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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교회사 분류

비성경적인 유아세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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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2년 07월호>

성경을 부인하여 성경을 변개시키는 조류 속에서 아무도 아기들이 침례에 합당한 대상이라고 생각할 만큼 우둔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카톨릭은 사람들을 지배하기 위해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곧 세례를 베풀므로써 나중에 “재침례를 받지” 못하게 했다. 이 지독한 거짓말을 확립하기 위해 어거스틴은 유아세례가 성경적이며, 유아 때 이미 세례를 받았기 때문에 「성인침례」는 이단적이라고 가르쳤다.”



모든 복음 사역자가 다 “유아세례”를 주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물과 세례의식이 구원의 일부라는 생각에 확실히 미혹되어 있다. 이 의식은 간단히 말해서 (50,000,000의 카톨릭 신자, “그리스도의 교회” 장로들, 감리교인들, 장로교인들, 성공회 신자들, 개혁 교회들과 루터교회에서 지지하는데) 일정한 공식에 의해(마28:19-20, 행2:38) 물세례나 물침례를 주면 죄인에게 마술적인 변화가 일어나서 하나님의 제 3위인 성령으로 거듭남으로 “그리스도 안의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는 것이다.
이 의식의 성경적인 근거로 제시하는 것은 요한복음 3:5이 물“침례”를 말한다는 것으로서 이러한 주장을 따른다면 우리는 카톨릭 교회(세례교리 문답)나 성공회(39개 조항), 장로교(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감리교(편람) 및 캠벨파(그리스도의 교회) “장로들”의 신조들을 믿어야 할 지경에 이른다. 요한복음 3:5이 육신의 출생을 말한다(창1:20, 잠5:16-17, 요3:6). 더욱이 우리는 로마서 6:1-3과 에베소서 4:5도 “물”이라는 말이 두 서신서의 어느 곳에도 나타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물침례에 관련된 구절이라고 믿어야만 할 것 같다. 이와 같이 이 구절들을 잘못 취급하게 한 대표적인 성경구절은 사도행전 2:38로서 이 구절을 가지고 로마서 6장, 요한복음 3장, 갈라디아서 3장, 에베소서 4장, 디도서 3:5에 적용하는 것에서 기인한다. 이 터무니 없는 해석(모든 로마 카톨릭의 해석은 사사로운 해석이다)과 성경 구절들을 변개시키는 것은 2세기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계속해서 이어져 왔다. 2세기의 알렉산드리아 성경 변개자들이 신약을 진보적인 계시로 고치면서 그 후예들도 계속해서 그 거짓말을 환란시대에 들어갈 때까지 가르칠 것이다. 사도행전 15:9,11은 분명히 물침례가 구원과 관계없음을 보여 주며, 베드로전서 3:19-21에서 물침례는 구원의 모형일 뿐이라고 했으며, 할례처럼 “표적”이나 “인친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롬4:11), 에베소서 4장이나 그 주변에 물이라는 말은 없으며, 로마서 6장이나 그 주변에도 역시 물이라는 말은 없다. 이방인들은 구원받은 「후」 물침례를 받았으며 (행10), 복음은 물침례를 배제한 교리로(고전1:14-16) 규정되었고(행15:1-6), 그 규정된 복음은 “믿음”을 실행하는 “순종”이었다(롬10:9-10; 1:5; 16:26). 그런데도 북아프리카의 알렉산드리아에서 형성된 이 의식은 17세기 동안 교회사에서 “기독교” 교리화 되어 20세기에 이르렀다.
대부분의 교회사가들에 따르면 [모샹(Mosheim), 로빈슨(Robinson), 아미타지(Amitage), 베더(Vedder), 뉴만(Newman) 등등] 200년까지는 어른 성도들만 침례를 받았다고 전해진다. 터툴리안(Tertulian)은 216년에 말하기를 성인들만 침례에 합당한 대상이라고 하였고, 후에는 물침례를 중생의 수단으로 거부하였으며, 또한 중생의 수단으로 베푸는 물침례를 사탄의 가르침이라고 하였다. 로마의 클레멘트(Clement)는 96년경에 말하기를 침례를 받기 위해서는 먼저 교육을 받고, 그가 침례를 받을만한지 심사하였다고 한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Clement)는 지옥의 구약 성도들이 그리스도나 사도들에게 침례를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할 만큼 멍청했지만 유아세례를 베풀지는 않았다.
성경을 부인하여 성경을 변개시키는 조류 속에서 아무도 아기들이 침례에 합당한 대상이라고 생각할 만큼 우둔하지는 않았다. 알렉산드리아의 디오니시우스(Dionysius)는 신앙고백이 있은 후에 침례를 베풀었다. 쁘와띠에의 힐라리(Hilary), 아타니시우스(Athanasius), 달마티아의 제롬(Jerome), 카이사랴(Caesarea)의 바실(Basil)은 공개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 않는 한 아무에게도 침례를 베풀지 않았다. 크리소스톰(Crysostom), 나지안젠의 그레고리(Gregory), 밀란의 암브로스(Ambrose)도 같은 말을 했다.
역사가들은 90-300년 사이에는 아무도 유아 침례를 베풀지 않았다고 보는데,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와 오리겐은 이에 대한 교리들을 가르친 점이 주목된다. 필립 샤프(Philip Schaff)는 오리겐에게 유아세례를 인정한 책임이 있다고 말한다. 오차아드(Orchard)는 유아세례가 “카톨릭” 교리로 처음 나타난 것이 아우렐리우스 어거스틴(Aurelius Augustine)의 글에서라고 하는데, 그는 오리겐 처럼 외경을 담은 “칠십인역”이 영감이 있다고 생각하였던 사람이었다.
도나티스트(Donatists)라는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은 성인들에게 “재침례를 주어서” 죽임을 당했던 것에 비해, 어거스틴은 누미디아 종교회의(415)에서 유아세례를 거부하는 사람들을 저주하였다. 어거스틴의 “유아”에 대한 관심은 잘 정립되었는데 그 이유는 도나티스트(Donatists)들이 성인에게 다시 침례(재침례)를 베풀 때 침례에 순종한다는 것은 처음의 세례(유아 세례)가 의미 없음을 세상에 선포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왜 그런가? 어거스틴에 따르면 참되고 유일한 침례는 카톨릭 교회의 물세례이기 때문에 카톨릭 교회 밖의 어떤 침례도 이단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재침례를 받으면 그것은 카톨릭의 물세례가 「중생시키지」 못함을 공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카톨릭은 사람들을 지배하기 위해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곧 세례를 베풀므로써 나중에 “재침례를 받지” 못하게 했다. 이 지독한 거짓말을 확립하기 위해 어거스틴은 유아세례가 성경적이며 유아 때 이미 세례를 받았기 때문에 「성인침례」는 이단적이라고 가르쳤다.
칼타고 종교회의(The Council of Carthage, 401)는 어거스틴을 지지하여 그의 신학적 망상을 “정통” 교리로 인정하였다[415년 멜라 종교회의(The Council of Mela)에서]. 789년 샤를마뉴(Charlemagne)는 유아세례를 국법으로 규정하였다. 그러나 샤를마뉴가 태어나기 오래 전에(413) “카톨릭” 교회는 데오도시우스(Theodosius)와 호노리우스(Honorius) 황제들에게 유아세례를 받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이나 재침례를 받는 성인들에게 사형을 선고하도록 하였다. 어거스틴은 유아세례를 믿지 않는 사람[프랭크 노리스(J.Frank Norris), 빌리 선데이(Billy Sunday), 죠지 트루엣(George Truette), 디한(Dr. DeHaan), 찰스 스펄젼(Charles H. Spurgeon), 잭 하일스(Jack Hyles), 모르드개 햄(Mordecai Ham), 쟈니 캐시(Johnny Cash)와 달리 파튼(Dolly Parton)등과 같은 사람]은 누구나 「비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 수중 무덤에서 모비딕보다 더 강력하고 죠스보다 더 잔인한 짐승이 나타난다(욥41:31-33). 그 짐승은 머리에서 발까지 물을 떨구며 415년에 지상에 올라온다. 이후의 물뿌리는 의식에서(500-1980), 물세례는 침례교도를 제외한 모든 주요 인가된 종교조직에 의해, 중생(행2:38)과 죄를 씻는(행22:16) 성경교리로 인정된다. 여러분은 그리스 정교회와 로마 카톨릭 교회, 루터교회, 성공회, 개혁교회, 장로교회, 감리교회의 모든 교리 문답에서 이 교리를 볼 수 있다. 이 비성경적인 이단교리 하나가 소위 “미사” 다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한 어떤 다른 교리 보다(벧후3:16) 더 많은 유혈사태를 초래했다는 것은 주목해야 할 사실이다. 이것은 16세기 동안 교회국가를 유지하는 수단이었다. 즉 영국(성공회), 독일(루터교), 프랑스(카톨릭), 스페인과 이태리(카톨릭), 이디오피아(콥트교회), 그리스(정교), 러시아(1918년까지), 그리고 미국의 청교도 “선조들”이 채 100년을 보내기 전에 나타난 존 칼빈의 청교도 - 개혁 형식을 본뜬 교회국가 (Church State) - 가 세워졌는데 그와 더불어 고대 카톨릭 의식이 부활하여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을 “이단들”로 화형시켰다.
유아세례를 교회가 받아들임으로써 교회국가는 다음 몇 가지 일을 교회에 보장한다.
1. 많은 수의 ‘신자들’이 아기를 교회에 데려오지 않으면 죽음이나 파문의 위협을 받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아기를 데려와야 한다(정치적인 협박이 없을지라도 단지 부모에게 아기가 지옥이나 적어도 “림보”에 갈 것이라고 말하면 통치할 수 있는 것이었다).
2. 가족들은 육신의 출생부터 교회에 연결되기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지옥을 향해 가면서도 가장행렬을 하는 죄인들을 “그리스도인”으로 보장해 주는 것이다. 이처럼 무지한 이들은 물이 영적인 탄생을 가져온다고 생각하도록 기만당하고 있다.
3. 교회는 ‘신자들’의 양심을 절대적으로 통제하는데 이는 ‘신자들’이 물세례 또는 물침례를 받고 “개종한” 날짜를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침례는 어떤 사람에게도 분명히 구원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죄인들은 자신들이 사는 날 동안 구원받았는지를 확신하지 못한다. 이것은 나아가서 그 교회 신자들이 구령할 줄 모르는 원인이기도 한데,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취한 사역을 이해하고 믿는 성인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유아세례를 베푸는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구원은 아기가 “신부”에게 무의식적으로 복종함으로 일어난다고 한다. 즉 구속이 무엇인지 물을 뿌리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기도 전에 소위 구원받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유아세례는 (정확히는 “물을 뿌리는 것”인데) 지난 16세기동안 거듭나지 못한 로마 카톨릭 교회를 실질적으로 단합시키는 힘이 되어 왔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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