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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3:24, “걸러내고”인가 “긴장하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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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5년 06월호>

Q. [킹제임스성경] 마태복음 23:24의 『strain at a gnat』를 [한글킹제임스성경]은 『하루살이는 걸러내고』라고 번역했는데, “걸러내고”가 아니라 “긴장하고”라고 번역해야 맞지 않습니까?

A. [한글킹제임스성경]의 번역대로 『strain at』의 뜻은 『걸러내고』가 맞습니다. 『너희 눈먼 안내자들아, 너희가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낙타는 삼키는구나.』(마 23:24)라는 말씀의 뜻은, 위선적인 종교 지도자들이 하루살이 같이 아주 작은 것을 걸러냄으로써 자신들이 마치 깨끗하고 거룩한 것처럼 가장하지만 오히려 자신들의 정욕을 채울 수 있는 낙타와 같이 큰 것은 정작 삼킴으로써 그들의 위선적인 실체를 나타내 보인다는 의미입니다. 즉 매우 작고 사소한 잘못에 대해서 자신들은 그와 같은 작은 잘못도 범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면서 거룩한 척하지만, 정작 큰 죄를 짓는 위선자임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 구절은 대조를 보이는 두 가지 표현이 사용된 문장인데, 첫째는 작은 하루살이와 큰 낙타의 대조이고, 둘째는 “걸러내고”와 “삼키는구나”의 표현이 대조를 이루는 것입니다. 이렇게 대구를 이루는 표현으로 종교적 위선자들의 실체를 지적하는 잠언과 같은 말씀이 마태복음 23:24입니다. 그러나 “걸러내고”가 아니라 “긴장하고”라는 말은 이 구절의 의도를 바르게 나타내지 못합니다.
이 구절의 바른 번역이 무엇인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위해서는 “걸러내고”라는 번역이 틀렸고 “긴장하고”가 맞다고 주장하며 [한글킹제임스성경]을 거짓되이 비방하는 정동수(인하대 교수)의 오류들을 바로잡는 것이 필요합니다.

1. 이 문제의 바른 답을 찾기 위해서는 먼저 “strain”과 “strain at”과 “strain out”의 뜻을 혼동하지 않고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정교수는 [한글킹제임스성경]이 영어 [킹제임스성경]대로 번역하지 않았으며, 영어 본문이 “strain at”으로 되어 있지 “strain out”으로 되어 있지 않음을 유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그가 “strain at”을 “긴장하다”의 뜻으로, “strain out”을 “걸러내다”의 뜻으로 잘못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strain”은 “at”이나 “out” 없이 “strain”만으로도 “걸러내다”라는 뜻이며, “strain at”과 “strain out” 역시 모두 “걸러내다”라는 뜻입니다.

영어 사전들 가운데 가장 권위있는 [옥스포드 영어 사전, Oxford English Dictionary](이하 OED)에서 “strain”을 찾으면 “III번 항목, 14번의 e용례”에서 다음과 같은 정의와 설명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III. 걸러내는(여과하는) 매개물을 통과하게 하다, 걸러내다.
14. e. 걸러냄으로써 액체에서 (무엇인가를) 제거하다.
이 용례는 마태복음 23:24에 있는 ‘하루살이는 걸러내고’(strain out a gnat), ‘하루살이는 걸러내고’(strain a gnat)를 제외하고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이 본문에 대해 보다 더 잘 알려진 번역에 대해서는 21번을 보라.)
1526년 틴데일 성경의 마태복음 23:24, 너희 눈먼 안내자들아 하루살이는 걸러내고(strayne out) 낙타는 삼키는구나. (1535년 커버데일 성경, 1539년 크랜머 성경, 1560년 제네바 성경 등도 마찬가지다.) ...1582년 림즈 듀웨이 신약성경의 마태복음 23:24, 하루살이는 걸러내고(straine)...」

이와 같이 OED의 설명에 따르면, 1611년의 [킹제임스성경] 이전에 번역된 영어 성경들에서 “strain”과 “strain out”이 모두 “걸러내다”라는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런데 “걸러내다”는 의미의 번역인 “strain”과 “strain out”보다 더 잘 알려진 번역에 대해서는 “21번 용례”에서 설명한다고 밝히고 있는데, 이것은 다름아니라 [킹제임스성경]의 “strain at”에 관한 것입니다. [킹제임스성경]의 “strain at”은 “걸러내다”의 뜻이며, 이 번역이 일반적으로 더 잘 알려진 표현이라는 것이 OED의 설명입니다. 이런 사실을 OED의 21번 용례에서 다음과 같이 확인할 수 있습니다.

「21. to strain at : (어떤 것을) ‘삼키거나’ 받아들이는 것을 어려워하다; 마음에 꺼리다. 또한 (드물게), 어떤 것을 ‘하는 것을 어려워하다/꺼리다.’
이 용례는 마태복음 23:24의 ‘하루살이는 걸러내고’(strain at a gnat)라는 구절을 오해한 데서 기인된 것이다. 1611년의 킹제임스성경에 있는 ‘strain at’(걸러내고)이 앞선 역본들의 번역인 ‘strain out’(걸러내고)의 오탈자라고 주장되어 왔다(14. e. 용례를 보라). 그러나 1583년과 1594년의 인용문들은 1611년의 킹제임스성경 번역자들이 이미 통용되고 있었던 번역을 채택했을 뿐이라는 사실을 알려 준다. 그것(strain at)은 오역이 아니었으며, ‘마실 것에 하루살이가 발견되면 그것을 걸러낸다(strain)’는 의도된 의미였다. 그러나 이 구절은 일찍이 “힘써 노력하다”는 의미로 추정된 동사라고 잘못 이해되었다(1609년의 인용문에서 보듯이 쉐이크는 오해했다). (18번 용례를 보라.)」

이와 같은 설명에서 확인되듯이, OED의 21번 용례에 제시된 “to strain at”의 뜻은 “어려워하다/마음에 꺼리다”로 [킹제임스성경]의 “strain at”(걸러내다)과는 뜻이 다릅니다. 그런데 21번의 용례가 생긴 것은 [킹제임스성경]의 “strain at”(걸러내다)을 오해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주의해야 합니다. [킹제임스성경]의 “strain at”은 OED의 14. e.의 정의와 설명과 같이 “걸러내다”는 뜻이며, “strain”이나 “strain out”과 똑같은 의미로 쓰인 것입니다. 그런데 [킹제임스성경]을 대적하는 신학자들은 이 사실에 대해 전혀 무지한 채 [킹제임스성경]의 “strain at”이 오역이며 “strain out”이 맞는 번역이라고 오해했던 것입니다. 1611년 이전에 “strain at”이 “strain”이나 “strain out”과 똑같이 “걸러내다”는 뜻으로 이미 쓰이고 있었기 때문에 [킹제임스성경]의 번역자들은 이 표현을 그대로 사용했던 것입니다.

OED는 21번 용례에서 위와 같은 설명과 함께 [킹제임스성경] 이전에 “strain at”이 “걸러내다”는 뜻으로 이미 통용되었던 인용문들을 제시합니다. 첫째는 영국의 극작가이자 시인이었던 로버트 그린(1558-1592)이 1583년 저작에서(Mamillia II. B2b) “대부분은 부당하게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코끼리는 지나가게 한다.”(Most vniustly straining at a gnat, and letting passe an elephant)고 쓴 것이고, 둘째는 1594년 킹(J. King)이 그의 저작에서(On Jonas, 1599, 284) “그들이 하루살이들은 걸러내고 낙타들은 삼킨다는 옛 잠언을 입증했다.”(They have verified the olde proverbe in straining at gnats and swallowing downe camells)고 쓴 것입니다. OED는 이 두 인용문 다음에 세 번째로 [킹제임스성경]의 마태복음 23:24을 기록해 놓고 있는데, 이것은 통용되던 영어 표현을 그대로 쓴 것이 [킹제임스성경]의 『너희 눈먼 안내자들아, 너희가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낙타는 삼키는구나.』(Ye blind guides which strain at a gnat, and swallow a camel)라는 말씀이라는 사실을 알려 주는 것입니다.
반면 OED는 “strain at”의 의미를 오해한 사례에 대한 인용문으로 1609년에 쉐이크가 쓴 글에서(Shakes, Tr. & Cr. III. iii. 112(Qo. 1) Viss.) “나는 그 자리를 어려워하지 않았다/꺼리지 않았다.”(I do not straine at the position...)는 문장도 제시하고 있습니다. 1609년에 쉐이크가 “strain at”의 뜻을 오해하여 잘못된 용례를 남겼고, 지금까지도 많은 신학자들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strain at”의 뜻이 “strain”과 “strain out”과 같이 “걸러내다”라는 사실에 무지한 채 [킹제임스성경]이 오류를 범했다는 거짓을 유포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OED의 설명에서 확인되는 바와 같이 정교수가 “strain,” “strain at,” “strain out” 등의 뜻도 정확히 알지 못한 채 [한글킹제임스성경]의 『걸러내고』라는 번역을 [킹제임스성경]대로 번역하지 않은 것이라고 주장한 것은 전혀 근거 없는 말이며, 또한 정교수가 매우 심각한 오류를 범한 것입니다.

2. “strain”이라는 단어의 뜻과 용례에 대해 정교수가 전혀 무지했다는 또 다른 증거는, 그가 “~ 보다 / ~ 눈여겨보다”는 뜻의 “look at”을 근거로 “strain at”의 뜻이 ‘모기를 보고 긴장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했다는 점입니다. 이 두 표현은 “at”을 똑같이 사용하고 있지만, “at”의 용례가 서로 같지 않습니다. 정교수는 “at은 무엇을 본다고 할 때 쓰는 단어”라고 말하면서 “strain at”이 마치 “무엇을 보고서 긴장하다”는 뜻이라고 잘못된 판단을 했고, 따라서 “모기에는 긴장하고”라고 오역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영어에서 “무엇을 보고 긴장하다”와 같이 마음의 상태를 나타내는 표현에 “at”이 “원인, 이유, 동기”를 나타내는 전치사로 쓰일 때, 즉 “~ 보고 (마음이) ~ 하다.”는 표현에는 단지 “at”만을 쓰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피를 보고 놀라다.”라는 표현은 “wonder(be surprised) at blood”가 아니라 “wonder(be surprised) at the sight of blood”이며, “피를 보고 슬퍼하다.”라는 표현도 “grieve at blood”가 아니라 “grieve at the sight of blood”입니다. 따라서 영어에서 “~ 보고 긴장하다”는 뜻으로 문장을 쓴다면 “strain at ~”이 될 수 없습니다. 정교수는 [한글킹제임스성경]을 반대하는 편견 때문에 마태복음 23:24의 말씀과는 전혀 상관없는 “긴장하다”는 말에 사로잡혔으며 바른 판단을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strain”이 “긴장하다”의 뜻으로 쓰이는 용례는 OED의 “II번 항목, 11번의 k와 m 용례”에서 다음과 같이 발견됩니다. 「II. 꼭 죄다, 팽팽하게 당기다, 잡아당기다. 11. k. 감정적 긴장(tension)을 높은 상태로 끌어올리다. m. (상대간의 문제나 관계를) 위험한 긴장(tension) 상태로 끌어 올리다.」 그러나 이와 같은 뜻은 마태복음 23:24의 말씀과는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우리말에서 “긴장”이라는 말의 사전적 정의는 「① 마음을 조이고 정신을 바짝 차림. ② 정세나 분위기가 평온하지 않은 상태. ③ (의학)근육이나 신경 중추의 지속적인 수축, 흥분 상태」 등을 말하며, 영어에서 “strain”이 “긴장하다”는 의미로 쓰일 때도 우리말의 사전적 정의 ①, ②, ③의 용례가 다 있습니다. 하지만 마태복음 23:24의 말씀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것입니다.
3. 이 구절과 관련한 정교수의 거짓된 비방은, 그가 하나님께서 우리말로 주신 최종권위 성경인 [한글킹제임스성경]을 대적하는 악한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해 줍니다. 그 이유는 정교수가 다음과 같이 거짓말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친구 럭크만 박사는 매우 신랄하게 현대 학자들을 비난하며 “모기는 긴장하고” 즉 “strain at”이 맞음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습니다. 럭크만 박사를 하나님처럼 모시는 말씀보존학회에서 어떻게 이런 일을 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결코 바른 번역이 아니며 킹제임스성경의 역자들을 우롱하는 것입니다.」

먼저 정교수는 럭크만 박사를 우리의 친구라고 부를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의 웹사이트와 저서에서 럭크만 박사를 신랄하게 비판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럭크만 박사를 하나님처럼 모시는 말씀보존학회”라는 표현은 분별없는 사람들에게 본 학회에 대하여 좋지 않은 평가를 하게 하는 악의적인 표현입니다. 정교수의 영은 하나님의 사역을 바르게 평가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무엇보다도 럭크만 박사가 “strain at”을 “긴장하다”는 뜻이라고 주석했다고 쓰고 있지만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럭크만 박사의 마태복음 주석서에는 그런 내용이 전혀 없습니다. 럭크만 박사는 “strain at”이 “걸러내다”는 뜻이며, “strain out”과 같은 뜻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단지 RSV의 번역자인 루터 바이글이 [킹제임스성경]의 “strain at”은 오역이며 “strain out”이 맞다고 잘못된 주장을 했기 때문에 바이글이 틀렸다고 비평했을 뿐입니다. 럭크만 박사의 주석은 다음과 같습니다.

「루터 바이글에 따르면, “at”이라는 단어가 “out”이 되어야만 한다고 한다. 그의 추론은 (그의 배교한 번역본인 RSV의 추론과 같이) 당신이 여과기에서 어떤 것들을 걸러내야(out) 하기 때문에 반드시 “out”이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즉 당신은 여과기를 통해 여과시켜 걸러진 것들을 꺼내야(OUT) 한다... 누구나 그 구절에 주의를 기울인다면, (킹제임스성경에서 발견되는 것과 같이) “strain at”은 “strain out”과 같은 의미라는 사실을 알 것이다. 그러나 1611년 킹제임스성경의 본문들에 무지한 것은 이 시대의 종교 지도자들에게 나타나는 보편적인 습성이기 때문에 그들 중 누구도 킹제임스성경 안에 있는 의미를 발견한다는 것은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일 것이다... “strain at”은 바른 표현이다. (킹제임스성경을 수정하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바이글 학장은 전적으로 틀렸다.」바이글 같은 성경 변개자나 반스를 비롯한 주석가들처럼 정교수는 [킹제임스성경]의 단어를 바르게 깨닫지 못했으며(이것은 “영어 KJV”가 자신의 최종권위라는 정교수의 주장이 거짓임을 입증하는 사례입니다), 또한 럭크만 박사의 주석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한글킹제임스성경]이 오역했으며 [킹제임스성경]의 번역자들을 우롱했다고 주장했지만, 실제로 이 말은 정교수에게 해당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섭리적인 역사로 이 나라에 주신 그분의 바른 성경인 [한글킹제임스성경]을 비방하고 공격하는 사람과 그 열매는 결코 좋은 열매가 아니라 악한 열매라는 사실을 분별해야 합니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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