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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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 베드로의 사랑, 실족, 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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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3년 03월호>

당신이 어떤 사람에게서 “인간적인 매력”을 느낀다면, 그 이유는 필시 그 사람의 행동거지가 완벽하지 못하고 실수하는 모습을 여러 차례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모세와 베드로는 성경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 중에 “사람 냄새”가 가장 많이 난다. 모르면 몰라도 이 두 사람이 저지른 많은 실수들을 성경에서 읽을 수 있어서 그럴 것이다(롬 15:4). 그들은 우리가 익히 잘 아는 『이는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다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을 통하여 그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게 되었음이라.』(롬 3:23,24)라는 말씀의 좋은 예이다. 그들은 역사상 가장 많이 사랑받은 인물들이기도 하며, 주님께서는 그들을 귀하게 여기셨다. 모세는 왕들의 시대가 도래하기까지 구약의 주요한 지도자였고, 베드로 또한 바울의 전성기가 오기까지 주도적인 사도였다.

요한복음에서 우리는 시몬 베드로가 주와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마음을 볼 수 있다. 참된 사랑이라 할지라도 의도치 않은 서툰 실수들이 있는 것처럼, 베드로도 마음의 실수는 아니었지만 머릿속 인간적인 생각으로 실수를 저질렀다. 먼저 요한복음 13:6을 보면 다음과 같다. 『그 다음에 시몬 베드로에게 오시니 베드로가 주께 말씀드리기를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기려 하시나이까?”라고 하더라.』 발을 씻기는 것은 종이 하는 천한 일이다. 베드로는 그의 짧은 식견으로 “주님께서 제 발 옆에 앉으셔서 어부의 더러운 발을 씻기시다니요?”라며 놀란 것이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자신의 행동이 단지 어부인 베드로의 발을 씻기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암시하셨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을 네가 지금은 몰라도 이후에는 알게 되리라』(요 13:7). 베드로는 이 점을 나중에 알게 된다. 베드로가 주님께 섬김을 받듯이, 그 또한 자신의 형제들을 섬겨야 한다는 교훈을 배우고 있었던 것이다. 주님께서는 요한복음 21장에서 세 번에 걸쳐서 이 점을 가르치셨다(요 21:15-17). 베드로 또한 훗날 “하나님의 양무리를 치라”고 권면했다(벧전 5:2). 목자는 성도들을 말씀으로 먹이고 성도들을 섬기며 그들을 정결케 해야 한다.

베드로는 주님 앞에서 매우 성급하고 충동적으로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기려 하시나이까?』라고 말했지만 우리는 거기에 담긴 그의 생각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주님께서 제 앞에서 비천하게 되시고 낮아지셔서 제 발을 씻기실 수는 없습니다!” “주님께서 저보다 훌륭하신 분인데 제가 주님의 발을 씻겨 드려야 마땅하죠!” 베드로는 『내가 주께 침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주께서 내게로 오시나이까?』(마 3:14)라고 한 침례인 요한과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너를 씻기지 않으면 너는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라는 말씀 때문에 베드로는 즉시 180도로 다른 반응을 보였다. 베드로는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고 나면 즉각적으로 돌이키는 사람이었다. 베드로는 대중의 의견이나 자기 자존심, 체면 따위를 결코 신경 쓰지 않았다. “주님께서 제 발을 씻기실 순 없어요!”라고 했다가 자기 잘못을 깨닫고 나자 즉시 “아, 그럼 제 손과 머리도 씻겨 주세요!”라고 말했다. 그의 마음은 “주님께서 저를 씻겨 주셔야만 제가 주님과 상관이 있게 된다면, 아예 몸 전체를 씻음 받아서 주님의 전부를 갖고 싶어요!”인 것이다. 베드로는 이런 사람이다. 전부를 가지든지, 아니면 아무것도 가지지 않든지 둘 중 하나다! 베드로는 흑백이 분명하고 회색 지대란 없는 사람이다. 위에는 하늘나라가 있고 아래에는 지옥이 있으나, 그 중간에 연옥 같은 것은 없는 사람이다. 베드로에게 있어서 옳은 것은 옳은 것이고, 그릇된 것은 그릇된 것이다. 문제는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릇된 것인지를 판별하는 일이다. 그러나 일단 무엇이 옳은지 알아내면 곧바로 실행하는 사람이 시몬 베드로인 것이다.

요한복음 13:9,10에는 그리스도인이 깨달아야 할 확실한 교훈이 있다. 『시몬 베드로가 주께 말씀드리기를 “주여, 내 발뿐만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소서.”라고 하니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이미 목욕한 사람은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으니 그는 온몸이 깨끗함이라. 너희는 깨끗하나 다 그런 것은 아니니라.”고 하시더라.』 하나님의 어린양의 보혈로 한 번 씻겼다면 당신은 구원받은 것이다. 당신은 예수님께로 와서 깨끗하게 되었는가? 어린양의 보혈로 씻겼는가? 그리스도의 보혈로 한 번 씻겼다면 당신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씻긴 것이다. 구원을 두 번 받을 필요가 전혀 없다.

사람이 한 번 구원받으면 단번에 영원히 구원받는다는 진리는 구약에서 모세가 반석을 쳐서 물이 나오게 한 사건으로도 알 수 있다. 다시 반석에서 물을 얻으려고 할 때에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반석을 치라고 하지 않으셨다(민 20:8).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매일 십자가에 달리실 필요가 없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한 번 드려지셨으며, 죄들을 위한 한 번의 희생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다(히 10:10-14). 모세가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가 무엇인가? “단번 속죄를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반석을 다시 칠 필요가 없는데 그 반석을 다시 내리쳤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또다시 희생당하실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는 매일의 행보에 있어서 더럽게 될 수 있다. 그렇기에 성경은 『우리가 우리 죄들을 자백하면 그는 신실하시고 의로우셔서 우리 죄들을 용서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느니라.』(요일 1:9)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으로 깨끗하게 될 수 있는가? 로마카톨릭의 성사나 종교적인 의식인가? 요한복음 15:3은 『내가 너희에게 일러준 말을 통하여』 깨끗하게 되었다고 말씀한다. 요한복음 17:17과 시편 119:9 또한 우리가 “말씀”으로 거룩하게 되고 정결하게 될 수 있다고 말씀한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매일 자신을 노출하지 않고 정결한 삶을 살 수 있는 그리스도인은 단 한 사람도 없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은 매일 영 안에서 하나 된 지체들, 곧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상호 간에 말씀으로 섬겨야 한다. 주님께서는 베드로에게 그 점을 가르치신 것이다. 또한 주님을 배반한 유다 이스카리옷도 그 자리에 있었고 교회로 치자면 “주의 만찬”을 함께 먹었지만(요 13:2) 그는 구원받지 못한 자였다. 그럼에도 그는 소위 “성사”에 참예했는데, 그런 면에서 주의 만찬이라는 의식 자체가 어떤 사람도 정결하게 할 수 없다는 진리가 증명된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했고 주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주님의 모든 것을 소유하기 원했다. 주님께서 발을 씻기시려고 하셨을 때 베드로는 슬픔과 수치를 느꼈는데, 이는 그가 주님을 전심으로 사랑했다는 점을 보여 준다. 그가 겟세마네 동산에서 칼을 빼들고 휘둘렀을 때 그것은 그의 진심이었다(막 14:31). 베드로가 주님을 사랑한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문제는 그가 주님을 사랑하는 방법과, 열정적인 사랑을 표현하는 말과 행동에 있었지 주님을 사랑한다는 그 사실 자체는 확실했다(고전 8:3).

요한복음 18장에 가면 베드로에게 문제가 생기는데, 그가 주님을 위해 싸우려고 칼을 뽑았을 때 주님께서 그 칼을 거두라고 하신 것이었다(요 18:10,11). 정말 싸움이 벌어졌다면 베드로는 가장 먼저 뛰쳐나가 최후까지 싸웠을 것이다. 그런데 주님께서 “우리의 전쟁 무기는 육신적인 것이 아니니 칼을 집어넣으라!”라고 하셨다. 이제 주님을 사랑했던 베드로가 할 수 있는 일은 한 가지밖에 없었다. 바로 칼을 내려놓고 도망가는 것이었다. 그는 겁쟁이는 아니었지만 칼을 거두라고 하신 주님께 화가 나 있었다. 주님께서 직접 『칼이 없는 사람은 자기의 겉옷을 팔아서라도 살지니라.』(눅 22:36)라고 하시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대관절 칼을 가지고 싸우는 것이 뭐가 잘못되었는가? 베드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베드로가 도망간 이유는, 그가 주님과 함께 남아 있다면 옴짝달싹할 수 없이 묶여 끌려갈 것이기 때문이었다. 베드로는 스스로 방어도 해 보지 못하고 군인들의 손에 무기력하게 끌려가고 싶지 않았다. 이왕 체포될 것이라면 싸움이라도 해 보고 누군가의 머리통이라도 깨부수고 싶었는데 주님께서는 그에게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셨고, 그래서 그는 도망간 것이다. 베드로는 화가 잔뜩 나 있었다. “난 그리스도인들처럼 비겁하지 않아! 나를 그런 겁쟁이들 무리에 포함시키지 말라고! 나는 남자들 중의 남자야! 나를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지도 마!” 오늘날에도 이런 남자들이 있다! 당신이 베드로라면 어느 편에 설 텐가? 대적들이 피워 놓은 불에 몸을 데우느니 주님의 제자로 얼어 죽는 편이 나은 것인데, 베드로는 잘못된 무리와 함께 있었다. 그래서 그는 저주하고 맹세한 것이다. 잘못된 무리와 함께 어울린 탓에 순간의 제단에 영원을 불사르다시피 했다(고전 15:33). “그리스도인 청소년”들도 세상 친구들과 어울리다가 간증을 망치는 일이 다반사다. 베드로가 주님을 세 번째 부인할 때는 아예 저주하며 맹세하기 시작했다(마 26:74). 왜인가? 그릇된 무리와 함께 어울렸기 때문이다. “뱃놈” 베드로는 성이 나서 세상 죄인들처럼 입을 놀렸던 것이다(약 1:20, 전 7:9).

베드로가 주님을 부인하자 닭이 울었다(요 18:25-27). 닭이 울던 바로 그때 주님의 눈이 베드로의 눈과 마주쳤다(눅 22:61). 그때서야 베드로는 주님께서 두 시간 전에 하신 말씀의 엄중함을 깨달았다(눅 22:34). 주님과 함께 죽을지언정 주님을 결코 부인하지 않겠다고 했지만(마 26:35), 그는 마귀의 키질을 피할 수 없었고, 그 뒤에 일어난 일을 우리는 모두 잘 알고 있다.
주님께서 부활하신 후 갈릴리 바다의 해변을 거니셨을 때, 밤새 아무것도 잡지 못한 제자들을 보시고 배의 오른쪽에 그물을 내리라고 하셨다. 그러자 그들은 엄청나게 많은 고기를 잡는다. 이제 우리는 베드로의 회복에 관한 말씀을 읽을 수 있는데(요 21:15-17), 왜 주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고 물으셨을까? 그것은 베드로가 다른 모든 제자들이 주님으로 인해 실족할지라도 나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그 자신의 입으로 공언했기 때문이다(마 26:33). 주님께서는 그 질문을 다른 제자들 앞에서 하셨다. 주님께서 두 번째로 물으시자 이번에는 베드로가 “이 사람들보다” 주님을 더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말하자면 베드로는 겸손을 배운 것인데, 하지만 큰 대가를 치러야 했다. 구원을 잃지는 않았지만 제자의 자격을 상실했던 것이다(막 16:7).

이제 베드로가 다시 제자가 되려면 이전에 주님을 세 번 공개적으로 부인했듯이 주님을 세 번 공개적으로 시인해야 했다. 주님의 첫 번째 질문에 베드로는 자기가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을 주님께서 아신다고 했는데 그것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그는 주님을 사랑하는 일을 중단한 적이 없다. 주님께서는 그런 그에게 『내 어린양들을 먹이라.』라고 하셨고, 이는 갓 구원받은 어린 그리스도인들을 뜻한다. 그런데 주님께서 두 번째로 물으실 때는 “이 사람들보다”라는 부분을 빼셨다. 왜 그런가? 자비를 베푸신 것이다(시 103:13). 그리고 베드로에게 『내 양들을 먹이라.』라고 하셨다. 즉 성장한 그리스도인들을 먹이라는 뜻이다. 베드로 역시 세상에 있는 모든 목사들에게 하나님의 양무리를 말씀으로 먹이라고 명령한다(벧전 5:2).

이제 절정의 순간이다. 베드로는 엉엉 울기 직전이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데 바로 앞에는 불이 있다(요 21:9). 베드로가 어디에서 주님을 부인했는지 기억하는가? 베드로는 울먹이며 대답한다. 『주여, 주께서는 모든 것을 아시며,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아시나이다』(요 21:17). “주님께서는 제가 실족한 것도 아시고, 대적과 타협한 것도 아시고, 모든 사람이 주님을 부인할 거라는 주님의 말씀을 거절한 것도 아십니다. 주님을 결코 부인하지 않을 거라고 나불거렸지만 결국 부인한 것도 다 아십니다. 주님께서는 제 육신적인 성격과 화가 나서 싸운 것도, 저주하며 맹세했던 것도, 주님께 쓸모없는 자라는 것도 아십니다. 그리고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도 아십니다.” 그렇다. 베드로는 주님을 사랑하는 일을 그치지 않았다. 주님은 그런 그에게 『내 양들을 먹이라.』, 그리고 『나를 따라오라.』(요 21:19)라고 하셨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시몬 베드로의 삶에서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하나님의 자녀가 주님을 아무리 사랑하더라도 멍청하고 어리석은 실수들을 범하여 큰 대가를 치를 수도 있다. 단지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한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말씀을 믿는 믿음이 필요하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그들이 주님을 부인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을 때, 베드로는 그 말씀을 믿지 않아서 문제가 발생했던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마땅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영적인 삶을 살기에 충분하지 않다. 사랑, 화평, 친절함 등이 마귀가 당신을 시험하고 공격하는 것을 막아 주지는 못한다. 마귀에게 인생을 빼앗기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지식을 갖춰야 한다. 믿음과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대해야 하고 그 말씀들을 생활 속에서 실천해야 한다!(눅 6:47-49)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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