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신약교회사 분류

성경과 더불어 시작된 나라 :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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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5년 03월호>

『이는 왕국이 주의 것이요, 주께서 민족들 가운데 통치자시기 때문이니이다』(시22:28). 『자기들의 하나님이 주이신 민족은 복이 있으며, 주께서 자기 유업으로 택하신 백성은 복이 있도다』(시33:12).

미국의 헌법과 독립선언서와 권리선언에 대한 논의를 신약교회사의 항목에 포함시키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 이 세 문서 중 그 어떤 것도 인간들의 “자유”와 “권리”는 커녕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인정하지도 않고, 그 어떤 것도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거나 그 분을 인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이들 문서의 기본 전제는 공산주의적 요소로 되어 있고(행4:32과 그 주석을 보라.) 아브라함 링컨은 20만 명이 넘는 미국인들의 죽음을 이것으로 정당화시키려 한다. 리버티 홀에 모였던 많은 사람들은 교회회원이기는 했지만 그들의 교회는 신약교회를 전혀 닮지 않은 그러한 교회였다(프리메이슨이나 콜롬버스 기사단이 교회와 관계없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권리선언을 작성하는 데는 죤 로크(1632- 1704), 벤저민 프랭클린(1706-1790), 존 핸콕(1737-1793), 토마스 제퍼슨(1743-1826), 알렉산더 해밀톤(1757 -1804) 등에게서 유래되지 않은 어떤 종교 철학적 요소가 들어갔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미국 헌법의 권리선언에 들어있는 독특한 교리는 연방교육제도에 필요한 교과서를 집필하는 역사가들에게는 별로 눈에 띄지 않는 것이며 인쇄술이 발명된 이래 언론인들 역시 이에 대해 무지한 채로 남아있다. 그러나 실은 바로 이 독특한 교리 때문에 미국은 1865년까지는 참다운 의미에서의 자유를 누릴 수 있었다. 1865년은 권리선언 제 10조에 해당하는 권리를 미국의 모든 주가 상실한 해이다(각 주는 이때부터 독립을 상실했고 연방에 예속되게 된다).
1933년 연방정부는 지방 정부(주) 안에 있는 회사들과 주식회사들의 자유를 축소시키는 법안을 통과시킨다. 금과 술을 교환한 연방정부는(루즈벨트, 1933-1937) 공산주의 법안인 공민권법(the Civil Rights Act)을 제정하여 헌법의 권리선언(Bill of Rights)을 제거해 버렸다. 이 세 가지 경우 모두 (지방 정부의 권리상실, 금 대신 술을 교환해 준 사건, 교회와 학교를 연방정부가 장악함) 언론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미국 초기 이민 시절까지만 해도 언론은 오늘날처럼 영웅과 악한을 “창조”해 내고 수년동안 그 가상의 인물들을 지탱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지 못했다. 17세기와 18세기에는 그 어떤 주요 신문이나 잡지도 엘비스 프레슬리나 존 레논 같은 음행을 일삼는 마약중독자를 영웅으로 만들 수 없었고 조국을 빛낸 애국자들을 “정신분석” 대상으로 삼아 난도질할 수도 없었다. 오늘날 20세기에 들어와 창녀처럼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 언론이 등장해서 온갖 “영광”들을 조작해 내고 심지어는 “구세주”들을 만들어내기도 한다(마틴 루터 킹 목사, 제인 폰다, 피카소, 존 레논, 엘비스 프레슬리, 케네디家, 지미 카터 등등).
1787년에 “민주주의”의 거대한 흐름 속에 심겨진 독특한 교리란 의회는 종교단체에 영향을 주는 그 어떤 법도 만들거나 통과시킬 수 없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 원칙은 지역 교회들의 행위, 신앙, 권리 등에도 적용되었다. 이 수정 조항은 헌법 권리선언의 제 1항이었으며, 1964년 공민권법의 제정으로 무효화될 때까지 근 200년간 미국을 카톨릭 독재와 공산주의적 경찰 국가가 되지 못하도록 막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지역교회는 성경에 언급된 단체고 헌법을 제정하던 사람들은 “종교”를 언급할 때 지역교회들도 염두에 두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구원받지 못한 정치가들에 따르면 교회란 “종교”와 관련이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미국은 반카톨릭적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에게 종교적 자유를 부여한 세계 역사상 최초의 나라가 되었으며 “교회사”에서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헌법 수정조항 제 1항은 미국에 사는 그 누구도 미사를 거부할 수 있으며 교황을 지지하지 않을 수도 있고 유아에게 물을 뿌리지 않을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미국인은 유아세례에 반대하는 설교도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목사는 자기 교회에서는 자기 회중에게 무슨 설교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만약 목사가 교황은 적그리스도라고 말하기를 원한다면, 그것이 자신의 종교적 확신일 경우 그렇게 설교할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된 것이다. 그 당시는 아직까지 거대한 세력으로서의 언론이 존재하고 있지 않았으므로 그에게 압력을 가해 그의 표현의 자유를 빼앗지는 못했다. 그러나 권리선언(Bill of Rights)은 로마에게 이보다 훨씬 더 치명적일 수 있었다. 왜냐하면 어느 그리스도인이 계시록의 창녀는 로마교회이며 그 교회는 사탄의 신부라고 선언했다 할지라도(만약 그것이 그의 종교적 신념일 경우), 카톨릭의 사주를 받는 反-명예훼손 연맹에 의해 체포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말해 미국은 건국 초기부터 성경적 진리(요17:17)를 듣고 성경적 진리를 읽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이러한 특권은 서방세계 그 어느 나라도 그때까지 누려보지 못했던 것이었다.

물론 의회가 후일(19세기) 카톨릭 교회에게 호의를 베풀었고 프로테스탄트들의 세금을 로마 카톨릭의 사업에 넘겨주기 시작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적어도 헌법의 권리선언을 작성했던 미국의 건국 공신들의 의도는 존중해 줄 만한 것이었다. 미국은 이스라엘을(출19,20장을 볼것) 제외하고는 유일하게 세계 그 어느 나라하고도 다른 방식으로 건국된 것이다. 다시 말해 미국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과 더불어 시작하였고 거의 200년 동안 무려 1500년 간이나 종교적 자유를 박탈해 온 암흑시대의 종교괴물을 물리치고 승리할 수 있었다(이 괴물은 지금은 재빨리 변신을 시도해서 “인권”과 “종교적 관용”을 내세우고 있다. 자기들이 소수일 때는 늘 이 두 가지를 들고 나왔다).

영어 중에서 가장 남용되는 단어는 자유(freedom), 평화(peace), 해방(liberty) 및 단합(unity)일 것이다. 실제로는 수입, 참석인원, 서적판매, 정권 혹은 관능적 쾌락이 목적이면서도 겉으로는 이 네 가지 용어로 포장하면서 저질러진 범죄는 실로 그 수를 헤아릴 수가 없다. 아마 책 몇 권이라도 모자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항상 어떤 이들을 “해방시켜주려고” 애를 쓰거나(The Sure Word of Prophecy, 1970) “이 땅에 평화를 가져오려고” 하거나 “다른 사람과 사랑을 나누려고 하거나” 어떤 그룹을 모아서 “단합을 시도”하려고 한다. 샌프란시스코의 성도착자들은 계속적인 언론의 도움을 받아 결국 동성애자인 공립학교 교사들을 학교에 잔류시킬 수 있게 되었다(1980). 이들 동성애자인 교사들은 곧이어 “성도착기법을 제시하지 못하는” 선생들을 몰아내기 시작했다.
만약 그들이 교실에서 성경을 읽는 모든 교사들을 해고했다면 미국 전역의 언론매체들은 성경 읽기가 성도착보다 더 파괴적인 것이기라도 한 것처럼 그 해고를 정당화시키기 위해 모든 수단을 강구할 것이다. 바로 이것이 오늘날의 미국이다. 뉴욕에서 지난 1960-1970에 무장단체로 조직된 “검은 당원”(Black militants)들이 마이아미, 뉴욕, 멤피스, 시카고, 왓츠, 및 워싱톤 D.C.에서 17,000여 명의 교사들과 학생들을 공격하여 100여 명의 사상자를 냈음에도 불구하고 언론 매체들이 집중보도한 것이라고는KKK(KuKlux- Klan : 미국의 비밀결사로 흑인 및 기타 외국인을 배척하는 폭력단체)의 위험에 관한 것뿐이었다.
“자유”와 “해방”이라는 것들은 바로 그러한 경우에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 두 단어는 미국혁명, 프랑스 혁명, 오스트리아 합병(1938), 미국의 남북전쟁(1861), 한국전쟁(1950), 러시아혁명(1917) 및 쿠바혁명 등에서 살인과 투옥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사용되었다.

1776년 패트릭 헨리는 “나에게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했다. 얼마 후(1800-1900) 그의 후손들은 “나에게 자유를 달라.”고 하더니 오늘날에는(1900-1990) “나에게 달라.”고만 외치고 있다.
로마클럽, 카톨릭 비밀결사들(illuminati, Knights of Columbus 등), 보건복지성, 전국 교육인협회 등과 같이 이 세상을 “위대한 신세계”로 만드는 일에 개입하고 있는 “선행가”들의 이면에는 에피큐로스의 썩은 철학이 숨어 있다. : “내가 먼저고, 너는 나중이다”(me first, you next). “인간주의”(humanism)를 가장한 쾌락주의가 오늘날 “교육받은” 계층의 종교인 셈이다.
가장 위대한 쾌락주의자들 중 하나였던 하버드 대학 신학교수 폴 틸리히는 “모든 해방자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졌다.”라고 말했는데, 이들 “구세주들”이 어찌 많은지 “모든 사람은 자기 안에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고 한다. 폴 틸리히가 말하는 “구원자”들 중에는 히믈러, 스탈린, 히틀러 및 괴링이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는 어떠했는가? 1790년 프랑스를 해방시킨 “구원자들”이 프랑스 “국민”은 “권리”를 갖고 있다고 외쳤을 때 그들은 “공안위원회”를 조직하여 그들이 옹호하겠다고 외쳤던 그 모든 자유를 없애버린 것이다. 그 결과 프랑스는 로마 카톨릭 교회로 복귀했고 세계의 열강 대열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프랑스는 이런 식으로 “해방”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18세기의 영국, 독일 및 프랑스의 위대한 계몽주의 사상가들과 관념론자들은 그들의 부르심을 발견하는 데 매우 뒤늦은 감이 없지 않다. 로마 카톨릭 교회는 이미 수세기 전에 로마 카톨릭 교회는 “그리스도의 피로 해방되었으므로” 다시는 노예가 될 수 없다고 선언해 버렸다(굉장한 선언인 것 같이 보인다). 따라서 어떤 카톨릭 주교나 사제도 그 어느 나라의 통치자에게도 충성을 바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다. 왜냐하면 카톨릭 사제들과 주교들의 손은 “주님의 몸과 피로 거룩하게” 되었으므로 세속의 권세들에게 손을 내주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논리를 오늘날 미국에서는 다음과 같이 적용한다. 만약 어떤 살인자가 흑인강도인 경우에는 그는 무죄이지만 백인 경찰이 방아쇠를 당겼다면 그는 유죄인 것이다.
카톨릭 교도들은 수세기 전에 다른 그 누구도 갖지 못한 공민권을 확보해 놓았다. 그들은 피부색 대신 종교 위에 그들의 권리의 토대를 세웠을 뿐이다. 카톨릭의 자유는 절대적인 것이었다. 이들이 누린 자유는 지난 1500년간 유럽에서 발생한 왕과 교회와의 마찰 뒤에 항상 숨어 있었다. 이 자유란 토마스 아벡켓트의 경우에는 모든 성직자들은 민간 법정의 소송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다시 말해 카톨릭 성직자들은 자기들이 살고 있는 그 나라의 법률에 복종하지 않을 절대적 “자유”를 갖고 있다는 말이다. 오늘날 카톨릭의 이 신념이 바뀌었다고는 결코 착각하지 말라. 오늘날 카톨릭 교회는 표현만 바꾸어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는 언론을 통해 자신들의 뉴스를 직접 편집한다.
라인 지방을 점령할 때 히틀러가 내세운 알리바이는 그곳 주민들을 “해방”시킨다는 것이었다. 오스트리아와 주데텐란트를 점령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카스트로도 쿠바를 너무도 잘 “해방시켜 주어서” “자유”를 믿는 수백 명의 사람이 목숨을 걸고 탈출을 시도하거나 아니면 남아서 그들이 부여받은 “자유”를 상실당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10만여 명의 “해방받은” 쿠바 사람들은 쿠바를 탈출해서 미국에 망명을 요청하였다. 한편 그들이 찾아온 미국에서는 게이해방과 여성해방이 한창 벌어지고 있었다. 프라이팬에서 도망쳐서 아예 불 속으로 뛰어든 셈이다. 호지명이 사이공을 “해방”시켰을 때 46만 명이 그들이 부여받은 “공민권”을 발휘하여 가족들과 목숨을 걸고 바다 위로 몸을 내던졌다(1978-1980). 그들은 그들이 부여받은 “자유”와 “권리”를 모국에서 향유하기를 거부하였던 것이다.

“자유”와 “해방”이란 단어는 수많은 사람들에게는 지옥으로 향하는 지름길이었다. “자유로 탄생된 나라”라는 고백은 실로 대단한 신앙고백이라고 할 수 있다. 공산주의자들이 니콜라스 2세로부터 러시아 농민들을 해방시켰을 때(1909-1918) 농민들은 모든 농토를 다 빼앗겼다. 이들은 공산주의자들의 “해방” 이전에는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던 농부들이었다. 모든 황제들이(900- 1910) 죽인 사람들보다 거의 3천여만 명 이상을 더 죽인 “해방자들”은 농민들로 하여금 조국을 떠날 “자유”를 주지 않기로 결정했다. 1921년까지는 누구든 자유롭게 조국을 떠날 수 있었다.

이처럼 “해방받은” 사람들에게 첫번째 닥치는 것은 그전까지 누리던 자유를 빼앗기는 것이다. 돈에 눈이 어두워 남부를 떠나 오하이오, 뉴욕, 미시간, 펜실베니아로 갔던 흑인들은 그들이 노예시절 향유하던 “권리들”, 즉 일년에 8개월만 일하고 4개월은 사냥과 낚시를 할 수 있고 백인 주인이 그들의 모든 병원비를 지불하며 숙소와 음식을 제공받는 그러한 권리들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갑자기 직면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현실에 충격을 받은 흑인들은 공산주의 성격의 흑인향상협회를 조직하여 흑인들이 “해방되기” 전에 부여받았던 노예로서의 권리들을 되돌려 줄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러한 캠페인의 캐치프레이즈는 “흑인들은 아직도 억압받고 있으며 노예 상태에 있다.”는 것이다. 이 말이 믿어지지 않거든 “뿌리”라는 TV프로그램을 한 번 보라.
이와 같은 것들은 미국의 정치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분석하는 데 매우 유용하다고 생각된다. 오늘날 미국에서 게이해방 및 여성해방에 사용되고 있는 해방이라는 단어는 실은 지역교회의 해방에 사용되었던 단어였다. 즉 지역교회는 그 어떤 압력으로부터도 자유(해방)하다는 의미로 쓰였었던 것이다. 팔레스타인 “해방”기구(1979)는 테러와 시민의 암살을 목적으로 하는 무장게릴라단체이며 때로는 전쟁에도 개입한다.
미국의 남부 “기독교” 지도자 회의는 이 단체를 지지한 반면에 KKK단이 “테러리스트들의 전술”을 쓰고 있다고 비난했다. 1945년 미국이 나치 치하로부터 억압받는 유럽 국민들을 “해방”시켰을 때 곧이어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던 아이젠하워 장군은 러시아 국민들을 러시아에 있는 수용소로 되돌려보내 처형당하도록 방치했던 것이다. 수많은 소련군 포로와 연합군 포로들이 그들의 의사에 반해서 본국으로 “송환”되어 대량으로 학살을 당했다. 아이히만이 히틀러를 위해 동일한 짓을 했을 때는 본국송환 대신 “대참사”로 여겨졌었다. 수많은 러시아인들이 스탈린과 레닌은 그 누구도 “해방”시키지 않았다고 생각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해방이라는 단어를 가장 마귀적으로 사용한 것은 칼 맑스가 아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점령군이 된 연합군 사령부였다. 얄타, 테헤란 및 오타와에서 체결된 루즈벨트와 스탈린 사이의 협약에 의해 1억 2천만 명이나 되는 비무장 민간인들이 (루마니아, 유고, 헝가리,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폴란드 및 체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공산독재자에게 넘겨졌으며 그것도 자기 국민을 1000만 명이나 학살했다고 고백한 독재자에게로 넘겨졌던 것이다.
이것을 해방이라고 부른다면 이런 마귀적 해방도 있겠는가? 생각해 보라. 이 독재자는 전쟁당사국도 아니고 억지로 전쟁에 개입하게 된 핀란드와 폴란드 같은 나라마저 공격을 가했다. 본국송환 작업은 히틀러의 최고사령부와 강제수용소의 비밀경찰에게는 한 마디의 상의도 없이 자행되었다. 뉴렘베르크 전범 재판이 진행되었을 때 연합군 본부의 직원들은 히틀러와 아이히만이 자행했었던 그 일들을 수행하고 있었다. 즉 자신들을 고문하고, 투옥하고, 죽이게 될 그러한 공산체제하로 원하지도 않는 사람들을 배에 실어 보내는 것이었다. 뉴렘베르크 소송자 명부에는 중요한 사람 몇 명이 빠
져버렸다. 왜냐하면 뉴렘베르크의 전범들은 “전쟁을 일으킨”(그래서 평화를 파괴한) 죄와 “인류를 대적한 범죄”에 대해 재판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스탈린과 그의 참모들 역시 폴란드와 핀란드를 선전포고도 없이 공격하지 않았는가? 이들 역시 전범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스탈린은 폴란드 장교는 물론 자기 나라의 장교들도 학살하였다. 스탈린은 모든 인민을 위해 “해방전쟁”을 수행하고 있다고 주장을 하면서 제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었다. 도대체 아이젠하워는 무슨 짓을 한 것인가? 그가 4만 명의 이탈자들을 강제로 본국으로 송환했을 때 그가 저지른 인권유린은 뉴렘베르크 전범의 범죄와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좋은 언론”만 등에 업고 있으면 범죄자도 훌륭한 사람으로 둔갑해 버리니 실로 놀라운 일이다.

스페인, 이탈리아, 콜롬비아에서는 로마 카톨릭 이외의 다른 어떤 종교도 공개적으로 허용되지 않았었다. 오늘날에도(1979) 카톨릭 이외의 모든 종교는 “이단”(종파)으로서 등록을 해야만 한다(아르헨티나).
프랭클린 루즈벨트가 미국을 제 2차 세계대전에 개입시켰을 때 (물론 그는 미국의 청년들이 “다시는” 그 어떤 다른 전쟁에 참여하기 위해 파병되지 않을 것을 선언하였다), 그는 지구상의 모든 남녀노소는 자유를 향유할 권리가 있음을 역설함으로써 자유를 일반화시켰던 것이다. 그는 두려움과 결핍으로부터의 자유와 표현과 경배의 자유를 내세웠다. 이와 같은 디즈니랜드 철학을 어디서 끄집어내었는지는 실로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시간이 존재한이래 그 어떤 사람도, 하나님도, 마귀도, 역사도 그 어떤 인간을 두려움으로부터 면제시켜준 적이 없다. 실로 어리석은 생각임에 틀림없다. 이상하게도 미국 국민은 노만 록웰이 이 “네 가지 자유”에 관해 그린 일련의 그림들을 보면서 그들이 심오한 진리라도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였다. 하지만 두려움으로부터의 자유는 환상에 불과하며 결핍으로부터의 자유는 순전한 픽션일 뿐이다.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생명보험이나 화재보험이나 의료보험에 들 리가 없다. 그리고 자기 가족의 안전을 위해 두려움을 갖지 않는 사람은 천치바보일 뿐이다.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자유(해방)에 대한 어리석은 개념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아름다운 미국”(America the beautiful)이라는 찬송시를 쓴 사람이 지금까지 살아있어서 “인간들의 눈물로 얼룩진” 미국의 도시들을 바라본다면 어떤 생각을 할 것인가? 그는 하나님의 은혜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사람들보다 자유와 해방을 믿는 사람들에게 더 크게 내려진다고 착각했을 지도 모른다고 평가한다면 잘못일까?

성경은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고후3:17)고 말씀하고 있다. 성경으로 이 땅의 정부들을 판단해 보건대(그리스도인은 모든 것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성경을 사용하며 이는 옳은 것이다.) 인간들은 하나님의 영을 거역하고 또 슬프게 하고 있기 때문에(행7:51, 엡4:30) 자유를 잃어버리는 것이다(갈5:13- 17).
참다운 자유는 하나님께 근원을 둔 자유이며(요8:32), 자유의 정확한 정의는 하나님의 말씀에 나와있다. 이 자유라는 단어는 인간의 동물적 자극과 반응(파블로프의 실험) 및 진화된 동물적 본능보다 더 높은 권위는 없다고 주장하는 무신론자, 공산주의자 및 불가지론자들이 함부로 사용할 수 있는 용어가 아니다. “자유”와 “해방”이란 단어는 불가지론자나 무신론자에게는 거짓말하면 배당이 생긴다는 사실을 발견한 교활한 동물이 남용하는 조건지워진 반응에 지나지 않는다.
미국의 독립선언문에 자유는 창조주께서 부여해 주신 것이라고 되어 있다. 자유는 책임을 회피하거나 다른 사람의 돈과 재산을 훔치려 하는 방종자의 머리 속에서 떠오르는 철학적 개념이 결코 아니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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