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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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2:4, 사람의 피부로 사람의 피부를 바꾼다? / 이사야 65:20, 백 세가 된 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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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0년 12월호>

욥기 2:4, 사람의 피부로 사람의 피부를 바꾼다?

Q
욥기 2장 4절, 『...사람의 피부로 사람의 피부를 바꾸오니...』 사람의 피부로 사람의 피부를 바꾼다는 말이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여기저기 둘러봐도 명확히 설명해 놓은 곳은 없네요.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 같아요.

A
욥기 2:4의 질문하신 문구는 매우 함축적인 의미를 가진 격언입니다. 그 의미가 어떤 것인지는 감추어져 있지 않고 문맥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욥기 1:6-22은 하나님 앞에 온 사탄에게 하나님께서 욥을 칭찬하셨고, 사탄은 욥이 아무런 이유 없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욥을 복 주시고 그의 재산을 늘려 주시며 보호하셨기 때문이니, 그가 소유한 것을 치면 그가 하나님을 저주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사탄에게 욥을 치도록 허락하셨고, 사탄은 욥의 재산을 모두 빼앗았고 자식들도 모두 죽게 했습니다. 그러나 욥은 하나님께 죄를 짓지 않고 하나님을 탓하지도 않았습니다. 이런 일 후에 욥기 2:1-6에서 사탄이 또 하나님 앞에 왔고, 하나님께서 욥이 그의 고난에도 불구하고 그의 완전함을 굳게 붙잡고 있다고 말씀하시자, 이번에도 사탄은 욥이 하나님을 저주하지 않았던 이유를 말하면서 다시 한 번 하나님께 욥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를 제안했습니다. 사탄의 두 번째 주장과 제안이 2:4,5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먼저 4절 말씀 전체를 읽어 보겠습니다. 『사탄이 주께 대답하여 말씀드리기를 "사람의 피부로 사람의 피부를 바꾸오니 정녕 사람이 자기 생명을 위하여 자기의 모든 소유를 주리이다.』 성경은 『사람의 피부로 사람의 피부를 바꾸오니』라는 이 문구 다음에 바로 그 의미가 무엇인지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사람의 피부로 사람의 피부를 바꾸오니』라는 말의 평이한 뜻은 "사람이 자신의 생명을 위하여 자기의 모든 소유를 내놓는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사람이 자신의 생명을 자신이 가진 모든 소유보다 더 소중하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이와 같은 본성은 에베소서 5:29에서도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사람마다 항상 자기 육신을 미워하지 않고 오히려 육성하고 아끼기를, 주께서 교회에게 하심같이 하나니』 사람이 자신의 육신을 육성하고 아끼는 정도가 주께서 교회에게 하심 같이 한다는 것은, 주님께서 교회를 위해 생명을 내어놓으셨던 것처럼 "사람은 자신의 생명을 위해 다른 사람의 생명을 희생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죄 있는 인간의 본성입니다. 사람은 극한 상황에서 다른 사람을 죽이거나 심지어 자식을 죽여 ‘인육’을 먹는 일을 하거나, 또 다른 사람을 짓밟고 자신의 생명을 지키는 행위를 합니다. 사람은 자신의 생명을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합니다. 그런 일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일지라도 극한 상황에 처하게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이 변하게 될 것입니다. 물론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들, 즉 예외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외는 "인간의 자기 보호 본능의 법칙"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하는 요소입니다. 예외 없는 법칙은 없기 때입니다. "사람은 다른 사람의 생명으로 자신의 생명을 지킨다."는 것이 『사람의 피부로 사람의 피부를 바꾸오니』라는 말의 뜻입니다. 인간의 역사 속에 이런 일들은 비일비재했습니다.
욥은 비록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자신의 소유를 내놓거나, 자식들의 생명을 내놓은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자신의 생명에는 전혀 손상을 입지 않은 채 모든 소유와 자식들의 생명만 희생된 상황이었습니다. 따라서 사탄은 욥기 2:4에서, 욥이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하여 내놓은 "모든 소유"에 그의 모든 재산은 물론, 그의 자식들의 생명까지 포함시켜서 말했습니다. 인간을 다루는 전문가인 사탄은 인간의 본성을 사실대로 지적했습니다. 인간의 자기 보호 본능은 다른 사람의 생명을 희생시키더라도 자신의 생명을 지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즉 자신의 생명을 위해 다른 사람의 생명을 취하거나 죽게 하는 것입니다. 사탄의 자식들인 찰스 다윈과 같은 죄인들이 주장하는 생명의 법칙은 "적자생존"이며, 또 "내가 첫째이고, 당신은 다음이다."라는 것입니다. 바로 자기가 살기 위하여 다른 사람을 죽이는 것입니다. 자기 생명의 보호를 위하여 사람은 도덕이나 윤리는 고려하지 않습니다. 이런 인간의 본성을 욥에게 적용하여 사탄은 욥을 비방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욥기 2:4,5에서 『사탄이 주께 대답하여 말씀드리기를 "사람의 피부로 사람의 피부를 바꾸오니 정녕 사람이 자기 생명을 위하여 자기의 모든 소유를 주리이다. 그러나 이제 주의 손을 내밀어 그의 뼈와 살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그가 정면으로 주를 저주하리이다."』라고 말한 사탄은, 하나님께 다음과 같이 말한 것입니다. "사람은 다른 사람의 생명을 희생시킴으로 자신의 생명을 지킨다는 것을 하나님께서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비록 욥이 그의 모든 재산들을 잃고, 자식들의 생명까지 잃었다고 해도 아직 자신의 생명에는 전혀 손상이 없으니, 욥이 하나님께 자신의 완전함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하나님께서 욥의 뼈와 살을 쳐서 그의 생명을 위협하시면 그가 하나님을 정면으로 저주할 것입니다."
사탄의 제안을 받아들이신 하나님께서는 욥의 생명을 앗아가는 일만은 하지 말고 그의 생명에 위협을 가하는 것, 즉 그의 뼈와 살을 치는 것을 허락하셨습니다. 사탄은 즉시 심한 종기로 욥을 쳤고, 죽음과 다름없는 상황으로 욥을 몰고갔습니다. 또 사탄은 욥의 아내를 통해 자신의 말, 즉 "당신이 아직도 당신의 완전함을 간직하려 하느뇨?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고 말하게 했지만, 욥은 하나님께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 욥은 인간의 자기 보호 본능의 법칙에도 예외가 있음을 보여 주었던 것입니다.
욥과 스테판 등을 포함하여 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은 물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생명을 내놓음으로써 "사람의 피부로 사람의 피부를 바꾼다."는 인간의 자기 보호 본능의 법칙에 예외가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습니다. 바라기는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도 순교자적인 자세로 사탄의 주장에 예외가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BB




이사야 65:20, 백 세가 된 죄인

Q
궁금하여 <한글킹제임스성경>으로 성경을 읽고 있습니다. 그런데 번역이 잘못 되었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여러 곳 발견하였습니다. 특히 아래 부분은 전혀 납득되지 않습니다.
이사야 65:20, 『거기에는 날 수로 되는 아기도, 자기 수명을 다 채우지 못한 노인도 더 이상 없을 것이니 이는 백 세에 죽는 자가 아이요 백 세가 된 죄인은 저주를 받은 것이 될 것임이라』(한글킹제임스성경).
이사야 65:20, 「거기는 날 수가 많지 못하여 죽는 어린이와 수한이 차지 못한 노인이 다시는 없을 것이라 곧 백 세에 죽는 자를 젊은이라 하겠고 백 세가 못되어 죽는 자는 저주받은 자이리라」(개역개정판)

A
우선 질문하신 이사야 65:20의 전후 문맥을 확인하여 이 구절이 어느 시대의 누구를 향한 말씀인가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이사야 65:17은 요한계시록 21:1에서 기록하고 있는 "새 하늘과 새 땅"에 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이 있게 될 때는 "새 예루살렘"이 함께 있을 시대로(계 21:2-3), 천년왕국이 끝나고 백보좌 심판도 끝난 다음의 영원 시대입니다.
반면 이사야 65:20이 포함되어 있는 65:18-25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어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에서 만왕의 왕으로서 통치하시는 천년왕국 시대의 "예루살렘과 그 백성"에 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들이 천년왕국의 상황을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모스 9:13-15, 이사야 11:6-9 등에서도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이사야 65:18-19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을 즐거움으로 창조하고 그 백성을 기쁨으로 창조하시기 때문에 주님께서 예루살렘을 즐거워하며 자신의 백성을 기뻐하실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될 수 있는 이유가 이사야 65:20-25에 기록되어 있는데, 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천년왕국 백성의 수명이 길어진다는 것입니다(65:20,22b) - 『20 거기에는 날 수로 되는 아기도, 자기 수명을 다 채우지 못한 노인도 더 이상 없을 것이니 이는 백 세에 죽는 자가 아이요 백 세가 된 죄인은 저주를 받은 것이 될 것임이라... 22... 이는 내 백성의 수명이 나무의 수명과 같겠고,...』 천년왕국의 백성은 노아의 홍수 이전과 같이 긴 수명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천년왕국의 백성은 누구일까요? 이사야 65:18-25의 문맥에서 나오는 사람들은 예루살렘에 근거를 둔 이스라엘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대환란을 통과하여 고난을 받은 후에 주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야로 믿고 받아들임으로써 왕국으로 들어온 것이며, 지상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맞이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이들은 죽지 않았고, 몸의 부활도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로 왕국 기간 동안 수명이 연장되었으나 자녀를 낳고 살다가 수명을 다하면 죽게 되는 것입니다. 반면 신약 성도들은 주님과 같이 변화된 영광스런 몸을 입고 있기에 말할 것도 없고, 또 구약 성도들과 환란 성도들은 부활한 몸을 입고 있기에 자녀를 낳거나 죽는 일이 없습니다(마 22:23-32, 계 20:4).
천년왕국에 들어간 왕국의 백성 중에는 유대인 백성 이외에 이방인 백성도 있습니다. 즉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셔서 민족들을 심판하실 때, 대환란 기간 중에 이스라엘 사람들을 선대한 이방인들이 양들로 분류되어 왕국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마 25:31- 40, 특히 34절). 왕국의 백성들은 에덴 동산과 같은 자연 환경, 노아의 홍수 이전과 같은 긴 수명, 그리고 질병의 치유에 대한 보장을 받으며 완전한 환경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하에 의와 화평 가운데 살게 됩니다. 또한 사탄은 결박당하여 끝없이 깊은 구렁에 갇혀 있기에 인류 역사 6,000년 동안 계속되었던 사탄의 미혹이 없는 상태에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계 20:1-3).
현재는 아기가 태어난 후 해를 넘기지 못하고 얼마 되지 않아 죽게 되면 보통 "생후 며칠 만에 죽었다."는 말을 합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날 수로 되는 아기도, 자기 수명을 다 채우지 못한 노인도 더 이상 없을 것이니』(사 65:20a)라는 말씀과 같이 천년왕국에서는 아기의 나이를 이렇게 날 수로 세어 죽음을 말해야 할 일이 없게 될 것이며, 또 자신의 수명을 다 채우지 못하고 죽는 노인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완전한 환경 가운데 있는 왕국의 백성이지만, 그들의 영이 성령으로 거듭난 것도 아니고, 몸이 부활한 것도 아니기에 죄와 죽음이 그들을 피해 가지는 않습니다. 천년왕국의 끝에는 사탄이 잠시 풀려나게 되는데(계 20:3,7), 사탄이 땅의 사방에 있는 민족들을 미혹하여 다시 반역을 꾀할 때, 많은 사람들이 사탄에게 동조하게 될 것이고, 하늘로부터 하나님의 불이 내려와 사탄을 따랐던 사람들을 삼켜 버리게 될 것입니다(계 20:8-9).
또한 마태복음 5:22은 천년왕국 백성의 죄와 죽음에 대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까닭없이 자기 형제에게 노하는 자는 누구든지 심판의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며, 형제에게 라카라 하는 자는 누구나 공회의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요, 또 어리석은 자라 하는 자는 누구나 지옥불의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라.』또 질문하신 이사야 65:20에서도 천년왕국의 백성에게 수명이 다하기 전에 닥치는 죽음과 저주가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백 세에 죽는 자가 아이요 백 세가 된 죄인은 저주를 받은 것이 될 것임이라』(사 65:20b). 천년왕국에서 아기도 노인도 그 수명을 다하지 못하고 죽지 않고 수명이 약 천 년에 가까울 만큼 길어진 상황이기 때문에 "백 세에 죽은 자가 아이"라고 불리게 됩니다. (여기서 <개역성경>은 『아이』를 "젊은이"로 오역했습니다. "젊은이," 곧 "나이가 젊은 사람"은 본문의 내용에 맞지 않는 표현입니다.) 또 "백 세가 된 죄인"은 저주를 받은 것이라고 말씀하는데, 이는 앞서 말한 "백 세에 죽는 자"와 같이 아이로 불릴 만큼 "일찍 죽는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현재와 같은 환경에서도 일찍 죽게 되면 복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하는데, 하물며 인류 역사상 최상의 환경에서 보장된 풍요를 누리지 못하고 죽는 죄인의 죽음이 어찌 저주받은 것이 아니겠으며, 또 주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를 직접 목격하면서도 주님으로부터 분리되어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이 어찌 저주가 아니겠습니까?
이사야 65:20의 『백 세가 된 죄인은 저주를 받은 것이 될 것임이라.』는 <한글킹제임스성경>의 번역은 히브리어 원문대로 바르게 보존된 것입니다. 히브리어 성경에는 <한글킹제임스성경>과 똑같이 『백 세가 된 죄인은 저주를 받은 것이 될 것임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영어 <킹제임스성경>도 마찬가지입니다. <개역성경>과 <개역개정판>에서 「백 세가 못되어 죽는 자는 저주받은 자이리라」고 번역한 것은 히브리어 원문을 무시하고 "긍정문"을 "부정문"으로 바꾸어 변개한 것입니다. 히브리어 원문에는 백 세가 "못되어"라는 부정어가 전혀 없습니다. 만일 <개역성경>과 <개역개정판>의 번역처럼 "백 세가 못되어 죽는 자"가 저주받은 자라면, "백 세가 되어 죽은 자"는 저주받은 자가 안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개역성경>과 <개역개정판>의 20절은 모순입니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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