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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트칙령의 폐지와 프로테스탄트들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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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3년 11월호>

낭트칙령의 폐지로 인해 야기된 박해가 루이 14세의 통치하에서 발생하였다. 이 칙령은 1598년 프랑스 왕 헨리가 제정한 것으로 시민권이든, 종교적이든 다른 여러 영역의 문제들과 더불어 모든 영역에서 프로테스탄트들에게 동등한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었다. 니메스 칙령에 의하여 루이 14세가 프로테스탄트들에게 보장했던 이런 모든 특권들은 그의 통치 기간 중에 충실하게 지켜졌다.
루이 14세의 즉위시에 왕국은 내란으로 거의 다 파괴되었다. 이 중요한 시점에서 프로테스탄트들은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하리라”는 우리 주님의 경고를 무시하고 왕의 호의를 입고서 실질적인 역활을 담당하면서 왕에게 그가 왕위에 오른 것은 그의 군대의 힘이라고 억지로 인정토록 했다. 그러나 그를 위해 싸웠던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고 보장하는 대신 왕은 그를 위해 싸웠던 그 세력이 자신을 전복시킬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서 교황의 계략에 귀를 기울이면서 자신의 최종 결정을 나타내는 규제와 법률적인 보호 박탈을 내놓기 시작했다. 로첼은 엄청난 비난과 더불어 곧 감금되었다. 몬토벤과 밀로는 군인들에 의해 약탈당했다. 교황의 사절단들이 프로테스탄트 일을 처리하도록 임명되었으며 왕의 의회를 제외하고는 그들의 명령에 대한 항변도 없었다. 이것은 일반적이고 종교적인 행동들의 뿌리를 강타했으며, 프로테스탄트라는 이유로 카톨릭 교도들을 어떤 이유에서도 고소하지 못하게 했다. 그 이후 또 다른 금지 명령이 뒤따랐으며 전 교구에서 프로테스탄트들이 지난 20년 간 했던 말과 행동들이 모두 조사를 받았다. 이리하여 감옥은 무고한 희생자들로 가득찼으며 다른 사람들은 노예선으로 끌려가거나 추방되었다.
프로테스탄트들은 그들의 공직과 장사와 특권들과 고용에서 추방당했으며, 그리하여 그들은 자신들의 생계를 유지시킬 수단을 박탈당했다. 그들은 잔인하게도 조산원들에게까지도 자신의 일을 하지 못하게 했으며, 출산의 위기에 있는 여자들을 잔인한 카톨릭 교도들인 그들의 적들에게 내어주도록 강요했다. 그들의 자녀들은 카톨릭 교도들이 교육시키도록 데려갔으며, 7살이면 로마 카톨릭을 받아들이도록 했다. 개혁주의자들은 그들의 병자나 가난한 이들의 고통을 덜어 주는 것이 금지되었으며, 개인적인 경배도 금지되었다. 성스러운 예배는 로마 카톨릭 사제 앞에서만 행해지도록 했다. 불행한 희생자들이 왕국을 떠나지 못하도록 변방의 모든 길들이 엄격하게 경비되어졌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하신 손길로 약 15만 명이 그들의 야간 경비를 피해 달아 났으며 이 암울한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다른 나라로 이주했다.
지금까지 언급한 이 모든 것은 기존의 허가서와 같은 낭트칙령을 단순히 위반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1685년 10월 18일, 마침내 그 칙령의 악마적인 폐지가 통과되었으며 모든 형태의 법에 대해서 22번째로 등록되었다. 즉시로 기병연대의 병사들이 전 지역에서 프로테스탄트를 찾아 다녔으며, 왕은 자신의 왕국에 어떠한 위그노도 허락치 않을 것이며 따라서 그들은 자신의 종교를 바꿔야한다는 소식이 전 프랑스를 가득 메웠다. 이 소식에 전 교구의 감독관들(로마 카톨릭 행정관들과 프로테스탄트를 감시하는 스파이들)은 개혁주의 거주자들을 모아놓고 그들에게 말하기를 자의든지 강요에 의해서든지 지체없이 카톨릭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프로테스탄트들은 그들의 목숨과 토지를 왕에게 희생할 준비는 되어 있으나 그들의 양심은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마음대로 할 수 없노라고 했다.
즉각적으로 군대가 도시의 문과 거리를 포위했으며 손에 칼을 든 경비병들이 모든 길에 배치되었고 “죽음이 아니면 로마 카톨릭 교인”이라고 외쳐댔다. 곧 그들의 종교를 바꾸도록하는데 그들이 창안해낼 수 있는 모든 사악함과 무시무시한 일들을 자행했다.
그들은 남자 여자 모두를 머리와 발을 매달아 놓고서 그들이 거의 죽게될 때까지 건초로 연기를 피웠으며, 만약 그들이 자신의 신앙을 철회하기를 거절하면 그들을 다시 매달아 놓고서 죽이지도 않고 그들이 고문으로 기진맥진해질 때까지 만행을 저질렀으며 그리하여 은 사람들을 강제로 굴복시켰다.
다른 사람들은 머리와 수염을 핀셋으로 잡아뜯겼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을 큰 불에 집어 던졌다가 다시 끄집어 내었다하면서 그들이 자신의 신앙을 철회하겠다고 약속할 때까지 이런 짓을 반복했다.
그들은 어떤 사람들을 발가벗겨서 가장 수치스러운 모욕을 주고, 머리부터 발까지 핀으로 찔렀으며, 주머니칼로 그들을 절개시켰다. 때로는 벌겋게 달군 핀셋으로 그들이 돌아서겠다고 약속할 때까지 코를 찔렀다. 때로는 아버지들과 남편들을 묶어 놓고 그들의 눈 앞에서 그들의 아내와 딸들을 강간했다. 수많은 사람들을 유해한 지하 감옥에 감금해 놓고서 온갖 종류의 고문을 비밀리에 자행했다. 아내와 자녀들은 수도원에 감금시켰다.
도주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숲에서 추적되었으며 들에서 사냥되었고 들짐승들처럼 총에 맞았다. 어떠한 상황이나 재능도 이 지옥의 군단의 흉포함에서 그들을 보호해주지 못했다. 심지어는 의회의원들과 군장교들까지도 실제 업무 중에 일을 그만두고 자신들의 짐들을 이 폭풍에 견디도록 직접 보수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왕에게 불평하는 이들은 바스티유 감옥으로 보내졌으며 거기서 그들도 같은 잔을 마셔야만 했다. 주교들과 감독관들은, 선교사들과 승려들과 다른 성직자들과 더불어 군대 맨 앞에서 행진하며 그들의 “거룩한” 교회가 매우 기뻐하고 그들의 신인 악마와 전제 군주에게 매우 영광스러운 일들을 수행하도록 군인들의 힘을 돋우워 주었다.
낭트칙령을 폐지시키고자하는 법을 제정하는데 있어서 의회는 양분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평신도뿐만 아니라 모든 사역자들을 감금시켜서 강제로 로마 카톨릭으로 개종시키자고 했다. 어떤 사람들은 사역자들의 존재가 프로테스탄트에게 힘을 공곱할 것이기 때문에 그들을 추방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만약 그들이 로마 카톨릭으로 어쩔 수 없이 개종한다 해도 쟁점이 되는 문제들에 있어서 그들의 엄청난 지식과 경험으로인해 교회 안에서 잠재적이고 강력한 적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 주장이 우세함으로 인해서 그들은 추방형을 선고받았으며 왕국을 떠나기까지 15일의 기한이 허락되었다.
프로테스탄트의 자유를 폐기시키는 칙령이 공포된 바로 그날 그들은 교회들을 파괴하고 사역자들을 추방시켰다. 또한 파리를 떠나는데 24시간의 여유를 허락했을 뿐이었다. 로마 카톨릭 교도들은 그들의 도피를 지연시키고자 가는 길을 방해함으로써 제한된 시간이 만료되어 프로테스탄트들이 평생을 노예로 사는 저주를 받게 하고자 했다. 항구에는 경비병들이 두 배로 증가되었고 감옥은 희생자들로 가득 찼다. 그들은 인간이 본성적으로 몸서리치는 고문을 감수해야만 했다.
노예선으로 보내진 사역자들과 다른 사람들이 겪은 고난은 극치에 달했다. 노에 묶인채 그들은 밤낮으로 날씨와 계절에 상관없이 바깥 공기에 노출되었다. 몸이 허약해져서 그들이 노 밑에서 기절할 때면 그들을 소생시키기 위한 강장제나 새 힘을 주는 음식물대신 그들이 받는 것은 회초리와 막대기와 형구로 맞는 것뿐이었다. 충분한 옷과 필요한 청결의 부족으로 인해서 그들은 해충들에게 극심한 괴롭힘을 당했으며 추위에 혹독하게 시달렸다.
이 추위로 낮에 맞고 고문당했던 사람들이 밤에 죽었다. 그들에게는 침상대신에 아플 때나 건강할 때나 딱딱한 8인치의 널판지가 허락되었다. 덮을 것이라고는 그들의 허름한 옷뿐이었다. 그나마 그 옷들은 가장 굵고 거친 돛으로 된 빨간색 세루조끼인 셔츠로 양쪽이 팔진동까지 다 찢기고 팔꿈치까지도 닿지않는 올이 성긴 소매였다. 3년에 한 번씩 그들은 올이 굵은 작업복과 그들의 머리를 덮을 모자를 받았다. 그들의 머리는 항상 그들의 허약함의 표시로 간신히 유지되었다.
양식은 그들을 그런 비참함에 처하게 한 사람들의 동정심만큼이나 적게 나왔으며 아플 때에 그들을 어떻게 대하는가는 너무나 놀라워서 말조차 못할 지경이었다. 그들은 어두운 홀의 널판지 위에 누워 죽음을 기다리며 온몸은 해충으로 뒤범벅이 된채 있어야 했다. 그리스도의 사역자들과 정직한 사람들로서 그들이 참아내야만한 것은 중죄인과 가장 저주스러운 악당들 옆에 나란히 사슬에 묶인채 하나님을 저주하는 소리를 끝없이 들어야만 하는 것이었다. 이런 두려움은 가장 작은 것에도 속하지 않는 것이었다. 만약 그들이 미사를 경청하기를 거부하면 그들은 매질형을 선고받았다. 그리고는 무시무시한 벌이 그 뒤를 이었다. 그 벌을 준비하는 것으로 먼저 사슬이 벗겨지고 희생자들은 회교도들의 수중으로 넘겨진다. 그들은 노를 관할하는 자들로 발가벗겨 큰 대포의 축포에 올려놓고 움직이지 못하도록 한다. 그동안 노예선에는 무시무시한 침묵만이 흐른다. 사형집행인으로 지정된 모슬램인은 그 희생물이 그의 선지자 모하멧이 기뻐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거친 곤봉이나 매듭이 있는 채찍으로 이 가련한 희생자를 가장 잔인하게 매질해서 살점이 뼈에서 찢겨져 나가고 거의 죽기 직전까지 만든다. 그런 다음 매우 괴롭게하는 식초와 소금 혼합물을 사용해서 그들의 잔혹함하에서 수 천 명을 죽게 했던 가장 무자비한 병원으로 그들을 넘겨준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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