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출애굽기 주석 분류

주께서 그날에 이스라엘 자손들을 데리고 나오셨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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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1년 06월호>

출애굽기 12:18-28 ■ ■ ■ ■ ■

19절은 예언이 포함되어 있다.『그 땅에서 태어난 자』 모세는 결코 그 땅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런데도 이 구절을 기록했다. 하나님께서는 앞으로의 일을 예견하고 계신 것이다(신 34:1-6). 민수기 15장에서도 그 땅에 들어가는 것에 대해 말씀하셨다. 그런데 민수기 13장에서는 이스라엘의 자손들이 그 땅에 들어가는 것을 막으셨던 것이다.

18,19,20절은 “누룩”에 대해 말씀하신다. 유대인들은 이 말을 아주 신중하게 받아들인다. 집안을 깨끗이 청소하고 빵부스러기 하나라도 바닥에 돌아다니지 않게 한다. 유월절인 아빕월의 14일째 되는 날은 오후 6시로 끝나고 곧 이어 “누룩 없는 빵”을 먹는 무교절인 15일째 날이 시작된다. 마가복음 14:1의 “이틀”은 화요일 오후를 포함한다는 이 사실에 카톨릭을 비롯한 많은 신학자들이 걸려넘어지고 만다(출 12:16,17을 기억하라). 마가복음 14:1의 “이틀” 중 첫 번째 날은 거의 수요일 저녁 5시경까지였고, 수요일 저녁 6시에 두 번째 날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지금 이것은 하루 중 몇 시간이 하루로 계산된 경우이다. 즉 화요일에 해당하는 몇 시간이 포함되어 있기에 그것을 하루로 계산하고, 또 수요일 전체도 또 다른 하루로 계산해서 이틀 후면 유월절과 무교절이 된 것이다(막 14:1). 마가복음 14:1,2에서 정확한 시간 요소가 주어지지 않은 것을 보면 이 사실을 더 확증한다. 누룩이 없는 빵은 오후 6시에 먹는다(신약의 경우 수요일 저녁 6시경이다). 이 날은 그 달의 14일째에 해당된다(12:16). 그러므로 예수님의 시체는 수요일 밤 6시 이후에는 십자가에 매달려 있을 수 없다.

『너희는 누룩이 있는 것은 아무것도 먹지 말고』(20절).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성별된 삶이어야 한다. 교리적으로도 누룩이 없어야 하고(마 16:12) 실제 생활 가운데서도 누룩이 없어야 한다(고전 5:6,7).『너희의 모든 처소에서 누룩 없는 빵만을 먹을지니라』(20절). 말씀은 음식이다(눅 4:4). 그리스도인들이 매일의 삶 가운데 30분씩이나 신문을 읽는 데 시간을 보낸다면 어떻게 은혜 안에서 성장할 수 있으며 하나님의 능력을 소유할 수 있겠는가?

『그때에 모세가 이스라엘의 모든 장로들을 불러서...』(21절).

이제 명령이 한 가지로 28절까지 전달된다. 22절의 “우슬초”는 성경에서 자주 언급되는 식물이다. 요한복음 19:29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마음속에 있는 죄를 정결케하는 데 사용된다(레 14:4, 6,51, 민 19:6, 시 51:7). 죽임 당하는 어린 양(21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이다(고전5:7).『집들』(27절)은 집합적 의미의 가족을 말한다. 죽음의 천사에 대해서는 23절에서 살펴보았다. 22절의『뿌리고』는 때린다는 의미가 있는데(strike), “어린 양의 죽음”(막 14:65)을 강조한 것이다. 이제 다시 하나님의 은혜를 통하여 죄인들은 하나님을 경배한다.『백성들이 고개를 숙여 경배하더라』(27절).

출애굽기 12:29-36 ■ ■ ■ ■ ■

본문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분명하다. 하나님께서 무엇인가를 하시겠다고 하시면 반드시 하신다.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는가? 이것은 실제로는 너무나 단순한 문제다. 피 아래 있으면 안전하다. 피가 없으면 잃어버린 사람이다. 하나님의 선지자를 따르지 않고 교육받은 불가지론자(출 5:2)의 인도를 따랐을 때 뒤따라오는 인간의 슬픔과 눈물은 어떠했는가!

『이집트에 큰 울부짖음이 있었으니 이는 사람이 죽지 않은 집이 하나도 없음이더라』 (30절).

모든 집의 장자는 하나님의 심판이 내려졌을 때 죽임을 당했다. 피로 인해 살아남은 사람들은 그 밖에 일어났던 일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 밤 12시 5분에 하나님을 의심하는 유대인은 아무도 없었다. 이 시간에 파라오는 진실로 회개의 열매를 맺는 것 같았다(31,32절). 파라오의 회개가 카톨릭과 캠벨주의자들의 “참회”와 비슷하다해도 어쨌든 그 회개는 하나님께서 목적하시는 하나님의 백성이 자유롭게 될 때까지는 유효하다. 민수기 3:43에 보면 장자의 수가 기록된 것을 알 수 있다. 그 수는 22,273명이다.
이 장면에서 주석가들이 놓친 것이 있는데 바로 이방인의 시간이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즉 오늘날 로마와 미국에서 사용되는 시간이 이때 사용된 것이다. 22절의 독특한 표현을 살펴보라.『너희 중 아무도 아침까지 자기 집 문 밖으로 나가지 말지니라.』 31절을 통해 볼 때 이스라엘 자손은 밤에(BY NIGHT) 이집트를 떠난다(12:42을 볼 것). 이것은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떠날 때까지는 로마 시간을 썼다는 것이다. 유럽과 아메리카에서 지금 사용하고 있는 로마 시간 말이다. 히브리 시간으로 아침은 오전 여섯시가 되어야 시작된다. 히브리인의 “저녁”은 오후 여섯시에 시작된다(창 1:3-20 주석 참조).

클라크는 하박국 3:13을 끌어들여 본문과 연결시킴으로 하박국 3:13의 시점을 B.C. 1500년경으로 연결시킨다. 하박국 3장 전체 문맥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며 창세기 3:15의 문자적인 성취를 말하는데도 말이다. 그러나 이런 수법은 이곳에서만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라 전형적인 수법이다. 35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으로(클라크 주석 부록 참조) 구체적인 연도, 주, 일까지도 제시했으면서도 그것을 말하는 구절에 대해서는 읽지도, 설명하지도, 해석하지도, 적용하지도 못하는 박사님을 보라. 초등학교 6학년 정도만 되어도 전혀 아무 문제를 느끼지 못하는 그 문맥에서 말이다. 하박국 3:10-13은 과거의 역사와도 전혀 상관이 없다. 요한계시록 20장이 과거 역사와 전혀 무관하듯이 말이·다. 하박국 3:13을 모세의 때에 맞추는 사람은 나비를 애벌레 집에 구겨 넣으려는 사람과 같다.

출애굽기 12:37-42 ■ ■ ■ ■ ■

『이스라엘 자손들이 라메세스에서 숙콧으로 여행을 하니 아이들 외에 보행하는 남자가 약 육십만이며 혼혈의 무리도 그들과 함께 올라갔고』(37,38절).

많은 주석가들은 “아이들 외에” 보행하는 남자가 육십만 명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부산하게 움직인다. 이 입장을 고수하기 위해 불신자들과 무신론자들과 결탁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 숫자를 문자적으로 받아들일 경우 이스라엘 전체 민족은 최소한 2백만 명이 된다. 이 숫자보다 낮게 잡는다면 민수기 1장을 뜯어 고쳐야만 한다. 민수기 1장에서 20세 이상의 남자의 수만 60만 명이 넘는다고 하기 때문이다. (정확하게는 625,550명)

『그 밤은... 주께 중히 지켜야 할 밤이니』(42절).

모든 그리스도인은 자기 생일을 알고 있다. 바울은 결코 그 사실을 잊지 않았다. 바울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행 22,24,26장)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집트”에서 구해 낸 사실을 이야기했다. “순례자로서의 생활은 창세기 12:1-3부터 시작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어디를 소유해야 할지 어떤 땅을 정복해야 할지 모르는 채(히 11:8,9) 기거했던 것이다. 이 외로웠던 순례가 이제 전쟁에서 사용되는 무기들로 무장한(출 13:18) 군대가 되어(출 17:8) 출발하게 된다. 이 군대로 자신들의 조상들이 타국인이요 순례자가 되어야 했던 그 땅을 위해 싸우고, 정복하고, 소유하고, 굳게 붙잡아 지켜야만 한다. 이 밤의 중요성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이것은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이 그들 대대로 지켜야 할 주의 밤이더라』(42절).

출애굽기 12:43-51 ■ ■ ■ ■ ■

『...타국인은 아무도 먹을 수 없으나 돈으로 산 각 사람의 종은 네가 그에게 할례를 준 후면 그도 먹을 수 있느니라. 외국인과 품꾼은 먹을 수 없느니라』(43-45절).

하나님께서는 분리에 관한 한 결코 그 강도를 낮추시지 않는다. 오늘날의 교육받은 사람들은 전쟁과 사회 불안의 주요인이 분리 때문이라고 믿는다. 이 문맥의 요점은 아무나 유월절에 참여하지 못함을 말한다. 할례받지 않으면(44절) 참여하지 못한다. 할례받기를 거부하면 “타국인”으로 여겨진다. 그가 외부에서 왔든지(외국인), 히브리인 가정에서 일하는 종이든지(45절), 이스라엘에 기거하는 외국인이든지(느 13:16) 마찬가지이다. 할례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창세기 17장을 주석과 더불어 참조하라.

『그러면 그가 그 땅에서 태어난 자와 같이 될 것이라』(48절).

이 부분은 예언이다. 이집트 땅에서 태어난 자와는 아무 상관없다. 벌링거는 여기서도 덫에 걸린다.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킹제임스성경의 구절을 고칠 때마다 걸리는 일이지만 말이다. 벌링거는 이집트인들이 어두움 가운데서 자식들에게 할례를 주었어야 했다고 주장한다. (Companion Bible, p.90). (그는 이스라엘 자손에 대해서는 아무 언급도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삼 일 낮과 삼 일 밤 동안에 고센 땅에는 어두움이 없었기 때문이다. 출애굽기 10:23을 보라.)
이 문맥에서 주의 만찬을 기념하는(고전 11:24)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이 주의 만찬에는 “거룩한 씨”(벧전 1:23)로 태어난 사람들만이 참여한다(고전 11:27). 많은 침례교인들이 예표를 강조하다보니 물에 잠기는 침례가 실제 할례를 말하는 것이어서 거듭났어도 물에 잠기는 침례를 받지 않았다면 주의 만찬에 참여할 수 없다고 고집부린다(출12:48,49).
본문은 은혜 아래에 있다. 여기에서 처음으로 의식을 지키는 명절과 관련되어(43절에서 율례라고 불렀다) 의식법이 언급되어진 것을 알 수 있다. 율법은 아직 모세에게 (요 1:17) 주어지지 않았다. “손으로 쓴 법령”(handwriting of ordinances, 골 2:14)도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앞으로 주어질 레위 법이 어떠할 것인지 말하는 힌트에 대해서는 이미 주어졌다. 구원은 은혜로 주어진다. 구원은 어린 양의 흘려진 피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아직까지는 무엇을 먹어야 되고, 무엇을 먹지 말아야 되는지 아무도 모른다. 머리는 어떻게 해야 하고(레 21:5) 어떤 희생제물을 가져와야 하고(레 1-5장) 어떻게 정결하게 하는 것인지에(민 19,31장) 대해 아무도 모른다. 유월절과 관련되어 여러 의식적인 규정들이 있음을 알았다(12:5,8,10,16,20,46,48). 물론 이 모든 것은 십자가에서 일어날 것을 암시적으로 가리키는데 모세조차도 이 사실을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예표들을 준수하기를 원하셨다(민 20:8). 이를 지키지 않았을 경우 하나님의 결정이 어떤 것인지 분명히 알 수 있다(민 20:12). 구약에서 가장 위대한 하나님의 종(히 3:5)을 일찍 죽게 하신 것이다.

『주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그들의 군대대로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나오셨더라』(51절).

킹제임스성경은 진실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이 민족은 무기들로 무장되었다(출13:18). 그들의 대장은 “전사”(man of war)이다(출 15:3). 비록 한 번도 싸워 본 적도 없고(출 13:17) 피흘리기까지 강력한 훈련도 받은 적 없지만 이집트를 떠나올 떄 이들은 전쟁에 필요한 무기를 갖추고 있었다. 이들은 “군대”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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