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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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에도 기적은 일어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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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0년 02월호>

기적이란, 상위의 법칙이 하위 세계에서 일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곧 상위 세계의 법칙으로 하위 세계의 법칙을 폐기하는 것인데, 여기서 전자는 “하나님의 법칙”을 가리키고, 후자는 “세상의 물리적인 법칙”을 가리킨다. 3차원의 공간에서 살고 있는 인간이 절대로 뛰어넘지 못하는 차원들 중 하나가 “시간”이다. 현재 동일한 시간대를 살아가는 우리 가운데 마음이 급하다고 남보다 시간을 앞서갈 수 있는 사람도 없고, 몸이 피곤하다고 뒤처져서 올 수 있는 사람도 없다. 우리 모두는 항상 동일한 시간대 안에서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성경에는 시공간을 초월하는 어떤 분이 과거에 이 땅에 나타나셔서 일정 기간 사람들과 함께 지내셨다가 먼 훗날 다시 오시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이 땅에서 사라져 버리신 내용이 나온다. 말하자면 “기적”이 일어났던 것인데, 사실 우리보다 상위의 법칙이 작용하는 세계에서는 이것이 기적이 아니라 매우 상식적이고 과학적이며 합리적인 일에 해당한다. 그분은 바로 “영원”(사 57:15)이라고 하는 상위 세계에서 “영원부터 영원까지”(시 90:2) 살아 계시는 하나님, 곧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나는 있느니라.”고 하시니라』(요 8:58). 이것은 예수님께서 시간을 초월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보여 주는 위대한 구절인데, 주님께서는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나는 있었느니라.”(I was, 과거)라고 하시지 않고 “나는 있느니라.”(I am, 현재)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언제 어느 때라도 항상 계실 수 있는 분임을 보여 주는데, 과거, 현재, 미래, 모든 시제가 주님께는 항상 “현재”인 것이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인간의 차원을 뛰어넘으시는 하나님이시라면, 우리는 그분께서 지상에 계시면서 행하신 기적들을 믿지 못할 이유가 없다. 소위 경험적이고 과학적인 사고를 지녔다고 자처하는 현대주의자들은 이런 기적들을 거부한다. 사실 그들이 믿지 못하는 이유는 거듭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믿는 성도에게는 새로운 출생, 즉 “거듭남” 그 자체가 기적이다. 한 명의 죄인이 구원받는 것보다 더 기적적인 일은 없는 것이다! 거듭남의 기적을 경험한 성도라면 예수 그리스도의 기적들을 의심할 이유가 전혀 없다. 사람들이 그 기적들을 믿는 데 있어서 어려움을 겪는 것은 그들의 생애에 이러한 기적, 곧 거듭남을 경험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기적들은 주로 구약에서 등장한다. 구약의 연장선상에 있는 사복음서에는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들이 약 40가지가 나오는데, 이런 기적들은 그분께서 하나님이심을 확인시켜 주는 “신임장”과 같다. 『실로 예수께서는 그의 제자들의 면전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많은 표적들을 행하셨으나, 다만 이것들을 기록한 것은 너희로 예수가 그리스도, 곧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하려는 것이요, 또 믿음으로써 그의 이름을 통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라』(요 20:30,31).

그렇다면 오늘날에도 기적은 일어나는가? 카나안 정복 전쟁 당시 여리코 성 전투와 아이 성 전투 사이에는 한 가지 분명한 차이점이 있었으니, 후자의 전투에서는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여리코 성벽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무너져 내렸지만, 아이 성벽에는 그런 역사가 일어나지 않았다. 여기에서 구원받은 성도의 삶에 관한 영적인 단면 하나를 보게 되는데, 곧 우리가 구원받은 이후 영적으로 성숙해 가면서 처음에는 종종 경험했던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나 개입을 점점 더 적게 경험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이유가 무엇인가? 성장해 가면서 필요한 것은 그런 초자연적인 경험보다는 하나님을 더욱더 신뢰하고, 주님께서 성경에 말씀하신 것을 믿음으로 실행하는 삶이기 때문이다.

“믿음의 삶”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초자연적인 기적을 행하여 주시길 기다리며 앉아 있는 삶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성장해 가는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보다 더 적극적인 자세로 우리가 성경에서 읽은 것을 있는 그대로 믿고, 실행하고, 소망하는 것이며, 또한 그렇게 행할 때 주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채워 주신다는 약속을 신뢰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로버트 앤더슨이 쓴 책 <하나님의 침묵>에 나오는 핵심 내용이다. 그는 이 책에서 오늘날 교회 시대에는 하나님의 성도들이 그분께서 계시해 주신 말씀 속에서 믿음으로 살게 하시기 위해 주님께서는 새로운 계시와 기적을 통한 초자연적인 개입을 철회하셨다고 말했다. 이 시대에는 구약에서처럼 초자연적인 기적을 직접 보면서 행하는 삶이 아니라 보지 않고도 믿을 수 있는 믿음으로 행하는 삶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침묵>의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다. “오늘날 하나님의 침묵은 최대의 불가사의이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끔찍하고 비극적인 현실들을 자기들과 무관한 일이거나 전혀 중요하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현실을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을 수 없고 고통으로 울부짖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때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태에 대해 분개하기도 한다. 태양과 달과 별들의 빛이신 하나님께서는 어쩌면 그렇게도 냉담하시고 몰인정하실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하나님의 침묵은 그분의 무한하신 사랑과 자비를 나타내는 징표이고, 그 자체가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계시하시는 진리의 신비가 아닐 수 없다. 그 침묵은 우리를 연단시키고 우리에게 더 좋은 소망을 얻게 한다.”

이런 모습은 여호수아 5장에도 나오는데, 당시 이스라엘 백성이 카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 “만나”가 더 이상 하늘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이제는 카나안 땅의 열매를 그들의 힘으로 자급자족해서 먹어야 했던 것이다. 그때까지 이스라엘은 40년 동안이나 일을 하지 않았음에도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으로 베풀어 주신 기적들을 통해 먹고살 수 있었다. 물이 필요하면 하나님께서 반석에서 물이 나오게 하셨고, 음식이 필요하면 하늘에서 음식이 비처럼 내려오게 해 주셨다. 옷과 신도 닳지 않았다(신 29:5). 광야에서는 하나님께서 그들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기적적으로 제공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카나안 땅에 들어와서는 그들이 직접 심고 거두고 일을 함으로써 자기들의 힘으로 살아가야 했다. 상황이 달라진 것이다. 우리가 처음 구원받았을 당시를 상기해 보라. 하나님께서는 섭리적이고 영적인 방식으로 “기적적”이라고 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을 우리에게 주셨다. 그래서 처음 구원받았을 때에는 성경을 읽는 것만으로도 성경에 있는 많은 것들이 눈에 쏟아져 들어오기도 했다. 그리스도 안에 들어온 새로운 피조물에게는 모든 것이 새롭기 때문에 성경을 읽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감동과 흥분을 경험하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성장해 가면서 단순히 성경을 읽는 것만으로는 얻을 수 있는 것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깊이 있게 묵상도 하고 암송도 하게 된다. 성령 하나님의 역사로 성경을 통해 무언가를 얻으려면, 우리 스스로도 성경을 가지고 무언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데, 곧 “공부”를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순수한 말씀의 젖”(벧전 2:2)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에게 걸맞은 “단단한 음식”으로 옮겨갈 수 있게 된다(히 5:12-14). 이것이 바로 성장이다!

걸음마를 배우는 어린아이를 생각해 보라. 갓난아기가 아장아장 걷는 아이로 성장해 가는 과정에서 부모는 아이를 도와준다. 아이가 불안정하게 발걸음을 몇 발자국 옮기다가 넘어지려 할 때면 부모는 재빠르게 아이의 손을 잡아 준다. 이것은 이제 갓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에게 나타나는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에 견주어 볼 수 있다. 그러나 아이는 걸음마를 배워 가면서 더 이상 부모의 손을 원하지 않는다. 스스로 걸으려고 하는 것이다! 그렇게 성장해 가는 대견한 모습에 부모는 매우 기뻐한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성장 과정 속에서 초자연적인 역사처럼 눈에 보이는 것에 의존하지 않고 믿음으로 걷고 행하려는 모습에 매우 기뻐하신다.

오늘날에도 기적은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기적이 메시지를 전달하는 사람에게 신뢰성을 부여하기 위해 주어지는 “신임장”임을 감안하면, 사실상 오늘날에는 기적이 필요 없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가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심을 믿고 확신하기 위해 우리의 두 눈으로 굳이 기적을 봐야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인 무오한 성경을 통해서도 충분히 확신할 수 있고, 우리가 기도로 무릎을 꿇고 그분을 신뢰할 때 그러한 사실을 인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적에 의한 표적은 이스라엘에게 해당된다. 이스라엘은 표적으로 시작한 민족이고, 눈으로 표적을 봐야 믿을 수 있는 민족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구약에서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인도하실 때 기적들을 많이 행하셨다. 그러나 이스라엘을 위한 경륜이 끝난 현 교회 시대에는 보는 것이 아닌 믿음으로 행하는(고후 5:7) 시대이기에 초자연적인 기적을 좀처럼 행하지 않으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는 성도에게는 다음과 같은 위대한 약속이 주어져 있다. 『네가 믿을 수만 있다면, 믿는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니라』(막 9:23). 『내게 능력 주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 즉 “믿음”만 있으면 “기적” 그 이상의 일들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믿음의 신비』(딤전 3:9)를 지닌 성도가 되어야 한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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