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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28, “다시 채우다”인가 “충만하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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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5년 12월호>

Q. 영어 〈킹제임스성경〉 창세기 1:28의 『replenish』를 〈한글킹제임스성경〉은 『다시 채우고』라고 번역했는데, “충만하라”고 번역해야 맞지 않습니까?

A. 〈한글킹제임스성경〉의 번역대로 “다시 채우고”가 맞습니다. 이 구절은 영어 〈킹제임스성경〉과 〈한글킹제임스성경〉 이외에 다른 모든 영어와 한글 성경들이 변개되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매우 중요한 구절이며, 교리적으로도 매우 핵심적인 내용입니다. 이 문제에 대한 바른 해답을 찾으려면, 교리적인 측면과 언어적 측면을 모두 검증해 보아야 합니다.

1. 창세기 1:2; 1:28, 베드로후서 3:5-7의 바른 해석

(1) 창세기 1:1-3을 주의깊게 읽기 바랍니다. 『1 태초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느니라. 2 땅은 형체가 없고 공허하며 어두움이 깊음의 표면에 있으며 하나님의 영은 물들의 표면에서 거니시더라. 3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더라.』 창세기 1:1과 1:3 사이의 2절 말씀은 창조된 세계가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서 벗어나 있는 혼돈의 상태에 있음을 기록하고 있으며, 1절과 3절 사이에 어떤 큰 변화가 있었음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창세기 1:1-3의 창조의 순서는 성경에 기록된 대로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하늘과 땅이 창조되었습니다(창 1:1). 이것은 “최초의 창조”입니다. 둘째, 사탄의 반역으로 처음 창조된 하늘과 땅에 심판이 있었는데, “땅”은 형체가 없고 공허하며 “어두움”이 “깊음”(물들)의 표면에 있었습니다(창 1:2). 셋째, 심판 이후에 하나님께서 빛을 시작으로(창 1:3) 현재 있는 하늘과 땅을 포함한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이것이 “재창조”입니다(창 1:3-31). 반면 학자들은 이와 같은 두 번의 창조를 거부하고 창세기 1:1이 창조에 대한 종합적인 선언일 뿐이며, 창세기 1:1과 1:3을 같은 것으로 보고 단지 한 번의 창조만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재창조가 없었다면 성경에는 심각한 오류와 모순이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 1:1의 최초의 창조와, 1:2의 심판과, 1:3-31의 재창조를 거부할 때 답변할 수 없는 문제점들은 무엇이겠습니까?

① 창세기 1장에서 창조가 한 번만 있었다면,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기 전에 창세기 1:2의 『땅』, 『어두움』, 『깊음』(물들)이 이미 존재했다는 사실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성경 말씀을 읽으면, 셋째 날에 창조된 “땅”은 셋째 날 이전에 이미 물 속에 있었으며 단지 마른 곳이 드러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마른 상태로 드러났을 뿐입니다(창 1:9,10 -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늘 아래의 물들이 한곳으로 함께 모이고 마른 곳이 드러나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께서 마른 곳을 땅이라 부르시고...』). 또한 첫째 날에 빛이 창조되기 이전에 “어두움”은 이미 존재하고 있었고 빛이 생김으로써 빛은 어두움에서 나뉘어졌습니다(창 1:4 - 『하나님께서 그 빛을 보시니, 그것이 좋았더라. 하나님께서 그 빛을 어두움에서 나누시더라.』). 둘째 날에 창공이 만들어지기 이전에 “깊음(물들)” 역시 이미 존재하고 있었으며 창공에 의해 창공 위의 물들과 창공 아래의 물들로 나뉘었습니다(창 1:7 - 『하나님께서 창공을 만드시고 창공 위에 있는 물들에서 창공 아래 있는 물들을 나누시니 그대로 되니라.』). 이와 같이 첫째 날의 창조 이전부터 존재하고 있던 창세기 1:2의 땅, 어두움, 깊음(물들)은 언제, 누가 창조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기 이전에는 하나님 외에 누구도, 그 무엇도 존재할 수 없지 않습니까?
골로새서 1:16,17에 따르면 “만물”은 모두 창조된 것이기 때문에, 창세기 1:2의 땅, 어두움, 깊음도 창조된 것이며 저절로 생겨난 것이 결코 아닙니다. 땅, 어두움, 깊음이 창조된 것이라는 사실은 잠언에서 “지혜”가 언제부터 있었는가에 관한 말씀에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다음 구절에서 “내가”는 “지혜”를 말합니다). 『영원부터, 태초부터, 땅이 있기 전부터 내가 세움을 받았느니라. 깊은 곳들이 없었을 때 내가 났으니, 물이 솟는 샘들이 없었을 때라. 산들이 세워지기 전에, 작은 산들이 있기 전에 내가 났으니 그가 아직 땅도, 들도, 세상의 가장 높은 곳의 흙도 짓지 아니하셨을 때라. 그가 하늘들을 마련하실 때 내가 거기 있었으며, 그가 깊은 곳의 표면 위에 범위를 정하실 때에도 내가 거기 있었느니라』(잠 8:23-27). 이 구절에서 “땅”과 “깊은 곳”(깊음/물들)이 창조된 것임을 확인할 수 있으며(시 148:4,5 참조), 또한 『주께서 어두움을 지으시니』(시 104:20)라는 말씀은 창세기 1:2의 “어두움”이 창조된 것임을 분명히 알려 줍니다. 이와 같이 창세기 1:2의 땅과 어두움과 깊음(물들)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이라면 그 시점이 언제이겠습니까? 그 때는 창세기 1:1과 1:3 사이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최초의 창조와 재창조의 사이입니다. 그러므로 창세기 1:1의 “최초의 창조”(註1), 1:2의 사탄의 반역에 대한 심판(형체가 없고 공허한 상태의 땅, 땅이 어두움과 깊음 속에 잠겨 있는 상태), 1:3의 “재창조”가 창세기 1:1-3에 기록하고 있는 그대로입니다. 만일 창세기 1장에 한 번의 창조만 있었다면, 이미 존재하고 있었던 이런 것들에 대한 창조를 설명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성경 자체가 모순되는 것임을 유념해야 할 것입니다.

② 창세기 1장에 단지 한 번의 창조만 있었다면, 기름부음 받은 그룹이었던 사탄의 반역, 곧 사탄의 타락이 언제인가를 설명할 수 없습니다(사 14:12-15, 겔 28:11-19). 사탄의 타락은 창세기 1:1의 최초의 창조 이후이고 이 반역에 대한 심판이 내려진 상황이 창세기 1:2이며, 다시 현재의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것이 창세기 1:3 이후인 것입니다. 사탄의 실체를 확증해 주는 성경 구절은 창세기 1:2입니다.

(2) 창세기 1:2의 『땅은 형체가 없고 공허하며』라는 말씀은 땅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심판받은 땅의 상태를 설명하는 말씀입니다.
이 구절의 의미를 바르게 알기 위해서는 예레미야 4:23-27의 말씀과 비교해 보아야 합니다. 『내가 땅을 보았더니, 보라, 형체도 없고 공허하며 하늘들에는 빛도 없더라. 내가 산들을 보았더니, 보라, 그것들은 떨고 모든 작은 산들도 가볍게 진동하더라. 내가 보았더니, 보라, 사람도 없고 하늘들의 모든 새들도 날아 갔더라. 내가 보았더니, 보라, 비옥한 곳이 광야가 되었으며 거기에 있는 모든 성읍들이 주의 면전에서 그의 맹렬한 진노로 무너져 내렸도다. 이는 주께서 이같이 말씀하셨음이라. 온 땅이 황폐할 것이나 내가 완전히 끝내지는 아니하리라.』 예레미야의 이 구절들은 창세기 1:2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있을 사건을 말씀하는 것으로, 이스라엘이 미래에 받게 될 심판을 설명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예레미야 4장의 말씀들은 창세기 1:2의 『땅은 형체가 없고 공허하며』라는 말씀의 의미를 알려 주는 용례이기도 합니다. 즉 땅이 형체가 없고 공허하다는 의미는 땅이 없는 것이 아니라 일그러지거나 변형되거나 황폐된 심판의 상태에 놓여 있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3) 창세기 1:1-3의 관련 구절인 베드로후서 3:5-7은 재창조를 증거하는 중요한 말씀입니다.
먼저 베드로후서 3:3,4은 마지막 날들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그들의 정욕대로 행하며, 주님께서 오신다는 약속을 부인하고, “만물은 창조의 시작부터 그대로 있다.”고 말하면서 조롱할 것임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또한 〈한글킹제임스성경〉을 거짓되이 비방하는 정동수(인하대 기계공학과 교수)를 포함해서 창세기 1:1-3의 말씀에 대해 “최초의 창조 - 심판 - 재창조”라는 변화가 있었음을 부인하는 자들을 하나님의 말씀을 조종하는 자들이라고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3:5-7은 창세기 1:1-3에 대해 이렇게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이는 그들이 이것을 고의로 잊으려 함이라. 즉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하늘들이 옛적부터 있었다는 것과, 땅도 물에서 나왔고 물 안에 있었다는 것이니 이로써 이전에 있던 세상은 물이 범람해서 멸망하였느니라. 그러나 현재 있는 하늘들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보존되어 있으되 경건치 아니한 자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에 불사르려고 간수되어진 것이니라.』
이 구절에서 땅은 물 가운데서 나왔다는 말씀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베드로후서 3:5의 『땅도 물에서 나왔고 물 안에 있었다는 것이니』라는 말씀은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재창조 이전의 상태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첫째 하늘과 둘째 하늘, 곧 우주는 펼친 옷의 모양과 같은데(히 1:11,12), 창세기 1:1 이후 사탄의 반역에 대한 심판으로 온 우주가 어두움과 물들로 차게 되었습니다(창 1:2). 바로 베드로후서 3:5-7이 이 상황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특히 베드로후서 3:6은, 창세기 1:2 이전의 “최초의 창조” 세계를 『이전에 있던 세상』이라고 말씀하며, 그 세상은 물이 범람해서 멸망했다고 말씀함으로써 창세기 1:2을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물이 범람해서 멸망한 것이 노아의 홍수(창 6장)를 지칭하지 않는 이유는, 노아의 홍수 때에 있었던 세상은 베드로후서 3:7에서 『현재 있는 하늘과 땅』이라고 말씀하며, 이것은 창세기 1:3 이후에 창조된 현재의 이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현재 있는 하늘과 땅』은 앞으로 심판과 멸망의 날에 불타 없어지고(벧후 3:7), 베드로후서 3:13에 기록된 대로 『새 하늘과 새 땅』이 있게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성경은 세상을 크게 셋으로 구분하는데, “전우주적인 물의 범람”을 기준으로(창 1:2, 벧후 3:6) 창세기 1:1의 『이전에 있던 세상』과 창세기 1:3-31의 『현재 있는 하늘과 땅』으로 구분되며, 또 “전우주적인 불에 의해 하늘들과 우주의 구성요소들이 불타 없어짐으로써”(벧후 3:10- 12) 새롭게 생성되는 『새 하늘과 새 땅』(벧후 3:13)이 있는 것입니다.

2. 창세기 1:28의 “다시 채우다”라는 말의 의미

(1) 창세기 1:28의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다산하고 번성하며 땅을 다시 채우고 그것을 정복하라. 그리고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에서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는 말씀에서 “다시 채우다”는 의미는 말 그대로 이전에 있던 상태처럼 “다시” 채운다는 것입니다. 이 단어가 최초의 창조와 재창조를 입증하는 것이며, 또 창세기 1:1-3을 설명하는 중요한 열쇠이기도 합니다.

(2) 〈한글킹제임스성경〉에서 “다시 채우다”라고 번역한 영어 〈킹제임스성경〉 단어는 “replenish”이며, 히브리어 성경의 단어는 “말레”(מלא)입니다. 그렇다면 “말레”가 “다시 채우다”라고 번역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이겠습니까? 현대의 변개된 성경을 번역한 학자들은 영어 〈킹제임스성경〉의 “replenish”는 오역이며, “fill”이나 “full”이 정확한 번역이라고 잘못된 주장을 합니다. 또한 〈한글킹제임스성경〉을 거짓되이 비방하는 정교수를 비롯해서 영어 〈킹제임스성경〉을 왜곡하는 자들은 영어 〈킹제임스성경〉의 “replenish”라는 번역은 맞지만, 그 뜻은 “다시 채우다”가 아니라 단순히 “채우다/충만하다”(fill, full)의 뜻이라고 주장합니다. 즉 “replenish”는 “fill,” “full”의 동의어라는 것입니다. 학자들과 영어 〈킹제임스성경〉을 왜곡하는 자들의 주장이 오류임을 입증하는 근거를 몇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① 영어 〈킹제임스성경〉이 히브리어 “말레”를 “replenish”로 번역한 것은 “말레”에 “fill”이나 “full” 등의 뜻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오역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채우다/충만하다”는 의미 이외의 뜻이 있기 때문에 문맥에 맞게 번역한 것입니다. 영어 〈킹제임스성경〉이 말레를 번역한 용례들은 “full”(118회), “fullness”(9회), “fully”(14회), “fill”(107회), “fulfill”(14회), “replenish”(7회)입니다. 이와 같이 영어 〈킹제임스성경〉은 252회에 걸쳐 “말레”라는 히브리어 단어를 그 의미와 문맥에 맞는 정확한 단어들로 각각 구분해서 번역했으며, 그 중에서 “말레”란 단어를 “replenish”로 일곱 번 번역했습니다(창 1:28; 9:1, 사 2:6; 23:2, 렘 31:25, 겔 26:2; 27:25). 이 용례를 현대 번역자들이 분별하지 못하고 놓친 것입니다.
히브리어 “말레”의 용례는 단지 “fill”이나 “full”만이 아니라 “replenish”(다시 채우다)의 뜻이 분명히 있습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영어 〈킹제임스성경〉을 배격하기 때문에 “말레”라는 히브리어의 뜻에 “replenish”의 용례를 포함시키지 않지만, 그 외의 객관적인 사전들은 이 용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옥스퍼드대학의 , 이스라엘의 , 등에서 말레의 용례에서 “replenish”(다시 채우다)를 분명히 기록하고 있습니다.(註2)

② 창세기 1:28의 『다산하고 번성하며 땅을 다시 채우고』라는 말은 이전에 채웠던 것이 있기에 다시 채우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정교수는 창세기 1:22과 1:28의 예를 들어 「두 구절은... 똑같은 문맥이며 심지어 히브리어도 두 구절이 동일합니다.」라고 말하며 둘 다 “충만하라”고 번역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창세기 1:22과 1:28은 “대상”이 다른 문맥입니다. 1:22의 “그들”은 “동물들”이며, 1:28의 “그들”은 “사람”(아담과 이브)입니다. 따라서 1:28은 아담과 같이 하나님의 아들로 불린 영적 존재들이 창세기 1:2 이전에 있었기 때문에 재창조 이후에 “다시 채우라”는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9:1에서도 노아의 홍수 이후에 노아와 가족들에게 이전에 땅이 사람들로 채워졌던 것처럼 “다시 채우라”는 말씀을 하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반면 첫 번째 창조에서는 1:22의 동물들의 창조가 없었기 때문에 “다시 채우라”는 말씀이 아니라 단지 “충만하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히브리어 원어로는 창세기 1:22과 1:28이 동일하게 “말레”이지만, 영어 〈킹제임스성경〉과 〈한글킹제임스성경〉이 1:22에서는 “fill”(충만하라)로 번역하고, 1:28에서는 “replenish”(다시 채우고)로 번역한 이유입니다. 히브리어는 한 단어 “말레”로 이 두 의미를 모두 표현하지만, 영어와 한글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각기 적합한 단어로 번역해야 하는 것입니다.

(3) 히브리어의 용례뿐만 아니라 영어 “replenish”에 대한 의 용례는 단지 “채우다/충만하다”가 아니라 “다시 채우다”의 뜻을 분명히 제시하고 있습니다.
OED에서 “replenish”를 찾으면, 9번의 뜻은 다음과 같습니다. 「II. In ordinary transitive uses. 9. To fill up again; to restore to the former amount or condition.」(II. 보통 타동사의 용례. 9. 다시 채우다, 이전 양이나 상태로 회복시키다.) 이와 같은 분명한 뜻과 함께 1612년에 이 뜻으로 쓰인 사례를 제시하고 있으며, 그 이후에도 1666, 1748, 1776, 1832, 1883년에 쓰인 많은 사례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히 1611년 영어 〈킹제임스성경〉의 번역은 이후의 용례들을 선도적으로 이끄는 사례가 된 것입니다.
정교수는 <노아 웹스터 사전>의 초판(1828년)과 1913년판의 차이를 예로 들면서, “replenish”가 “다시 채우다”는 뜻으로 사용되는 것이 마치 19,20세기에 와서 진화론에 편승하여 생겨난 이론이라고 혹평하는 것은 매우 왜곡된 주장입니다. 그가 영어 〈킹제임스성경〉을 입술로는 최종권위라고 말하면서도 현대의 변개된 영어 번역본들과 같이 “replenish”를 단지 “충만하라”고 주장하는 것은 〈킹제임스성경〉을 부인하는 행위입니다. 또한 <노아 웹스터 사전>에서 “다시 채우다”의 뜻은 자동사로 쓰일 때의 용례라며 창세기 1:28에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잘못된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노아 웹스터 사전>이 자동사의 용례와 타동사의 용례를 잘못 구분한 오류를 그대로 따랐기 때문에 똑같이 오류를 범한 것입니다. 창세기 1:28의 『replenish』는 OED의 정의처럼 “타동사의 용법”이지, 자동사가 아닙니다. 잘못된 안내자를 따라가면 언제든지 오류를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replenish”에는 “다시 채우다”라는 뜻이 있기 때문에 영어 〈킹제임스성경〉의 번역자들은 이전의 상태로 회복되는 문맥에서 히브리어 “말레”를 단지 “fill”이 아니라 “replenish”로 번역한 것이며, 〈한글킹제임스성경〉 역시 “다시 채우다”라고 바르게 번역한 것입니다. 어떤 성경이 바른 하나님의 말씀인가에 대한 증거는 분별력 있는 그리스도인에게 확신을 주기에 충분합니다. 문제는 마음의 자세와 믿음이 어떠한가에 달려 있습니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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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1)
창세기 1:1의 “최초의 창조”는 “하늘과 땅”의 창조이며, 창세기 1:3-31에 기록된 재창조, 즉 6일 동안에 창조되었던 것들(동물, 사람...)을 모두 창조한 것이 아니다. 최초의 창조와 재창조는 창조의 내용이 다르다.

(註2)
The Oxford English-Hebrew Dictionary, in Collaboration with The Oxford Centre for Hebrew and Jewish Studies,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Inc., 1996), pp.323, 351-352,778; Shimshon Inbal, User-Friendly Dictionary, (Jerusalem, Israel: S. Zack & Co., Publishers, 1992, 3th Printing), pp.261,285,576; R. Alcalay, The Complete English-Hebrew Dictionary, (Tel-Aviv, Israel: Miskal Publishing & Distribution Ltd., 1996, New England Edition), Vol.I, pp.1391,1505, Vol. II,p.30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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