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특집 분류

교회 안에 만연한 이교도의 우상 숭배

컨텐츠 정보

본문

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7년 12월호>

이교도들의 “신전”(temple)에서만이 아니라 소위 ‘교회’(church)라고 불리는 곳 안에서도 우상 숭배가 행해질 것을 사도행전 19:37이 말씀해 주고 있다. 『이 사람들은 교회들의 물건을 훔친 자들도 아니고 너희의 여신을 모독한 자들도 아닌데 너희가 여기로 데려왔으니』 이 구절의 문맥에서 “교회들”은 에베소의 다이아나를 숭배하는 이교도들의 모임을 지칭하고 있다. 그런데 영어 <킹제임스성경>과 <한글킹제임스성경>은 헬라어 “히에로술로스”를 변개된 성경들처럼 “신전”(temple)이라고 번역하지 않고 “교회들”(churches)이라고 번역했다. 성령님께서는 “하늘의 여왕”(렘 7:18; 44:17-19,25)을 숭배하는 이교도들이 단지 신전에만이 아니라 교회들 안에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시기 위해 <킹제임스성경>에 향상된 계시를 나타내신 것이다. 이제 우리는 소위 ‘교회’ 안에서 하늘의 여왕을 숭배하는 이교도들의 우상 숭배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살펴볼 것이다.
1. 트리를 세우며 크리스마스를 지키는 것은 이교도의 우상 숭배에 참여하는 것이다.
크리스마스(Christmas)는 로마카톨릭의 “그리스도를 위한 미사”라는 라틴어 “크리스투스 미사”(Christus missa)의 영어 표현이다. 따라서 크리스마스를 지킨다는 것은 단어의 뜻에 따라 로마카톨릭의 미사에 동참하는 것이다.
1)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일은 12월 25일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날 밤에 들에서 묵으면서 양떼를 지키던 목자들이 천사를 통해 예수님의 탄생에 관한 소식을 듣고 찾아가 경배했다는 누가복음의 말씀에 따르면(눅 2:8-20), 12월 25일은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날이 아니며, 될 수도 없다. 이스라엘의 겨울, 특히 12월부터 2월 사이의 밤은 아주 매서운 추위가 찾아온다. 따라서 10월 말 이후부터는 목자들이 들에서 양을 치거나 돌보는 일을 하지 않았다. 또한 한겨울의 여행이나 들에서 양을 지키는 것이 적합하지 않다는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너희는 피난하는 일이 겨울에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라』(막 13:18). 겨울에 피난하는 것이 곤란하여 그렇게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말씀하실 만큼 어려운 때가 겨울이기 때문에 한겨울인 12월 말에 예수님께서 탄생하셨다는 주장은 성경과 모순되는 꾸며낸 이야기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탄생일이 아닌데도 왜 12월 25일을 소위 크리스마스로 지키며, 또 이 날은 어디서 유래한 것인가? 이 날은 성경에서 기원한 것이 아니며, 초기의 신약 지역 교회들에서 유래한 것도 아니고, 로마카톨릭이 임의로 정하여 지킨 것을 개신교가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2) 12월 25일은 바빌론의 하늘의 여왕의 아들이 출생한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이교도들에게는 12월 25일을 포함하여 그 전후로 기념하던 한 축제가 있었는데, 바빌론의 “하늘의 여왕”의 아들이 출생한 것을 기념하는 것이었다(겔 8:14-16). 로마카톨릭은 이교도들을 그들의 ‘교회’로 끌어들이기 위해 이교도들의 축제일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붙여서 지키게 한 것이다.1) A.D. 354년 로마의 리베리우스 주교는 12월 25일을 그리스도의 탄생 날짜로 정하고 로마의 축일표에 기록했는데, 5세기 초에도 이 날짜가 공표되었고 또 최대의 축일로 정식 선언되었다. 이런 가운데 로마의 유스티노 황제(A.D. 483-565)가 칙령을 내려 예수님의 탄생 날짜에 대한 여러 학설들을 폐기하고 12월 25일로 규정했다. 2)
3) 태양신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이다.
또한 12월 25일은 이교도 로마인들의 태양신 미트라(Mithra)의 축제일이기도 했다. 로마카톨릭과 고대 종교 분야의 권위자인 알렉산더 히슬롭의 연구에 따르면, 12월 25일은 승리하는 신이 다시 지상에 나타나는 날로 로마에서 기념했던 날이었으며, “정복당하지 않는 태양의 탄생일”(Natalis invictis solis)에 해당된다. 3) 바빌론과 기타 지역과 같이 태양이 주된 숭배 대상인 곳에서 태양은 이 축제 때 단지 낮을 주관하는 천체로서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화신으로서 숭배되었다. 태양이나 바알이 유일한 신이라는 생각은 바빌론 신비종교 체계의 핵심 원칙이었다. 따라서 “탐무스”는 태양의 화신으로 여겨졌고, 또한 하나님의 화신으로 숭배받는 대상이었다.4) 그러므로 12월 25일을 크리스마스로 지키는 것은 “태양신”을 섬기는 것에 동참하는 것이다(겔 8:13-16, 『...탐무스를 위하여 울며 앉아 있더라... 그들의 등은 주의 성전을 향하고 그들의 얼굴은 동쪽을 향하였으니 그들이 동쪽을 향하여 태양을 경배하더라.』)
이집트에서는 하늘의 여왕에 대한 이집트인의 호칭인 이시스의 아들이 12월 22일 동짓날에 출생했다고 한다. 또한 오시리스, 호러스, 헤르큐레스, 박카스, 아도니스, 쥬피터, 탐무스와 그 밖의 다른 “태양신들”도 모두 12월 22일 동짓날이 그들의 탄생일로 기념되었다. 따라서 이교도들이 로마카톨릭 안으로 유입되면서 태양신 숭배도 함께 들어온 것이다. 한편 영국에는 크리스마스에 해당하는 이름이 따로 있는데, “율 데이”(Yule day)이다. “율”은 칼데아어로 “유아,” 혹은 “작은 아이”라는 뜻이다. 앵글로색슨족들이 12월 25일을 율 데이 혹은 어린이날이라고 불렀고, 그 전날 밤은 어머니의 날이라고 불렀다. 이들은 기독교를 접하기 전부터 이런 풍습을 지키고 있었다. 5)
터툴리안의 증언에 따르면, 초기에 이교도들과 함께한 사람들이 농신제(農神祭, Saturnalia)와 1월의 축제들, 부루말리아(Brumalia)와 매트로날리아(Matronalia) 같은 이교도의 축제를 지켰다. 또한 크리스마스의 여러 관습들, 즉 휴가, 선물 교환 등은 추수를 축하하며 농신에게 제사를 드리던 로마의 농신제에서 기원한 것들이다. 6)
4) 크리스마스 트리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고 하는 님롯을 상징한다.
크리스마스의 상징이 된 트리를 세우는 것은 이교도 로마와 이집트에서 일반적으로 행하던 것이었다. 이집트에서는 야자수가 사용되었고, 로마에서는 전나무가 사용되었다. 야자수는 “바알타말”(Baaltamar)이라는 이교도 메시야를, 전나무는 “바알브릿”(Baalberith)이라는 이교도 메시야를 각각 의미한다.7)
태양신이며 중보의 신인 아도니스의 어머니는 “신화에서” 나무로 바뀌었는데, 그 나무의 상태에서 아들을 낳았다고 한다. 어머니가 나무이니 아들은 당연히 가지로 알려졌는데, 이것이 바로 크리스마스 이브 때 불에 굵은 장작, 즉 ‘율의 통나무’(Yule log)를 집어넣으면 그 다음 날 아침에 그것이 크리스마스 트리로 나온다는 전설의 근거이다. 이것은 불 속에 들어가서 신성한 선물을 가져다 주는 나무로 태어난다는 의미가 있다. 이교도의 태양신들은 동지 때 태어난 신성한 아이로 표현되며, 위대한 신의 화신으로 태어나는데, 그 위대한 신은 모든 가지가 잘려나가 그루터기만 남은 나무로 상징된다. 그런데 생명을 소생시키는 의술의 신 “에스쿨라피우스”(Æsculapius)를 상징하는 큰 뱀이 밑동만 남은 나무를 둘러감자 그 옆에서 전혀 새로운 종류의 나무 하나가 솟아나왔는데, 그것은 결코 잘려지지 않도록 운명 지워진 나무로, 승리의 상징인 야자수였다. 반면 로마에서는 승리의 상징으로써 사용된 크리스마스 트리는 전나무가 일반적이었다. 로마에서 12월 25일은 “승리하는 신”이 다시 나타나는 날로 기념되었기에 “정복당하지 않는 태양의 탄생일”로 인식되었다. 다시 말하면 율의 통나무는 태양신으로 신격화되었으나 대적들에 의해 베어진 님롯의 죽은 몸통을 나타내며, 크리스마스 트리는 다시 살아난 님롯을 상징한다. 즉 살해되었으나 다시 생명을 얻은 신을 나타내는 것이다. 8)
고대 바빌론의 전설에서도 상록수가 죽은 나무의 그루터기에서 솟아나는데, 새 상록수는 님롯이 탐무스 안에서 다시 살아난 것을 상징했다. 드루이드 교도들에게는 상수리나무가 거룩한 것으로 여겨졌고, 로마에서는 농신제 기간 중에 붉은 열매로 장식한 전나무가 거룩한 것으로 여겨졌다. 이와 같이 크리스마스 트리는 새로운 생명을 주면서 새로운 길을 제시한다는 의미에서 푸른 나무, 즉 상록수를 사용하게 된 것이다. 9)
크리스마스 트리 외에도 영국의 일부 지역에서는 크리스마스 이브 때 촛불을 켜서 축제 기간 동안 줄곧 켜두는데, 이것은 바빌론의 신을 기념하는 축제 전야에 이교도들이 그들의 신을 위해 켜는 촛불에서 유래했다. 초를 제단에 켜두는 것은 바빌론 신을 숭배하는 독특한 방법 중 하나였다. 오늘날 교회에서 크리스마스 때 촛불을 켜거나 트리에 촛불 모양으로 장식하는 것은 여기서 유래한 것이다. 10) 이런 모든 행위들이 이교도들의 우상 숭배에서 기원한 것들이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 크리스마스 트리를 세우거나, 크리스마스가 소위 기독교의 가장 대표적인 날인 것처럼 행사하는 것은 바른 실행이 아니며, 이교도들과 로마카톨릭의 우상 숭배에 참여하는 악한 일이다. 우리의 구주이시고, 이제 곧 오실 만왕의 왕, 만주의 주를 단지 말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의 모습으로 세상에 제시하는 것은 전혀 옳지 못한 일이다. 교회는 이와 같은 어리석고 가증한 일로부터 성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교도의 우상 숭배에 참여한 것에 대한 심판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2. 교회 강단을 장식한 푸른 나무들은 “아세라”이며 가증한 우상 숭배이다.
특정한 때에 잠시 우상 숭배의 모습이 나타나는 크리스마스와 달리 일년 내내 교회 안에 자리잡은 우상 숭배의 모습은 교회 강단에서 쉽게 발견된다.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도 모른 채 인간적인 안목을 만족시키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면서 가증한 죄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1) “아세라”는 우상의 형상이나 기둥이 아니다.
<한글킹제임스성경>의 “아세라”에 해당하는 영어 <킹제임스성경>의 단어는 “그로우브”(grove)이며, 히브리어 맛소라 원문은 “아세라”(ה󰕇󰚆󰔞 ashera)이다. 반면 변개된 <개역성경>과 NIV를 비롯한 변개된 영어 성경들은 “아세라 목상(木像),” “아세라 상(像),” 그리고 “Asherah pole”(아세라 기둥)이라고 번역하였는데, 이것은 히브리어 “아세라”를 신으로 숭배하던 각종 자연물과 동물의 형상(形象, image)이나 기둥(pole), 혹은 여신을 새긴 상이나 기둥과 같은 것으로 오해했기 때문에 오역한 것이다. 또한 대부분의 학자들이 아세라를 여신의 이름으로 왜곡하여 설명하는 이유는 그들이 사람들을 속이는 데 사용하는 원어(히브리어)의 함정에 그들도 빠졌기 때문이다. [개역성경과 NIV가 단지 아세라(Asherah)로 표기한 곳도 있는데, 이것은 아세라를 형상이나 기둥으로 오해한 상태에서 문맥에 따라 “상/목상”이나 “pole(s)”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은 것뿐이다.]
그러나 변개된 성경들이 오해한 것과 다르게 성경은 다음과 같이 우상의 형상(image)이나 기둥(pillar)과 아세라(grove)를 분명하게 구분하고 있다(출 34:13, 신 12:3, 대하 34:4). 이 구절들 외에도 구약성경에서 총 40회 “아세라”에 대해 언급하는 모든 구절들에서 형상이나 기둥을 아세라와 다른 것으로 구분하고 있다(사 27:9). 11) 그러므로 <개역성경>이 아세라 상이나 목상으로 번역한 것은 성경을 변개시킨 것이다.
2) “아세라”는 “우상 숭배를 위해 우상이나 형상 및 제단 곁에 심은 일단의 살아 있는 나무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일단의 나무들이 하나의 아세라(a grove)를 형성하며, 이런 아세라가 여러 곳에 있었기 때문에 성경은 “아세라들”(groves)이라는 복수 표현을 쓰고 있다.
(1) 아세라는 “살아 있는” 나무(tree)이지 형상이나 기둥을 만드는 죽은 나무(wood)가 아니다. 『너는 네가 만든 주 너의 하나님의 제단 곁에 어떤 나무로도 아세라를 심지 말며』(신 16:21). 이 말씀은 살아 있는 나무(tree)를 심지(plant) 말라는 뜻이다. 아세라는 형상이 아니라 살아 있는 나무를 지칭한다는 것이 성경에 분명히 제시된다(신 7:5; 16:21, 대하 31:1; 33:19; 34:3, 왕하 23:14). 12) 따라서 아세라의 살아 있는 나무들(trees)은 자주 베어졌다.
(2) 아세라는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나무들을 심어서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한다. 『이는 그들이 아세라들을 만들어 주를 진노케 하였음이라』(왕상 14:15). 『또 아세라를 만들었더라』(왕상 16:33). 『아세라를 만들고』(왕하 17:16).
(3) 아세라는 “우상이나 형상 및 제단 곁에” 있는데, 그 모양은 우상이나 제단이 가운데 있고 그것을 나무들이 둘러싸고 있는 형태이다. 성경은 또 이렇게 말씀한다. 『바알의 제단을 헐고 그 곁에 있는 아세라를 베어 내고』(판 6:25). 『이는 그가 바알의 제단을 허물었고, 그 곁에 있는 아세라를 베어 내었기 때문이라』(판 6:30). 이와 같이 우상과 그 제단 곁에 심겨진 나무들이 아세라이기 때문에 성경은 “하나님의 제단 곁에” 어떤 나무로도 아세라를 심지 말라고 경고하셨던 것이다(신 16:21).
(4) 아세라 “안에” 우상을 놓는다. 『또한 그가 그의 어머니 마아카까지도 태후의 자리에서 제거하였으니 이는 그녀가 아세라 안에 우상을 만들었기 때문이라(because she had made an idol in a grove). 아사가 그녀의 우상을 부수어 키드론 시냇가에서 불살랐으나』(왕상 15:13). [같은 말씀이 역대기하 15:16에도 있다.] 이 말씀은 “일단의 살아 있는 나무들”을 심고 “그 나무들” 안에 우상을 세워 놓은 것을 말씀하고 있다. 13) 이 말씀에 따르면, “우상은 가운데 있고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나무들”이 “아세라”인 것이다. 나무들을 가지고 주변을 조성하여 우상이나 형상을 한가운데 놓는 것은 로마카톨릭의 전형적인 행위이며, 이교도들도 똑같이 행했다. 지금도 카톨릭 학교와 성당에 있는 마리아상을 둘러싸고 있는 “아세라”(grove)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분명히 “심겨진 일단의 나무들” 가운데, 즉 “아세라”(grove) 안에 있는 우상은 함의 타락한 종교를 알려 주는 표시인 것이다.
(5) 아세라는 푸른 나무 “아래에” 있으면서도 자연적인 나무들과 구분된다. 『그들이 모든 높은 산 위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under every green tree) 그들을 위하여 산당들과 형상들과 아세라들을 세웠으며』(왕상 14:23). 『그들이 모든 높은 산과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under every green tree) 형상들과 아세라들을 세웠으며』(왕하 17:10). 성경은 아세라가 모든 높은 산과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 즉 숲속에 세워졌다고 말씀한다. 따라서 아세라(grove)는 산의 푸른 나무들 속에서도 주변의 자연적인 푸른 나무들과 구분되는 범위에서 인위적으로 심겨지고 조성된 일단의 나무들을 뜻하는 것이다. 이는 아세라가 우상 숭배를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6) 아세라는 주의 전에도 있었다. 아세라는 산 위나 푸른 나무 아래만이 아니라 건축 구조물 안에도 만들어졌다. 요시야가 우상 숭배를 척결하면서 『주의 전에서 바알과 아세라와 하늘의 모든 군상들을 위하여 만든 모든 기명들을 끌어내게 하여, 예루살렘 밖 키드론 들에서 그것들을 불사르고 그 재를 벧엘로 옮겼』는데(왕하 23:4), 주의 전에는 아세라를 위한 기명들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아세라도 있었다. 성경은 열왕기하 23:4과 같은 문맥에서 이렇게 말씀한다. 『또 그가 주의 전으로부터 그 아세라를 예루살렘 바깥 키드론 시내로 가지고 나가 키드론 시내에서 불사르고, 잘게 빻아 가루로 만들어 그 가루를 백성의 자녀들의 무덤들 위에 뿌렸더라』(왕하 23:6). 주의 전 안에 우상 숭배를 위해 일단의 나무들이 심겨졌기에, 그 나무들을 가지고 나가 불사르고 잘게 빻아 뿌렸던 것이다.
(7) 아세라는 “우상 숭배를 위해 우상 곁에 심은 일단의 살아 있는 나무들”을 지칭하지만, 아세라 자체도 우상과 같이 숭배되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한다.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고 주 그들의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바알들과 아세라들을 섬겼더라』(판 3:7). 『이에 그들이 그들의 조상의 주 하나님의 전을 떠나 아세라들과 우상들을 섬겼으니 그들의 이 죄로 인하여 유다와 예루살렘에 진노가 임하였더라』(대하 24:18). 또한 성경은 아세라를 위한 장식이 있었음을 말씀하고 있다. 『또 그가 주의 전 곁에 있던 남색자들의 집을 헐었으니, 그곳은 여인들이 아세라를 위하여 벽걸이 천을 짜는 곳이었더라』(왕하 23:7). 이것은 우리 나라의 당산나무나 성황당 같은 곳에 천으로 장식하는 것과 유사한 것이다.
이와 같이 성경이 말씀하는 아세라에 대해 전혀 무지한 한국 교계는 교회의 강단을 아름답게 꾸민다며 정작 강단을 아세라로 장식하고 있다(옆에 제시된 사진 참조). 로마카톨릭이 소위 그들의 ‘교회’ 내외부에 하늘의 여왕인 마리아 숭배를 위해 장식한 아세라처럼 강단을 인간적 관점으로 거룩히 여기고, 또 그곳에 선 목사를 우상화하는 교회들이 목사와 강단 주위를 살아 있는 나무로, 또 꽃으로 꾸미고 있다. 그들은 바른 성경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에 무지 가운데 있으며, 그들을 속이고, 그들과 그 교회 안에 역사하는 이 세상의 영에 관장되어 이교도의 우상 숭배를 교회 안에서 행하고 있는 것이다. 사도행전 19:37의 향상된 계시가 로마카톨릭은 물론 한국 교회들에 적용됨으로써 <한글킹제임스성경>이 진리임을 입증해 주고 있다. 한국 교회는 돌이켜 회개하고 강단에서 아세라를 제거해야 한다. “이 땅에서 모든 나쁜 것은 좋은 것을 왜곡한 것이다.” 왜곡된 교회 놀이에서 바른 성경과 바른 교리로 돌아서야 한다. BB
주석)-------------------------
1) Alexander Hislop, The Two Babylons, (Neptune, NJ: Loizeaux Brothers, Inc., 1959), 2nd American Ed., p.93.
2) 최형락 신부, 『카톨릭 교리 용어집』 (서울: 도서출판 작은예수, 1982), pp.236,237
3) Hislop, The Two Babylons, p.98.
4) Ibid., p.96.
5) Ibid., pp.93-94.
6) Ibid., p.93
7) Ibid., p.98.
8) Ibid., pp.98-99.
9) 최형락, 『카톨릭 교리 용어집』, p.237.
10) Hislop, The Two Babylons, p.97.
11) Peter S. Ruckman, Problem Texts, (Bible Baptist Bookstore: Pensacola, Fla., 1980), p.160. 히브리어 성경은 “아세라”를 “우상”(idol)이나 “형상”(image), “기둥”(pillar) 등과 구분하여 다르게 쓰고 있다. 우상은 미플렛체스나 아차브 등으로, 형상은 마체바, 카마님, 테라핌등으로 쓰며, 기둥은 형상과 다른 의미로 마체바라고 각각 다르게 기록하고 있다.
12) Peter S. Ruckman, The Book of Minor Prophets, (Bible Baptist Bookstore: Pensacola, Fla., 1984), p.438.
13) Ruckman, Problem Texts, pp.161-162.

특집 100 / 1 페이지
RSS
번호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