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신약교회사 분류

대배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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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6년 08월호>

라오디케아 교회시대(20세기)의 성서공회들과 밥 존스 대학교 교수진(1940-1980)들이 사용하는 네슬, 알란드, 메츠거 및 니다의 “과학적 헬라어 원본들”이라고 불리는 필사본들에는 다음과 같은 누룩들이 들어 있다.

필사본에 숨겨진 누룩

a. 다윈주의 :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부인하는, 종교적 진화론을 만들어 냈음.
b. 마르크스주의 : 혁명적 인문주의를 만들어 낸 장본인으로 자본주의자들 혹은 “러시아 황제들”이 10세기 동안 했던 것보다 1세기 동안 더 많은 사람들을 고문하고 죽였음.
c. 로마 카톨릭 : 수없이 많은 성경대로믿는 그리스도인들을 죽였음.
d. 사회주의 : “재림 이전에 적그리스도의 치리하에서 죽음과 지옥의 왕국(사 28장, 계 6장)을 가져오려고 시도하고 있음.
바로 이 네 가지 요소가 필라델피아 교회시대(계 3:8-10)를 종식시켜버린 “올스타팀 멤버”(1881-1884)라고 할 수 있다.
이 네 가지 사상, 즉 “착각”(사회주의), “새디즘”(마르크스주의), “정신이상”(다윈주의), “사탄주의”(로마 카톨릭)로 무장한 성경개정위원회는 유럽과 미국의 주요 보수주의자들(그린, 메이첸, 로버트슨, 샤프 등)의 적극적인 환영을 받았다. 그러나 네슬은 1980년 자기들이 최고의 본문이라고 주장한 그 본문에 (1890년부터 1976년까지 그대로 고수하였음) 표준원문에서 상당수 구절을 슬쩍 도둑질해다가 첨가시킴으로써 자신들의 본문이 잘못된 것임을 스스로 입증하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슬은 그들이 처음부터 사용하던 로마 카톨릭의 알렉산드리아 필사본들을 그들이 펴내는 모든 헬라어 성서의 주요 권위로 붙들고 있다. 오늘날의 네슬의 본문은 기본적으로 1884년의 웨스트코트와 홀트의 본문이다. 이 본문은 독일과 영국의 종교개혁 성경들에 들어 있는 본문이 결코 아니다.
앞서 언급한 (지난 호에서 언급한 1-3번을 말함-편집자 주) 그 세 가지가 합쳐져서 그리스 도의 몸 안에서 일어났던 가장 큰 배교가 발생하게 되었다. 이것이 기독교 교육에 미친 해악은 거의 계산이 불가능할 정도로 엄청난 것이었다. 소위 기독교 대학 안에서 이런 것들을 배운 젊은 설교자들이 이로 인해 얼마나 커다란 영향을 받았는지는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나 알려지게 될 것이다.
웨스트코트와 홀트의 개정 작업이 얼마나 사악하며 무모한 무지에서 나온 것이었는가를 염두에 둔다면 이에 대한 그 어떤 비판도 심한 비판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두 사람의 무지와 오만이 빚어낸 엄청난 악영향을 염두에 둔다면 딘 버간의 다소 거친 비판은 매우 유순한 비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들의 무지와 오만은 20세기에 그들을 옹호하고 그들의 “역작”을 지지하는 자들에게도 전염되었다.

답변하지 못하는 사람들

이 성경개정위원회가 만들어 낸 왜곡된 성서들(RV, ASV, NIV, NASV)은 신격의 제 3위이신 성령에 의해 “암흑시대 부패역본”으로 판명되었다. 홀트나 샤프(ASV, 1901)는 누구에게 성경을 가르칠 수 있을 만큼 영어 성경에 대해 잘 알고 있지 못했다. 그들은 자기들의 작품에 제기된 합리적인 반론에 대해 합리적인 답변을 한 번도 하지 못한 사람들이었다(논리적인 답변의 기록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딘 버간, 스크리브너, 호스키어, 그리고 기타 다른 학자들이 성경개정에 대해 제시한 모든 반론에 대해 홀트나 웨스트코트는 100년 동안 한 번도 답변을 해보려고 시도해 본 적도 없다. 오늘날까지도(1983) ASV 개정위원회에 가담한 그 누구도 그들에 대해 제기된 합리적인 반론에 대해 자신들의 주장을 옹호하는 책을 단 한 권도 쓴 적이 없다. 더 나아가 이들 중 그 누구도 본문 전달에 관한 거짓 이론, 변개된 본문,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공격, 그리고 필사본증거를 다루는 데 있어서의 그들의 무지에 대해 자신들을 방어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이 엄청난 음모와 비밀 작업은 언론 매체에 의해 은밀히 추진되었다. 다시 말해 “이름을 날려보고” 싶은 아테네 사람들(행 17:21)이 모든 일을 꾸민 것이다. 이들 언론인들은 양무리들을 도살장으로 이끌고 가기 위해 앞장 선 유다의 숫염소 역할을 한 셈이다. 그들은 “잔인한 조상들”로부터 나온 자들이었으나 장미같이 향긋한 냄새를 풍기고 등장하였으며 교회사에서 “믿음의 수호자들” “말씀에 충실했던 믿음의 거성들” “축자적으로 영감받은 원본을 담대하게 옹호하는 선구자” 등으로 평가받게 된다. 그러나 이들에게 가장 합당한 평가는 “가장 위험한, 미혹당한 배교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이들이 “자유주의자”였거나 “현대주의자”였더라면 그리스도의 몸은 그 피해의 반 정도만을 입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들은 신약에서(막 1장, 막 5장, 행 16장, 행 19장) 마귀에게 사로잡힌 자가 믿었던 것처럼 그리스도의 신성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자들이다. 그러기에 더 많은 사람이 이들에게 속아넘어가고 만 것이다. 이들은 성경이 다윈의 진화론에 일치하지 않는 무엇을 말하는 경우 그것을 무시해 버렸고, 바티칸의 에큐메니칼 운동이나 사회주의 등에 반대하는 성경 말씀도 믿지 않았으며, 구원받지 못한 독일어 및 헬라어 문법 학자들의 의견을 성경보다 더 존중했다.
알렉산드리아의 이단들은 그들이 옳다고 믿는 바와 성경이 다르게 말하고 있으면 늘 성경을 버리는 쪽을 택했다. 그들은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그대로를 믿는 대신 그들이 보기에 성경이 “의미”한다고 생각하는 바 그것을 믿어 왔다. (예를 들면 사도행전 12장의 “이스터”를 “유월절”로 믿으며 계시록 22장의 계명들을 “그들의 두루마기를 빠는”으로 믿는다.)

카톨릭의 확고한 지지자
웨스트코트와 홀트

드디어 예수회는 두 명의 확고한 동맹자를 얻게 되었다. 웨스트코트와 홀트는 마리아 숭배에 대해 매우 긍정적이었기 때문이다. 다윈 역시 이 두 사람을 자기 편에 갖추게 되었다. 이 두 사람은 공개석상에서나 개인석상에서나 다윈에 대해 이야기한 적은 없지만 다윈의 책을 즐겨 읽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이 두 사람은 도나티스트, 노바티안, 몬타니스트, 그리고 “마니키안들”과 같은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에 대해 오리겐 - 콘스탄틴 - 유세비우스 - 어거스틴이 취한 입장을 그대로 답습했다. 웨스트코트와 홀트는 성사(sacraments)를 신봉하는 자들이었으며 침례에 의한 중생이 신약교회의 교리라고 생각했다. 이 두 사람은 아담과 이브가 실제로 “타락”했거나 에덴의 동산에서 실제로 살았던 사람이라고 믿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그들이 성경개정위원회에서 만들어 내 퍼뜨린 이론들은 도를 지나쳐 거의 광기에 이를 지경이었다. 그들이 “더 긴 본문과 더 짧은 본문”에 대해 주장한 이론은 거짓이다. 그들이 만들어 낸 “루시안 개정본”이론도 거짓이다. “고유의 개연성”에 대한 이론도 거짓이며 “계열 본문들”에 관한 이론은 넌센스에 불과하다. 이런 엉터리 이론들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미국과 영국의 신학교들의 “대다수의 보수주의 배교자들”로 이들은 스펀지가 물기를 빨아들이듯이 이 맹독성 이론을 빨아들여 세뇌되고 말았다. 이 이론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객관적인 분별력을 상실한 채 다음의 요소들을 완전히 무시하고서 그런 결정을 내렸던 것이다.
1) 말씀의 전파 및 성경 교육의 원천과 전개 과정과 결과와 관련된 역사적 사실들(행 11,13장).
2) 그들이 말하는 “권위있는 헬라어 본문”은 지난 1200년 동안 교황, 종교재판소, 추기경, 예수회, 카톨릭 국왕들이 암흑시대에 사용하던 것이었음.
3) 바티칸 사본의 기원과 보존에 관한 사실들.
4) 종교개혁 본문에 대한 성령의 증거.
5) 웨스트코트와 홀트는 이 종교개혁 성경의 보존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순교했다는 사실을 무시한 채 자기들의 헬라어 성서를 만들어 냈음.

라오디케아 시대의 “권위역본”

웨스트코트와 홀트가 만들어 낸 “성서”의 등장으로 라오디케아 시대가 열렸고 뒤를 이어 온갖 “성서들”(ASV, NASV, RSV, NRSV, NIV, NEB, NWT, TLB, TEV 등)이 등장했기 때문에 우리는 이 “성서”를 “라오디케아 시대의 표준역본”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 “성서”는 라오디케아 시대의 “권위역본”으로 기독교 학자들의 타락을 상징하는 기념비이며 배교의 시대를 여는 이정표인 것이다.
이 헬라어 원문이 1970-1982년 사이 밥 존스 대학과 펜사콜라 기독대학에서 추천했던 NASV의 저본인 것이다. 이 원문이 로마 카톨릭의 예루살렘 성경(1972)과 로마 카톨릭의 “어메리칸” 성경(1970) 그리고 암흑시대의 예수회 성경(1582)의 저본이다. “근대”(modern times)가 웨스트팔리아 강화조약(1648)으로부터 시작된다고 하면 로마 카톨릭에게는 “근대”가 시작되지 않은 셈이다. 왜냐하면 1648년 이래 웨스트팔리아 강화조약을 유효한 조약으로 인정한 로마 교황은 한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해서 이 본문의 지지자들(모든 근본주의자들과 보수주의자들)은 자기도 모르게 잔인한 음녀인 로마 카톨릭과 손을 잡고 만 셈이다. 왜냐하면 이 라오디케아 표준역본은 아돌프 히틀러, 죠셉 괴벨, 피의 메리, 헤르만 괴링, 피델 카스트로,. 베니토 무솔리니, 그리고 게슈타포의 책임자였던 하인리히 히믈러에게 세례를 주고 그들을 키워 낸 종교집단이 채택하고 보급해 온 바로 그 역본이었기 때문이다. “너희는 그 열매들을 보고 나무들을 알게 되리라.”
이 라오디케아 시대의 배교는 비교를 불허한다. 메이첸, 잔, 케일, 윙클러, 세이스, 오르, 비셀, 앨리스, 워필드, 로버트슨, 샤프, 그린, 윌슨, 그리고 토레이(가끔씩) 등과 같은 보수주의자들과 “복음주의자”들이 로마 카톨릭 예수회 신부의 헬라어 원문을 가지고 영국과 독일의 종교개혁 성경들을 뜯어고치리라고 누가 감히 생각이나 했겠는가? 북아일랜드의 프로테스탄트 투사인 이안 페이슬리와 밥 존스 3세 같은 사람들이 서로 교제를 가질 것이라는 사실을 누가 예상할 수 있었겠는가? 그들이 설교했던 학교와 그들이 월급을 준 교수진들은 바티칸 당국의 공식 성경인 로마 카톨릭 예수회 헬라어 본문을 전세계에 보급하고 있다.

대배교의 물결에 몰락한 교회들

대배교는 성경에 예언된 대로(살후 2장) 정확히 발생했다. 이 대배교의 영향이 신약의 지역교회들에 최소화될 수 있었던 것은 신학교에서 가르친 것과는 달리 종교개혁 영어 본문(1611)을 고수한 신실한 목사들 때문이었다. 장로
교회들과 감독교회들(성공회)은 처음부터 신약성경의 원리에 입각하여 독립교회로 시작된 것이 아니었기에 이 배교의 물결에서 침몰하고 말았다. 뒤를 이어 감리교회들 역시 몰락했다(1880-1940). 남침례교단 역시 이 배교의 재앙을 피할 수는 없었다.
교단 소속 남침례 신학교에서는 권위역본을 ASV(1901)로 교체해야 한다는 압력이 가중되었다. “초창기” 교회들 중 몇몇은 저항하였다. 그러나 프랭크 노리스의 사역이 없었더라면 남침례 교단의 모든 교회가 “과학적 해석학” “비평적 평가” “고유의 개연성” “최근의 고고학적 발견” 등에 미혹되어 대배교에 전부 휩쓸려 버렸을 것이다. 사실 남침례교단은 주일학교 교재에 ASV를 사용하더니 곧이어 RSV를 사용하기에 이르렀다. 이 두 “성서들”은 동일한 헬라어 원문(NIV와 NASV에 동일하게 사용됨)에서 나온 것으로 아무런 차이가 없다. 1970년경에 이르면 남침례교단총회는 히피들과 시골 여인들이 술취한 변호사들과 은사주의 실업가들과 함께 사교모임을 갖는 모습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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