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난해구절 해설 분류

전파한 후에 버림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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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6년 03월호>

내가 내 몸을 억제하여 복종하게 함은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한 후에
도리어 내 자신이 버림을 받지 않게 하려는 것이라』(고전 9:27).

성경에서 “구원”이란 단어는 다양한 상황에 쓰인다.
예를들면 질병으로부터의 구원, 감옥에서의 구출,
미혹으로부터의 구원, 지옥의 형벌로부터의 구원 등이 있다.
그런데 구원이라는 단어만 나오면 이것을 모조리 저주의 형벌로부터의
구원으로 해석하는 것은 대단한 착오이다.


알미니안주의자들이 매우 즐겨 “사용”하는 구절이다. 의의 말씀에 능숙하지 못한 이들은(히 5:13) 적을 무찔러야 할 성령의 칼로 도리어 아군을 실족시켜 버리는(벧전 2:8) 우를 범한다.
종교개혁 시대에 프랑스의 칼빈과 화란의 알미니우스는 예정론과 자유의지를 놓고 논쟁을 벌였다. 물론 성경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지지한다. 구원받을 사람과 지옥에 갈 사람이 미리 정해져 있다는 주장은 가증스럽고 신성모독적인 이단 교리이다(<나는 그리스도인인가 칼빈주의자인가> 참조). 그런데 문제는 자유의지를 지지하는 알미니안주의자들(우리 나라에서는 감리교, 성결교, 오순절 등이 이에 속한다)이 위의 본문과 같은 구절들을 사사로이 해석하는 데 있다. 이들에 따르면 인간이 자유의지로 하나님을 택했듯이 자유의지에 의해 하나님을 버릴 수도 있으며, 인간이 구원
받은 후 재타락(backsliding)하면 지옥에 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들이 가장 즐겨 사용하는 성경 구절들은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마 24:13)를 비롯해서 상당 수에 이른다(히 3,6,10장이 대표적임). 그러나 성경의 수많은 구절이 한 번 구원받은 사람은 그 후의 행위에 관계없이 구원이 영원히 보장된다고 말씀한다(요 5:24; 10:28,29, 요일 5:12, 롬 8:38,39 등). 그리고 구원의 영원한 보장의 교리는 절대적으로 성경적이고 옳은 교리이다. 그렇다면 본문에서 “버림을 받는다”는 말은 무엇을 뜻하는가?

성경을 읽을 때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은 물론 하나님의 말씀에 더하거나 빼지 않고 있는 그대로 믿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주의해야 할 것은 “문맥”을 염두에 두는 것이다. 성경에서 “구원”이란 단어는 다양한 상황에 쓰인다. 예를 들면 질병으로부터의 구원, 감옥에서의 구출, 미혹으로부터의 구원, 지옥의 형벌로부터의 구원 등이 있다. 그런데 구원이라는 단어만 나오면 이것을 모조리 저주의 형벌로부터의 구원으로 해석하는 것은 대단한 착오이다. 예를 들어 디모데전서 2:15을 보자. 『그러나 그들이 정숙함으로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계속 거하면 여자가 자녀를 낳을 때 구원을 받으리라.』 문맥과 상관없이 이 구절을 보면 자녀를 낳지 않는 여자는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어처구니없는 결론이 나온다. 그러나 앞뒤 문맥을 살펴보면 바울은 “속임”을 언급하고 있으며, 따라서 여자가 임신중일 때 남편과 아내 두 사람이 거룩한 생활을 하면 여자가 마귀의 속임수에 빠지지 않고 그 속임수로부터 구원을 받는다는 말이다(여자들은 임신 때 몸매도 잃고 생리적 변화도 겪게 되는 등으로 인해 마귀의 시험을 받기 쉽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이 구절은 쉽게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위의 본문 역시 문맥을 본다면 쉽게 해결될 수 있다. 바울은 24절부터 경기자와 면류관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경기자는 이미 구원을 받은 자들로 상급을 위해 땀흘리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말한다. 문맥 어디를 보아도 죄인들이 하늘나라에 가기 위해 애쓰다가 잘못하면 버림받게 될 것이라는 내용은 없다. 따라서 바울이 버림을 받는다는 말은 지옥에 내던져지는 심판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받을 상급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것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한 번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은 또 다시 지옥에 갈지도 모른다고 하는 구절들을 대할 때마다 우리가 의롭게 된 것은 우리 자신의 의가 아닌 다른 사람(그리스도)의 의에 근거한 것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런데 어째서 내가 “못된” 짓을 했다고 해서 다시 정죄받아야 한단 말인가? 약 500여 구절에 달하는 그와 같은 구절들은 대개가 율법시대의 구약성도나, 환란시대를 당한 유대인 성도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들이다.
물론 구원받은 후 육신을 따라 살고(롬 8:1) 육신의 일을 도모하면서 살면(갈 5:19-21) 상도 없고 유업도 없다. 뿐만 아니라 이생의 삶까지 중단될 수 있다(롬 8:13, 고전 11:30). 이러한 구절들에 직면할 때 구원이 의심되거나 불안해지는 사람들 중 주님과의 올바른 교제 가운데 있는 사람들은 곧바로 정확한 진리에 의해 해방을 받을 수 있다(요 8:32). 그러나 자신의 삶이 육신적으로 기울어졌거나 세상을 사랑하여 타락한 상태에 있는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이단 교리에 불안해질 뿐 아니라 어떤 행위를 해야만 구원을 잃어버리지 않는 줄로 알고 엉뚱한 종교심을 발휘하게 된다. 이에 대해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경고하고 있다. 우리의 구원의 근거는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피의 대속이므로 무엇을 해야 그 구원이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위의 본문처럼 상급을 잃고 구원받은 후에 한 모든 일들이 불타 버릴(고전 3:15) 그리스도인들이 매우 많다. 이에 대한 경고의 말씀이 바로 고린도전서 9:27이다. 이 구절에서 말하는 “버림”을 받지 않으려면 바울처럼 몸을 억제하여 복종하게 해야 한다[<개역한글판성경>처럼 몸을 “치게” 되면 그것은 성경이 금하는 금욕주의가 된다(골 2:23)]. 바울이 몸을 억제하여 복종시킨다는 말은 “성령을 통하여 몸의 행실을 죽인다”(롬 8:13)는 말씀이다. 구원받은 우리 모두는 “버림받지” 않도록 육신을 따라 살지 말고 성령을 따라 살아야 할 것이다(롬 8:1).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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