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마태복음 주석 분류

예수 그리스도의 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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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5년 09월호>

16장부터 자신에 대해서 제자들에게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시는 예수님은 17장에서 자신의 영광스런 재림 때의 모습을 보이신다. 그리고 왕으로서 여전히 표적을 행하신다.
마태복음 17장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분된다. 1-13절에서는 변형산 사건을 통해 자신의 재림을 나타내 보이시고, 14-21절에서는 마귀들린 아이를 고치시고, 22절부터는 세금을 내는 문제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첫부분은 다시 두 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재림의 모형인 변형산 사건과 재림하시는 왕의 선두주자인 엘리야에 대한 언급이다.

변형산 사건 -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I.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재림

변형산 사건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나타내는 사건이라는 것은 16장의 마지막 부분을 살펴봄으로써 알 수 있다. 16장의 마지막 부분인 21절부터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그 분의 영광스런 재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1절에서는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24-26절에서는 예수님께서 지상에 계시지 않는 동안 제자들이 취해야 할 태도를, 그리고 27-28절에서는 자신의 영광스런 재림을 말씀하시는데, 특별히 28절에서는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들 몇은 인자가 그의 왕국으로 오는 것을 볼 때까지 죽음을 맛보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약속을 지키시기 위해 17장에서 그러한 영광의 재림의 모습을 보여주신다.
17장의 변형산 사건이 예수님의 재림의 모습이라는 것은 17장의 묘사를 살펴봄으로써 더욱 분명해진다.

17:1-5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을 데리고 따로 떨어져 있는 높은 산으로 올라가시어 그들 앞에서 변형되시니 그의 얼굴은 해처럼 빛나고 그의 옷은 빛처럼 희어지더라. 그런데, 보라, 모세와 엘리야가 그들에게 나타나서 주와 함께 이야기하더라. 그러자 베드로가 예수께 대답하여 말씀드리기를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주께서 원하시면 여기에 장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짓겠나이다.”라고 하더라. 그가 아직 말하는 중인데, 보라, 빛나는 구름이 그들 위를 덮더라. 보라, 구름 속에서 음성이 있어 말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그 안에서 내가 기뻐하노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엿새 후에』(1절) - 베드로전서 3:8의 체계에 따라서 창조의 한 주간은 아담부터 7천년 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엿새 후”는 “제 칠일”이라는 말이다. 예수님께서는 재창조 이후 6천년이 지난 후에 재림하실 것이다. 이것은 전천년주의 해석체계를 증명해준다. 재창조 주간의 제 5일에는 처음으로 생명체가 등장하는데(창1:21), 이것은 구약 4천년을 지난 후에 참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것을 설명하며, “엿새 후에” 예수님께서 영광스런 모습으로 변모되셨다는 것은 아담 이후로 육천 년을 지낸 뒤에 예수님께서 영광스럽게 재림하신다는 것을 설명한다.
이러한 “일곱체계”(seven system)에 대해서는 레위기 23,25장, 그리고 출애굽기 22장에서 잘 나타난다. 하나님께서는 6일 동안 일한 후 일곱째 날에는 쉬라고 명하셨다. 또 6주가 지난 후 제 7주도 쉬어야 한다. 일곱째 달에는 장막절이 있고(레23:24), 일곱째 해에는 땅의 안식이 주어진다(레25:4). 또 일곱 안식년이 지난(49년) 다음 해에는 그 땅의 모든 거민들에게 자유가 선포되는 “환희의 해”가 된다(레25:8-55). 그리고 6천년이 지나면 안식의 일곱 번째 천년이 온다(계20:1-6). 재창조의 일곱 번째 안식의 날은 바로 일곱 번째 안식의 천년에 대한 모형이다.
이러한 전천년 체계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시점을 알 수 있게 해준다. 물론 휴거는 비밀스럽게 이루어지겠지만 영광스러운 재림은 여러 부분에 걸쳐 예언되어 있으므로, 만약 우리의 달력이 정확하다면 우리는 그 시점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초림에 있어서도 서기관들이 성경을 정확히 연구했다면 그 시점을 알 수 있을 만큼 성경에는 주님의 오심에 대한 정보가 주어져 있다(단9장, 민4:43).
누가는 누가복음 9:28에서 『약 팔일째 되는 날』(about eight)이라고 기록한다. 이 말은 “제 팔일이 될 즈음에”라는 말인데, 곧 일곱째 날을 의미한다. 마태복음의 기록(“엿새 후에”)과 누가복음의 기록(“약 팔일째 되는 날”)이 다른 것을 보고 성경에 모순이 있다든지, 예수님께서 두 번 변형하셨다고 생각하면 안되는 이유는 이 둘이 모두 “제 칠일”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가가 여덟 번째 날을 강조해서 말한 것은 영적인 의미가 있다. 제 칠일은 제 팔일과 연속된다. 재창조 주간에는 일곱째 날에 대한 묘사에서 “저녁과 아침이 되니”라는 묘사가 빠져 있는데(창 2:2,3), 이는 안식의 일곱 번째 천년인 천년왕국은 영원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천년왕국이 끝나고 영원세계가 이르기 전에 한 번의 반란이 있고 하늘과 땅이 불로 소멸되는 사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천년왕국을 의로운 세계로 묘사하고 있다(사 11장). 이것은 다윗의 보좌의 완성인 천년왕국이 영원세계와 연결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엿새 후에”라는 말이 재림의 시점을 말하는 이상, 그 뒤에 묘사되는 사건들은 모형적으로 환란 끝에 이스라엘에게 나타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상세한 묘사가 된다.

『따로 떨어져 있는 높은 산』(1절) - 이 산은 출애굽기 19장에 제시된 산으로, 시내 산을 지칭한다. 주님께서는 스카랴 14:4에 제시된 것처럼 올리브 산 위에 서실 것이지만 그에 앞서 시내 산으로 오실 것이다. 이것은 스코필드나 라킨, 다른 전천년주의자들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다. 재림의 행로는 이스라엘이 출애굽한 경로와 같은데, 예수님께서는 시내 산에서 출발하여 파란(Paran) 산과 에돔, 셀라, 시혼을 지나, 헤스본과 길갈과 여리코를 거쳐 예루살렘 동문으로 입성하실 것이다. 이 길은 “왕의 대로”로 알려져 있다(민20:17; 21:22, 마4:1 주석 참조).

『그들 앞에서 변형되시니』(2절) - 베드로는 베드로후서 1:16,17에서 이 모습에 대해 다시 한 번 증거하는데, 그 모습은 요한계시록 1:14-16에 제시된 모습과 같다. 예수님께서는 더이상 이사야 53장의 연약한 모습이 아니시다. 출애굽기 19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이 산에서 위엄있게 말씀하셨다.

『그의 얼굴은 해처럼 빛나고』(2절) - 예수님께서는 마가복음 13:35의 4경점에서 천년왕국(일곱째 날)이 시작되는 때인 ‘아침 해가 돋을 때’ 재림하실 것이다. 말라키 4:2에서는 예수님의 재림을 묘사하면서 그 분을 “의의 태양”이라고 기록한다. 뿐만 아니라 마태복음 13:43에서는 의인들이 아버지의 왕국에서 해처럼 빛난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휴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재림을 말하는 것이다.

『모세와 엘리야』(3절) - 모세와 엘리야는 예수님의 재림과 관계되는 사람들이다. 모세와 엘리야와 예수님의 연관성은 성경에서 여러 가지로 나타난다.
1. 이 셋은 모두 “따로 떨어져 있는 높은 산”(시내 산)에 있었다(출24:18, 왕상19:8-15, 마4:1-13).
2. 이 셋은 모두 40일 동안 금식했다(출24:18, 눅 4장, 왕상19:8)
3. 이 셋은 모두 “주의 면전”에 섰다(출33:21, 왕상17:1, 행 2장, 히8:1; 12:1 -3)
4. 이 셋은 모두 이스라엘에 보냄받았다(출 2-4장, 왕상 17-18장, 눅 4장, 마10:1-8).
5. 이 셋은 모두 기적적인 방법으로 물을 건넜다(출 14-15장, 왕하 2장, 마 14장).
6. 엘리야와 모세는 예수님께서 침례받으셨던 곳에서 생애를 마쳤다(신 34, 왕하 2, 요1:28).
7. 엘리야는 살아서 올라갔으나 다시 죽을 것이다(왕하 2, 계 11).
8. 모세는 죽은 후에 올라갔으나 다시 죽을 것이다(신 34, 계 11).
9. 모세와 엘리야와 예수님, 이 셋은 모두 그들의 사역을 이어나갈 후계자가 있었다(신3:24-28, 왕하 2, 롬15:8,9, 행9:15,16).
10. 이 셋은 모두 초자연적인 일을 행했다(출 5-10, 왕상17:1, 약5:17, 계11:3
-6, 마14:31-33).
이들의 연관성은 이들 모두가 예수님의 재림과 연관되는 인물임을 증명하는데, 특히 모세와 엘리야는 재림의 앞선 상황인 대환란 때 “두 증인”으로 등장하여 적그리스도 앞에서 증거하다 목베임당해 죽는다(계 11장). 많은 전천년주의자들도 계시록 11장의 두 증인에 대해서 “에녹과 엘리야”로 이해하는데, 그것은 히브리서 9:27의 “한 번 죽는 것은 사람들에게 정해졌다.”라는 말을 교리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모세는 죽었으나 에녹은 죽지 않았기에 한 번은 죽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나온 발상이다. 그러나 이 구절은 일반적인 현상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구절이며, 분명히 예외도 발견된다.
교회시대의 성도들 중 예수님께서 오실 때까지 살아있는 사람들은 살아서 휴거되므로 한 번도 죽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히브리서 9:27 말씀의 예외이다. 또 예수님과 몇몇 선지자들에 의해 죽었다가 깨어난 사람들은 두 번 죽었다. 이들도 예외로 분류되는 사람들이다. 만약 에녹이 환란기간 중에 다시 내려와 죽어야 한다면 환란 전에 휴거되는 성도들에 대한 구약성경의 모형은 없는 것이 된다.
모세와 엘리야는 모두 환란기간 중에 살다 죽는 유대인 성도들의 모형이다. 그리고 이들은 재림 직전에 직접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한다. 그들이 여기 마태복음 17장에서 변형된 예수님과 함께 시내 산에 나타난 것이다.

『빛나는 구름』(5절) - 빛나는 “구름”과 구름 속에서 나는 “음성”도 역시 이 상황이 재림이라는 것을 증명한다(출애굽기 19:16,19을 재림에 관한 구절인 마태복음 24:30과 계시록 14:14과 비교해 보라). 이 구름은 데살로니가전서 4장의 “주와 만나기 위하여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려올라” 가는 휴거의 구름이 아니라, 에스겔 1:4의 재림의 “큰 구름”이다. 그 구름은 진노와 권능으로 이 땅을 통치하기 위해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알리는 구름이다.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주께서 원하시면 여기에 장막 셋을 짓되...』(4절).

“실수투성이”인 베드로가 여기서는 매우 조심스럽게 말을 한다. 사도행전 10장에서 하나님께서 불결한 음식을 먹으라고 하실 때, 베드로는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행10:14)라고 말했고, 마태복음 16:22에서도 역시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라고 무분별하게 말했으나, 여기서 베드로는 “주께서 원하시면”(if thou wilt, 약4:15 참조)이라고 조심스럽게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도 베드로는 틀렸다. 그는 예수님을 모세와 엘리야와 같은 선상에서 취급하였는데, 5절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라는 말씀은 예수님을 율법(모세)과 선지자(엘리야)에게서 분리해 놓기 때문이다. 이들이 여러 가지 면에서 예수님과 유사한 배경을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한 아들”(a son of God)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The Son of God)이시다. 그 분은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시며, 하나님께서는 그 분 안에서 기뻐하신다. 모세와 엘리야는 인간 아버지가 있었고, 죄가 있었다.
“장막”에 대해서 말한다면, 예수님께서 거하실 참된 장막은 사람의 몸이며(고전3:16, 행7:48-50, 요2:21), 예수님께서는 그 몸의 창조주이시다(엡2:20 -22).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만든 성전에는 계시지 않는다.

17:6-7 『제자들이 듣고 얼굴을 땅에 대고 심히 두려워하니 예수께서 오셔서 그들을 만지시며 말씀하시기를 “일어나라. 그리고 두려워 말라.”고 하시더라.』

여기에 나타나는 “두려움”은 환란 때의 유대인들의 반응과 같다. 그들은 바울이 다마스커스로 가는 길에서 그랬던 것처럼 부활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회심한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여 제자들에게 개인적으로 나타나셨을 때 그들은 무서워했다(눅24:5). 특히 “일어나라”는 말은 사도행전 9장에서 바울에게 쓰인다.

II. 먼저 와야 하는 침례인 요한

17:9-13 『그 후 그들이 산에서 내려갈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당부하여 말씀하시기를 “인자가 죽은 자들로부터 다시 살아날 때까지는 아무에게도 그 광경을 말하지 말라.”고 하시니라. 주의 제자들이 주께 물어 말씀드리기를 “어찌하여 서기관들은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말하나이까?”라고 하니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말씀하시기를 “과연 엘리야가 먼저 와서 모든 것을 회복할 것이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엘리야가 이미 왔으나 사람들이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그들 마음대로 대하였도다. 이와 같이 인자도 그들에게 고난을 받으리라.”고 하시더라. 그때서야 제자들은 주께서 자기들에게 침례인 요한에 관하여 말씀하신 것임을 깨닫더라.』

제자들이 침례인 요한에 대해 물은 것을 보아도 변형산 사건은 재림과 연관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제자들은 이 광경 속에서 재림의 영광을 본 것이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을 통치하시기 위해 영광 중에 오시는 모습과, 그 영광의 모습에 모세와 엘리야가 있는 것을 보고, 그 광경에 대한 엘리야의 연관성에 관해서 질문하는 것이다. “그 영광의 모습 앞에 와야 한다는 엘리야는 어떻게 된 것입니까?” 이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엘리야가 이미 왔다고 말씀하신다. 그는 예수님의 재림 앞에 와서 모든 것을 회복해야 할 것이다. 그가 회복해야 할 일은 말라키 4:6의 예언이다. 『그가 아비들의 마음을 자식들에게로, 자식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들에게로 돌이켜, 내가 와서 땅을 저주로 치지 않게 하리라.』 이 예언은 누가복음 1:17에서 침례인 요한에게 성취된다. (침례인 요한과 엘리야에 대해서는 마태복음 3,11,14장 주석을 참조하라.)
여기서 예수님께서 하나 더 강조하신 것은 침례인 요한처럼 예수님도 고난을 당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침례인 요한이라는 선지자를 알아보지 못하고 죽였듯이 그들은 자기들의 메시야인 인자도 알아보지 못하고 죽일 것이다. 여기서 “인자”는 “다윗의 아들”과 마찬가지로 다윗의 보좌와 연관되어 설명되는 이름이며, 육체를 입고 오신 예수님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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