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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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취한 교회들 - 그리스도인과 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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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9년 09월호>

1. 술 - 포도주와 포도즙

성경에서 말씀하는 술은 어떤 것을 지칭하는가? 성경에는 마시면 취하여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정신을 잃게 하는 "술"을 지칭할 때에 "포도주"(wine)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또 마셔도 취하지 않는 발효되지 않은 "새 포도주"(new wine), 즉 포도 열매를 막 짜낸 "포도즙"을 지칭할 때에도 포도주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따라서 성경에서 포도주가 언급될 때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주의깊게 분별해야 한다.
한국 교회들에는 “예수님께서 포도주를 드셨기 때문에 포도주를 마셔도 된다.”고 말하며 포도주는 물론, 각종 술을 마시는 것을 정당화하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과연 예수님께서 어떤 포도주를 드셨으며, 그리스도인은 술을 마셔도 되는 것인가? 첫째, 예수 그리스도께서 드셨던 포도주는 발효된 술이 아니라 “새 포도주”이며, 이것은 포도열매에서 즙을 짜낸 “포도즙”이었다. 둘째, 성경 전체에서 “포도주,” 즉 발효된 술을 마시는 것을 금지하고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런 포도주를 드셨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포도즙이 아닌 발효된 포도주를 비롯한 어떤 종류의 술도 마셔서는 안 된다. 이러한 사실을 우리는 성경에서 다음과 같이 고찰해 볼 수 있다.

1) 주의 만찬에서 사용된 포도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만찬에서 드셨던 포도주에 대해 예수님께서 직접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제부터 내가 너희와 함께 내 아버지의 왕국에서 새 것으로 마시는 그 날까지 이 포도 열매에서 난 것을 마시지 아니하리라.”고 하시더라』(마 26:29). 예수님께서는 “포도 열매에서 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성경의 말씀들을 찾아보면 “새 포도주”로, 포도송이에서 짠 즙을 말한다. 창세기에서 그 근거를 확인할 수 있다.
2) “술” 맡은 책임자의 “포도즙”
창세기 40장에서 요셉이 갇힌 감옥에 이집트 왕 파라오의 술 맡은 자와 빵을 굽는 자가 죄를 짓고 갇히게 되었다. 그런데 그 술 맡은 책임자가 어떤 일을 했던 사람인지 성경이 자세히 기록함으로써 술의 의미를 알려 주고 있다(창 40:1-13). 즉 술 맡은 책임자가 하는 일을 통해 성경에서 술이 의미하는 바가 새 포도주, 즉 포도즙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다음 구절을 주의깊게 읽기 바란다. 『술 맡은 책임자가 자기 꿈을 요셉에게 이야기하였는데 말하기를 “보라, 내 꿈에 내 앞에 포도나무가 있는데 그 포도나무에 세 가지가 있고 싹이 나는 것 같았는데 꽃이 피고, 그 포도송이에 익은 포도가 열렸더라. 파라오의 잔이 내 손에 있어, 내가 포도를 따서 파라오의 잔에다 즙을 짜서 그 잔을 파라오의 손에다 주었노라.” 하니, 요셉이 그에게 말하기를 “그것의 해석이 이러하니, 그 세 가지는 삼 일이라. 이제부터 삼 일 안에 파라오가 당신의 머리를 들어올려서, 당신의 자리를 회복시키리니, 당신이 전에 그의 술 맡은 자였을 때 했던 대로 당신은 파라오의 손에 그의 잔을 건네주리이다』(창 40:9-13).
왕의 술 맡은 책임자가 하는 일은 포도나무에서 포도를 따고 왕의 잔에 즙을 짜서 주는 것이다. 왕이 마시는 좋은 포도주는 오랜 기간 발효되고 묵은 수십 년 된 포도주가 아니라 포도나무에서 딴 포도송이에서 막 짜낸 포도즙이었다. 이렇게 신선한 새 포도주, 즉 포도즙을 왕의 잔에 담아 건네주는 일을 하는 사람이 술 맡은 책임자의 임무였다. 이와 같이 파라오의 술 맡은 책임자의 꿈은 바로 “새 포도주”(new wine), 즉 “포도즙”에 관한 것이었다. 이 새 포도주는 포도송이에서 직접 짜낸 즙이라는 사실을 결코 놓쳐서는 안 된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의 만찬에서 『포도 열매에서 난 것』이라고 말씀하실 때 지칭하신 것이 바로 이것을 지칭하는 것이다. 성경에서 “새 포도주”는 “포도송이에서 나오는 것”임을 이사야 65:8은 이렇게 말씀한다.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포도송이에 새 포도주가 보이면 누가 말하기를 “그것을 상하게 말라. 이는 복이 그 안에 있음이라.” 하는 것같이 나도 내 종들을 위하여 그들 모두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리라.』
창세기 40:8에서 꿈에 대한 해석은 하나님께 속한다고 말씀한다. 꿈의 내용 중에서 “술”에 대한 하나님의 해석은 “포도송이에서 막 짜낸 포도즙”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직접적인 해석을 로마카톨릭과 성공회, 그리고 술 취한 한국 교회들은 거부한다. 그들은 “포도주,” 즉 “포도 열매에서 난 것”이 “발효된 포도주”로 병에 담긴 것을 말한다고 해석하거나, 어떤 종류의 발효된 술이든지 적절하게 마시면 된다고 해석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사사로운 해석”이다.
성경은 그 어떤 사적인 의견과 해석과 상관없이 오직 하나의 무오하고 정확한 해석을 기록하고 있다. 사람들이 민속, 전통, 풍습, 물이 나쁜 지역의 음료, 불순물을 제거하기 위한 발효 과정 등등의 그 어떤 핑계를 갖다대도 모두 사사로운 해석일 뿐이며, 성경은 결코 이런 사사로운 해석을 용납하지 않는다.

3) 카나 혼인식에서 물이 변하여 만들어진 포도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만드신 포도주가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발효되어 알코올 성분이 가득한 포도주였다면, 예수님께서는 비성경적인 일을 하신 것이다. 성경은 자신이 술을 마시는 것은 물론, 다른 사람에게 술을 마시도록 주고 그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하는 사람에게 화가 있다고 경고하기 때문이다. 『자기 이웃에게 술을 주고 네 술병을 그에게 놓아 그도 또한 취하게 하여 너로 그들의 벌거벗음을 보게 하는 자에게 화가 있도다! 너는 영광 대신에 수치로 가득하도다. 너도 마시고 네 포피가 드러나게 하라. 주의 오른손의 잔이 네게로 돌아가며 수치스러운 토해 냄이 네 영광 위에 있으리라』(합 2:15,16). 이와 같은 분명한 성경 말씀에도 불구하고 혼인식에 온 사람들이 취하도록 발효된 술을 만들어 주어 마시게 했다면 예수님께서는 죄를 지으신 것이다. 술 취한 교회들과 불신자들은 예수님을 죄인으로 만드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만들어 주신 포도주는 신선한 새 포도주, 즉 포도즙이었다는 사실은 잔치를 주관하는 사람이 이것을 맛보고 신랑을 불러서 말한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잔치를 주관하는 사람이 신랑을 불러서 그에게 말하기를 “누구나 처음에는 좋은 포도주를 내었다가 사람들이 마신 다음에 덜 좋은 것을 내는데 당신은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간직해 두었도다.”라고 하니라』(요 2:9,10). 이 구절에서 “사람들이 마신 다음에”라는 부분을 주목해 보아야 한다. 이 말은 로마카톨릭이나 술 취한 한국 교회들이 주장하듯이 “사람들이 취해 있을 때”(when men are drunken)가 아니다. 이 부분이 영어 <킹제임스성경>에는 “when men have well drunk”라고 되어 있어 <한글킹제임스성경>과 같은 뜻이다. <킹제임스성경>에서 “마시다”는 뜻의 “drink, drank, have(또는 had) drunk(en)”라는 말은 어떤 경우든지 “술 취함”과는 전혀 관련이 없고, 그냥 음료수를 마시듯 “마신다”는 행위만을 나타낸다. 반면에 “술에 취하다”는 뜻의 영어 표현은 “be drunk(en), have(또는 had) been drunk(en)”으로 be 동사를 수반한 수동태이며, 이것은 단순히 “마신다”는 행위와는 구별된다. 이와 같이 영어 <킹제임스성경>과 <한글킹제임스성경>은 요한복음 2장의 혼인잔치에서 “술에 취한다”는 표현이 아니라 단지 “마신다”는 행위에 집중된 표현을 쓰고 있으나, <개역성경>을 비롯한 변개된 성경들은 『사람들이 취한 다음에』라고 오역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물로 만드신 포도주는 사람들을 취하게 하는 발효된 포도주가 아니라 새 포도주로 신선한 포도즙인 것이다.
요한복음 2장의 포도주가 이처럼 새 포도주인 것은 교리적으로도 성경적 근거가 있다. 예수님께서 포도주가 없다는 말을 마리아에게 전해 들었을 때, 『나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아직 십자가에 달려 피를 흘려야 할 때가 안 되었다는 뜻이다(요 7:30; 8:20,28; 12:23,27; 16:32; 17:1). 성경에서 포도주는 피를 상징한다. 『...그의 옷들을 포도주로 빨고 그의 의복을 포도의 피로 빨았도다.』(창 49:11)라는 말씀과 『포도의 순수한 피를 마셨도다.』(신 32:14)라는 말씀 등은 이런 사실을 잘 알려 준다. [하지만 <개역성경>은 이 구절을 『포도즙의 붉은 술』이라고 변개하여 술을 마신 것으로 바꾸어 놓음으로써, 예수님의 피가 발효되어 취하게 하는 포도주로 상징되는 것처럼 왜곡해 놓았다.] 특히 주의 만찬에서 예수님께서 포도주 잔을 들고 자신의 피를 흘리실 것을 말씀하시며 “새 언약의 피”라고 하셨는데, 예수님의 순수한 피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것이 발효된 포도주라면 이와 같은 말씀은 전혀 맞지 않는다. 따라서 카나 혼인잔치에서 예수님께서 만들어 주신 포도주와 주의 만찬에서 마셨던 포도주는 모두 새 포도주, 즉 포도즙이었다.

2. 술 취함과 성령 충만함

1) 술을 금지하는 말씀 - “술을 쳐다보지도 말라.”
성경에서 발효된 포도주는 구약 시대 유대인들에게 금지된 것이었고, 신약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잠언에서 강력하게 술을 금지하는 말씀을 다음과 같이 확인할 수 있다. 『화가 누구에게 있느냐? 슬픔이 누구에게 있느냐? 다툼이 누구에게 있느냐? 불평이 누구에게 있느냐? 까닭없는 상처가 누구에게 있느냐? 충혈된 눈이 누구에게 있느냐? 술에 빠진 자들에게 있으며, 혼합된 술을 찾아다니는 자들에게라. 술은 붉고 잔에서 빛을 내며 매끄럽게 내려가나니, 너는 술을 쳐다보지도 말라. 그것은 마침내 뱀처럼 물며, 살모사처럼 쏘리라. 네 눈이 타국 여인을 볼 것이요, 네 마음이 패역한 것들을 발설하리라. 정녕, 네가 바다 한가운데 누운 자 같을 것이요, 돛대 꼭대기에 누운 자 같으리라. 네가 말하기를 “사람들이 나를 쳤어도 나는 아프지 아니하였고, 그들이 나를 때렸어도 나는 감각이 없었도다. 내가 언제 깨어날까? 내가 그것을 다시 찾으리라.” 하리로다』(잠 23:29-35). 설명이 필요없을 만큼 명쾌한 말씀들이다. 기록된 그대로 술을 마시거나 취하지 말라는 정도를 넘어 쳐다보지도 말라는 명령과 그 이유가 분명하다.
『술은 거만하게 하는 것이요, 독주는 떠들게 하는 것이라. 이에 속는 자마다 지혜롭지 못하니라』(잠 20:1). 성경 말씀이 이렇게 분명한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술은 실수만 하지 않으면 괜찮다고 정당화하고 있는가? 성경은 또 이렇게 말씀한다. 『오 르무엘아, 그것은 왕이 해야 할 것이 아니니라. 술을 마시는 것은 왕이 해야 할 것이 아니며, 독주를 마시는 것은 통치자들이 해야 할 것이 아니니, 이는 그들이 술을 마시고 법을 잊어버려 고난받는 어떤 사람들의 심판을 왜곡할까 함이니라』(잠 31:4,5). 『포도주를 마시기에 용맹스럽고 독주를 혼합하는 데 힘있는 사람들에게 화 있으리니』(사 5:22). 성경 말씀이 이렇게 확고한데 변개된 <칠십인역>은 잠언 31장에서 왕들이 술을 마셔야 한다는 말을 첨가함으로써 술 마시는 것을 정당화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상속자들로서(롬 8:17), 왕의 아들이자 자녀로서(롬 8:14) 함께 통치하도록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에(눅 19:17) 술이나 독주를 마시는 것과는 전혀 상관없고, 거리가 먼 사람들이다. 또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그분을 사랑한다면 솔로몬의 노래 1:4과 같이 『우리가 당신의 사랑을 포도주보다 더 기억하리이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주님을 향한 그리스인의 사랑이 한낱 술에 방해받아야 할 것인가!

2) 오직 성령 충만하라.
신약성경 에베소서 5:18은 술에 대해 어떻게 행해야 하는가를 말씀한다. 『술 취하지 말라. 그것은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하라.』
그런데 많은 성경 변개자들과 현대 주석가들은 이 구절을 왜곡한다. “포도주는 취하지만 않으면 괜찮다.” “술이 방탕한 것이 아니라 술을 잘못 사용하는 것이 방탕한 것이다.” “중독 상태가 위험한 것이다.” 등등 여러 주장을 통해 술을 정당화하며 죄를 짓고 있고, 술을 원하는 사람들이 이런 악한 입장을 취한다. 문제는 방탕함이 술 자체에 있는 것이지, 취하는 데 있지 않다는 사실을 간과하는 것이다.
술과 다른 죄의 연관성에 대해 성경을 처음 술이 언급된 구절부터 시작해서 많은 사례들을 기록하고 있다. 창세기 9:21,24에서 노아가 포도주에 취해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 채로 있었고, 함이 노아에게 악한 일, 즉 성적인 죄를 범했고, 이로 인해 함은 저주를 받았다. 롯의 두 딸은 그들의 아버지 롯에게 포도주를 마시게 하고 취하게 되자 두 딸이 각각 아버지와 동침하여 자녀를 낳는 죄를 지었다. 이렇게 태어난 모압과 암몬 자손은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방해하는 사탄의 도구로 쓰임받았다(창 19:32-38).
성경에서 술은 사람들이 옷을 벗게 하는 도구이며(애 4:21) 성적인 죄를 짓게 한다. 또한 우상 숭배와 각종 폭력, 살인, 강도 등 다른 죄들을 짓게 하는 것이다. 즉 술은 그 자체로 죄일 뿐만 아니라 다른 죄들을 유발시키는 죄인 것이다. 인간사의 죄들과 문제들은 술에서 비롯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술은 죄와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속담에도 “직, 간접적으로 독주와 연관되지 않은 범죄는 지상에 좀처럼 없다.”는 말이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죄로부터 성별하기 위해서는 술로부터 성별하는 것이 필수이다. 성경은 그리스도인에게 술이 아니라 성령으로 충만하라고 말씀한다. 사람은 늘 무엇인가로 충만해 있기 마련이다. 술이든지, 자신이 추구하고 좋아하는 그 무엇인가로 충만해 있는데, 성령 충만이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적합한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성령 충만하면 마치 술 취한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다. 사도행전 2장에서 성령 충만한 사도들의 언행이 사람들에게 그렇게 보여지기도 했다(행 2:13). 즉 성령 충만하면 담대하게 되고, 다른 사람에게도 성령께서 역사하실 수 있도록 영향을 줄 수 있으며, 성령께서 그 사람의 언행을 주관하시게 된다. 이런 그리스도인의 성령 충만함이 술은 물론 마귀의 다양한 미혹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고 하나님을 바르게 섬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영적인 그리스도인은 술이 아닌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이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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