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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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이 없는 이상한 책 “흠정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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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2년 11월호>

“예언”이 없는 성경을 본 적 있는가? 정동수 목사가 번역한 “흠정역”이 그렇다! 이 성경의 본래 명칭은“킹제임스흠정역성경전서”인데, 얄팍한 상술이 물씬 묻어나는 이름이다. 이 호칭의 마지막 네 철자 “성경전서”는1961년에 출간된 이래로 1994년까지 33년 동안 한국 기독교계를 군림해 온 개역한글판“성경전서”를 사용하는 교인들을주요 고객으로 삼고 있다. 말하자면 정 목사는 그의 “흠정역”을 가운데 두고, 바르게 보존된<한글킹제임스성경>과 변개된 “개역한글판성경전서” 사이를 오가며, 그야말로 “어중간한 위치”에 서서 자기 성경을 팔아먹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영감으로 기록하시고 섭리 속에서 “한글”로 보존하신 <한글킹제임스성경>은 185개의 “예언” 또는“예언하다”라는 단어를 잘 간수하고 있지만, “흠정역”은 딱 “한 번”을 제외하고는 모두 잃어버렸다. 그 “한 번”이라는것도 마귀에게 점유당한 자들의 입에서 나오는 “예언”을 위해서만 사용되었을 뿐이다. 그 구절은 이사야 47:13인데,<한글킹제임스성경>에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너는 너의 많은 계획 가운데서 피곤하게 되었도다. 이제 점성가들과 별을 보는 자들과 매달 징조를 예언하는 자들을 일으켜서 네게 일어날 일들로부터 너를 구원하게 하라.』“점성가들”(astrologers)은 행성들과 별들의 모습을 통해 미래를 예견했고, “별을 보는자들”(stargazers)도 점성가들처럼 별자리들을 통해 앞날을 내다보았다. 두 부류 모두 악령들과 마귀들의 도움을 받아 “점성술”을 이용하여 장래를 예측한 것이다. 한편 “매달 징조를 ‘예언’하는 자들”(the monthlyprognosticators)은 별이 아닌 “달”을 이용해서 점을 쳤다. 이상 세 부류는 모두 “마귀들에게 점유당한 자들”이었는데, 정 목사의 “흠정역”은 마귀들린 자들의 예언은 “예언”으로 인정해도,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들이 성령으로 감동을 받아 말한』(벧후 1:21) 예언은 “예언”으로 간주하지 않은 것이다.


“예언”은 선지자들의 주된 임무였다. 그래서 “선지자”를 영어로 “prophet,” 즉 “예언자”라고 부른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미리 알고, 미리 말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사야”부터 “말라키”까지 17권의 선지서는 “예언들”로 가득 차 있는데, 곧 하나님께서 세우신 “주의 선지자들”은 모두 예언을 했던 것이다. 따라서 “선지자”는 “대언자”가아니다. 미국의 죽어 버린 “정통주의자들”이나 배교한 “근본주의자들”은 “선지자”를 “대언자”라고 부르기를 좋아한다.“대언자”는 “하나님을 대신해서 말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인데, “어떻게 인간이 ‘예언’을 할 수 있느냐”는 발상에서 나온말이다. 다시 말해 “선지자”는 “미리(fore) 말하는(tell) 사람”(foreteller)이 아니라, 누군가를대신하여 “앞쪽으로(forth) 말을 토해 내는(tell) 사람”으로서, 미래의 일을 예언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말씀을 입에서 바깥으로 말해 내는 사람”이라고 우기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들은 구약의 선지자들이 예언한 메시지를 자기들이강단에서 제멋대로 떠벌리는 메시지와 같은 종류로 만들어 버렸다.


특히 구약의 “선지서”에 나오는 예언들이 과거에 모두 성취되었다고 간주하고 미래에 문자적으로 성취될 예언들은 없다고 주장한다. 과거에 문자 그대로 성취되지 않은 예언들은 모두 “영적으로” 성취되었다고 말하면서 이리저리 억지로 끼워맞춘다. 그런 가운데 불의와 부조리로 가득 찬 사회 제도의 개혁과 개선에만 “사역의 초점”을 맞춘 채 세상을 바꾸기 위해부단한 노력을 기울인다. 그들이 소위 “사회 개혁을 위한 메시지”라고 오해한 구절들, 대표적으로 『공의는 물같이, 의는큰 시내같이 흐를지니라.』(암 5:24)나 『그의 정부와 화평의 증가함이 다윗의 보좌와 그의 왕국 위에 바르게 세워지고,지금부터 영원까지 공의와 정의로 그것을 굳게 세우는 데 끝이 없으리라. 만군의 주의 열성이 이것을 실행하시리라.』(사9:7)와 같은 구절들은 사실상 “전천년주의 체계” 안에서 주어진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예언”임이 분명하게드러났다. 과연 이들 정통주의자들과 근본주의자들 가운데 제대로 된 “전천년주의자들”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그런 자들과한통속인 정 목사 역시 마찬가지인데, 그래서 그가 번역한 “흠정역”에는 예언이 없다! “선지자”를 모두 “대언자”로변개시켰고, “예언”을 “대언”으로, “예언하다”를 “대언하다”로 모두 바꾸어 버린 것이다. 이로써 성경 번역이 시작된이래로 가장 “이상한 성경” 하나가 나오게 되었다. “흠정역”은 성경이 아니다! “예언 없는 성경”이 어떻게 성경이 될수 있겠는가?


성경은 단순한 종교 서적이 아니라 “역사책”이다. 과거 역사는 물론, 현재 그리고 “미래 역사”까지 기록되어 있는책인데, 바로 이 “미래 역사”가 “예언”이다. 예언은 “미리 기록된 역사”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예언이 역사의주형틀”이라고 말했다. 성경적 기독교가 세상 종교들과 가장 극명하게 다른 점 두 가지를 꼽으라고 하면 “부활”과“예언”이다. 다른 종교들은 “부활”과 “예언”에 대해 흉내조차 낼 수 없다. 특히 그들에게는 예언이 없다. 감히 예언을할 수조차 없다. 왜냐하면 예언을 함부로 했다가는 그 종교의 존립 자체를 뒤흔드는 위험천만한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그래서 “힌두교”에는 예언이 없다. “이슬람교”에도 없다. 코란에는 두 개의 예언이 나오긴 하지만, 그것들은 모두 다니엘2장에서 훔쳐 온 것으로 마호메트가 태어나기 이전에 이미 성취된 것들이다. 당연히 “불교”에도 예언이 없다.


그러나 “예언의 책”인 성경은 그런 쓰레기 같은 종교들이나 허접한 경전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세상모든 종교들과 우상들 및 우상 숭배자들을 향해 이렇게 도전하신다. 『주가 말하노니 너희는 송사를 일으키라. 야곱의 왕이말하노니 너희의 강력한 주장을 내어 놓으라. 그들로 주장들을 내어 놓고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우리에게 보이게 하라. 그들로 이전 일들을 보이게 하여, 그것들이 무엇이든지 간에, 우리로 그 일들을 숙고하고 그 일들의 나중 결말도 알게하라. 아니면 앞으로 있을 일들을 우리에게 선포할지니라. 이후에 있을 일들을 보여 주어 우리로 너희가 신들인 것을 알게하라. 정녕, 선을 행하거나 악을 행하라. 우리가 놀라며 그것을 함께 보리라. 보라, 너희는 아무것도 아니며 너희의 일은 헛것이라. 너희를 택한 자는 가증함이라』(사 41:21-24).


“참된 경전,” 곧 “참된 성경”의 진위를 판가름하는 시금석은 인류의 역사 속에서 문자 그대로 실제로 이루어진 예언들에 있다. 그래서 “진리의 말씀”인 성경은 가감 없이 예언들을 하되, 특히 이 예언들을 가리켜 “확실한 예언의 말씀”(sure word of prophecy)이라고 말씀한다.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의 말씀이 있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어두운 곳에서 빛나는 빛에 주의하듯 이 예언의 말씀에 주의하는 것이 잘하는것이니라』(벧후 1:19). 하지만 “흠정역”은 『더 확실한 예언의 말씀』을 「더 확실한 대언의 말씀」으로 변개시켰다.도대체 “더 확실한 대언의 말씀”이라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먼저 이것을 알지니, 성경의 어떤 예언도 사사로운 해석에서나온 것이 아니니, 예언은 예전에 사람의 뜻에서 나온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들이 성령으로 감동을 받아말한 것이니라』(벧후 1:20,21). 이 두 구절에서도 “흠정역”은 『성경의 어떤 예언도』를 「성경 기록의 대언은」으로 바꾸어 버렸고,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들이 성령으로 감동을 받아 말한 것』인 『예언』을 「대언」으로 변개시켰다.


A.D. 91-96년경, “요한계시록”을 끝으로 성경 66권이 모두 완성되었을 당시 성경 전체의 “5분의 1”이“예언”이었다. 모형이나 상징으로 제시되는 간접적인 예언들까지 포함하면 “3분의 2” 이상이 예언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직접적인 예언들만 본다 해도 20%가 예언인 것이다. 이 예언들만 모두 합쳐 놓아도 성경 66권 중 약 “열세 권”에 해당되는 분량이 나오고, 이는 신약 전체의 절반 정도에 해당된다. 이것만 보더라도 예언이 성경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큰지 알 수 있다. 그러나 “흠정역”은 성경을 예언과 무관한 책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는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들을 듣는 각 사람에게 증거함이니 누구든지 이것들에 더하면 하나님께서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또누구든지 이 예언의 책의 말씀들에서 삭제하면 하나님께서 생명의 책과 거룩한 도성과 이 책에 기록된 것들에서 그의 부분을제하여 버리시리라』(계 22:18,19). 여기서 『예언의 말씀들』이 기록된 『이 책』과 『이 예언의 책』은 일차적으로“요한계시록”을 가리키지만, 넓은 의미에서는 “성경”을 의미한다. 하지만 “흠정역”은 『예언의 말씀들』을 「대언의말씀들」로 변개시켰고, 『이 예언의 책』을 「이 대언의 책」으로 바꾸어 버렸다. 말하자면 “흠정역”으로는 “요한계시록”과이 책을 중심으로 한 “성경”이 “예언의 책”이라는 사실을 전혀 알 수 없게 된다.


무엇보다도 “흠정역(譯)”은 요한계시록 19:10에서 완전히 길을 잃고 마는데, 교인들로 하여금 엉뚱한 “역”(驛)에내리도록 만든다. “이상한 성경”도 모자라서 “이상한 역”까지 만들어 버린 것이다. 『내가 그에게 경배하려고 그의 발앞에 엎드리니 그가 내게 말하기를 “삼가 그리하지 말라. 나는 예수의 증거를 가진 네 형제들과 같은 동료 종이니,하나님께 경배하라. 이는 예수의 증거가 예언의 영이기 때문이라.”고 하더라.』 “예수의 증거”는 “예언의 영”이다!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증거하신 말씀”이 “미래 역사를 예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의 증거를 가진사람”은 동시에 “예언의 영을 가진 사람”으로서,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있다. 『그러나 진리의 영이신 그분이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로 인도하시리라. 그분은 자신에 관하여 말씀하지 아니하시며, 무엇이나 들은 것을 말씀하실 것이요,또 너희에게 다가올 일들을 알려 주시리라』(요 16:13). 다시 말해 “교회의 휴거”라든지, 셋째 하늘에서 있을“그리스도의 심판석,” “어린양의 혼인식,” 장차 적그리스도가 세상 전면에 등장할 “대환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아마겟돈 전쟁,” 주님께서 이 땅에 세워질 다윗의 보좌에 앉아 의와 화평으로 다스리실 “천년왕국,” 인류 역사 최후의 전쟁인 “곡과 마곡의 전쟁,” 하늘과 땅이 불타 없어진 후에 있을 “백보좌 심판,” “새 하늘과 새 땅의 창조,”그리스도인들의 영원한 거처인 “새 예루살렘의 도래” 등에 관한 “다가올 일들”을 예언의 책인 성경을 통해 아주 구체적으로 분명하게 알려 주시는 것이다.


특히 “예수의 증거”를 가진 사람은 자신이 죽은 뒤에 어디로 가는지 알고 있다! 왜냐하면 그는 그 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주하시는 “구원받은 성도”이기 때문이다. 『너희가 믿음 안에 있는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스스로 입증하라. 예수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것을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못하면 너희는 버림받은 자들이라』(고후 13:5).『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함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하시거니와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들이니 하나님의 상속자들이요,그리스도와 함께한 공동 상속자들이니 우리가 그와 함께 고난을 받은 것은 함께 영광도 받게 하려 함이니라』(롬8:16,17). 『또한 그분께서 너희를 끝까지 확고하게 지키시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게하시리라』(고전 1:8). 『주께서는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구해 내시고, 그의 하늘나라에 이르기까지 나를 보호하시리니,영광이 그분께 영원무궁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딤후 4:18).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죄인임을 정직하게 시인하고, 자신의 죄를 제거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를자신의 구주로 믿으면 그 즉시 구원받을 수 있고, 또한 그 안에 “예수의 증거”를 지닐 수 있다. 『네가 네 입으로 주 예수를 시인하고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이는 사람이 마음으로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에 이르기 때문이라』(롬 10:9,10).
확실히 “예언”이란 단어에 대해 상당한 “기피증”과 “공포증”을 보이는 “흠정역”은 『예수의 증거가 예언의 영이기때문이라.』(계 19:10)라는 말씀도 「예수님의 증언은 대언의 영이니라」로 변개시켰다. “예수님의 증언이 대언의영”이라는 말이 도대체 무슨 뜻인가? 정 목사는 말도 안 되는 번역을 해 놓고서, 소위 “성경전서”랍시고 시중에 내놓고호객 행위를 하고 있다. 이제는 선지자들로는 성에 안 차는지, “예수님의 증언”마저 “누군가를 대신해서 말하는 정도의영”밖에 안 되는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인가? 그런 “신성모독”이 어디 있는가?



이렇듯 “흠정역”은 “예언”이라는 단어를 버리고 “대언”이라는 단어에 집착한 나머지, 다음에 제시한 본문처럼 다가올일들에 대해 말씀하시는 『예수의 증거』(계 19:10)를 완전히 변개시키고 왜곡해 버렸다. 『나의 아버지집[Father’s house]에는 많은 저택들[many mansions]이 있느니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리라. 나는 너희를 위하여 처소[a place]를 마련하러 가노라.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aplace]를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내가 있는 그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 14:2,3).구원받은 성도들에게 장차 “다가올 일들”(요 16:13) 가운데 하나인 “새 예루살렘”(계 21:2)에 관한 “예수님의증거”에 주목하라. 예수님께서는 분명 “많은 저택들”이라고 증거하셨다! “mansions,” 곧 “저택들”인 것이다.“예수님의 증거”를 기억하고 잘 간수했던 사도 베드로는 구원받은 성도들을 위해 간직해 두신 『하늘에 썩지 않고 더럽지않고 쇠잔하지 않는 유업』(벧전 1:4)에 대해 증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흠정역”은 『많은 저택들이 있느니라.』를변개된 개역한글판성경전서나 개역개정판처럼 「거할 곳이 많도다.」로 변개시켰다.


이 구절과 관련하여 바르게 보존된 성경이 왜 중요한지를 일깨워주는 좋은 예화 하나가 있다. 수십 년 전 미국 텍사스 주에있는 한 교도소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 교도소 안에는 구원받은 흑인 여성 수감자 30여 명이 모이는 “성경 공부 모임”이 있었는데, 참석자 대부분은 영어 <킹제임스성경>으로 공부했지만, 유독 “루시”라는 이름의 한 수감자만 변개된 성경인 “NIV”를 가지고 모임에 참석했다. <킹제임스성경>을 사용하는 다른 수감자들이 “루시, 넌 성경을가진 게 아니야.”라고 꾸짖으면서 루시의 잘못된 생각을 바꾸려고 무척 애를 썼다. 하지만 그런 말을 들을 때면 루시는“성경이 없긴 왜 없어? 내가 쓰는 성경도 너희 성경 만큼이나 좋아. 너희는 너희가 원하는 성경을 선택한 거고, 나는 내맘에 드는 성경을 선택한 거야.”라며 손사래를 쳤다. “루시, 그건 성경이 아니라니까! <킹제임스성경>으로공부해야 해.”라고 아무리 설득해도 루시는 꿈쩍도 하지 않는 바위처럼 요지부동이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반감만 더커져 갔다. 그러던 어느 날 <킹제임스성경>을 최종권위로 믿는 수감자 한 명이 루시에게 이렇게 말했다.“루시, 너 그거 알아? <킹제임스성경>을 쓰는 우리가 ‘NIV’를 사용하는 너보다 훨씬 더 낫다는 거말이야.” 그러자 루시는 곧바로 반박을 하면서 이렇게 따졌다. “나보다 낫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우리 모두 다 똑같은그리스도인인데, 너는 나보다 못하다고 말하는 그런 식이 어디 있어!” “아니야, 진짜 그렇다니까. 우리가 너보다 정말로낫다니까.” 그러자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이, 루시는 “그렇다면 증명해 봐. 너희들이 나보다 더 낫다는 사실이 성경어디에 나오는지 증명해 보라고!”라고 말했다. 그러자 <킹제임스성경>을 최종권위로 믿는 그 수감자는 요한복음14:2을 펼쳐 보여 주면서 “자, 봐봐! 나중에 우리는 아버지 하나님의 집에서 ‘저택’을 받는다고 되어 있지만, 네가가진 성경에는 ‘저택’이 아니라 ‘방’을 받는다고 되어 있잖아.” 실제로 “NIV”에는 “mansions”가“rooms”로 되어 있다. 이 말을 들은 루시는 그 자리에서 “NIV”로 요한복음 14:2을 펼쳐서 확인했고, 그사실을 확인한 루시는 곧바로 “NIV”를 쓰레기통에 던져 버렸다고 한다.


그런데 이 나라 기독교계에는 “저택”은커녕 “방”도 못 받는 자들이 수두룩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물론 그들이구원받았다는 전제하에서 하는 말이다.) 바로 “킹제임스흠정역성경전서”를 위시한 변개된 한글 성경전서들을 쓰는 자들, 곧정동수를 비롯한 어리석은 수많은 군상들이다. 만일 그들이 구원받은 자들이라면, 그들은 그들이 믿고 따랐던 “성경전서”대로새 예루살렘 도성에서 어딘가로 가는 “길거리”에 나앉아 있게 될 것이다. 새 예루살렘에 있는 “공원” 어딘가에 마련된벤치 위에서 신문지를 덮고 누워 자거나 “숲속” 나무 밑에 허름한 돗자리를 깔고 누워 있게 될 것이다. “길거리”에는참으로 “거할 곳”이 많도다! “공원”에도 거할 곳이 많도다! “숲속”에도 거할 곳이 많도다! 어쩌면 그들은 “왜저에게는 저택을 안 주십니까?”라고 하나님께 항변도 못할 것이다. 그들이 철석같이 믿었고 사용했던 “변개된 성경”대로하나님께서 “거할 곳”을 주셨기 때문이다. 만일 누군가가 이 글을 읽고, 앞서 언급한 “루시”처럼 제대로 된 충격을받는다면(필자는 그렇게 되길 간절히 기도하는 바이다!), 그녀가 보였던 행동을 즉시 실천에 옮기길 바란다. 자신의 손에들고 있는 개역한글판성경전서와 개역개정판은 물론 “흠정역”까지 모두 쓰레기통으로 던져 버려야 하는 것이다!


바르게 보존된 <한글킹제임스성경>에 의하면, 새 예루살렘 안에서 영원히 거주하게 될 그리스도인들의 수를 대충80억 명으로 계산해도(넉넉잡아 지난 2천여 년 동안 1년에 4백만 명씩 구원받은 것으로 추산했을 때), 그들 각성도에게 넓은 마당, 정원, 연못 등이 딸린, 3미터 높이의 단층건물 286평의 “대저택”이 주어진다. 이뿐만 아니라그렇게 80억 명의 성도들에게 대저택이 하나씩 주어지고도 공간이 많이 남게 되는데, 이것은 공원들, 호수들, 광장들,하나님의 보좌, 생명수의 강, 생명나무가 있는 큰 숲을 위한 공간이 될 것이다(자세한 내용은 피터 럭크만의 주석서<요한계시록> 21,22장 주석 내용 참조). 이런 사실을 “피상적”으로만 받아들일지, 아니면 이제 곧 직면할실제 현실로 받아들일지는 오직 각자의 “믿음”에 달려 있다. 바른 성경을 통해 제시된 예언의 말씀을 믿으라. 하나님의약속의 말씀을 믿으라. 이렇듯 <한글킹제임스성경>을 최종권위로 믿고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은 『예언의 영』(계19:10)과 『확실한 예언의 말씀』(벧후 1:19)이 있기에 『어두운 곳에서 빛나는 빛』(벧후 1:19)을 통해 확고한소망 속에 살아가지만, “흠정역”처럼 「대언의 영」과 「대언의 말씀」을 가진 “정동수의 무리들”은 “빛”이 되어 줄“확실한 예언의 말씀”을 잃어버렸기에 암흑 속에서 이리저리 방황하게 될 것이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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