 예배 예전에 깊은 의미를 부여하는 데 기본 의미를 가졌다」(p.36).

위의 인용문에서 보듯이 정교수에게서 교회와 교회사에 대한 바른 지식을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도대체 로마카톨릭이 성경적인 교회와 예배의 발전을 가져온 선도적인 집단인가! 교회력은 4세기에 로마카톨릭이 구원받지 않은 이교도들까지 소위 기독교인들로 만들기 위해 이교도의 우상 숭배를 변형하여 절기로 정착시킨 것이다.

또한 정교수는 현재 개신교회들이 지키는 교회력이 로마카톨릭에 의해 현대에 와서 다시 만들어진 것임을 시인한다. 「1960년대에 로마카톨릭교회의 새롭게 변신한 제2바티칸 공의회가 내놓은 새롭게 단장된 교회력과 성서일과는 개혁교회로부터 환영을 받게 되면서 오늘의 개혁교회 교회력이 정착되기에 이르렀다」(p.40). 이렇게 한국 교회들에 침투되어 있는 교회력과 절기의 누룩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1) 대강절(Adevent) : 대림절로도 불리는 대강절은 소위 성탄절(12월 25일)로부터 4주 전에 시작하여 12월 24일까지의 기간을 말한다. 이 대강절의 기원은 380년 스페인에서 열린 사라고사 공회에서 1월 6일의 주현절을 위한 예비기간으로 3주간을 정한 것에서부터 유래했는데, 현재의 대강절과 같은 기간이 확정된 것은 교황 그레고리(A.D. 540-604)가 성탄절 이전 4주를 정한 것에서 유래되었다. 대강절이 제정된 초기에는 하얀 예복을 입고 노래부르는 것이 특징이었으나, 그후 7세기 말에는 재림이라는 주제가 강조되어 지금도 대강절을 재림과 관련하여 설명하지만 대부분의 한국 교회들이 실제로는 곧 오실 주님의 재림을 믿지 않거나 기다리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대강절 첫날부터 예전 색상이 보라색으로 정해져 있기에 보라색 초를 하나씩 켜는 것으로 강단을 장식하며, 목사가 걸치는 스톨의 색상도 보라색을 사용한다. (이후에 계속되는 절기마다 목사의 스톨 색상이 바뀌게 된다.) 대강절은 보통 성탄절을 준비하는 기간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참회의 기간으로 정하여 주로 특별 새벽기도회를 마련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행위들은 성경 어디에도 근거가 없으며, 오직 로마카톨릭이 인간의 헛된 종교심을 유도하기 위해 만들어 낸 것이다.

(2) 성탄절(Christmas) : 12월 25일부터 1월 6일의 주현절까지 계속되는 기간을 말하며 예전 색상으로 흰색을 사용한다. 성탄절은 가장 널리 지켜지고 있으나, 역시 성경에서 절기로 지킬 것을 전혀 말씀하지 않으며, 4세기 이전의 초대 교회들에서도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그 이유는 성탄절 역시 4세기 초에 로마카톨릭에 의해 제정되었기 때문이다. 정교수가 「원래 이 날을 ‘그리스도의 미사’ (Christ’s Mass)라고 불렀으나 12세기에 이르러 ‘크리스마스’로 부르게 되었다... 크리스마스라는 말이 처음 나타난 것은 354년경의 로마 문서인데, ...원래 12월 25일은...이교도의 축제일이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미국의 청교도 후예들이 선조들의 신앙을 지키면서 살고 있는 지역에서는 지금도 성탄절을 지키지 않고 있음을 보게 된다.」(p.34)는 설명을 제시해 놓고서도 성탄절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가 성경의 권위를 거부하고 인간의 전통을 따르고 있음을 알려 주는 것이다. 안타까운 사실은 정교수만이 아니라 한국 교회들이 진실을 알고서도 진리를 따르기보다는 인간의 전통을 따른다는 점이다. 크리스마스는 로마카톨릭의 “그리스도 미사”이다. 그런데도 소위 ‘개혁’교회들이 “미사”를 흉내내고 있으니 어찌 그들이 성경적인 교회인가!

(3) 주현절(Epiphany) : 주현절은 주님의 나타나심이라는 뜻으로 1월 6일부터 5주간 동안의 기간을 말하며, 2003년의 경우 3월 4일까지로, 이 기간 동안은 녹색을 예전 색상으로 사용한다. 사실상 이 주현절은 정교회에서 지키는 성탄절이다. 지금도 정교회는 1월에 예수님이 탄생했다고 믿으며, 이때 동방의 현자들이 아기 예수에게 경배한 기간으로 보고 이 주현절을 지키며, 오각형의 별과 많은 촛불로 장식하고 예배한다. 또한 이 기간에 예수님께서 침례받으셨고 변형산에서 변화되셨다고 주장하지만 역시 성경적 근거는 없다. 그런데 개신교회에서 성탄절과 함께 주현절도 교회력에 따라 지키는 것은 로마카톨릭의 성탄절을 지키고나서 정교회의 성탄절을 또 한 번 지키는 것이 된다. 이러한 비성경적인 종교행위를 하는 교회들이 과연 정통을 자처는 교회일 수 있겠는가!

(4) 사순절(Lent) : 수난절로도 불리는 이 기간은 부활절 전의 40일을 말하는데 주일은 날짜 계산에서 제외된다. 로마카톨릭에 의해 제정된 사순절 40일 동안의 금욕은 사실상 바빌론 여신 숭배자들로부터 직접 가져온 것이다. 봄에 40일 동안 지켜지는 이 절기는 쿠디스탄의 마귀 숭배자들인 예지디스(Yezidis)도 그들 조상이 섬겼던 바빌론인들에게서 배워 지금까지 지키고 있다. 이 사순절은 이교도 멕시코인들도 지켰는데, 험볼트(Humboldt)는 멕시코의 절기들에 대한 그의 <멕시코 연구>에서 「춘분으로부터 사흘 뒤에... 태양을 기념하기 위한 40일 간의 엄격한 금욕절이 시작된다.」라고 말했으며, 윌킨슨(Wilkinson)의 <이집트인>을 보면 이집트에서도 그러한 사순절이 지켜졌음을 알 수 있다(Alexander Hislop, Two Babylons, p.105). 이와 같이 40일 동안 금욕하는 이교도들의 절기를 배교한 로마카톨릭 안으로 들여와 지켰을 때 로마카톨릭과 이교도의 우상 숭배와의 일치는 단계적으로 이루어졌던 것이다.

니케아 공회(A.D. 325) 때부터 사순절의 기간이 정해졌는데, 동서의 지역에 따라 기간을 다르게 지키다가 교황 그레고리 때부터 40일을 지키게 되어 소위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에 시작하여 “성금요일”(聖金曜日, Good Friday)에 끝나게 되었다. 2003년의 경우 3월 5일부터 4월 18일까지이다. 이 기간 동안에는 종려주일과 수난주일, 고난주간 등을 지키며, 특별 금식도 하고, 결혼도 피하며 참회하는 기간으로 정하는 등 인간의 종교심을 발휘하게 한다. 이 기간 동안에는 예전 색상을 보라색으로 사용하다가 종려주일에는 빨간색으로 바꾸고 고난주간에 다시 보라색으로 바꾸는데, 누가 색깔을 바꾸는 성경적인 이유를 알고 있는가? 성경적 근거가 없는 헛된 종교행위는 이와 같다.

사순절의 시작인 “재의 수요일”이란 로마카톨릭이 지키는 날로, 카톨릭에서는 수요일에 자신의 죄를 참회하는 상징으로 머리에 재를 뿌리는 의식을 행한다. 또한 “성금요일”이란 부활절 전 금요일로, 로마카톨릭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날이라고 착각한 요일이다. (성경에 따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날은 수요일이다.) 1954년부터 로마카톨릭에서는 이날과 토요일을 금식과 절제와 참회의 날로 지키고 있다. 한국 교계는 이날 철야기도 예배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사순절을 지키는 한국 교회들은 로마카톨릭의 이교적인 종교 행위를 답습하면서 정통개혁교회를 자처하지만 헛된 구호일 뿐이다.

(5) 부활절(Easter) : 부활절의 시작은 니케아 공회(A.D. 325)에서 봄의 첫날(춘분)인 3월 21일 또는 그 이후의 만월 후의 첫 주일, 또는 만월이 주일인 경우는 그 다음 주일로 지킬 것을 결정한 이후로 로마카톨릭과 개신교회가 똑같이 지키고 있다. 부활주일 이후 50일이 부활절 기간이고, 예전 색상은 흰색을 사용한다. 교회력에 따라 지키는 현재의 부활절은 원래 고대 이교도 종교에서 유래한 것으로 “아스타롯”(Astarte) 여신의 축제일로 땅의 갱생을 기념하는 축제였는데, 이것은 이쉬타(Ishtar) 또는 이스터로 불린다. 로마카톨릭은 이교도들을 카톨릭 안으로 흡수하기 위해 이교도의 풍습을 끌어들여 부활절을 만들어 낸 것이다(Alexander Hislop, Two Babylons, pp.103-107). 한마디로 부활절은 예수님의 부활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라 이교도의 축제인 이스터에서 기원한 것이다. 소위 부활절 때에 행해지는 풍습들 역시 바빌론 신비종교의 성격을 입증해 주는 금요일의 둥근 빵과 염색한 달걀인데, 이것은 칼데아의 종교의식이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 앞에서도 한국 교회들은 오는 4월 20일에도 어김없이 부활절을 지킬 것이다. 그러나 성경에는 부활절이라는 표현이 단 한 번도 없을 뿐만 아니라 지키라고 말씀하지도 않는다. 이 나라 교회들이 성경의 권위 앞에 순종하고 신약 교회의 바른 실행을 따르기 위해서는 거대한 배교의 물결에서 빠져나와야 할 것이다.

(6) 오순절(Pentecost) : 성령강림절로도 불리는 오순절은 부활절 이후 오십일 째 되는 날로, 이날을 기점으로 시작해서 삼위일체주일을 거쳐 대강절의 전 주일까지 6개월 동안의 기간을 말한다. 2003년의 경우 6월 8일이 오순절(성령강림절)이며 예전 색상은 빨간색이다. [“삼위일체주일”은 오순절 다음 주일로 약 10세기에 시작되었는데, 1334년 교황 요안네스 22세가 축일을 지킬 것을 지시한 이후 지켜지고 있으며, 흰색의 예전 색상을 사용한다. 2003년의 경우 6월 15일이며, 한국 교회들 역시 교회력에 따라 지키고 있다.] 물론 오순절은 성령이 임하셔서 신약 교회가 시작된 시점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지만 성경은 어떤 경우에도 이날을 기념하거나 지키라고 말씀하고 있지 않다.

위와 같은 절기 외에도 로마카톨릭이 지키는 특정한 날(축일)이나 특정 주일은 매우 많지만, 한국 교회들이 로마카톨릭의 모든 축일과 주일을 다 지키지는 않는다. 하지만 로마카톨릭처럼 인간의 전통에 따라 신년감사주일, 종려주일, 수난주일, 고난주간, 환경주일, 삼위일체주일, 맥추감사주일, 민족화해기념주일, 창조절, 세계성만찬주일, 종교개혁주일, 추수감사주일 등등의 각종 주일들과 날들을 지키고 있다. 이러한 행위들은 모두 비성경적이다.

어떤 사람들은 교회력의 좋은 의도와 목적은 외면하고 왜 부정적인 면만을 강조하느냐고 필자의 논고를 비평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교회력과 절기를 아무리 미화하여 선한 목적을 제시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성경 말씀에서 벗어난 종교 행위라면 버려야 한다. 성경은 분명히 『또 이기려고 애쓰는 사람이 규칙대로 하지 아니하면 면류관을 얻지 못하리라.』(딤후 2:5)고 말씀한다. 이 말씀뿐만 아니라 구약의 많은 기록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인간의 방법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때 하나님께 모두 거부되었음을알려주고 있다. 심지어 구약에서는 그러한 사람들이 죽음에 처해지기도 했다. 겉으로는 좋은 명분이 있겠지만 그것은 카인의 종교요, 자기 의를 쌓는 종교심을 발휘하게 하는 것들이다. 교회력은 바로 카인의 종교인 부패한 로마카톨릭에 의해 제정되고 정착되었으며, 그 기원은 이교도들의 우상 숭배이다.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은 교회사를 통해 증명된 것과 같이 철저히 “성경대로” 행했으며, 철저히 “반카톨릭”이었다. 현재 로마카톨릭은 소위 개혁교회를 자처하는 한국 교회들을 관장하고 있다. 바빌론의 창녀 교회인 로마카톨릭(계 17장)과 함께 에큐메니칼 운동, 즉 교회일치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교회들은 결코 하나님의 참된 교회일 수 없으며, 소위 정통일 수도 없다. 누구라도 사람들의 전통을 교리로 가르치고 행하는 것을(마 15:6) 버리고 그들 가운데서 성별하여 나올 때 성경적 기독교의 대열에 설 수 있다.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들이 어찌 일치되겠느냐? 이는 너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임이라... 그러므로 주가 말하노라. 너희는 그들에게서 나와 따로 있고 더러운 것을 만지지 말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를 영접할 것이며 또 나는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 아들들과 딸들이 되리라. 전능하신 주가 말하노라...』(고후 6:16-18).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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