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신약교회사 분류

로마카톨릭의 피묻은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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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5년 01월호>

이 책의 내용은 많은 사람들에게 믿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입장은 역사적으로, 성경적으로 증명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앞으로 언급할 인용문들을 주의깊게 읽기 바랍니다. 성경적 기독교를 파괴시키기 위해 사탄이 어떻게 활동하며, 어떻게 숨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프로테스탄트들이 오늘날 황량할 정도로 약해진 이유 중의 하나는 역사가 은폐되었다는 사실에 기인합니다. 즉 책들을 고쳐 쓴 것입니다. 모든 것을 잊는 데는 약 두 세대면 족합니다. 특히 반복해서 언급되지 않을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것은 2차 세계대전 때의 대학살과 유사합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게도 유대인들은 학살에 관한 영화를 텔레비젼에 계속해서 방영하기 위해 방송망에 압력을 가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사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기억하게 됩니다. 그러나 주지하는 바와 같이 어떤 것들은 교묘하게 은폐되고 잊혀져 버렸습니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우리 앞서 로마 카톨릭에 대항했던 사람들이 지불했던 끔찍한 대가와 그들의 유산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많은 젊은이들은 종교재판이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합니다. 그럴 때 로마 카톨릭은 자신을 방해하는 모든 것을 파괴시킬 만한 권세와 기만과 잔인성을 가지고 활동합니다. 과거의 범죄행위에 관해 우리가 듣고 생각하는 것을 사탄은 둔화시키고자 합니다. 우리들은 현재 그런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합니다. 그런 일이 가능합니까?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은 햇볕을 받으며 자라는 작은 풀잎새들과 같습니다. 커다란 잔디 깎는 기계가 그들을 향해 다가오고 있습니다- 찬송가를 부르면서! 그것이 로마 카톨릭입니다. 이런 것들을 말하기란 힘듭니다. 그러나 로마 카톨릭은 그들의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라고 진심으로 믿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들은 교황이 지상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자라고 믿습니다. 로마 카톨릭에는 “일시적 권력”(temporal power)이라는 교리가 있습니다. 일시적 권력이란 교황이 지상의 모든 사람들과 그들의 재산과 종교를 통제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예수회가 이 “일시적 권력”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전 세계적인 독재를 의미합니다. 그들에게는 이것만이 유일한 목표이며 그들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복음의 원수들로 간주됩니다.
역사가 은폐되었다고 전에도 말한 바 있습니다. 유혈이 낭자한 바티칸의 역사를 살펴봅시다. 그렇게 되면 바티칸이 큰 창녀인지 아닌지를 독자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정보를 얻게 될 것입니다. 다시 역사를 거슬러 가서 성 바돌로매 대학살 때 프랑스에서 발생한 일과 그 후에 아일랜드에서 일어난 일을 살펴봅시다. 그런 다음에 2차 세계대전 때 유고슬라비아에서 일어났던 일을 살펴볼 것입니다.
1572년 8월 22일에 피로 물든 성 바돌로매 대학살이 시작되었습니다. 그것은 프랑스 내의 프로테스탄트 운동을 파괴시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프랑스 왕은 교활하게도 그의 여동생과 수석 프로테스탄트 지도자인 콜리그니(Coligny)제독 간의 결혼을 계획했고 축하행사와 거대한 축제가 있었습니다. 4일간의 축제 이후 군인들에게 신호가 전달되었습니다. 자정에 도시 내의 모든 프로테스탄트의 집들은 즉시 강제로 열려졌고, 제독은 살해되었으며 그의 몸은 창문에서 거리로 던져졌습니다. 머리는 잘려서 교황에게 보내졌고, 또한 그의 팔을 잘라서 3일 동안 거리에서 끌고 다녔으며, 마침내 도시 외곽에 발목을 묶어 매달아 두었습니다.
또한 그들은 다른 많은 유명한 프로테스탄트들을 살해했습니다. 처음 3일간에 만 명 이상이 살해되었습니다. 시체는 강에 던져졌고 피가 거리를 흘러 강까지 미쳤으며 피의 강처럼 보였습니다. 그들의 마귀 같은 분노는 너무도 격렬해서 심지어는 카톨릭에 대한 믿음이 그렇게 강하지 않다고 의심되는 자신의 동료들까지도 살해했습니다. 이런 파괴행위는 파리에서부터 전국 곳곳으로 퍼져 나갔고 8천 명 이상이 살해되었습니다. 극소수의 프로테스탄트들만이 그 박해자들의 분노에서 피할 수 있었을 뿐입니다.

유사한 학살이 1641년 아일랜드에서도 발생했습니다. 공모자들은 예수회 창설자인 이그나티우스 로욜라 축제일인 10월 23일로 날을 정했습니다. 그들은 나라 전체에 걸친 전국적인 소요를 계획했고 모든 프로테스탄트를 한꺼번에 죽이고자 한 것입니다. 계획이 진행되는 동안 프로테스탄트의 경계를 완화시키기 위해 그들에게 과다한 친절을 베풀었고, 공모자들은 아침 일찍 무장을 했으며, 그들이 발견한 모든 프로테스탄트는 즉시 살해되었습니다. 자비라곤 없었습니다.
어린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모두 살해되었고 심지어 병약자까지도 희생되었습니다. 그들은 너무도 놀란 채 잡혔습니다. 여러 해 동안을 평화롭고 안전하게 살았었으나 그때는 도망갈 곳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자기 이웃들과 친구들, 심지어는 친척들에게 살해된 것입니다.

차라리 죽음이 가장 두렵지 않은 존재였습니다. 여자들은 기둥에 묶여서, 허리까지 벌거벗겨진 채, 가슴이 도려내지고 피를 흘려 죽을 때까지 그대로 내버려졌으며 임산부들은 나뭇가지에 묶여졌고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들을 꺼내서 개들에게 먹이로 던져졌으며, 그들의 남편들은 억지로 이 광경을 봐야만했습니다.
여러분이 방금 읽은 내용은 완전히 문서로 증명된 것이며 팍스의 순교사에 기록된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프랑스와 아일랜드 내의 그리스도인들에게 가한 바티칸의 이런 악마적인 학살은 형태가 유사합니다. 공격이 있기 전에 로마 카톨릭은 우호적이고 친절했는데, 이는 회유 기간을 두었던 것입니다. 두 경우 모두 그리스도인들은 안심하고서 경계를 풀고, 바티칸이 변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의 생명을 앗아간 판단이었으며 그 대가로 목숨을 내놓아야만 했습니다. 여러분이 방금 읽은 것을 잊어버리지 않기를 하나님께 기도드리는 바입니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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