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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은 신앙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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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3년 05월호>

디시우스(Decius) 통치 하의 일곱번째 박해(A.D.249)


이 일곱번째 박해는 디시우스가 자신의 전임자였던 필립(그는 그리스도교인으로 추정된다)에 대해 품었던 증오심에서 기인된 것이며 또 다른 한편으로는 놀랄만한 증가를 보이고 있는 그리스도교에 대한 질투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 당시 이방 종교 사원은 버림을 받기 시작했으며 그리스도인 교회의 숫자는 날로 증가하고 있었다. 이런 요인들이 디시우스로 하여금 그리스도인이란 이름을 가진 모든 사람들을 멸절시키기 위한 박해를 시작하도록 자극하였다.
일반적으로 이때 이교도들은 제국의 법령을 시행하는 데 열을 올렸으며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을 죽이는 살인 행위를 자신들의 출세를 위한 첩경으로 여겼다. 이 시기에 희생된 순교자는 그 수를 헤아리기가 불가능할 정도이지만 여기에서는 몇가지 사건에만 촛점을 맞추어 살펴보고자 한다.
이 박해기간에 혹독한 고통을 당했던 명망있는 사람들 가운데 첫번째 사람은 로마의 감독이었던 파비안(Fabian)이다. 고인이 된 황제 필립(Philip)은 매우 고결한 사람으로서 파비안을 돌보아 주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나, 그 후임자 디시우스(Decius)는 그 훌륭한 성직자 위에 자신의 증오심을 퍼부었다. 파비안은 곧이어 체포되었고 A.D.250년 1월 20일 참수당하였다.
준수한 용모와 고결한 마음을 가졌으며 매우 온순하였던 젊은 그리스도인 피터(Peter)는 비너스 여신에게 경배할 것을 거절하여 참수당하였다. 이 젊은이는 경배를 강요당하자, “나는 당신들이 아무 가치도 없는 한 여인에게 경배해야 한다는 데 놀라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그녀는 당신의 역사 기록에도 있듯이 방탕한 여인이 아닙니까? 그녀의 일생은 지금 당신들의 법으로 말한다면 당연히 처형 당해야 할 행위들로 가득차 있습니다”라고 말했고 이 이야기를 들은 아시아 총독은 그 즉시 이 청년을 바위 위에 매달아 굴려 모든 뼈를 부러뜨리게 하였다. 그 후 그를 참수형에 처하였다.
총독 앞에 불려나온 니코마쿠스(Nico- machus)에게도 이방 우상들에게 경배해야 하는 명령이 내려졌다. 니코마쿠스는 이에 대해 “나는 사탄에게 존경을 표시할 수 없습니다. 그 경외함은 오직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만 합당한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의 이 고백이 지방 총독을 극도로 자극하였고 그는 바위에 내던져지게 되었다. 사람들은 오랫동안 계속된 고통으로 그가 자신의 신앙을 버렸다고 하나 그의 박약함을 증명해 주는 증거는 없고, 오히려 그는 가장 혹독한 고문에 처해졌으며 땅에 내동댕이쳐서 즉사했다는 기록이 있을 뿐이다. 이 광경을 본 데니사(Denisa)라는 열여섯 살의 소녀는 “오 불쌍한 사람들이여, 당신들은 어찌하여 무시무시한 영원세계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단지 현재의 안일함을 사려하고 있는가!”라고 말한 후 자신도 그리스도인임을 공개적으로 시인하고 참수형을 당했다.
루시안(Lucian)과 마르시안(Marcian)은 처음에는 마술을 행하는 사악한 이방 우상 숭배자였다. 그러나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후 자신들이 범했던 죄들을 회개하였고 은둔자의 삶을 살며 빵과 물만으로 연명하였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 그들은 그런 삶을 마치고 열정적인 복음전도자가 되어 많은 사람들을 개종시켰다. 그러나 이때에도 박해의 불길은 계속되었고 결국 그들은 체포되어 비두니아(Bithynia)의 통치자인 사비누스(Sabinus) 앞에 끌려가게 되었다. 무슨 권세로 복음을 전하는 일에 투신하였는지에 대하여 대답을 요구받았을 때 루시안은 “그리스도의 사랑과 자비의 법이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들의 이웃을 개심시키도록 만듭니다. 또 그 법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이웃을 사탄의 올가미로부터 구출시키기 위하여 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을 하게 하십니다”라고 말했다. 마르시안도 함께 “교회를 광적으로 박해했던 바울을 개심시키고 그를 복음의 전파자가 되게 한 그 동일한 은혜로 다른 모든 사람들도 개심하였습니다”라고 고백했을 때, 이 두 사람의 마음을 돌릴 수 없다고 판단한 총독은 그들을 산채로 불에 태워 버렸다.
시실리(Sicily) 출신의 젊은 여인 아가타(Agatha)는 경건함으로 이름 높은 그리스도인이었다. 그녀의 뛰어난 미모 때문에서 시실리의 통치자 퀸티안(Quintian)을 그녀에게 매혹되었다. 그는 자신의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이 순결한 아가타를 음탕하고 방탕한 여인인 아프로디카(Aphrodica)의 손에 넘겼고 이 사악한 여자는 그녀가 음행하도록 모든 방법들을 동원했으나 그것은 헛된 노력일 뿐이었다. 그녀의 순결함은 흔들리지 않았으며 이는 아가타가 이미 고결한 도덕성만이 진실한 행복에 이를 수 있게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이에 퀸티안은 자신의 욕정을 원한으로 바꾸었고, 아가타가 자신이 그리스도인임을 고백하자 관철시키지 못했던 자신의 추악한 욕망대신 복수심을 일으켜 아가타를 채찍으로 때리고, 벌겋게 달아오른 쇠 덩어리에 태웠으며 날카로운 쇠고리로 온 몸을 찢었다. 그녀는 이런 고통을 꿋꿋하게 견디었으며 결국에는 유리조각이 섞여있는 불붙은 석탄위에 벗긴 채로 뉘여 감옥으로 보내져서 A.D.251년 2월 5일 마침내 순교당하였다.
고르티나(Gortyna)의 감독이었던 싸이릴(Cyril)은 그 곳의 통치자였던 루시우스(Lucius)의 명령으로 체포되었다. 루시우스는 싸이릴에게 황제의 칙령을 준수하고, 우상에게 경배하여 다른 형제들의 목숨을 구하라고 설득하였다. 그러나 싸이릴은 이를 거절하며, 자신은 오랬동안 다른 사람들에게 혼을 구하라고 가르쳐 왔으며 자신이 지금 유일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자신의 구원이라고 대답하였다. 고결한 이 형제는 자신에게 내려진 형벌을 아무 저항없이 받아들이고 유쾌하게 집행장소로 걸어가 놀라운 꿋꿋함으로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였다.
A.D.237년 제비누스(Zebinus)의 뒤를 이어 안티옥의 감독이된 바빌라스(Baby- las)는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열심으로 교회를 섬겼으며 가장 극심한 박해의 폭풍우가 몰아닥친 그 시기에 매우 사려깊게 교회를 다스렸다. 그가 집무하던 시기에 안티옥에 발생한 첫번째 불황은 페르시아 왕 사퍼(Saper)가 그 곳을 포위하려 공격했던 일이었다. 사퍼는 시리아 온지경을 침략하여 도시들을 차지하고 강탈하였으며 그리스도인 거주민들을 다른 사람들보다 더욱 심하게 공격하였다. 그러나 곧 고르디안(Gordian)에게 완전히 패배하여 물러나게 되었다.
고르디안이 죽고 디시우스가 집권하였을 때 그는 안티옥에 있는 그리스도인 모임에 자신이 방문할 것을 제의하였다. 그러나 바빌라스는 이에 강력히 반대했으며 그가 모임에 들어오는 것을 완전히 거절하였다. 그 때 그 황제는 크게 진노하였고 그 감독을 송환하여 그의 오만함을 비난하고 그 댓가로 자신들의 신들에게 경배하라고 명령하였다. 이 명령을 거절한 그는 사슬에 감겨 감옥으로 보내졌고 매우 고통스러운 고문을 당한 뒤 목이 잘려 순교하였다.
예루살렘 교회의 감독이었던 알렉산더(Alexander)도 이 때쯤에 투옥되었다가 심한 고문으로 순교하였다. 연로한 줄리아누스(Julianus)와 크로니온(Cronion)은 낙타 등에 매여 혹독하게 채찍질을 당하였고 불에 태워졌다. 안티옥에서는 40여명의 처녀들이 투옥되었다가 채찍에 맞은 후 화형당하는 일들이 벌어졌다.
안티옥의 젊고 아름다운 여인, 테오도라(Theodora)는 로마 우상에게 경배하지 않아 사창굴에 던져지는 선고를 받아 그녀의 순결함이 그 곳에서 정욕에 찬 짐승들에게 희생당할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그리스도인이었던 디디무스(Didymus)는 로마 군인 복장으로 자신을 위장하고 테오도라가 있는 곳에 가서 자신이 입고 있던 로마군인 복장을 입혀 탈출시켰다. 그녀 대신 디디무스는 총독 앞에 끌려가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고 사형을 선고받았다. 이 사실을 들은 테오도라는 재판정에 스스로 출정하여 자신에게 사형 선고를 내려 줄 것을 간청하였다. 그러나 무죄한 사람의 통곡에 귀멀고 정의로운 요구에 무감각한 총독은 두 사람 모두에게 사형을 내려 차례대로 목을 자르고 불태우게 하였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죄목으로 고소된 세쿤디아누스(Secundianus)가 로마 병사들에 의해 송환될 때 베리아누스(Veri- anus)와 마르셀리누스(Marcellinus)가 그 병사들에게 “이 결백한 사람을 어디로 데려가는 겁니까?”라고 물었다가 함께 결박되어 후에 심한 고문을 받은 뒤 교수형에 처해졌다. 그 동안에 디시우스가 죽고 그 뒤를 이어 갈루스(Gallus)가 왕위를 잇는다. 그는 고트족(Goths)과의 전쟁에 열을 올렸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모처럼의 ‘박해가 없는 상태’를 맞게 되었다. 갈루스 황제가 전쟁을 마쳤을 때 로마제국에 역병이 발생하였다. 이 황제는 로마신에게 제사를 드릴 것을 온 나라에 선포하였고 이 명령으로 인하여 또 다시 박해의 바람이 불어 로마제국의 중심부에서부터 멀리 있는 변방까지 광범위하게 순교의 행렬이 이어지게 되었다. 로마의 감독이었던 코넬리우스(Cornelius)와 그의 후계자 루시우스(Lucius)가 이 기간에 순교하였다. 이 때가 A.D.253년 경이다.
이 때 교회에 가장 치명적인 해악이 몰래 들어와 자라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알렉산드리아의 오리겐 등에 의해 하나님의 계시에 대항하는 인간의 이성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오리겐이 비록 이 기간 중에 죽임당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에 의한 이단 교리는 교회 안에서 그 순수성을 해치게 하였다. 그러나 이 때까지만 해도 그와 같은 오류는 자격있는 목자들에 의해 그릇됨이 판명되었으며 육신적인 사람들이 만들어 낸 견해들은 태양 앞의 별처럼 무력하게 자취를 감추고 있었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