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성경 핵심 구절 연구 분류

“교육받지 못한 자들”의 무지와 “교육받은 자들”의 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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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6년 08월호>

기록되기를 “내가 지혜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명철을 없애리라.” 하였느니라. 고린도전서 1:19
우리가 공부하는 성경들은 20세기의 배교한 근본주의자들과 보수주의자들에 대한 테러이다. 이는 그 성경 말씀들을 올바로 공부한다면 그 말씀들은 두 가지 사실을 즉각적으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첫째, “근본주의 회의”에서 “성경의 권위”에 대해 가장 큰 목소리를 내던 사람들이 지구상에 권위를 부여할 수 있는 그러한 성경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둘째, 자신들의 수입과 이미지에 위험을 가할 수 있는 성경 말씀들에 대한 공개적인 논의를 견디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19세기의 성경을 거부한 배교자들(그리스바흐, 라흐만, 홀트, 케년, 티쉔돌프 등)이 구축한 성경비평에 관한 격언들 가운데 하나는 “교리적인 구절들은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일반인들의 언어로 보다 알기 쉽게 표현하면, 이 말은 “당신이 성경에서 그리스도의 신성이나 삼위일체를 증거하는 분명하고 강력한 말씀들이 기록된 구절을 발견하는 모든 경우에 그 구절은 축자적으로 완전히 영감받은 최초의 원본에서는 그러한 사실을 충분히 강조하지 않는 본문인데도 그 본문의 내용을 강화하기 위해서 성경을 과도하게 열성적으로 믿는 사람이 그 구절을 조작했다고 의심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예를 들면, 밥존스대학이 추천하는 성서들(ASV, NASV)의 디모데전서 3:16, 테네시템플과 리버티침례대학이 추천하는 성서들(NIV, NKJV)의 사도행전 4:27,31,휘튼대학과 무디성경연구원, 풀러신학대학 등이 추천하는 성서들(NIV, ASV, RSV, NRSV...)의 요한일서 5:7,8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배교의 실상은 교육받지 못했거나 교육받았거나 상관없이 나타난다. 이들의 생각과 가르침은 “넌센스”나 “허튼소리”의 차원이다. 그런데 이러한 허튼소리가 현재 배교의 시대에는 분별력 없는 사람들에게 경청하고 공경해야 할 것으로 통용되고 있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많은 경우에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의 거친 언어표현이 나쁜 영과 나쁜 태도에서 온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은 매우 오해하고 있다. 그것은 진리로 이끌기 위한 바램에서 오는 것이다. 럭크만 박사는 이것에 관해서 이렇게 말한다.
한 남자가 한 번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만일 당신이 말하는 것처럼 말하고 당신이 사용하는 표현을 사용한다면 아마도 누군가 나를 총으로 쏘았을 것이다.” 이 말에 대한 나의 대답은 이렇다. “내가 만일 내가 말하고 사용하는 어휘를 구사하며 말할 때, 그러한 언어 표현을 사용하는데 있어서 바른 영을 지니지 않았다면 하나님께서는 32년전에 나를 죽이셨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미국의 고명한 지도자들이 알지 못하는 우리의 사역에 대해서 분명히 아신다. 최소한 주요 대학들의 교수들과 교사들이 우리의 사역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는 것은 확실하다. 이는 그들이 사랑없이 직설적인 언어로 수행된 35년간의 축복과 열매맺은 사역들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Peter S. Ruckman, The Unknown Bible, (Pensacola, Fla.: Bible Baptist Bookstore, 1984), pp27-28.
근본적인 교리들과 진리의 말씀들은 성경에 기록된 것을 “올바른 마음을 지니고” 믿음으로써 배우게 되는 것이다. 단지 믿는 것이다. 그러나 순수하게 믿지 않는 사람들이 위와 같은 분별력 없는 언행을 보이는 것이다. 이제 이러한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는 세 구절들(이사야 29:10-12)을 공부해 보자.
이사야 29:10-12 『이는 주께서 깊은 잠의 영을 너희에게 부어 주사 너희의 눈을 감기게 하셨음이니, 그가 선지자들과, 너희 치리자들과, 선견자들을 가리셨느니라. 모든 환상은 너희에게 마치 봉인된 책의 말과 같으니, 사람들이 그것을 유식한 자에게 건네주며 말하기를 “청컨대 이것을 읽으라.” 하나, 그가 말하기를 “봉인되어 있으니 읽을 수 없노라.” 할 것이요, 또 그 책을 무식한 자에게 건네주며 말하기를 “청컨대 이것을 읽으라.” 하나, 그가 말하기를 “나는 무식하다.” 할 것이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들이 맡겨진(롬 3:2) 백성의 선지자들과, 치리자들과, 선견자들을 향해 말씀하신 것이다. 유대인은 선지자들과, 치리자들과, 선견자들은 진리를 가르치고 전파하고 판단하는 책임을 맡은 바로 그 백성이다. 오늘날 누구에게 말씀하시는 것이겠는가?
이사야 29:11에는 한 “책”이 있다. 성경(the Bible)은 한 책(Book)이지만, 만드는데 끝이 없는(전 12:12) 많은 책들 가운데 하나가 아니다. 이 책은 하나님과 관계된 것이다. 이 책은 이러한 경고를 한다.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그들의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으며 나를 향한 그들의 두려움도 사람들의 법규로 가르친 것이라』(사 29:13). 바른 마음을 지니지 않은 사람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우리는 귀머거리들도 어느 날 이 책의 말씀들을 들을 것이라는 말씀을 읽을 수 있다(사 29:18) - 『그 날에는 귀머거리가 책의 말들을 들을 것이며 소경의 눈이 어두움에서와 흑암에서 볼 것이라.』 구약의 마지막 책에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 『그 때에 주를 두려워하는 자들이 종종 서로 말하니 주께서 경청하시고 그것을 들으셨으며, 주를 두려워하는 자들과 그의 이름을 존중하여 생각하는 자들을 위하여 한 기념의 책이 그의 앞에 기록되어 있느니라』(말 3:16).
그런데 대부분의 교육받은 학자들은 왜 성경을 모르는 것인가? 그들에게 이상하고 생소한 책은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성경이다. “청컨대 이것을 읽으라.”는 말에 그들은 “봉인되어 있으니 읽을 수 없노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학자들은 봉인되었다 할지라도 그것을 열 수 있다는 적용을 한다. 그러므로 자신들의 생각을 가르치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봉인된 것이 상징적인 것이라고 말하거나, 묵시적인 것이라고 말하거나, 그 본문은 변개되었다고 말하거나, 필사상의 오류가 있다고 말하거나, 또는 본문의 전승상에 나타난 오류라고 하지만 학자들은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열 수 없는 것을 열 수 있다고 가장하는 것이다. 이것은 교육받은 사람의 거짓말이다. 이사야 29:13- 14은 그 진상을 분명히 밝힌다. -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