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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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인신제사를 원하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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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7년 06월호>

Q

『창세기 22장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독자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끔찍한 명령을 내리십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러실 수 있으며, 또 성경의 다른 부분에서는 "인신제사"를 금하고 있는데, 이 점에서 성경은 모순이 아닐까요?』

A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독자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하신 것은 성경에 기록된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 아들, 곧 네가 사랑하는 네 독자 이삭을 이제 데리고 모리야 땅으로 가서, 산들 중에서 내가 네게 알려 줄 한 산에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하시더라』(창 22:2).

이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문제는 하나님께서 이삭의 죽음을 실제로 허용하셨느냐는 데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려 했을 때의 긴박한 순간을 성경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그의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의 아들을 죽이려 하는데 주의 천사가 하늘에서 그를 불러 말하기를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니, 그가 말하기를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더라. 그가 말하기를 "네 손을 아이에게 대지 말고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나는 이제 네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줄을 아노라." 하더라』(창 22:10-12).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칼을 대려는 것을 하나님께서 막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이 이삭을 죽이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애초부터 원치 않으셨다는 얘기가 됩니다.

창세기 22장을 근거로 문제 삼는 "인신제사"(人身祭祀)는 하나님께서 명백히 금하시는 부분입니다. 『너는 네 씨 중의 누구도 몰렉에게 주어 불을 통과하게 하지 말 것이며 너는 너희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도 말지니라. 나는 주니라』(레 18:21). 인신제사는 이방인들이 그들의 신들에게 사람을 바치던 매우 사악한 관습이었습니다. 그것도 상습적으로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이든 이스라엘에 기거하는 타국인이든 자기 씨 중에 누구라도 몰렉에게 주는 자는 반드시 돌로 쳐 죽이라고 명하셨으며, 만일 그 땅의 백성이 자기 씨를 몰렉에게 주는 자를 적당히 눈감아 주고 그를 죽이지 아니하면 그때에는 주님께서 몰렉에게 자기 씨를 준 자의 가족까지도 백성 가운데서 끊어 버릴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레 20:2-5). 이것은 이스라엘이 출애굽한 뒤 시내 산에 머무를 때 주신 율법인데, 그로부터 약 40년 뒤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전에도 그와 동일한 죄를 이스라엘에게 금하셨습니다. 『네가 주 너의 하나님께서 네게 주시는 땅으로 들어가거든 너는 그들 민족들의 가증함을 따라 행하는 것을 배우지 말 것이요, 자기 아들이나 자기 딸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는 자...를 너희 가운데서 보이지 않게 할지니라... 이러한 가증한 것들 때문에 주 너의 하나님께서 네 앞에서부터 그들을 쫓아내시느니라』(신 18:9-12).

주님께서는 인신제사와 같은 가증한 죄들로 인해 그 땅의 민족들이 이스라엘 앞에서 쫓겨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이 경고를 무시해 버렸습니다. 심지어 백성의 왕이라는 자가 그 죄를 범함으로써 민족적으로 쫓겨나는 비극을 맞게 됩니다. 그 왕은 므낫세인데, 그는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으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서 잘못을 행하게 했고, 주님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멸하신 이방인보다 더 나쁜 짓을 행하게 했습니다(대하 33:9). 그가 주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여 주님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인의 가증함을 따라 행한 것들 가운데에는 자기 아들로 불을 통과하게 한 일도 있었습니다(왕하 21:2,6). 하나님께서 유다를 그 땅에서 제거하실 때 기억하신 죄가 바로 "므낫세의 죄"였습니다. 이후 요시야왕 때 주님께로 돌아오는 부흥이 있었지만, 그것이 므낫세의 죄를 향하신 진노를 돌이키지는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주께서는 유다에게 분노하신 그 크신 진노의 열화에서 돌이키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격노케 하는 모든 것으로 므낫세가 주를 격노케 하였기 때문이었더라』(왕하 23:26). 결국 이방인들을 보내어 유다를 멸망시키실 때 그 멸망의 최종 원인이 므낫세의 죄였으며, 주님께서 그 일을 결코 용서하려 하지 않으셨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왕하 24:3,4).

말하자면 인신제사는 주님께서 용서하시지 않은 죄들 중에서도 가장 사악한 죄에 속한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이런 가증한 죄를 주님께서 "믿음의 조상"이라 불리는 아브라함에게 요구하셨다는 것은 성경적 상식으로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일 것입니다. 일례로 이스라엘의 모든 첫태생은 주님의 것이므로 주님께 바치라고 하셨지만, "사람"의 첫태생에 관해서는 그를 제물로 바치지 말고 어린양으로 "대속"하라고 명하셨습니다(출 13:13; 34:20). 아론에게는, 이스라엘에서 바쳐지는 것은 사람이건 짐승이건 아론의 것이 되되, 사람은 성소의 세켈로 "대속"하라고 하셨습니다(민 18:14-16). 그렇다면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하신 창세기 22장의 사건은 다른 관점에서 해석되어야 마땅합니다. "인신제사" 운운하며 하나님을 비난하고 성경을 공격할 것이 아니라, 선하신 주님께서 요구하신 그 "부당해 보이는" 일이 성경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그 일로 아브라함을 "시험"하셨습니다 . 주님은 아브라함에게 명령하실 때 "네가 사랑하는 네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하셨는데, 이것은 아브라함을 "그가 사랑하는 것"으로 시험하신 일이었습니다. 즉 우리가 사랑하는 것을 포기하고 하나님을 향한 두려움과 사랑을 보일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100세에 낳은 외아들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았을 테지만, 그 아들을 하나님보다 사랑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믿음이었습니다. 이 점은 "주님께서 우리 눈에 부당해 보이는 요구를 하실 때에도 우리가 순종할 수 있는가?"의 문제로까지 이어지는데, 아브라함은 이 시험을 통과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살피고 속을 시험하는 분이십니다(렘 17:10).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시험하시는 하나님만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살전 2:4).

둘째, 하나님께서는 그 일로 갈보리 "십자가"와 거기서 이뤄진 "대속"을 예표하셨습니다 . 아버지인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제물로 바친 일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제물로 내어 주신 일을 예표합니다. 그때 이삭은 아버지에게 반항하지 않고 스스로 제단에 누웠는데, 이것 역시 하나님의 아들께서 자신의 생명을 스스로 내어 놓으신 일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아무도 생명을 내게서 빼앗을 자가 없으나 내 스스로 그것을 내어 놓느니라. 나에게는 생명을 내어 놓을 권세도 있고, 또 그것을 다시 얻을 권세도 있노라. 이 계명은 내가 내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것이니라』(요 10:18).

이뿐 아니라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막으신 뒤에 눈을 들어 숫양을 발견하게 됩니다.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보았더니, 보라, 뿔이 수풀에 걸린 숫양 한 마리가 그 뒤에 있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숫양을 잡아와서 그의 아들 대신에 번제로 드렸더라』(창 22:13). 결국 이삭 "대신" 숫양이 드려진 것인데, 이 역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예표합니다. 『우리의 유월절 양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희생되』신 것처럼(고전 5:7), 이삭 대신 희생된 숫양은 "하나님의 어린양"의 "대속"을 보여 줍니다. 따라서 창세기 22장의 사건은, ①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분의 독생자를 십자가에 제물로 내어 주신 일과 ②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죄를 대속하신 일을 이중으로 예표하는 것입니다.

셋째, 우리는 그 일로 아브라함의 "위대한 믿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 아브라함은 자신이 이삭을 죽여도 그가 "부활"할 것을 믿고서 제물로 바치려 했습니다. 이것은 그의 씨, 곧 후손에 관한 하나님의 약속을 믿은 결과였습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 이삭을 제물로 드렸으니, 그 약속들을 받은 자가 그의 독생자를 드린 것이라. 그에 관하여 말씀하시기를 "네 씨라 불릴 자는 이삭에게서 난 자라."고 하셨으니 그는 하나님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그를 살리실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였음이라. 이로써 그는 모형으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받은 것이니라』(히 11:17-19, cf. 창 21:12). 이삭만이 아브라함 자신의 씨라고 불릴 수 있다면 이삭은 죽어도 반드시 살아나야 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의 부활"을 믿었던 것인데, 이것 역시 "하나님의 아들"께서 십자가에 제물로 드려지신 뒤 "부활"하신 것을 예표합니다.

사람의 눈에는 하나님의 요구가 부당하게 보여도 그 모든 일에는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위대한 진리가 담겨 있습니다. 주님은 『성경을 상고하라. 이는 너희가 성경에 영생이 있다고 생각함이니, 그 성경은 나에 관하여 증거하고 있음이라.』(요 5:39)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성경의 내용에 의심이 든다면, 일단은 그 의심을 던져 버리고 성경을 믿음으로 공부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성경의 주인공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 가는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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