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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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침례교도들과 그들의 대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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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5년 09월호>

이 글은 1995. 5(Vol.19, No.5)에 게재된 허브 에반즈(Herb Evans)의 글을 옮긴 것으로 오늘날 미국의 성경대로 믿는 침례교도들과 그들의 역사적 배경을 잘 요약해 주고 있습니다. 이들은 종교개혁 시기에 “아나뱁티스트”(재침례파)라고 불린 그룹입니다. 이에 관한 더 자세한 내용은 피터 럭크만 박사의 신약 교회사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편집자주>


『그와 같이 행함이 없으면 믿음만으로는 죽은 것이라. 그러면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네게는 믿음이 있으나 내게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그러면 내가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 네가 한 분 하나님이 계심을 믿으니 잘하는 것이라. 마귀들도 믿고 떠느니라』(약2:17-19).
『사데 교회의 천사에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분이 이 일들을 말씀하시느니라. 내가 네 행위를 아나니 네가 살아 있다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었느니라』(계3:1).
마틴 루터와 재침례교도들과의 논쟁은 은혜로 값없이 받는 구원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두 그룹은 모두 그 사실을 동일하게 믿고 있었다. 논쟁의 초점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된 피조물이 자신이 고백하는 복음대로 살아가느냐였다. 루터는 카톨릭 교회의 도덕적 타락을 아주 싫어했지만 그는 여전히 독일의 맥주를 사랑했고 따라서 침례교도들이 역사적으로 주장해 온 엄격하게 거룩한 생활에 대해서는 수용할 자세를 갖추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이유로 그는 야고보서를 “지푸라기 서신”이라고 부르면서 이 책을 성경의 정경으로부터 제거하는 데 동조하는 입장을 보였다. 침례교도들은 개혁자들이 새롭게 발견해 낸 진리에 대해 루터를 비롯한 개혁자들과 함께 교제하고 기뻐할 수가 없었다.

“루터교도들은 두 가지만 추구한다. 그것은 부와 아내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복음이란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살 권리를 의미한다”(카톨릭교도, 에라스무스).

“루터의 교리는 죽는 데는 좋을지 모르지만 생활을 위해서는 좋지 않다”(색슨의 죠지 공작).
“맥주와 포도주가 그들의 술취한 입과 콧구멍을 통해 미끄러져 내려갈 때 루터교도들은 시편을 읊조린다. 이들에게는 시편만 암송할 줄 알면 아무리 육신적으로 살지라도 모두가 훌륭한 복음주의자요, 귀중한 형제인 것이다”(화란의 침례교도, 메노시몬즈).

사실 루터의 은혜의 교리는 모순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한편으로는 믿음으로 인한 칭의를 말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침례에 의한 중생을 말한다. 주님의 만찬과 침례에 관한 그의 가르침들은 교황주의자들의 교리와 다를 바가 없었다. 이로 인해 루터와 재침례교도였던 메노시몬즈 사이에는 심한 갈등이 생겼던 것이다.
루터가 쓴 작은 교령집에 보면 “침례는 우리에게 어떤 유익이 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침례는 죄들의 용서를 가져오며, 죽음과 마귀로부터 우리를 구해내며, 침례를 믿는 모든 사람에게 영원한 구원을 준다.”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이에 대해 루터는 물이 그러한 능력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고 물 안에 있는 말씀과 물 안에 있는 말씀을 믿는 믿음이 능력이 있다는 애매한 설명을 부연하고 있다.
루터는 신학적 구원을 강조했으며(칼빈과 쯔빙글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또한 “담대하게 죄를 지으라.”는 충고를 곧잘 하였다. 반면 재침례교도였던 메노시몬즈는 구원이 가져오는 행실의 변화, 중생의 체험,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로운 피조물, 그리고 의롭게 살 것을 강조하였다. 한 가지 주목할 것은 매우 일찍부터 교황들과 그들에 반대하는 그리스도인들, 즉 제도교회와 그것을 거부하는 그룹들은 구원의 문제에 관해 갈등을 빚은 것이 아니라 성도의 헌신되고 거룩한 삶에 대해 엇갈린 견해들을 갖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것은 어거스틴과 그가 박해했던 도나티스트들 간의 갈등의 요소이기도 했다.
성도는 자신의 신앙고백대로 살아야 한다는 재침례교도들의 주장이 기독교계에서 수용되지 못하고 있었다. 카톨릭과 프로테스탄트들은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구원의 열매(구속받은 자들에게서 맺혀지는 성령의 열매)보다는 “세력”과 “경쟁”에 더 관심이 많았다. 일부 프로테스탄트 역사가들은 문제의 본질을 흐려 볼 생각으로 억지 주장을 내세운다. 편견으로 가득 찬 프로테스탄트와 카톨릭 인사들은 왜곡된 교회사를 집필해서 모든 재침례교도들을 비난하고 정죄함으로써 자신들의 입지를 더 공고히 하고 정당화시키려고 한다.
이와 같은 부정직한 행위들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어두운 구름을 뚫고 재침례교도들에 대한 올바른 증언들이 (당연히 위에 언급한 역사가들의 증언과는 정반대됨) 많이 나오고 있다. 흠없는 삶, 고귀한 성품, 건전한 교리, 비카톨릭적이고 비프로테스탄트적인 뛰어난 교리와 원칙들이 속속들이 확인되고 있는 것이다. 침례교도가 아니면서 침례교도들의 영적 유산에 대해 언급한 몇 가지 역사 기록을 살펴보자. (이들의 교리, 고난, 충성됨에 관한 증언들)

“재침례교도라고 불리는 교단의 기원은 아주 오랜 역사를 갖고 있으며 베일에 쌓여 있다”(모쉐임, 루터교 역사가로 비교적 객관적임).

“재침례교도들은 사도들의 시대 이래로 전시대에 걸쳐 사도들의 교리들을 순수하게 보존해 온 유일한 기독교 공동체라고 간주될 수 있을 것이다”(이페이 박사와 더마우트 박사).

“침례교도들은 로마와 결코 타협하지 않은 유일한 그리스도인들이었다”(아이작 뉴턴 경).

“침례교도들은 과거 재침례교도들로 알려진 그룹과 동일한 그룹임을 독자들은 이해했을 것이다. (유아세례를 받은 자들에게) 재침례를 주는 것이야말로 터툴리안(사도 요한이 죽은 지 50년 후에 태어남) 시대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주요한 원칙인 것이다”(에딘버러 백과사전, 장로교).

“나는 A.D.100년경에 침례교회가 있었다는 사실을 전적으로 수용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당시는 모두가 침례교도였기 때문에 침례교회들이 있었다는 사실은 의심하지 않는다”(존 클라크 리드패스, 1840-1900, 감리교도).

“만약 어떤 종교가 진리인지의 여부가 고통에 대한 그들의 단호한 자세와 담대함에 의해 판단될 수 있는 것이라면 재침례교도들의 태도와 주장만큼 진실되고 확실한 것은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지난 1200년 동안 늘 고난을 당하면서도 늘 당당하고 기꺼이 감당해 내고 가장 잔인한 형벌을 받으면서도 기꺼이 자신들을 내맡기는 그리스도인들 중 재침례교도들보다 더 확고한 사람들은 없었기 때문이다”(스타니스라우스 호시우스 추기경, 1560).

오늘날 침례교도들을 대적하는 자들은 새롭게 단장되고, 되살아난, 대담한 신흥 프로테스탄트들이다. 이들 대부분은 비록 종교적인 생활을 하지만 분명하고 확실한 구원의 간증을 갖고 있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지 못한 채 구원으로 자라가려고 애쓴다(변개된 성서들, 개역한글판성경의 베드로전서 2:2을 참조하라).

어쩌면 이들은 늘상 종교에 몸담고 있었기 때문에 진정으로 죄인이었음(lost)을 모르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은 휴머니즘, 낙태, 도색잡지, 매춘, 동성연애 등에 대해 투쟁을 벌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들의 목표는 종교적, 정치적인 세력확장이다. 애석한 일은 많은 침례교도들이 그들의 조상들이 보여준 올바른 생활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느슨한 삶을 보이고 있어 의롭고 헌신된 생활의 본을 더이상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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