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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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죄인 펠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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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9년 08월호>

어리석은 총독 펠릭스는 구원받지 못한 죄인들의 전형적인 모습을 대변하고 있다. 『바울이 의와 절제와 다가올 심판에 관하여 설명하자 펠릭스가 두려워하여 대답하기를 "이제 그만 가라. 적절한 때가 오면 내가 너를 부르리라."고 하더라』(행 24:25).

그렇다면 구원받지 못한 펠릭스의 근본적인 문제는 무엇이었는가? 우선 펠릭스는 그저 불편한 마음에서 벗어나려고만 했다. 『펠릭스가 두려워하여』(행 24:25). 그는 분명 바울의 설교를 듣고 죄책감이 들었을 것이다. 필자는 그런 모습을 자주 보았다. 언젠가 두 명의 모슬렘이 내 설교를 들으러 온 적이 있었다. 한 명은 흑인이었고 다른 한 명은 백인이었는데, 설교가 끝나고 그중 백인 남자와 악수를 했을 때 그의 손은 땀으로 흥건히 젖어 있었다. 또 한번은 설교가 끝나고 초청 시간이 되었을 무렵, 의자를 너무 꽉 붙들고 있어서 손이 하얗게 변할 정도로 고민하는 사람을 본 적도 있었다. 예배가 끝나고 그 자리에 가 보았더니 아니나 다를까 땀으로 젖어 있었다. 입술이 바싹 마르고 손에 땀이 나는 것은 모두 "두려워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펠릭스 역시 바울의 설교에 무서워 떨었던 것이 분명하다.

펠릭스는 아주 참담한 심정을 느끼고 있었다. 그가 진리를 알게 되었을 때 기분이 매우 언짢아졌던 것이다. "너희가 진리를 알게 되리니, 진리가 너희를 불쾌하게 하리라!" 거리에서 설교하고 복음을 전파할 때도 사람들은 이와 동일한 반응을 보인다. 설교자가 말씀을 전파하여 그들의 양심을 일깨워 주면, 사람들은 도리어 그 설교자에게 화를 내는 것이다. 펠릭스는 바울의 설교를 들었을 때 양심이 반응하면서 심기가 매우 불편해졌다. 이것은 마치 차를 운전하고 가다가 반대편 도로에서 사고가 났는데, 그 모습이 매우 끔찍해도 그쪽으로 계속 눈이 가는 것과 같다. 즉 펠릭스는 바울의 설교로 마음이 언짢았지만, 그를 계속 불러서 그 말씀을 듣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행 24:26). 많은 사람이 내 설교를 듣고 기분 나빠해 한다. 사실 그들은 내 설교가 왜 싫은지도 모르면서 싫어한다. 어쩌면 필자의 "어조"의 문제일 수도 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다른 데 있었으니, 곧 성령님께서 말씀을 통해 그들의 삶 속에서 바로잡아야 할 것들을 지적하시니까 그것이 무척 싫었던 것이다.

사실 사도행전 24장은 한 죄수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죄수는 바울이 아니다! 펠릭스는 바울의 설교를 들은 후에도 그를 2년 동안이나 감옥에 투옥시켜 놓았다(행 24:27). 하지만 감옥에 갇힌 바울이 편안한 궁전에서 거하는 총독보다 더 자유로웠다. 왜냐하면 바울은 깨끗한 양심을 가지고 있었으나(행 24:16), 펠릭스는 늘 양심이 괴로웠기 때문이다. 그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었으니 그야말로 죄수가 따로 없었던 것이다. 어떻게 죄인을 단박에 알아볼 수 있는지 아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반응하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당신의 종교를 나에게 강요하지 마시오!" "그건 당신의 해석이지 않소!" "그렇게 거리에서 지나가는 사람에게 고래고래 소리치면 안 되죠!" 흔히 말씀을 통해 찔림을 받고 양심이 불편해진 죄인들은 이런 변명을 한다. 양심이 깨끗하지 못하다 보니 괜히 예민해져서 쉽게 흥분하는 것이다.

또한 펠릭스는 바울의 설교를 통해 책망받았을 때 그것을 지워 버리기 위해 세상으로 돌이켰다. 그는 바울을 감옥에 가두어 놓고는, 그를 불러와서 설교를 듣고 다시 감옥에 넣기를 2년 동안 반복했을 것이다. 펠릭스는 그의 설교를 들었음에도 다시 세상과 접하여 살면서 설교를 통해 들은 책망을 무마시켰다. 필자는 하늘나라에 가서야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내 설교를 듣고 초청에 응하여 예수님을 영접하고 싶었지만 끝내 영접하지 않았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교회 문을 나가는 순간, 쌩쌩 지나다니는 차량들, 근처 식당들, 라디오와 TV 소리, 내일 해야 할 일들, 집안에 쌓여 있는 세탁물과 설거지거리, 잔디 깎기 같은 허드렛일, 배우자와 자녀들, 지불해야 하는 청구서들 등과 같은 세상일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완전히 잊어버린다. 하나님과 성경, 예수 그리스도, 죄, 지옥, 구원, 새 예루살렘 등에 관한 생각들이 일순간에 날아가 버리는 것이다. 『이 세상 염려들과 재물의 속임수와 다른 일들에 대한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억눌러 열매를 맺지 못하는 자들이요』(막 4:19). 예수님을 거절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세상이 들어와서 성경 말씀과 성령님께서 주셨던 책망을 모두 무마시켜 버린다.

사람들은 온갖 변명을 댄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살 수 있을 때 믿겠습니다." "집안 문제들(혹은 빚 문제, 나쁜 습관, 나쁜 친구 등)을 먼저 해결하고 믿겠습니다." 그렇게 여러 가지 변명들로 둘러대다가 결국에는 "죽을 때 믿겠습니다!"라고 변명한다. 그러나 성경 전체에서 죽을 때 믿었던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는지 아는가? 단 한 명뿐이다! 십자가에서 회개했던 강도 한 명뿐인 것이다. 이런 옛말이 있다. "죽을 때 구원받은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다는 것은 아무도 절망하지 말라는 뜻이며, 또한 오직 한 사람밖에 없다는 말은 아무도 미루지 말라는 의미다." 죄인이 죽을 때 구원받을 수도 있지만 그럴 가능성은 매우 낮다. 아담 이래로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까지 살았던 죄인들 중에서 오직 한 명만 그렇게 구원을 받았으니 말이다.

세상 제도 자체가 죄인들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듣지 못하게 하고 잊어버리게끔 고안되어 있다. 마귀에게는 죄인들을 다루는 "표준운영절차"(SOP)가 있다. 우선 죄인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게 한다. 만약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경우 그가 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게 만든다. 말씀을 듣고 깨닫는 것을 막지 못했을 때는 그 말씀을 잊어버리게 하려고 애쓸 것이다. 만일 그가 듣고 깨달은 말씀을 기억까지 해 냈다면, 마귀는 마지막 방법으로 그 말씀에 불순종하게 만든다. 마귀가 하는 모든 일의 목적은, 하나님께서 성경에서 하신 말씀이 우리에게 역사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데 있다. 이처럼 마귀는 세상을 이용하여 우리의 주의를 산만하게 만들고 하나님의 말씀을 잊어버리게 한다.

과연 펠릭스의 문제는 무엇이었는가? 유대인 여자와 결혼한(행 24:24) 그는 자신이 예수님을 믿을 경우 가정이 파탄 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을지 모른다. 당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얼마나 멸시하고 있는지 잘 알았던 것이다(요 8:41; 10:31-33).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 구원을 받았을 때 어떤 대가를 치렀는지 알 수 없지만, 필자는 상황적으로 구원받는 일이 쉽지 않은 결정이었던 몇몇 형제들을 알고 있다. 한번은 이집트에서 출발한 선박이 펜사콜라 항구에 정박한 적이 있었는데, 두 명의 모슬렘 선원이 우리 교회의 주일 저녁 예배에 참석했다가 구원을 받게 되었다. 예배가 끝난 후에 내 사무실로 찾아온 그 두 사람은 배에 탄 다른 모슬렘 선원들에게 복음을 증거해야 하는지에 대해 물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는 순간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코란에 기초한 "샤리아 법"에 따르면 "배교자," 즉 이슬람교를 저버린 자는 다른 모슬렘들에 의해 죽어야 했던 것이다. 당신이라면 그런 상황에 처한 성도에게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필자는 그들에게 그 일에 관하여 하나님께 기도해 보라고 했고, 또한 그 일은 그들 자신과 하나님 사이에서 판단해야 할 결정이라고 조언해 주었다. 혹자는 "럭크만 목사, 그렇게 조언하면 안 되는 거 아니에요?"라고 반문할지 모른다. 그것이 바로 당신의 문제다! 다른 사람의 상황에 대해 자세히 모르면서 너무 쉽게 조언해 버리는 것이다.

또한 펠릭스는 구원을 받기 위한 더 좋은 때를 바라고 있었다. 『이제 그만 가라. 적절한 때가 오면 내가 너를 부르리라』(행 24:25). 하지만 그 "적절한 때"는 결코 오지 않는다! 당신이 전파되는 말씀을 멀리할 때 세상 사람들은 당신을 따를 것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행하라고 명령하신 것을 멀리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다. 왜 근본주의 침례교 목사들이 그들 교회의 젊은이들에게 필자가 가르치는 『펜사콜라성경신학원』에 가지 말라고 하는지 아는가? 그들이 "럭크만"처럼 될까 봐 그런 것이 아니다. 그것은 진짜 동기를 감추기 위한 허울 좋은 변명에 불과하다. 진짜 이유는 젊은이들이 이곳에 와서 3년 동안 성경을 공부하면 그 목사들과 그들이 졸업한 근본주의 혹은 보수주의 학교들의 교수진보다 더 많이 성경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목사들은 그들이 신학교에서 4년 동안 공부하면서 실제로는 배운 게 없다는 사실이 그들의 교인들에게 알려지기를 원치 않는다. 그런 목사들의 본을 절대로 따라서는 안 된다. 펠릭스는 총독이었고 사람들은 그를 존경했다. 그가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는 한, 사람들은 계속해서 그를 존경하고 따를 것이 분명했다.

로마카톨릭은 사제들에게 세례를 받음으로써 새로운 출생을 경험할 수 있다고 세상 죄인들에게 거짓말을 한다. "미사"가 무엇인지 아는가? 그것은 "인격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대신에 소위 거룩한 빵 조각이라는 하나의 "사물"을 받아먹게 하는 의식이다. 『그녀가 한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의 이름을 예수라 하라』(마 1:21a). 인간이 만든 빵 조각은 결코 구원할 수 없다.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들에서 구원할 것이기 때문이니라』(마 1:21b). 빵 조각과 포도주로 살아 계신 구주를 대체하는 이 행위야말로 사람들을 지옥에 보내는 가장 확실한 방법들 중의 하나다. 오늘날 수백만, 수천만 명의 사람들이 이런 구원받지 못한 종교인들을 따라 지옥에 가고 있다(마 15:14). 구원은 한 "인격체" 안에 있는 것이지, 어떤 사물 안에 있는 것이 아니다. 결코 침례나 성사, 염주, 교회, 종교, 이슬람교의 라마단(금식 기간), 샤하다(신앙 고백), 핫즈(성지 순례), 지하드(성전) 등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다.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을 통해서만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 아들이 있는 자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는 생명이 없느니라』(요일 5:12).

마지막으로 펠릭스는 돈을 원했다(행 24:26). 그는 돈 때문에 그리스도를 영접하기를 미룬 것이다. 펠릭스는 하나님께서 『이방인들과 왕들』(행 9:15)에게 보내신 사도를 직접 대면했으면서도 하늘나라를 놓치고 말았다. 죄인들에게 있어서 바울보다 더 훌륭한 설교자는 있을 수 없다. 바울은 신약성경의 절반 이상(14권)을 기록했고, 다마스커스로 가는 길에 그에게 초자연적으로 나타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대면하는 가운데 믿고 구원을 받았다. 반면에 펠릭스는 구원에 거의 근접해 있었으면서도 걸려 넘어져 지옥으로 떨어졌다. 유다 이스카리옷이나 헤롯, 빌라도도 마찬가지였다.

지금까지 미네소타, 몬태나, 콜로라도, 캐나다, 알래스카 등지의 거대한 숲에서 눈보라를 만나는 바람에 오두막으로 다시 돌아가려고 했다가, 그곳으로부터 2백 미터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쓰러져 죽은 사람들이 수백 명에 달한다고 한다. 꽤나 가까이 왔음에도 구조가 되기에는 "너무 먼 거리"였던 것이다. 하늘나라의 입구까지 왔는데도 결국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마 7:13) 거절함으로써 불못에서 영원을 보내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사람들은 "럭크만 씨, 나는 지옥을 믿지 않아요!"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지옥에 들어가는 순간 지옥을 믿게 될 것이다. 누가복음 16장의 부자도 그랬다. 지옥에 가게 되면 지옥에 관한 모든 성경 말씀을 믿게 되겠지만 그때는 너무 늦은 것이다. 어떤 이는 "왜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옥에 보내셔서 영원히 불타게 하시나요?"라고 물을지 모른다. 그것은 그 죄인이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제시하신 완전한 의를 저버리고 "자기 의"라고 하는 더러운 걸레를 선택하기 때문이다(사 64:6). 주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매우 심각하게 여기신다. 그래서 그분의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셔서 우리의 죄의 대가를 치르게 하셨고, 그 아들의 희생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의를 값없는 선물로 제시하셨다. 만일 당신이 죄인이면서도 그런 선물을 거절한다면, 어떻게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겠는가?

똑똑히 들어라! 지상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죄를 지었을 때는 그 대가를 치르면 그만이다. 그러나 죄인인 당신이 하나님을 상대하게 될 때는, 지상에서 그저 70년이나 80년, 90년, 100년 정도 사는 존재를 상대하던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이는 당신을 만드셨을 뿐만 아니라 영원무궁토록 살아 계시는 영원하신 창조주를 대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의 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는 기간 내내, 즉 "영원토록" 그 죄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이 지은 죄는 바로 그 하나님을 대적하여 지은 죄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자신을 하나님보다 더 옳다고 여기면서 스스로를 의로운 존재라고 우길 수는 있지만, 그런다고 해서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당신은 반드시 『소멸케 하시는 불』(신 4:24, 히 12:29)로서의 하나님의 속성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지옥은 결코 빌리 그래함이나 교황이 가르치듯이 "하나님과의 분리"를 의미하지 않는다. 통계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매일 약 7,452명이 죽는다(한국의 경우 매일 약 819명이 죽는다 - 역자 주). 필자가 보기에 그렇게 죽는 미국인들 중에서 구원받은 사람은 10분의 1도 채 안 된다. 지구상의 그 어떤 나라보다 더 많은 교회가 있고, 더 많은 성경이 유통되고 있으며, 더 많은 전도지가 배포되고, 더 많이 복음이 전파되는 나라에 살면서도 지옥에 가고 싶은가? 이 땅에서 살다가 구원받지 못한 채 죽어 간 죄인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펠릭스와 함께 지옥에서 불타며 고통을 받고 있다!

당신은 구원받았는가? 지금 죽으면 어디로 가게 되는지 알고 있는가? 당신은 자기 의를 신뢰하고 있는가,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의를 신뢰하고 있는가? 절대로 펠릭스와 같은 잘못을 범하지 말라. 그는 구원받는 것을 뒤로 미뤘다. 가정이 깨지는 것이 무서워서, 또는 돈을 받기 위해서 구원을 미룬 것이다. 결국 그 대가로 약 2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지옥에서 불타며 울부짖고 있다. 결코 펠릭스와 같은 어리석은 죄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신의 혼을 잃는다면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 또 사람이 자기 혼을 무엇과 바꾸겠느냐?』(마 16:26)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