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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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일체를 가리는 신학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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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5년 02월호>

『이는 하늘에서 증거하시는 이가 세 분이시니,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이시요, 이 세 분은 하나이심이라』(요일 5:7).

메츠거, 홀트, 밥 존스 3세, 커스터, 제인 하지스, 커티스 헛슨과 모든 배교한 근본주의자들이 <킹제임스성경>과 그 원문을 비평하며 흔히 들고 나오는 것이 있는데, 바로 "요한일서 5:7"이다. 그들은 요한일서 5:7이 성경에 있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면서, 에라스무스가 "1520년 프란시스코계 수도승이 옥스퍼드에서 기록한" 16세기에 기록된 단 하나의 필사본을 찾고 나서야(소문자필사본 61) 이 구절을 그의 헬라어 원문에 첨가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케케묵은 "전설"에 따라 NIV는 요한일서 5:7(흔히 "요한의 콤마"라고 부른다)을 삭제했고, ASV, NASV, RSV, NRSV 등도 로마카톨릭의 알렉산드리아 필사본들에 근거한 다른 유사한 역본들과 함께 모두 이 구절을 삭제했다. (개역한글판과 개역개정판 등 변개된 한글 성서들에도 삼위일체에 대한 강력한 근거 말씀인 이 구절이 삭제되어 있다. - 역자 주)

그러고 보면 1951년 필자를 가르쳤던 교수도 말하기를 요한일서 5:7을 지지하는 필사본은 단 하나도 없다고 했던 기억이 난다. 필자가 "소문자필사본 61이 있다."고 말하자, 그는 말을 고치며 "그렇지, 고작 하나잖아!"라고 했다. 물론 그 교수가 거짓말한 것이다. 알민 패닝이라는 교수는 11세기에 기록된 필사본 또한 이 본문을 담고 있다고 증언했다(). 필자가 이 사실 또한 지적하자, 그 교수는 다시 "그래도 그게 전부잖아!"라고 했다. 물론 그 교수가 또 거짓말한 것이다. 그 외에도 라틴 벌게이트가 이 본문을 다시 성경에 삽입하기 위해 사용한 9세기의 필사본이 있다. 그러면 그게 전부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요한일서 5:7은 5세기의 구라틴 필사본에도 나타나 있다.

그 외에도 12세기의 필사본으로(소문자필사본 88) 요한일서 5:7을 담고 있는 필사본이 있는데, 프리스킬리안(Priscillian)이 쓴 4세기의 저작에 그 본문을 담고 있다. 학자들은 프리스킬리안을 제거한다. 요한일서 5:7을 반대하는 학자들은 프리스킬리안을 "이단자"라고 부르며 그의 증거를 거부한다. 그러나 로마카톨릭이 그를 "이단자"라고 부른 점은 곱십어 보아야 할 문제이다.

히메네스(Ximenes)가 1502년 그의 폴리그롯(대역성경)을 기록하기 시작했을 때, 그는 처음부터 요한일서 5:7을 기록하기로 계획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그는 자신이 요한일서 5:7,8을 담고 있는 많은 헬라어 필사본들을 확보했다고 기록했다. 그는 이 중 몇 개는 로마에서 스페인으로 보낸 "매우 오래된 코덱스"라고 묘사했다. 그렇다면 왜 필사본 연구가들은 이 "오래된 코덱스"들을 찾아내지 않는 것인가? 분명히 그 필사본들은 이 구절을 포함하고 있을 것이 아닌가! 히메네스는 요한일서 5:7을 있는 그대로 인쇄했다.

좀 더 제대로 조사해 보자! 루이스빌, 덴버, 시카고, 뉴올리언스, 달라스, 밥존스, 성서침례신학교, 펜사콜라기독대학이나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

존 질(John Gill)은 풀겐티우스(Fullgentius)가 이 구절을 6세기 초에 인용했다고 기술했다. (요한일서 5:7이 16세기에 고안된 것이라면 어떻게 6세기에 풀겐티우스가 이 구절을 인용할 수 있었겠는가!) 제롬 또한 A.D. 450년에 유스토키움으로 보내는 그의 서신에서 이 구절을 인용했으며, 왜 이 구절이 삭제되어야 하는지 물었다. 존 질은 계속해서 A.D. 350년에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또한 이 구절을 인용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렇다면 아타나시우스는 어디서 이 구절을 인용한 것인가? 제롬의 라틴 벌게이트는 이때 존재하지도 않았었다.

여기서 멈출 것이 아니다. 존 질은 시프리안(Cyprian) 또한 A.D. 250년에 이 구절을 인용했다고 말하고 있다. 시내 사본이나 바티칸 사본이 기록되기 100년 전인 것이다. 게다가 이보다 50년 전인 A.D. 200년에 터툴리안(Tertullian)도 이 구절을 인용했다. 터툴리안은 요한일서 5:7을 바티칸 사본과 시내 사본이 이 구절을 삭제하기 100년도 훨씬 전에 인용한 것이다. 요컨대, A.D. 200년부터 줄곧 성경에 있는 구절로서 인용되고 있었으며, 이는 요한일서 5:7을 반대하는 그 어떤 필사본의 증거들보다 앞선 것이다.

그런데 왜 밥존스대학의 교수는 필자에게 이런 정보를 말하지 않은 것일까? 테네시템플과 리버티대학, 또 근본주의와 보수주의 신학교들의 교수진들도 이런 역사적 사실을 전혀 몰라서 학생들에게 말하지 않은 것일까? 이렇게 역사적인 증거도 제대로 수집하지 않은 게으른 교수들이 신학교의 교단을 꿰차고 앉아서 학생들에게 요한일서 5:7은 원래 성경에 없어야 되는 구절이라고 말하면서 성경을 고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자들이 당신이 <킹제임스성경>을 믿는다고 하면 오히려 당신을 광신자라고 여기는 것이다. 교수들은 이런 식으로 세대를 거듭하여 학생들을 세뇌시키고 그들이 다시 교수들이 되어 학생들을 물들이고, 그래서 요한일서 5:7에 대한 거짓말이 하나의 "민담"이 되어 신학교 강의실에서 회자되고 있는 것이다.

<킹제임스성경>의 번역위원회가 모였을 때 그들은 단지 에라스무스의 헬라어 원문과 그의 소문자필사본 "61"만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니다. 그들은 이탈리아어 <디오다티성경>, 독일어 <루터성경>, 프랑스어 <올리베탄성경>과 4,5세기의 여섯 개의 왈덴시안의 성경들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헬라어 필사본들을 차치하고라도, 요한일서 5:7은 A.D. 200년, A.D. 250년, A.D. 325년에 계속 나타나며 로마카톨릭의 변개된 라틴 벌게이트와 다른 구라틴 성경에 근거한 반카톨릭 원문들에도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도 요한일서 5:7이 16세기에 고안된 것이라고 하면서 그것은 원래 성경에는 없는 본문이라고 말하겠는가?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교수들이 학생들에게 올바른 정보도, 올바른 판단력도 주지 않는 것이다. 필자가 독자들에게 아주 기본적인 성경적 원리를 하나 상기시켜 줘도 되겠는가? 영국의 종교 개혁 성경인 <킹제임스성경>과 독일의 종교 개혁 성경인 <루터성경>은 모두 요한일서 5:7을 간직하고 있다. 이 성경들이 맺은 열매들을 보라.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게 되리라.』(마 7:20)고 주님은 말씀하셨다.

게다가 학자들은 소문자필사본 61이 1519년과 1522년 사이에 기록되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이 생기게 마련이다. "필사본 61은 어떤 필사본을 보고 필사한 것인가?" 히메네스의 헬라어 원문은 아니다. 히메네스의 폴리그롯은 아직 출간되기 전이었기 때문이다. 에라스무스도 아니다. 이 필사본은 에라스무스의 헬라어 원문과 여러 군데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 필사본 61은 그 문자적 일치성에 있어서 시리아역본에 가깝고(행 11:26) 시리아역본은 1552년 이전에는 유럽에 소개되지도 않았다(모세스 마르딘). 구라틴 역본과 구시리아 역본은 그 연대가 각각 A.D. 130년과 A.D. 150년이다. A.D. 180년이나 그 이전에 기록된 타티안의 디아테사론(시리아어)은 누가복음 2:33, 마태복음 1:25; 6:13에서 <킹제임스성경>의 본문을 담고 있으며, 이는 바티칸 사본과 시내 사본보다 앞선 증거이자, 이 변개된 필사본들과 대조를 이룬다.

마지막으로 유제니우스(Eugenius)가 요한일서 5:7을 카르타고 공회에서 인용했으며, 그는 그 공회의 신앙고백을 작성했는데 이 문서도 요한일서 5:7을 담고 있다. 요한일서 5:7이 성경에 포함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A.D. 415년에 350여 명의 대표들이 모여서 그 구절로 정통주의 신앙고백을 만들었겠는가? 원래 이 구절이 성경에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이 합리적으로 내릴 수 있는 유일한 결론이다.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이 라틴어로도 그대로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Pater, VERBUM, et Spiritus Sanctus, 요일 5:7).

교수들이 신학교들에서 요한일서 5:7에 대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도 달라스, 덴버, 퍼시픽코스트 등에 있는 신학교들이 이런 일을 행하고 있으며, 린치버그, 리버티 대학과 성서침례신학교들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에 있는 신학교들도 마찬가지이다.) 요한일서 5:7은 있는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이다. 누군가가 "헬라어 원문"을 들먹이며 이 말씀이 성경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한다면, 이제 독자들은 그가 거짓말쟁이임을 단박에 알 수 있을 것이다. 삼위일체를 증명하는 가장 강력한 구절을 부인하면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르친다고 하는 신학교들과 학자들은 모두 무자격자들이다. 『나는 자비를 원하고 희생제를 원치 아니하나니,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번제보다 낫도다』(호 6:6).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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