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신학논단 분류

영적 간음은 괜찮고 육신적 간음은 나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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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5년 04월호>

간통죄가 1953년 형법에 명문화된 이후 지난 2월 26일 헌법재판소에서의 위헌 결정으로 대한민국의 역사 속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형법241조는 “배우자가 있는 자가 간통한 때는 상간한 자와 함께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벌금형은 없고 징역형만 있어 꽤 엄격한 조항이었다. 간통죄 조항을 금번에 위헌으로 결정한 가장 큰 이유는 “혼인과 가정은 개인의 자유로운 의지와 애정의 영역일 뿐 형벌로 강제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로써 2008년 10월 31일 이후 간통 혐의로 기소되거나 형을 확정받은 5천여 명이 구제를 받았고, 검찰은 재판을 진행 중이거나 기소된 사람들에 대해 공소를 취소하게 된다고 한다.
간통죄 폐지에 대한 한국 교회의 반응도 뜨거웠다. 나름대로 기독교적 도덕과 윤리를 외치던 차에 대부분 개탄의 심정을 토해 냈는데, 한국교회연합은 논평을 내고 “아무리 시대가 변했다지만 한 가정을 파탄에 빠지게 하는 간통이 이제 더 이상 범죄가 아닌, 개인의 양심 문제라고 한 헌재의 결정을 쉽게 납득할 수 없다. 헌재의 이번 결정으로 배우자가 간통을 저질러도 단지 도덕적 비난만 가할 수 있을 뿐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피해를 당하는 입장에서 간통은 윤리적, 성적 살인행위나 다름없다.”라고 했다. 한국교회언론회 역시 논평을 내고 “소위 ‘간통죄’가 폐지됨으로, 우리 사회에서 도덕과 윤리가 무너져 무분별한 성적 행위에 대한 무책임과 방종이 확산될 것으로 우려한다. 헌재 결정의 문제점은, 사생활 비밀 보호와 성적 자기 결정권 존중은 어디까지나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도덕과 윤리의 테두리 안에서와 사회구성원들의 동의 가운데 되어야 하고, 성적 자기 결정권만 존중할 것이 아니라 책임도 뒤따라야 하는데, 이를 도외시한 결정이라는 것이다. 그동안 ‘간통죄’ 존속은 가정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법적 책임과 안정 장치였으나, 이번 결정으로 남편과 아내의 상호 존중과 의무가 무너져 내릴 것이 분명하고 가정 파탄의 위기를 불러올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한국 교회는 저마다 논평을 내고 “헌재 결정의 문제점”을 논했지만, 영적으로 바라본 간통죄 폐지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권세”(롬 13:1)를 받은 이 나라의 재판관들이 “악을 징벌하고 선을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일꾼들로서의 임무”를 등한시한 결과이다. 『이는 다스리는 자들은 선행에 대해서는 두려움이 되지 아니하고 악행에 대해서만 됨이니 네가 권세자를 두려워하지 아니하기를 원하느냐? 선을 행하라. 그러면 그에게서 칭찬을 받으리라. 그는 너에게 선을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일꾼이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면 두려워하라. 이는 그가 헛되이 칼을 가지고 다니지 아니하기 때문이라. 그는 하나님의 일꾼이요,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를 행하는 보응자니라』(롬 13:3,4).
헌법재판관들은 국가 공직자로서 국민이 낸 세금으로 일하는 사람들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성도들임에도 국가에 세금을 내 온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일꾼들로서 악을 행하는 자들에게 진노를 행하는 일에 전념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이러한 연유로 너희가 세금도 내는 것이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일꾼들로서 바로 이 일에 전념하게 하려 함이니라』(롬 13:6). 바로 이 로마서 13:6에서 세 구절만 더 내려가면 『너는 간음하지 말지니라.』(롬 13:9)는 하나님의 말씀이 나오는데, 말하자면 그들 재판관들은 그들을 이 나라 최고의 법관들로 세우신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서 크나큰 죄를 범한 것이다.
“간통죄”는 헌법재판관들이 위헌으로 결정했다고 해서 죄가 아닌 것이 아니다. 국법보다 위에 있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에서 죄라고 규정한 간통을 그들의 위헌 결정과 관계없이 “죄”로 여긴다. 간통죄 위헌 결정으로 아웃도어 회사와 여행사 등의 주가가 올라갔다고 하는데, 그리스도인들은 그와 같은 일을 결코 환영하지 않는다. 대신 이 웃지 못할 가증스러운 현상을 뒤로 한 채 성경을 펼쳐 드는 것이다. 성경은 간통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가에 온 관심이 쏠리게 되는 것이다. 세상과 정반대로 가는 성경은 간통에 대해서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성경이 말씀하는 “간음”
성경에는 “간통”이라는 단어는 없고 “간음”이라는 말이 나온다. 간음은 신구약 중 총 52구절에서 나오며, 그중 “국민의 기본권”이나 “사생활의 영역”이라는 말처럼 간음을 긍정적으로 보여 주는 구절은 단 한 구절도 없다. 성경에서 간음을 최초로 언급하는 “출애굽기 20:14”이 간음에 대한 하나님의 원초적인 생각을 제시한다. 『너는 간음하지 말지니라』(출 20:14). 하나님께서는 “간음하지 말라!”고 처음부터 명령하셨다. 이 십계명의 일곱 번째 계명은 앞뒤로 기록된 『너는 살인하지 말지니라.』(13절)와 『너는 도둑질하지 말지니라.』(15절)만큼이나 단순명료하다. 하나님께 정죄받는 “살인”과 “도둑질”이 “국민의 기본권”이나 “사생활의 영역”이 될 수 없듯이, 그 가운데에 위치한 “간음” 역시도 그러하다. 『이는 “간음하지 말라.” 하신 분이 또한 “살인하지 말라.”고 하셨음이니』(약 2:11).
간음은 신약에서 “육신의 일들” 가운데 하나로 언급되며, 만일 그리스도인이 범했을 때에는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할 죄 가운데 하나로 규정되어 있다. 『이제 육신의 일들은 분명히 나타나나니 곧 간음과 음행과 더러운 것과 음욕과 우상 숭배와 마술과 원수 맺음과 다툼과 질투와 분노와 투쟁과 분열과 이단들과 시기와 살인과 술 취함과 흥청거림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그런 짓들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할 것이라』(갈 5:19-21). 간음은 성경에서 맨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요한계시록에서도 극히 부정적이다. 『보라, 내가 그녀를 침상에 던질 것이며, 그녀와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자기들의 행위를 회개하지 아니하면 대환란에 던지리라』(계 2:22). 이 구절은 자칭 여선지자인 이세벨이 하나님의 『종들을 가르치고 유혹하여 행음하게 하고 우상에게 바친 제물을 먹게』 한 일과 관련이 있다(20절). 즉 “우상 숭배” 의식 중 하나인 행음에 포함되는 간음인 것이다. 주님께서는 그러한 일을 저지르는 자들을 대환란에 던지시겠다고 경고하신다.
그렇다면 구약에서 신약으로 넘어가는 과도기, 곧 마태복음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간음에 대해 뭐라고 말씀하셨을까? 『너희는 옛사람들이 말했던 바 ‘너는 간음하지 말지니라.’고 한 것을 들었으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자는 누구나 그의 마음으로 그녀와 더불어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마 5:27,28). 주님께서는 구약의 십계명보다 간음에 대해 더 엄격한 정의를 내려주셨다. 즉 마음에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자는 누가 되었든지 마음으로 이미 그녀와 간음을 저지른 것이다. 주님께서는 여자를 “눈”으로 보고서 짓는 이 죄를 경고하신 뒤 바로 다음 절에서 그 “죄짓는 눈”에 관한 더 강력한 경고를 말씀하셨다. 『또 만일 너의 오른쪽 눈이 너를 실족케 하거든 뽑아 던져 버리라. 네 지체 가운데 하나가 없어지는 것이 네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또 만일 네 오른손이 너를 실족케 하거든 잘라 던져 버리라. 네 지체 가운데 하나가 없어지는 것이 네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마 5:29,30). 주님께서는 간음에 사용되는 “눈”과 “손”에 대해 “적출”과 “절단”을 명령하시면서 죄로 인한 “지옥의 형벌”을 경고하신 것이다. 곧바로 이어지는 구절들에서도 주님께서는 간음죄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누구든지 자기 아내를 버리려거든 이혼증서를 주라.’고 말했던 바 있으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외에 자기 아내를 버리는 자는 그녀로 간음하게 하는 것이요, 또 누구든지 이혼당한 여자와 혼인하는 자도 간음하는 것이라』(마 5:31,32). 주님께서는 마태복음 5:27-30 전체에서 “간음”을 다루셨고, 그중 단 한 번도 긍정적이신 적이 없으셨으며, 오로지 지옥처럼 엄격하기만 하셨다. 왜 그러셨겠는가? “간음”은 분명 “사망에 이르는 죄”이기 때문이다(고전 5:5, 요일 5:16). 그러한 자들이 가야 할 곳은 “지옥”뿐이기 때문이다. 『네 눈이 너를 실족케 하거든 뽑아 버리라. 두 눈을 가지고 지옥불에 던져지는 것보다는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더 나으니라. 그곳에는 그들의 벌레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막 9:47,48).
주님께서는 요한복음 8장에서도 간음을 “죄”로 규정하셨는데, 간음하다가 붙잡혀 온 여인을 용서하시면서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노라. 가라, 그리고 더 이상 죄를 짓지 말라.』(요 8:11)고 말씀하셨다. 율법에 따르면 간음한 자는 죽어야 하지만(레 20:10), 간음한 여인을 용서하시면서 『더 이상 죄를 짓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간음은 죽음에 이르는 “죄”이며, 한 민족으로부터 제거되어야 할 “악”이다. 『만일 어떤 남자가 한 남편과 결혼한 여자와 동침하는 것이 발견되면 그들을 둘 다 죽일지니, 즉 그 여자와 동침한 그 남자와 그 여자니라. 이같이 너는 이스라엘로부터 악을 제할지니라』(신 22:22). 간음은 결코 국민의 기본권을 전제로 한 개인의 사생활 영역으로 처리할 수 없는 매우 심각한 죄악임을 알라! 『혼인은 모든 면에서 귀한 것이니 침상을 더럽히지 않게 하라.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리라』(히 13:4).

교회들의 영적 간음
육신의 일들에 속하는 간음보다 심각한 것은 “교회들의 영적 간음”이다. 이 영적 간음에 대해 살펴봐야 할 구절은 마태복음 19:7이다. 『그들이 주께 말하기를 “그러면 어찌하여 모세는 이혼증서를 주어서 내어 버리라 명령하였나이까?”라고 하니』(마 19:7). 이 구절에서 아내를 “내어 버릴” 때 주는 『이혼증서』는 헬라어로 “비블리온 아포스타시우”이며 “배교한 성경”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혼은 배우자가 간음을 범했을 경우 성립되는데(마 19:9), 그래서 그때 주는 것이 이혼증서라면 한국 교회가 사용하는 배교한 성경, 곧 “한글개역성경”은 그들의 “영적 간음”과 그들이 “버림받은” 자들임을 보여 주는 산 증거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주님께로부터 이혼증서로 받은 배교한 성경을 사용하는 목사들은 어떠한가? 주님께서 “이혼증서”를 주신 이스라엘의 선지자들은 실제적으로 간음을 범하기도 했다. 『내가 또한 예루살렘의 선지자들에게서도 끔찍한 일을 보았나니 그들이 간음하고 거짓말들로 행하는도다... 그들 모두가 내게는 소돔 같고 그곳 거민들은 고모라 같도다』(렘 23:14). 이것은 주님께로부터 “이혼증서”로서 “한글개역성경”을 받은 한국 교회의 “끔찍한” 현실을 대변해 주는 말씀이 아닐 수 없다. 한글개역성경을 쓰는 많은 목사들이 간음을 저지르고 성경에 없는 거짓말들을 가르치며 소돔과 고모라의 거민들처럼 살고 있는 것이다. 해 아래 새 것이 없듯이 구약에서 일어난 일은 신약에서도 일어난다. 구약에서 교훈을 얻고 신약의 바른 교리로 무장하지 못하면 성경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게 된다. 다만 광야에서 죄짓고 멸망해 버린 이스라엘과 같이 될 뿐이다. 『이제 그들에게 일어난 이 모든 일이 본보기가 되고 또 세상의 끝날들을 당한 우리에게 권면으로 기록되었느니라』(고전 10:11).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에 대해 호세아 4:14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 딸들이 행음하거나 너희 아내들이 간음해도 내가 그들을 벌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 자신이 음녀들과 함께 분류되며 창녀들과 함께 희생제를 드림이라. 그러므로 깨닫지 못하는 백성은 패망하리라.』 이 나라 대한민국과 그 안의 한국 교회가 간음과 영적 간음을 범하고도 민족적인 벌을 받지 않고 있는 것은 결코 그들이 안전하다는 것을 말해 주지 않는다. 주님께서는 그들을 벌하지 않고 계시는 것일 뿐이며, 그들의 종말에 대해 『그러므로 깨닫지 못하는 백성은 패망하리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시험하지 말라.

마지막 때의 사람들의 눈은 음욕으로 가득 차 있다. 그들은 죄로부터 단절될 수 없기에 간음도 죄가 아니라 하고 쌍수를 들고 환영한다(벧후 2:14). 교회들마저도 심히 타락해 버린 이런 나라를 지탱하고 있는 힘은 간음을 분명한 “죄”로 여기며, 영원한 동행의 증서인 <한글킹제임스성경>을 믿음과 실행의 최종권위로 믿고 실행하는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뿐이다. 『너희는 예루살렘의 거리를 여기저기 달려서 이제 보고 알며, 거기 넓은 곳에서 찾으라. 만일 너희가 한 사람이라도 찾을 수 있다면, 공의를 행하고 진리를 구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내가 그 성읍을 용서하리라』(렘 5:1).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이야말로 이 땅을 위하여 하나님 앞에서 갈라진 틈에 서서 하나님으로 하여금 이 나라를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들이다(겔 22:30). 이 세상에서 가장 호전적인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세상과 친구 되어 하나님과 원수가 된 간음하는 한국 교회(약 4:4)와 성경대로 믿고 섬기는 신실한 그리스도인들 중 과연 누구를 보시고 이 나라를 지켜 주시겠는가? 누가 주님의 눈에서 은혜를 찾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간음하는 한국 교회여, 정신을 차리라. 간통죄 위헌 결정을 개탄하기 이전에 자신들의 영적 간음을 통탄하며 변개된 성경을 버리고 바른 말씀으로 나아오라. 배교한 성경을 붙들고서 간음을 논하는 것이야말로 큰 모순이 아닌가!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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