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난해구절 해설 분류

“죄를 용서하나 깨끗케 되지는 아니하리니”

컨텐츠 정보

본문

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6년 12월호>

『자비를 수천 대까지 간직하며, 죄악과 허물과 죄를 용서하나, 범법자가 결코 깨끗케 되지는 아니하리니, 그 조상들의 죄악을 그 자손들과 그 자손들의 자손들 삼사 대까지 미치게 하느니라.” 하시니라』(출 34:7).



본문에 대해 <관주 톰슨 성경> 주석은 다음과 같은 여러 가지 번역들을 제시하고 있다.

<관주 톰슨 성경>
“여호와의 이름을 반포하는 것은 곧 하나나님의 계시와 임재를 말한다. 유대 학자들은 이 말씀을 하나님의 품성을 계시해 주는 열쇠로 간주한다. 이 말씀 가운데는 ‘의로운 사랑’이라는 뜻으로 용서와 보응 사이의 놀라운 균형이 있다.”

<오픈성경>은 아무 설명도 없이 <개역한글판성경>의 번역을 그대로 인용하고 있다. <개역한글판성경>은 본문을 이상하게 번역함으로 <킹제임스성경>의 진리들을 가리고 있다.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나 형벌 받을자는 결단코 면죄하지 않고 아비의 악을 자여손 삼사대까지 보응하리라”(<개역한글판성경>, 출 34:7). <오픈성경>과 <관주톰슨성경>은 모두 본문의 참조구절로 단지 신명기 5:9만 제시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본문의 참조구절은 히브리서 10:4의 『이는 황소들과 염소들의 피로는 죄들을 제거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라』는 말씀이다. 그래서 이 구절들은 구약과 신약의 “용서”(forgiveness)의 차이를 보여주는 아주 중요한 구절들이다.
본문의 “용서”는 요한복음 20:23에서 볼수 있듯이 신약의 “죄사함”(remission)과 유사하다. 구약에 나타난 “용서”의 의미는 다양하다. 우선 “덮는다”는 뜻이 있는데 이는 잘못된 행동과 죄과를 덮어준다는 의미이다. 또 “들어올려 딴 곳으로 옮긴다”는 뜻이 있다. 이는 더 이상 그것을 갖고 있지 못하도록 한다는 뜻이다. 또 “나쁜 것을 멀리 던져버려 다시는 괴롭게 하지 못하도록 한다”는 뜻도 있다. 히브리서 10:17은 이 사실을 정확히 보여주는데, 이는 다음 구절(히 10:18)에서 바로 “용서”란 단어가 나오기 때문이다.
『...이는 첫 언약 때에 범죄한 것들을 구속하시려고...』(히 9:15). 히브리서 9:15은 분명히 구약에서 이 범죄들이 용서받았으나 범법자들이 깨끗케 되지는 않았다는 본문의 설명을 뒷받침 해준다. 구약 성도들은 깨끗케 되지는 않았으나 용서받았다. 이것은 분명히 신약의 용서와 큰 차이가 있음을 보여준다. 그들의 죄들은 제거되지는 않았으나 간과되었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구속(redemption)되지도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육신으로 나타나기 오래전에 구약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값없이 용서하셨으며(민 14:10,19, 시 25:18; 85:2; 78:38; 99:8 등), 이것은 “염소와 황소의 피”(히9:19)를 근거로 된 것이었다. 구약에서 이러한 용서의 예들을 충분히 찾아볼 수 있다. 요셉은 그의 형들의 악을 용서하였고(창 50:17), 다윗은 아비가일의 허물을 용서했다(삼상 25:28). 십자가 이전의 그리스도의 지상사역도 “용서”에 대한 이야기들로 가득차 있다(눅 7:42,47, 마 18:21 등).
그러나 히브리서 10:4은 이 “염소와 황소의 피”가 죄들을 “제거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말해주고 있다. 그래서 구약 성도들은 구원받았으나 영원히 거룩하게 되지는 않았다. 그들은 새로운 탄생이 없이 성도가 되었다. 그들은 약속의 근거 위에 하나님께 받아들여졌다. 용서받았으나 구속되지는 않은 것이다. 그들은 완전히 거듭나지 않고 단지 넘어갔을 뿐이다(출 12장). 이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서 온전한 제사를 드리셔야만 했던 것이다(히 10:8-10).
그래서 “죄들을 사하심으로 인하여”라는 표현이 나올 때마다 이러한 필요를 언급한다(마 26:28). “죄들을 사하심으로 인하여”라는 표현이 나오는 모든 구절은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기 전에(막 1:4) 수백년 동안 하나님께서 이미 죄들을 용서하셨다는 본문을 적절히 설명해주고 있다. 공의로우시고 거룩하신 하나님이시기에 그분은 사람들을 용서하실 합법적인 근거를 가지셔야 했고, 유일한 합법적인 근거는 마태복음 26-27장에서 비로소 그의 아들의 십자가(사 53:3-9)를 통해 역사에 나타난다. 이 근거가 나타나기까지, 임시적인 근거로 허락하신 것이 바로 “염소와 황소의 피”이다. 또한 이것은 구약성도가 하나님의 임재(셋째 하늘, 고후 5:1-10)로 직접 가는 대신(빌 1:23), 죽을 때 임시적인 장소(아브라함의 품)로 가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 준다.
하나님께서 죄들을 용서하셨고 그들을 용서하시는 근거를 가지셔야 했기에 그리스도께서 보혈을 흘리셨다. 베드로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다시 용서하셨기 때문에(눅 23:34, 예수님의 기도) 침례를 준 것이지(행 3:19), 캠벨주의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죄들을 용서받기 위하여” 침례를 준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용서하셨다는 것을 그들이 믿는다면 그들은 그 믿음을 나타내야만 했다. 그것이 바로 “죄들을 사함받은 것으로 인하여, 너희 각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으라”고 베드로가 설교한 이유이다. 또한 성경 어디에서도 물침례가 죄들의 용서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 그들은 침례받기 전에 이미 용서받았다.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은 마태복음 26:28을 히브리서 10:4과 연관시켜 갈보리 이전에는 어떠한 죄들도 사해지지(remit) 않았다고 말하는 보수주의자들이나, 마태복음 26:28과 사도행전 2:38을 연결시키는 캠벨주의자의 오류에 넘어가지 말아야 할 것이다.
로마서 3:25도 구약의 피의 속죄의 근거로 하나님께서 구약에서 죄들을 참으시고 그들을 간과하셨다(행 14:16)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죄들을 없애려면(골 2:14) 반드시 “화목제물”(롬 3:25)이 나타나야만 했다. 그래서 신약의 용서는 “죄인이 순전히 은혜로 인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로부터 분리되는 것”을 뜻한다.
한 가지 기억해야 할 사실은 신구약 전체에서 용서의 근거는 우리를 향한 주님의 자비하심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비하심으로 그들의 죄악을 용서하시고 멸하지 아니하셨으며』(시 7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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