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신약교회사 분류

수고하고 인내한 에베소 교회 시대

컨텐츠 정보

본문

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3년 01월호>

글을 시작하며


“선입견이 없는 역사란 없다!” 이렇게 다소 도발적인 명제로 글을 여는 까닭은 혹 “객관적인 역사”가 존재하리라는 순진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함이다. 역사란 단순한 “사실들의 누적”이 아니다. “하루의 역사 기록”인 “신문”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신문에는 대부분의 “사실들”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일상에서 절대다수의 시간을 차지하는 일들, 즉 잠을 자고 밥을 먹으며 빨래를 널고 운전을 하는 일 등은 신문에 보도되지 않는다. 오히려 세상의 어느 작은 지점에서일어난 예외적인 일이 기삿감이 되기 마련이다. 역사는 “무엇을 중요하게 볼 것인가?”라는 가치 판단의 산물이지 “중립적”혹은 “객관적”인 기록이 결코 아니다. “역사책”인 성경 또한 이 점을 거리낌 없이 인정한다. 『실로 예수께서는 그의 제자들의 면전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많은 표적들을 행하셨으나, 다만 이것들을 기록한 것은 너희로 예수가 그리스도, 곧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하려는 것이요, 또 믿음으로써 그의 이름을 통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라』(요20:30,31).


사정이 위와 같다면, 교회들의 역사를 다루는 사람은 자신의 “선입견,” 곧 그의 “역사관”을 밝히는 것이 정직할 것이다. 필자는 최상의 역사책인 “성경”이 교회사를 보는 관점에 철저히 맞추어 교회사를 서술해 나갈 것이다. “미리 기록된 역사책”인 성경은 이미 약 2,000년 전에 신약 교회들의 역사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를 예언해 두었다(계 2,3장).사도 요한은 앞으로 사도들의 시대인 에베소 교회 시대(A.D. 33-100)가 끝나면, 박해의 시대인 스머나 교회시대(A.D. 100-313)가 있을 것이고, 기독교에 대한 유화 정책이 베풀어짐에 따라 영적 간음의 시대인 퍼가모 교회시대(A.D. 313-500)가 도래할 것이며, 그 결과 진리의 빛이 꺼져 중세 암흑시대의 막이 올라 두아티라 교회시대(A.D. 500-1000)가 펼쳐질 것이고, 이후 암흑시대의 절정을 이루는 사데 교회 시대(A.D.1000-1500)를 지나면 개혁과 부흥의 시대인 필라델피아 교회 시대(A.D. 1500-1900)의 불꽃이 타오를 것이며, 끝으로 라오디케아인들의 교회 시대(A.D. 1900-현재)의 대배교로 신약 교회 시대가 끝날 것임을 기록해두었다. (각 시대가 어떤 사건들을 기점으로 해서 나누어지는지는 후에 자세히 서술하겠다.) 샤프(Schaff),모셰임(Mosheim), 워커(Walker) 등과 같은 교회사가들이 무엇이라고 떠들든 간에 우리는 이러한 “성경적 선입견”에 입각하여 역사적 기록물들을 다루고, 교회사를 공부해 나갈 것이다. 이렇게 하는 사람만이 우리가 따라야 할 발자취를 남겨 두신 주 예수 그리스도 앞에, 또 우리에게 성경과 진리를 전수해 준 믿음의 선진들 앞에 서는 날에 부끄러움을 면할 수 있을 것이다.

교회 시대의 시작


“교회”라는 말이 신약적인 용어인 것만은 아니다. 순교자 스테판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의 교회”라고 언급한바 있다(행 7:38). 즉 교회(ἐκκλησία)라는 말은 “불러냄을 받은 모임”이라는 뜻일 뿐이다. 출애굽 때의 이스라엘 또한 하나님께서 이집트로부터 따로 불러내어 모으신 민족이었기에 “교회”라는 호칭에 합당했다. 그러나 교회사를 다룸에 있어 “교회”라는 명칭을 쓸 때면 대개 신약의 “지역 교회”를 지칭하는 말로 사용한다. 신약 지역 교회란 구원을 받을 때 “성령 침례”를 받아 그리스도의 몸, 즉 “우주적인 교회”(고전 1:2; 10:32; 12:12-31, 엡5:22-33) 안으로 들어온 성도들이 지상에서 그들의 모임을 결성한 것을 지칭하는 말이다(살전 1:1, 살후 1:1).따라서 최초의 성령 침례가 일어난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이 교회 시대의 기점이다. 이때로부터 모든 사도들이 그들의 사역을마치고 셋째 하늘에 계신 주님께로 간 날까지가 최초의 교회 시대인 에베소 교회 시대이다(오순절-A.D. 100년경).


“온전히 목적된”이라는 뜻을 가진 “에베소” 교회 시대는 하나님께서 목적하신 과녁에 정확히 날아가 꽂히는 화살처럼 사역했던 신실한 사도들과 감독들의 시대였다. 몇 세기가 지나면 니콜라파의 교리를 수용하는 일, 곧 일단의 성직자들을 중심으로 한 “계급 체계”를 만들어 “평신도”들을 지배하려고 하는 일이 흔해질 터였지만, 이 에베소 교회 시대에는 그러한 교리가 배척되었다(계 2:6). 첫사랑을 저버려서 다소 책망을 받았어도(계 2:4), 그 행위와 수고와 인내에 있어서는 인정을 받는 교회들의 시대였다(계 2:2,3).

에베소 교회 시대의 배경


성경을 주의 깊게 읽은 독자들이라면 에베소 교회 시대의 전반적인 상황들을 이미 상당히 알고 있을 것이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그 명패는 히브리어와 헬라어와 라틴어로 기록돼 있었다(요 19:20). 이는 당시의 사회를 잘 나타내는 하나의 단면이다. 먼저 유대인들은 정치적으로는 “라틴어”를 사용하는 로마의 지배 아래에 있었다. 로마는 당대의 지중해 일대, 즉 “온 세상”(눅 2:1)의 주인이었다. 신약의 교리가 점차 이 로마 제국에 알려지기 시작하자 한 가지 문제가 대두되었다. 로마에서는 황제를 신성화하고 있었는데, 유독 그리스도인들은 거기에 동조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워커(Walker)에 따르면 A.D. 29년경에는 퍼가모에 아우구스투스를 예배하는 신전이 있었다고 한다. 백성들 사이에서는 심지어 황제가 아닌 통치자들까지도 신성화하려는 움직임까지 발견되었다(행 12:22). 물론 이러한 “황제신성화” 작업이란 역사 속에서 으레 그렇듯이 종교 체계를 형성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애국이나 충성심의 표현에 가까웠다.그러나 어쨌든지 그리스도인들이 “카이사”를 “주”라고 부르려 하지 않고, 다른 “주”만을 인정하려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문제가 되었다. 에베소 교회 시대에는 특별히 도미티아누스(A.D. 81-96년경 재위)가 황제 숭배를 거부하는그리스도인들을 박해했다. 이 시기에 사도 요한도 팟모 섬에 유배되었다. 『성령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누구라도 예수를 주라고 말할 수 없느니라.』(고전 12:3)라는 말씀은 어느 시대에나 해당되는 진리이지만, 에베소와 스머나 시대에는 특별히 더그러했다.

헬레니즘의 양면성


정치적으로는 로마가 세계를 재패했을지언정, 사상적, 문화적으로는 로마 이전에 세계의 주인이었던, “헬라어”를 사용하는 헬라(그리스) 제국이 당대의 세계를 지배하고 있었다(헬레니즘). 복음과 진리가 확산되는 데에 있어 이러한 환경에는 양면성이 있었다. 긍정적 측면으로는 로마 제국 전역에 걸쳐 헬라어가 공용어처럼 사용되었기 때문에, 사도들과 그 일행들이 수월하게 사역할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는 점이 있다. 근대 이후의 선교사들처럼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성경을 번역하는 수고를 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들이 유대인들에게 맡겨졌을지언정(롬 3:2), 신약성경은 히브리어가 아닌헬라어로 기록되어 온 세상으로 확산되어 나갔다. 부정적 측면으로는 당대에 팽배해 있던 헬라 철학이 있다. 이는 사람들로 하여금 진리를 거부하거나 왜곡하게 하는 걸림돌로 작용했다. 그중에서도 당대에는 에피쿠로스학파와 스토아학파의 철학이 널리퍼져 있었다(행 17:18). 에피쿠로스는 정신적 쾌락이 인간이 추구해야 할 최상의 목표라고 생각했다. 그 “쾌락”을 달성하는 데에 현재의 삶에 만족하고 욕심을 끊어내는 방법을 추구했다. 그러나 그의 철학은 후대에 그 용도가 바뀌어 단순히 육욕적인 쾌락을 따랐다. 쾌락을 따르는 방법이 어떤 식이든, 에피쿠로스학파는 기본적으로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게 했다.죽음에 대해 걱정하는 것은 “즐겁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혼이 죽은 뒤 어디로 갈 것인지에 대한 문제는 제쳐놓고 “먹고 마시자. 내일이면 죽으리라.”(고전 15:32)라는 생각으로 “만족”하는 무리들이 존재한다는 점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한편 스토아학파에서는 에피쿠로스학파와는 반대로 쾌락을 직접적으로 추구하는 것을 금했다. 그들은 이성의 힘과 의지를 통해 감정이나 욕망과 같은 “쓸데없는 것”으로부터 벗어나면 행복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극단적인 금욕주의로 이어졌다. (클레안테스라는 스토아 철학자는 심지어 스스로의 의지로 굶어 죽었다.) 바울은 그와 같은 철학과 금욕주의에 대해 경고했는데, 그가 겨냥하고 있는 대상 자체가 스토아 철학이라 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다(골 2:8,18,23). “학자들”은 이와 같은 스토아 철학이 “기독교 사상”에도 반영되어 나타난다고 말하지만, 이는 진리에 대한 무지의 소치이다. 이성과 양심에 비추어 완벽하게 올바른 삶을 살아내는 것이란 “육신을 통하여는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구주가 필요하다고 시인한 사람들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이기 때문이다(롬 8:3). 우리는 그들처럼 애쓰지 않아도 이미 행복을 얻었다. 우리를 위해 자신을 주신 분께서 곧 오시리라는 사실과, 그분을 위해 각자가 자기 몸으로 일한것이 보상받으리라는(고전 3:13,14, 고후 5:10) 사실을 아는 데서 오는 수준 높은 행복을 얻었다. 에베소 교회시대는 그러한 행복으로 가득 찬 성도들이 로마 제국의 박해 속에서 육욕적인 세상 철학을 거부하고 주님을 위해 참고 인내하며 수고했던 때였다. BB

전체 95 / 1 페이지
RSS
번호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