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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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 성별의 표본 프랭크 노리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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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2년 06월호>

마지막 “배교의 교회 시대”를 살아가는 교회들은 “최대 영적 위기”에 직면해 있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하나님께서 영감으로 기록하시고 섭리로 보존하신 “바른 성경”이 없다.
둘째, 인간적인 전통이나 교단 교리가 아닌 “성경적 교리”를 믿고 실행하는 교회가 없다.
셋째, 멸망을 향해 가는 죄인들에게 죄와 심판과 지옥을 담대하게 경고하면서 “복음”을 전파하는 교회가 없다.
넷째, 비성경적인 행보를 내딛는 교인들을 바로잡기 위해 “성경적 진리”를 올바르게 가르치는 교회가 없다.
다섯째, 하나님의 뜻과 능력을 입증해 보이는 “기도의 사람”이 없다.
여섯째,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간절히 기다리면서 “그리스도의 심판석”에 서기에 합당한 삶을 사는 성도가 없다.
일곱째, 예수 그리스도와 진리를 위해 용기 있게 “성경적 성별”을 이루는 교회가 없다.
이 모든 위기는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두려워하지 않고 멸시할 때 일어나는데 지금이 바로 그런 시대이다!

1800년대 후반, 미국의 교회들과 신학교들은 공산주의, 사회주의, 로마카톨릭, 만인구원론, 이신론, 무신론, 자유주의, 합리주의, 현대주의, 상대주의 등의 영향으로 서서히 파멸되어 가고 있었다. 바른 성경을 거부하는 배교자들이 이미 미국의 기독교 대학 및 신학교 강단을 장악하기 시작했고, 배교의 물결은 이들 교육 기관들을 중심으로 일파만파 퍼져 나가고 있었다. 이런 배교에 대항하여 D.L. 무디(1837-1899), 샘 존스(1847-1906), 빌리 선데이(1862-1935)가 “그리스도의 역군들”로서 맞서 싸우고 있는 동안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뒤를 이을 만한 신실한 설교자들을 준비시키셨는데, 그들이 바로 W.B. 라일리(1861-1947), 모르드캐 햄(1877-1961), M.R. 디한(1891-1965), 찰스 풀러(1887-1968), 밥 존스 시니어(1883-1968), J. 프랭크 노리스(1877-1952)였다. 이들은 모두 “필라델피아 교회 시대”(1500-1900년)에 태어나서 “라오디케아인들의 교회 시대”(1900년부터 교회의 휴거까지)에 배교의 진전과 확산을 직접 눈으로 보며 성장하고 활동했던 사역자들이다. 그중 한 명이 바로 “프랭크 노리스”였다.

프랭크 노리스는 배교한 기독교계에 맞서서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성별이 무엇인가”를 가장 잘 보여 준 용기 있는 사역자였다. 그를 미워했던 자들은 그에 대해 말하기를 “항상 종교적이고 정치적인 싸움에 휘말리는 싸움꾼 목사,” “문제만 일으키는 텍사스주의 사이클론”이라고 비방했지만, 사실 그는 배교한 교회 시대를 거슬러 사역한 위대한 설교자였다. 또한 당대에 가장 큰 두 교회의 목사였고, 성경 교사였으며, 글을 쓰는 저자이자 편집장이었다. 그의 친구들은 그를 사랑하고 존경했으나 그를 대적했던 자들은 그를 증오하고 두려워했다. 한번은 신문에 이런 내용의 기사가 실린 적이 있었다. “텍사스주 포트워스에는 ‘열한 번째 계명’이 있으니, ‘너는 프랭크 노리스와 상종도 하지 말지어다.’이다.” 사실상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은 배교한 교회 시대에 “피스 메이커”(Peace Maker)가 아니라 “트러블 메이커”(Trouble Maker)임을 기억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 세상 죄인들과 배교한 교회들은 성경대로 믿는 성도가 증거하는 복음과 진리의 말씀을 도저히 견딜 수 없어 하기 때문이다. “바울” 역시 “세상을 소란케 하는 사람”(행 16:20; 17:6)으로 불렸는데, 일종의 “트러블”을 일으키는 “문제아”였다. 그는 복음과 진리를 증거했을 뿐인데, 세상이 그를 그런 식으로 부른 것이다.

프랭크 노리스 역시 그런 인생을 살았으니, “사회악”을 담대히 폭로했고 논란이 큰 쟁점들과 부도덕한 행동들을 파헤치고 혹평하는 데 매우 적극적이었다. 특히 진화론과 공산주의, 로마카톨릭, 남침례교총회(Southern Baptist Convention)에 만연해 있는 자유주의와 맞서 싸웠다. 그래서 그는 총회 안에서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또한 그는 혈혈단신으로 80년 이상 행해져 온 댈러스 박람회의 도박과 텍사스주 경마 도박을 멈추게 했으며, 정치적인 영향력도 있어서 텍사스주에서 민주당 대통령 후보를 패배시키는 데 한몫했는가 하면, 두 명의 공화당 후보가 대통령으로 선출되는 것을 돕기도 했다. 몇몇 세계 지도자들의 친구이기도 했는데, 미국의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그를 가리켜 세계적인 목사라고 추켜세우며 세계정세에 관한 그의 고견을 들었고, 영국의 “윈스턴 처칠” 수상 역시 그를 세계적인 목사라고 칭찬하면서 히틀러와 나치주의에 관한 그의 의견을 경청했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프랭크 노리스가 성경적 지식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야기되고 있던 국제 정세에 관해서도 통찰력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광장에 운집해 있는 대규모 청중 앞에서 나치 깃발과 공산주의 깃발을 불태우기도 했고, 끊임없이 로마카톨릭과 에큐메니컬, NCC, 북침례교 및 남침례교 안에 만연하고 있는 자유주의에 대해 강하게 반대했다. 실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사역의 열매들”을 정리해 보면, 텍사스주 포트워스에 있는 “제일침례교회” (First Baptist Church)에서 38년 동안 담임목사로서 사역했는데, 당시의 성도 수가 25,000명일 만큼 세계에서 성도 수가 가장 많은 교회였다. 그 후에는 제일침례교회에서 약 2,000km(서울에서 부산까지 거리의 5배) 떨어져 있는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의 “템플침례교회”(Temple Baptist Church)까지 동시에 맡아 목회함으로써 13년간 미국에서 가장 큰 두 교회에서 동시에 사역하기도 했다. 그 기간 동안 315만 달러를 모금했고, 두 교회 건물과 부동산의 가치는 330만 달러 이상 나갔다. 약 4만 명을 구령하여 침례를 주었고 세계에서 가장 큰 두 개의 주일학교를 운영했으며, 모든 성경공부 시간에 오직 “성경”만을 성경공부 교재로 사용했다. 이 두 교회는 “세계 근본주의 침례 선교 친교회”를 지원했고, 그 외에 어떤 자유주의 기독교 단체나 기구와도 함께하지 않았다. 또한 주간 를 매주 90만 부 발행하여 세계 전역에 복음과 진리를 전파했다. 프랭크 노리스가 그의 생애 동안 선교하며 여행한 거리를 계산해 보면 약 144,000km에 달했다.

『도가니는 은을, 용광로는 금을 연단하거니와 주께서는 사람의 마음을 연단하시느니라』(잠 17:3). “질이 좋은 순은과 순금은 캐내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라는 말이 있다. 피터 럭크만 목사는 말하기를 “샘 존스, 밥 존스 시니어, 모르드캐 햄, 프랭크 노리스 같은 사역자들은 결코 사탄의 장난감 가게에서 양산되지 않고, 제련 도가니나 용광로 또는 모루에서 나온다.”라고 했다. 프랭크 노리스는 그런 불같은 시련과 고난 속에서 잘 단련된 일꾼이었기에, 진리를 위해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면서 절대로 비진리와 타협하지 않았고 적들 앞에서 물러서지도 않았다. 미국의 남침례교회가 배교의 길에 들어설 무렵, 프랭크 노리스가 등장하여 그들의 타락을 신랄하게 비평하고 그들 안에 남아 있던 건전한 목회자들에게 “성별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 결과, 남침례교회의 배교와 타락의 진전은 그나마 잠시 동안이라도 저지될 수 있었다.

프랭크 노리스는 1877년 앨라배마주 “데이드빌”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을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의 폭력과 학대 속에서 성장해야 했던 그는 열세 살이 되었을 때 인생에서 “첫 번째 중요한 전기”를 맞았는데, 곧 앨라배마주에서 열린 한 침례교 부흥 집회에서 복음을 믿고 구원받게 된 것이다. 그리고 앨라배마주 딕슨 밀 근처에 있는 시냇가에서 침례를 받았다. 이로써 그는 이후 그의 사역 전반에 걸쳐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성별의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스도인은 거듭남으로써 성별된 인생을 시작하고 매일 매 순간 성별된 삶을 살면서 성별된 삶으로 인생을 마감하는 사람이다. 이는 그리스도인이 『선택받은 세대요 왕 같은 제사장이며, 거룩한 민족이요, 독특한 백성』(벧전 2:9 a)이기 때문이다.

“독특한 백성”에게는 한 가지 중요한 의무가 부여되는데, 『어두움에서 불러내어 그의 놀라운 빛으로 들어가게 하신 분의 덕을... 선포』(벧전 2:9 b)하는 일이다. 바로 이 “선한 일”에 열심을 내고 진력해야 하는 것이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주신 것은 우리를 모든 죄악에서 구속하시고 자신을 위해 정결케 하사 선한 일에 열심을 내는 독특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딛 2:14, cf. 딛 3:8,14).

이후 프랭크 노리스는 사역의 부르심을 받아 침례교회에서 운영하던 “베일러 대학교”에 입학하여 학사 학위를 받았다. 스물두 살이 되던 해에는 어느 시골 교회를 맡아 처음으로 사역을 시작했는데,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그곳에서 사역했다. 당시 그는 마을에 사는 인구의 두 배인 8백 명의 성도들에게 설교할 수 있었을 정도로 사역자로서의 두드러진 역량과 은사를 십분 발휘했다. 스물여섯 살에 대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남침례교신학원”(Southern Baptist Seminary)에 입학하여 3년 과정을 2년 만에 마친 끝에 수석으로 졸업했다. 신학원을 졸업하자마자 댈러스에 있는 맥킨니에버뉴침례교회를 1908년까지 담임하면서 13명으로 시작한 교회를 1,000명인 교회로 성장시켰다. 하지만 이것은 “위대한 사역의 열매”의 시작에 불과했다. 그는 대학생 시절 학생들의 모임에서 자신의 꿈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교회와 강단에서 설교하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실제로 그런 삶을 살아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으로부터 “위대한 일들”을 기대하고, 또 하나님을 위해 “위대한 일들”을 이룰 수 있어야 한다.

프랭크 노리스가 하나님에 의해 그토록 신실하게 쓰임받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그가 <킹제임스성경>을 최종권위로 믿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자유주의의 영향력이 미국 전역에 영향을 끼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남부에서는 그 영향력이 주춤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는 그 중심에 있었던 노리스 목사의 “성경에 대한 바른 믿음” 때문이었다. 그는 신학교들이 오직 “성경”만을 가르치기를 원했고, 필요한 것은 오직 “성경을 가르치는 학교”뿐이라고 말했다. 또한 프랭크 노리스의 신앙의 중심은 “성경의 무오성과 축자영감에 대한 확신”에 있었다. 그는 주장하기를 “진정한 이슈는 성경의 축자영감에 있다. 만일 축자영감이 없다면, 우리에게는 영감으로 기록된 성경이 없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편 프랭크 노리스가 자유주의와 현대주의의 배교의 물결을 거슬러 올바르게 성별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올바른 성경적 지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성별하려면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무엇이 성경적이고 무엇이 비성경적인지 바르게 분별해야 한다. 더욱이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관련하여 “전천년주의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문자적인 “다윗의 보좌”를 이 땅 예루살렘에 세우시고 천 년 동안 온 세상을 다스리실 것에 대한 올바른 믿음을 견지할 수 있었다. “전천년주의”는 성경의 모든 구절을 문자적으로 해석하고 있는 그대로 믿는다. 이 믿음에 따르면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이 세상은 극도로 타락하고 부패하여 결국 멸망할 것이고, 인간의 힘으로는 그런 문제들을 해결할 방법이 전혀 없기에, 오직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여기게 된다. 그래서 이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의 임무는 정치 참여나 사회 참여를 통해 세상을 개혁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저주받고 멸망해 가는 악한 현 세상에서 단 한 사람의 죄인이라도 더 예수 그리스도께로 이겨오는 것(“구령,” Soul Winning, 잠 11:30)이라는 가치관을 갖게 된다.

이러한 믿음을 따라 프랭크 노리스는 교회의 존립 목적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준비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이런 확신이 있었기에 그는 “교회의 사명”이 사회를 개혁하기 위한 노력보다는 “개개인의 구원”에 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교회의 목적”이 미국이나 중국 등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통해 잃어버린 혼들 개개인을 구원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준비하는 것이라고 믿은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 사회적 책임에 대해 강박관념을 가진 채 어떻게 해서든지 사회를 위해 봉사하고 섬기면서 세상일에 끼어들려는 배교한 교회들의 모습과 너무나 다르다. 무(후)천년주의 거짓 교리를 붙들게 되면, 교회로서 할 필요도 없고 해야 할 의무도 아닌 세상일을 위해 쓸데없이 시간만 낭비하게 된다. 이렇듯 올바른 성경적 지식이 없으면, 거짓 교리들로부터 절대로 성별할 수 없는 법이다.

특히 그는 1911년에 켄터키주 오언즈버러에서 개최된 한 부흥집회에서 죄인들이 구원받고 부흥의 불길이 교회들로 파급되는 것을 보고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방향으로 사역을 이끌기 시작했다. 그 어느 때보다도 강단에서 진리의 말씀을 강력하게 전하기 시작했고, 교회를 혼들을 이겨오기 위한 “전초 기지”로 변화시키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래서 “지옥의 두려움”에 관해 강력하게 설교하기도 했는데, 한번은 꼬박 일주일 동안 매일 저녁마다 지옥에 대해 설교한 적이 있다. 당시 그의 설교를 들었던 “게이트스” 목사의 증언에 따르면 “사람들이 지옥에서 저주받은 자들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들이 고통 속에서 불타는 연기 냄새를 맡을 수 있을 정도였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사역에 있어서 새로운 방향으로 선회한 것에 대해 반감을 느낀 집사들은 노리스 목사를 해임하기 위해 모임을 가졌다. 하지만 이를 알아차린 노리스 목사는 그 집사들을 모두 해임시켜 버렸다.

또한 프랭크 노리스는 성도들의 “구원의 영원한 보장”을 믿었고, 그러한 보장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을 부인하는 것으로 간주했다. 그리고 각 지역 교회의 철저한 독립성도 믿었다. 지역 교회는 침례받은 성도들이 자치적으로 운영해야 하고, 어떤 국가나 기구 및 조직의 개입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곳이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리고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주님께서는 교회 안에 친히 영적 권위를 부여하신 목사를 통해 그분의 뜻을 이루신다고 가르쳤다. 이러한 확신 때문에 당시 지역 교회의 자치권을 존중하지도 않고 자유주의의 누룩으로 물들어 버린 남침례교총회의 어떤 간섭이나 영향권도 거부할 수 있었다. 말하자면 프랭크 노리스는 성경대로 믿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믿었던 진리의 지식을 온전히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올바른 성경적 지식을 갖추게 되면 올바른 믿음과 올바른 행실이 무엇인지 알게 되고 “성경적인 성별”로 나아갈 수 있다. 배교한 마지막 교회 시대의 문제점 중 하나는 “독특한 사람들”로서 가져야 할 가치를 상실했다는 점이다. 무슨 가치를 말하는 것인가? “영원에 대한 가치”이다. 이 시대는 순간의 제단에 영원을 불사르는 데 있어서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 세대이다. 위의 것을 바라보기보다는 땅의 것을 바라보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추구하기보다는 눈에 보이는 것만을 추구하는 시대이며, 영적인 것을 추구하기보다는 물질적이고 육신적인 것을 추구하는 시대가 바로 이 시대이다. 복음을 상실했고 진리를 상실한 시대인 것이다. 왜 그런 문제가 발생한 것인가? 하나님의 말씀인 바른 성경을 최종권위로 믿지 않고, 또 성경을 부지런히 공부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관한 한 올바른 지식도, 올바른 실행도 없는 것이다.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의 말씀이 있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어두운 곳에서 빛나는 빛에 주의하듯 이 예언의 말씀에 주의하는 것이 잘하는 것이니라』(벧후 1:19). 성경을 공부하고 진리의 지식으로 무장해야 배교의 물결에 휩쓸려 다니지 않고 올바른 믿음을 견지할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에 시간을 투자하지 않는 사람은 “믿음의 사람”으로 빚어질 수 없다. 믿음의 사람이 되지 않고서는 “독특한 사람”으로 발견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독특한 사람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받는 사람이고, 믿음의 시련을 통해 칭찬과 존귀와 영광을 받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믿음으로 구원받은 성도는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 교회들로부터는 믿음을 기대할 수 없다. 그들의 믿음은 바닥났고 썩고 좀먹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은 그런 배교한 교회들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당신은 어느 편에 서 있는가? 만일 당신이 성경대로 믿는 사람이라면, 주님께서 칭찬과 존귀와 영광을 가지고 오실 때 점 없고 흠 없이 평강 가운데서 독특한 사람으로 발견될 수 있도록 잘 준비해야 한다. 그것은 “성경적 성별”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기억하길 바란다. BB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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