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히브리서 주석 분류

하나님에게서 떨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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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6년 10월호>

<본문 : 히브리서 3장 7-19절>



3:7-19 『그러므로 (성령께서 말씀하시기를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격노의 때, 곧 광야에서의 시험의 날과 같이 너희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라... 내가 내 진노 가운데서 맹세하기를 ‘그들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다.” 하셨느니라.) 형제들아, 너희 중에 아무도 믿음 없는 악한 마음으로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지지 않도록 주의하라. 오직 오늘이라고 부르는 동안 매일 서로 권면하여 너희 중 아무도 죄의 속임수에 빠져 완악하게 되는 일이 없도록 하라. 이는 우리가 처음의 확신을 끝까지 확고하게 붙들면 그리스도께 참여한 자가 되기 때문이라.... 그러므로 우리가 보건대 그들이 들어가지 못한 것은 믿음이 없었기 때문이니라.』

여기서 히브리서의 기자는 일정 기간을 견디는 약속에 대해 구약에 있던 한 사건을 예로 들면서 설명하고 있다. 그 사건은 모세의 인도로 출애굽을 하여 광야에서 40년 동안 지냈던 사건인데, 과거에 약속의 땅에 들어 가기 전의 일정 기간은 미래에 천년왕국에 들어 가기 전의 일정 기간의 모형이다. 많은 신학자들은 출애굽하여 광야 생활하는 것을 죄인의 구원과 성도의 생활에 적용하여, 홍해를 건넌 것은 죄인이 구원받은 것이고, 광야 생활을 한 것은 구원받은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할 때 여러 가지 고난과 시험을 당하며 영적 전쟁을 겪는 것으로 설명한다. 하지만 이러한 해석은 교리적으로 옳지 않다. 우리가 본문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광야에서 지낸 40년 동안 유대인들은 많은 수가 하나님을 대적했으며, 결과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끝까지 견디지 못하고 떨어져 나갔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안식의 땅에 들어가지 못했다. 하지만 이 시대의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은 아무도 하나님의 은혜에서 떨어져나갈 수 없다. 그들이 비록 시험을 받고 그들의 신앙생활에서 퇴보할지라도 그들은 결코 구원을 잃지 않는다.
출애굽의 여정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더불어 천년왕국의 안식의 땅으로 들어가는 미래의 사건의 모형이다. 과거에도 유대인들은 일정 기간을 광야에서 시험받았듯이 미래에도 일정 기간을 시험받는다. 그리고 그들 중에서 끝까지 견디는 사람들은 구원받을 것이지만 도중에 떨어져 나가는 사람들은 지옥으로 갈 것이다. 이들에게는 “그리스도의 동참자”가 되기까지 구원의 영원한 보장은 없다. 그들은 구원받았지만 언제든지 잃어버릴 수 있는 상태이다.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7절)
본문은 시편 95:7-11의 인용이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과거의 사건을 언급하시면서 미래에 행해야 할 일에 대해서 예언하고 계신 것이다. 여기서 “오늘”(To day)이란 바로 미래에 있을 일정 기간의 때를 말한다. 이와 비슷하게 고린도후서 6:2에서는 “지금”(now)이라는 말을 사용하여 구원의 날을 설명하고 있다. 이 표현이 어떤 날을 가리키든 간에 어떤 일정한 기간을 말하는 것이지 개인의 삶의 기간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는 미래에 있을 고난의 때, 즉 대환란 기간을 말한다.

『격노의 때, 곧 광야에서의 시험의 날과 같이 너희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라. 그때에 너희 조상이 나를 시험하였고, 나를 증명하였으며, 또 내가 한 일들을 사십 년 동안 보았느니라.』(8-9절)
그 분의 음성을 다시 듣게될 바로 그 “오늘” 그들은 과거 그들의 조상들이 했던 것처럼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라고 경고받는다. 그들의 조상들은 하나님을 시험했고(신 1:26; 6:16), 또 모세를 격노케하여 그의 입으로 경솔한 말을 하게 했다(시 106:33). 본문에서 제시되는 것은 주를 거역하는 히브리인의 모습이다.
히브리서에서 강조하는 것은 “비교”이다. 예수님의 우월하심도 천사와 아담과 아론과 모세와 비교하여 증명하였다. 이번에도 히브리서는 또 하나의 비교를 시도한다. 그것은 과거에 안식의 땅으로 들어가는 모습과 미래에 안식의 천년으로 들어가는 모습이다. 히브리서 3장과 4장에서는 “안식”이라는 주제로 이 두 사건을 계속 비교하여 설명하는데, 히브리서의 독자들이 받는 경고는 과거에 조상들의 행위를 본받지 말고 그 시험의 기간을 견뎌내라는 것이다. 그때 그들에게 주어지는 안식은 과거에 주어졌던 안식보다 “더 큰 안식”이다.

『그러므로 내가 그 세대에 대해 노여워하여 말하기를 ‘그들은 항상 마음이 미혹되어 내 길들을 깨닫지 못하였느니라.’ 하였으며 내가 내 진노 가운데서 맹세하기를 ‘그들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다.” 하셨느니라.』(10-11절)
카네스 바네아에서 주를 거역함으로 말미암아 40년을 방황하게 된 이 저주받은 세대는, 당시 20살 이상의 사람들 중 여호수아와 칼렙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안식에 들어가지 못했다.
이 안식은 영적인 안식이 아니다. 이 안식은 실제적인 안식으로, 육체를 입고 카나안 땅에 들어가는 안식이다. 그러므로 이 안식을 그리스도인들이 누리는 영적 안식으로 해석해서는 안되며, 출애굽기간을 신약적인 구원이나 이방인의 구원계획과 연관시켜 설명해서도 안된다. 성경에는 여러 종류의 안식이 제시되는데,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께서 일곱째 날에 쉬신 것(히 4:4)과 그로 말미암은 안식일, 여호수아가 팔레스타인 땅으로 이스라엘을 인도한 안식(히 3:11,18), 천년왕국(히 4:9-11), 그리고 영적 안식(히 4:10) 등이다. 이 영적 안식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끝내신 일을 신뢰함으로 말미암아 그분 안에서 쉬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이 안식은 우리의 행위와는 전혀 무관한, 믿음만으로 얻는 안식이다. 죄인은 쉼을 얻기 위해서 어떠한 행위를 할 필요가 없다. 죄인이 혼의 쉼을 얻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께 가기만 하면 된다(마 11:28). 주님은 십자가 위에서 우리의 죄를 모두 해결해 놓으셨기에 우리는 그 분의 피를 신뢰하기만 하면 영적 안식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히브리서 본문에서 제시하는 안식은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함으로 그분 안에서 쉬는 영적 안식이 아니다. 그들은 이 안식에 들어가기 위해 믿음과 더불어(민수기 14장에서 그들은 믿음이 없음으로 카나안 땅을 침범하지 못했다) 모종의 행위를 해야만 한다. 만약 그들이 끝까지 견디지 못하면 이 안식을 얻을 수 없다. 이 안식은 결코 영적인 것이 아니며, 실제적이고 물리적인 안식인 것이다. (네 가지 안식에 대해서는 「성경용어 코너」를 참조할 것)

『형제들아, 너희 중에 아무도 믿음 없는 악한 마음으로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지지 않도록 주의하라.』(12절)
살아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진다는 이 표현은 구원을 잃어버린다는 것을 강력히 지적하는 표현이다. 요한 웨슬레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이 구절을 통하여 구원의 “불안전성”에 대한 교리를 정립하고 있다. 만일 죄인들이 히브리서 3장의 이 안식에 의존한다면 그는 결코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안식을 얻을 수 없다. 그는 믿음 없는 본에 빠지지 않기 위해 지속적으로 행위를 해야 한다.
물론 이런 일들이 교회시대를 사는 신약 성도들에게 본으로 제시되는 것은 사실이다. 사도 바울도 고린도전서 10장에서 출애굽 사건을 예로 들면서 성도들에게 그들처럼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하나님을 시험하다가 죽은 사람들을 말하면서 성도들에게 경고하고 있다(고전 10:8-12). 그러나 바울이 구약의 유대인들을 언급하여 그리스도인의 타락을 말할 때면 그는 단순히 “육체적 죽음”을 말하고 있는 것 뿐이다. 즉 바울이 말하고 있는 것은 “출애굽 때 그들이 반역하여 죽임을 당한 것처럼 너희도 그렇게 하면 죽을 수도 있다.”라는 것이지 “그들이 구원에서 떨어져나간 것처럼 너희도 구원에서 떨어져나갈 수 있다.”라는 것은 아니다. 고린도전서 11:30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죄 때문에 병들기도 하고 육체적인 죽음을 당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죄 때문에 “살아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진다”는 것은 바울 서신과는 다른 관점으로 구약을 제시한 것이고, 그들은 실제적으로 구원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히브리서 3,4,6,10장은 구원을 잃어버리는 교리를 제시하고 있다.

“믿음 없는 악한 마음”에 대해서는 구약성도들이나 신약성도들이나 환란성도들에게 모두 해당되는 경고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신약성도들은 이러한 상황에 처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에게서 떨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환란성도들 중에는 과거 출애굽 때 그들의 조상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들의 불신 때문에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긴다(19절). 그들에게 있어서는 약속의 땅, 즉 유대인들에게 약속된 천년왕국의 팔레스타인 땅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은 곧 지옥의 저주를 의미한다. 민수기 14장에서 그들은 여호수아와 칼렙이 말한 그 땅에 대한 “좋은 소식”을 들었다. 즉 그들은 “복음”을 들었으나 믿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전해들은 “복음”이 지금 우리가 전해들은 “은혜의 복음”이 아닌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들이 들은 복음은 “주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데려다 주시리라.”는 것이다(민 14:8). 그러나 그들은 이 복음을 믿지 않고 떨어져 나갔다. 이와 똑같은 상황이 마지막 대환란 때 다시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도 한 번은 분명히 믿었던 적이 있었다. 그들은 이집트에서 떠나오기 직전 유월절 양의 피를 믿었던 것이다. 이것은 신약성도들에게 중요한 모형이 된다. 이것은 율법(행위) 이전에 주어진 은혜(믿음으로 말미암는)의 역사이다. 우리는 십자가 위에서 흘리신 유월절 양의 피를 믿음으로써 구원의 영원한 보장을 얻었다. 하지만 그들은 율법 이전에 주어진 은혜의 역사를 믿고도 떨어져 나간 사람들이다. 여기서 히브리서의 저자는 히브리서의 독자들에게 실패한 그들의 조상들처럼 떨어져나가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다. 그들이 실패한 그 믿음을 이들은 가져야 한다.

『오직 오늘이라고 부르는 동안 매일 서로 권면하여 너희 중 아무도 죄의 속임수에 빠져 완악하게 되는 일이 없도록 하라.』(13절)
이 “오늘”이라고 부르는 기간은 매우 중요하다. 그 때에는 죄의 속임수에 절대 빠져서는 안된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6장에서 이러한 상황을 대비해서 『우리를 시험에 들지 않게 하옵시고, 악에서 구하여 주옵소서』(마 6:13)라고 기도하라고 말씀하신다. 구체적인 악의 실체인 적그리스도가 등장해 있고, 죄를 짓게 되면 구원에서 떨어져나가 다시 회복될 수 없는 이 상황에서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는 그들에게 매우 힘이 될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삶을 성결케 유지하기 위해 이러한 기도로써 끊임없이 주님께 의지하며 주님의 왕국이 이 땅 위에 하루 빨리 임하도록 기다리며 기도해야 한다. 『아버지의 왕국이 임하옵시며...』(마 6:10). 이때 그들에겐 천국복음이 다시 전파될 것이고(“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표적과 이적이 다시 등장할 것이며(막 16:17-18), 그들은 광야에서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부양받을 것이고(계 12:14), 그들 중에는 과거 출애굽 때처럼 떨어져 나갈 자들이 있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참여자들이 되어(히 3:14) 구원받아 하나님께서 그들의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팔레스타인 땅을 유업으로 받을 것이다(창 15:18-21). 이 모든 일들은 “오늘”이라고 불리는 기간 동안 일어날 것이다.

『이는 어떤 자들이 말씀을 들을 때에 격노케 하였음이라. 그러나 모세에 의하여 이집트에서 나온 모든 사람이 그리한 것은 아니었느니라.』(16절)
이 부분은 대부분의 역본들이 변개시킨 부분이다. 성경은 분명히 이집트에서 나온 모든 사람이 반역한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이 사실은 민수기 14:29에서 20세 이상된 자들만이 멸망했다는 기사로 증명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변개된 성경들은 “듣고 격노케 하던 자가 누구뇨 모세를 쫓아 애굽에서 나온 모든 이가 아니냐”(Who were they who heard and rebelled? Were they not all those Moses led out of Egypt? - NIV)라고 말한다. (한글개역성경도 똑같은 번역을 취했다.) 이 부분은 “마지막 날들”을 사는 히브리인들에게 경고를 주는 가운데 그들에게 위로와 확신을 주는 부분이다. “모세에 의하여 이집트에서 나온 모든 사람이 다 멸망한 것은 아니므로 너희 중에서도 믿음과 인내로 끝까지 지키는 사람들은 구원받을 것이다. 확신을 가지고 끝까지 견뎌라.”라고 말하는 부분이다. 만약 여기에서 다른 성경들처럼 “모든 사람”이 반역했다고 기록했다면 히브리서를 읽는 환란기 때의 독자들은 희망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주님은 항상 경고와 더불어 희망과 약속을 주신다. 이러한 내용은 히브리서 10장에서도 다시 한 번 나타난다. 『그러나 우리는 뒤로 물러나서 멸망하게 될 자들에게 속하지 아니하였고, 오히려 혼의 구원에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 속하였느니라』(히 10:39). 이것은 믿음을 가졌으나 언제라도 떨어져나갈 위험에 처한 사람들에게 위로와 확신을 심어주는 강력한 구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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