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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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성도도 십일조를 드려야 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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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4년 08월호>

[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교회, 최목사님의 질문] 최근에 몇몇 교인들로부터 십일조에 대해 반복적으로 질문을 받고 평소 다른 목회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답변은 했지만 솔직히 목회자인 저도 어떻게 하는 것이 과연 성경적인지 확신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저도 혼미한데 교인들의 상태를 생각하니 걱정이 됩니다. 이목사님께 십일조와 헌금 전반에 대한 성경적인 답변을 기대하며, 저뿐만 아니라 제게 맡겨 주신 양들에게도 좋은 지침이 되기를 바랍니다.

답: 십일조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인하여 시험에 드는 성도들도 있고 혼란에 빠진 성도들도 있는 줄 압니다. 어떤 교회들은 성경적 원칙을 배제한 채 십일조를 반강제적으로 거두기도 하는데 이런 것은 모두 무지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성경적 원칙을 알게 되면 시험에 들지 않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는 믿음의 행위이기 때문에 생활이 보다 풍요해질 수 있습니다.

1. 국가와 교회는 분리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살고 있지만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빌 3:20). 우리는 하늘 나라의 백성이면서도 동시에 대한민국의 백성입니다. 우리가 가야 할 하늘 나라는 예수님께서 공중에 재림하실 때 휴거됨으로써 이루어집니다(살전 4:13-18). 이 땅에는 복음을 믿고 영이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소수지만 복음을 거절하여 거듭나지 못한 자연인들은 그 수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 두 부류가 함께 사는 것이 이 현 세상입니다. 우리가 이 나라에 사는 한 우리는 국민의 의무를 다합니다. 병역의 의무, 납세의 의무, 교육의 의무, 근로의 의무 등입니다. 국가를 운영하기 위해 정부는 국민들로부터 각종 세금을 거둡니다. 그러나 교회를 운영하기 위해 교회는 성도들에게 세금 고지서를 발부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그렇게 하라는 말씀이 없기 때문입니다.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에게 부과했던 십일조는 하나님의 일을 맡아 했던 레위인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였습니다(민 18:23-29). 따라서 레위인들은 별도의 유업이 없었습니다.

2. 십일조는 하나님의 기준이고 원칙입니다. 성경에서 십일조는 아브라함이 엘람 왕 크돌라오멜, 이방 민족들의 왕 티달, 시날 왕 아므라펠, 엘라살 왕 아리옥과 싸워 빼앗은 전리품 중에서 살렘 왕 멜키세덱에게 바친 것이 처음으로 성경에서 언급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님의 기준과 원칙을 배울 수 있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농사를 지어 거둔 곡식, 포도주, 유향에서 1/10을 하나님께 바쳤습니다(창 14:17-20). 신약에서는 주로 돈으로 십일조를 바쳤습니다. 율법을 받고 율법 아래서 율법을 지키면서 살았던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을 통하여 구속받은 신약 성도들을 비교하는 것은 율법과 은혜의 차이만큼 큰 차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율법 시대에 살았던 유대인들은 동물의 피로 죄들을 용서받을 수는 있었어도 구원받은 우리들처럼 죄를 깨끗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출 34:7). 그들은 영이 거듭나지 못했고, 성령님이 몸에 내주하시어 성전되지 못했으며, 영적 할례로 몸과 혼의 분리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기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아버지 하나님께 드리지 못했고, 신구약 성경으로 된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대사도 못되었고, 그들은 영생을 받지도 못했으며, 그들은 진리의 영의 도움으로 진리의 지식에 이르지도 못했습니다. 말을 계속 하자면 한이 없습니다.
그런데 율법 아래 살았던 그들도 그들의 수익에서 1/10을 하나님께 바쳤는데 하물며 은혜 아래서 죄를 깨끗게 씻고 영생을 얻고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살면서 기도로 구하고 응답받고 보호받는 풍성한 삶을 누리는 그리스도인들은 얼마나 더 잘 바쳐야 하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기준과 원칙을 알고 행해야 그것이 하나님께 순종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자기 수익에서 아홉은 자기가 갖고 하나만 하나님께 바치라고 하셨습니다. 성도의 수익에서 십분의 일은 하나님의 것임을 시인해야 합니다. 그것으로 시험에 들거나 부정직하게 되면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는 도둑이 됩니다(말 3:8).

3. 연보와 십일조는 다릅니다. 연보는 예배 시에 하나님께 바치는 물질입니다(출 23:15; 34:20, 신 16:16). 예배에는 찬송과 말씀과 기도와 바치는 물질이 있어야 합니다(골 3:15,16, 히 13:15). 성도는 물질과 찬양과 감사로 드리는 예배 이전에 자신의 몸을 주님께 드리는 헌신이 있어야 하며, 헌신을 합당한 예배라고 하셨습니다(롬 12:1,2). 성도가 자신의 몸을 드리지 않은 채 물질과 찬양을 드리며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하나님께 기뻐 받아들여지지 않는 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성도의 몸을 원하십니다. 성도의 몸은 그리스도의 피값을 치르고 사 주신 몸이기에 이 몸과 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려야 하는 것입니다(고전 6:19,20).
목사나 설교자들이 예배 시에 연보를 드리지 않는 것을 보는데 그들이 연보하지 않는 것은 그 연보를 자기의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연보는 교회의 몫이지 결코 담임목사의 돈이 아닙니다. 설교자가 연보하지 않는 것은 자기가 설교하고 수고비를 받을 것이기에 바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면 역시 잘못된 것입니다. 연보는 성도가(목사나 전담 사역자를 포함해서) 하나님께 바치는 물질이며 수고비는 사역자가 교회로부터 받는 물질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4. 십일조는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직장이나 사업을 통해서 번성케 해주신 데서 아홉은 자기가 갖고 하나는 하나님께 바치는 것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실직 상태에 있어 수입이 없다면 어떻게 그가 십일조를 바칠 수 있겠습니까? 그는 바칠 수 없으며 바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은 먹어야 살며, 일하기 싫어하면 먹지도 말라는 것이 성경적 원칙이고(살후 2:10) 또한 생활의 원칙입니다. 어떤 사람이 장기간 실업 상태에 있다가 교회가 기도하고 본인도 기도하여 사업을 이루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가 기도할 때 물질을 주시면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십일조를 바치겠다고 서원했을 것입니다(말 3:8-10). 사업이 순조로워 500만 원을 벌어서 50만 원을 바쳤습니다. 그런데 사업이 더 잘되어 천만 원을 벌어 백만 원을 바쳤습니다. 그런데 사업이 더 잘되어 일억을 벌어서 천만 원을 바치려니까 시험에 들게 되고, 5억을 벌어 5천만 원을 바치려니까 더 큰 시험에 들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시험에 들게 되면 시험에 들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를 바꿔야 합니다. 내가 너무 많이 벌고 있으니 수입을 줄여 주셔서 십일조로 시험에 들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백만 원정도 벌어서 십만 원을 내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우주가 주님의 것이며 모든 보화가 주님의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돌팔이 목사들이 하나님을 비참하게 만들어 팔아먹고 있지 않습니까! 갖은 말로 회유하여 집사, 여자집사, 권사, 장로, 여자장로까지 임명해서 그들에게서 고정 액수를 십일조란 명목으로 거두어들이는가 하면 심지어는 가난한 교인들로 대출을 받아 가져오게도 만들고 있습니다. 여의도 어떤 교회 장로실에는 벽에 그래프가 붙어 있어 매월 십일조(장로세)를 바치지 않은 사람은 알아보게 해 놓았다고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면 인간의 편법을 동원해서 교회를 유지하려 하나 그것은 하나님을 비참하게 만드는 행위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이고, 복음을 전파하고 진리를 가르치며 오지에 선교사를 파송하게 하여 하나님의 일을 하게 했다면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그 교회를 모르는 체하시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이 세우지 않으시고 시키지 않은 교회들이 갖가지 명목으로 돈을 거두어들여서 도대체 하나님과 별개인 신문사나 만들고 문화사업이나 하고 땅이나 아파트를 사들여서 어쩌자는 것입니까? 그런 것이 무슨 교회이며 그런 자가 무슨 하나님의 일꾼이겠습니까?

5. 카이사의 것은 카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마귀의 것은 마귀에게 돌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라면 하나님의 사역들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적어도 두 가지 것을 마련해 주십니다. 능력있는 일꾼들과 필요한 물질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교회에 사역들을 맡겨 주실 때는 그 교회가 그 일들을 수행할 능력(capacity)이 있음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신실함과 쉬지 않는 기도와 그 교회의 전 성도의 자주 꿇는 무릎들이 그 일들을 뒷받침하게 되는 것입니다. 복음 전파와 진리의 지식을 가르치지 않는 일들도 하나님의 사역이라고 이름 붙여서는 안 됩니다. 교회의 헌금은 먼저 모이는 장소를 준비하는 데 써야 합니다. 그 다음은 목자의 생활비와 교회 일꾼들의 생활비이고 그 다음이 교회 운영비이며 그 다음이 청소년들의 행사 및 활동비로 쓰여야 하고 그 다음은 교회의 극빈자들을 위해 쓰여져야 합니다. 수해기금, 이웃돕기 성금, 난민 구호 등은 1년 예산 120조를 쓰는 국가에서 해도 되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가끔 교회들이 이웃 돕기, 수재민 돕기, 이북 동포 돕기 등 아프리카 난민들에게 죽을 쑤어 먹이고 전쟁 난민들을 돕고 테레사 수녀처럼 환자들을 돌보는 것을 보기도 합니다. 이런 일들은 1차적으로 교회가 할 하나님의 일이 아닙니다. 교회는 그런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고 영생을 얻어 죽더라도 다시 새 세대에 부활하게 해야 합니다. 세계 어디까지 죽 냄비를 들고 따라 다니겠습니까? 세상 정부와 자선 단체는 그런 구호 사업을 하고, 교회는 복음을 전하고 구원받은 사람들에게 진리의 지식을 가르쳐야 합니다. 이웃돕기 한다며 교회 헌금을 방송국에 전달하여 사진 찍고 TV에 얼굴 내미는 목사는 복음을 전할 것이 없는 목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실한 성도들의 손길을 통해서 교회의 필요들을 채워 주십니다. 하나님 안에서 계획하고 비전을 세우고 기도하면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이루어 주십니다. 하나님의 헌금은 단 한 푼도 헛되이 쓰여지거나 부정직하게 쓰여져선 안 됩니다. 담임목사의 허락 없이는 단 한 푼도 쓸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돈을 자신의 사욕을 위해 쓰거나 헛되이 낭비하는 목자는 목자의 자격이 없는 자입니다. 수많은 미국의 그리스도인들이 십일조를 통하여 그들의 기업이 번성한 것을 보십시오. 록펠러, J.C. 페니 백화점, 케이트치약, 펩시콜라, 앤디슨 건축업자... 그 이름을 다 대려면 끝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색하지 않고 기쁨으로 바치는 손길들을 사랑하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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