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성경에 대한 역설적 경고 분류

성경은 사람의 가치관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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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7년 03월호>

<이 책(성경)을 읽으면 진리로 인해서 세상의 모든 것을 포기하게 되고 세상으로부터 빠져 나와 세상이 아닌 하나님만 기쁘시게 해야 하니 그 점도 명심하라.>

그리스도인들이 왜 성경을 읽는가? 물론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필연적으로 먹어야 할 영적 양식이기 때문이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이 영적 양식으로 속사람이 굶주리지 않고 살아가게 된다. 독자는 거듭났는가? 그렇다면 영적 양식인 성경을 읽어야 하는데 그 성경은 당신에게 이 세상과 일치하지 말고 세상 친구들과 함께 옛날처럼 어깨를 나란히 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다.
『세상도, 세상에 있는 것들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를 사랑함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생의 자랑이요, 아버지께 속한 것이 아니라 세상에 속한 것이기 때문이라. 세상도, 세상의 정욕도 사라지지만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 2:15-17).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읽으면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에 말씀을 무시하는 사람들은 피하게 된다. 세상을 사랑하여 세상을 섬기는 사람들 중에는 세상 사람들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도 수없이 많다. 이런 사람들의 동기는 바로 자기를 위한 것에서부터 출발하는 이기심인데,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는 관심이 없고 자신의 배만 채우려는 사람들이므로 그들과 가까이하는 것은 경건한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의 자세가 아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정중한 말과 그럴듯한 언변으로 순진한 사람들의 마음을 미혹하는 자들이기에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성경은 이 점에 대해서 강력하게 경고하고 있기 때문에 성경 말씀에 순종하고자 하는 사람은 이러한 사람들을 필연적으로 피하게 되는 것이다(롬 16:18, 딤전 6:4,5).
부자가 되려고 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마음가짐인데 성경은 급히 부자가 되려고 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다.
각 나라의 부강함이 사람들이 느끼는 삶의 만족도와 비례하지 않는다는 통계가 있다. 한 연구기관의 행복도 조사를 통해서 볼 때 부강한 국가 국민들의 행복도가 빈국들의 국민들이 느끼는 행복도보다 비교적으로 높았으나 최빈국인 아프리카 가나인들의 행복도가 최상급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처럼 부자가 된다는 것은 세상적인 개념으로서 돈이 많아진다는 말인데 돈이 많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이 아니며 부자라고 해서 다 행복한 것은 아니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만약 사람이 빵을 구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면 단지 빵만 있으면 여한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다가 빵이 해결되고 배고픔의 욕구가 해결되면, 그 즉시로 또 다른 욕구가 생기고 그 욕구가 해결되면 더 높은 수준의 욕구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욕구본능이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그러나 누구든지 자신의 욕심에 끌려 유혹을 받을 때 시험을 당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면 사망을 낳느니라.』(약 1:14,15)고 하셨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라고 성경은 말씀하시는데 그것은 오늘날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과 사고를 보면 극명하게 드러난다.
돈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꼭 필요한 것이지만 그것을 욕심낸다면 거기에는 부작용이 따르게 마련이다. 그래서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근원이 되는 것이다. 돈을 사랑하게 되면 그것을 취해야 하고 뜻대로 안 되면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취해야 하기 때문에 사건과 사고로 얼룩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돈을 사랑하는 마음은 그 사람을 무서운 죄의 길로 인도하게 되고 그 죄의 대가는 참으로 비참한 것이기에 성경은 이러한 사람들의 태도에 대해서 경고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말씀을 읽고 정직하게 잘 깨달은 사람은 급히, 그것도 부정한 방법으로 부자가 되고자 하는 욕망과 돈을 사랑하는 삶을 피하게 된다(딤전 6:9,10). 이러한 삶이 하나님의 기쁘시고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입증하며 사는 길이다.
또한 성경이 말하는 거듭난 새사람의 삶은 끝없는 전쟁인데 그 싸움은 바로 믿음의 선한 싸움이다(딤전 6:12). 지난 호에서도 언급했지만 참된 기독교 신앙은 끊임없는 영적 전쟁으로 시작해서 전쟁으로 끝을 맺되 승리로 끝을 맺는다. 이 싸움은 물론 첫째로는 마귀와의 싸움이지만 그 외에 마귀에 의해 조종을 받으면서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의 믿음을 파괴하고 성경을 변개시키는 자들과의 한판 싸움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들과 싸우는 이유는 진리를 사랑하기에 진리를 수호하기 위해서 싸우는 것이다.
진리 수호에 관한 한 성난 개처럼 싸우는 것만이 바로 “짖지 못하는 개”라는 오명으로 덧입지 않는 지름길이다. 이들과의 싸움은 치열할 수밖에 없다. 그들과는 어떠한 것도 나누거나 협력하거나 격려하거나 추켜세워 주거나 비위를 맞춰 줄 것이 없다. 성경은 그리스도인들을 “그리스도의 군사”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도 훈련받기를 싫어하고 훈련을 받았으면서도 전투 현장에 나가 싸우기를 주저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이다. 그 현장에서 격전을 치르는 전우들을 보면서도 자신은 두렵고 때로는 부끄러워하면서 그 대열에서 떠나 탈영병으로 전락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어느 군대라도 그 군대에 속해 있는 군사는 두려워하거나 부끄러워하게 되면 아무런 임무도 수행할 수 없다. 죽기까지 신실하게 싸워야 하는 것이 군사의 임무이다. 이 점에 있어서는 사도 바울이 모범을 보여 주었다. 그는 처음에 시대에 따른 하나님의 경륜을 이해하지 못했기에 율법과 선지서들에 기록된 모든 것을 믿고 실행했던 신실한 스테판을 죽였다. 하나님의 군사로서 그가 쏜 화살은 표적을 잘못 맞췄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나중에 그리스도인이 된 후에는 명장이 되어 선한 싸움을 싸웠다.
물론 그리스도인은 다정다감해야 하고 온유하고 자비로운 삶의 덕목도 무척 중요하다. 그렇다고 해서 진리와 전혀 무관한 것들과 뒤섞어 놓아서는 안 된다. 진리의 수호자의 자세와 그리스도인의 생활 가운데 보여 주어야 하는 선한 간증들은 분명히 구분되어야 한다. 사람이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 있는 동안 거기에는 반드시 거룩한 것을 추구해야만 하지만 사람이 그렇게 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모두들 실감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미련한 사람들을 절구통에 넣고 공이로 찧는 동안 인내하고 온유하게 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 사람이나 되겠는가?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되라고 말씀하신다.
오늘날 현실적으로 사람들이 이 성경을 믿고 실행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이러한 삶을 추구해야 한다. 성경이 말하는 거룩한 삶에 방해가 되는 모든 것은 내려놓아야만 한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 방법을 제시하고 있으며 우리를 격려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처럼 많은 구름 같은 증인들이 또한 우리를 둘러싸고 있으니, 우리 또한 모든 무거운 것과 쉽게 에워싸는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 우리 앞에 놓인 경주를 하자. 그리고 우리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이신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자기 앞에 놓인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견디시고 수치를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의 보좌 오른편에 앉으셨느니라. 너희가 마음이 지쳐 낙심치 않기 위하여 자기에게 저질러진 죄인들의 그와 같은 모순된 행동들을 견뎌 내신 그를 깊이 생각하라』(히 12:1-3).
우리가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땅에서 살아가자면 원치 않는 일들도 많이 당할 수 있고 그로 인해서 마음 아파하며 괴로워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그런 일들에 대해 육신적이 되어서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대응하며 살 수 없기에 비록 진리 안에서는 자유롭지만 자기의 십자가를 진 채 인내하며 살아간다.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약속들을 믿기에 당장은 손해보고 얻는 것이 없을지라도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갚아 주실 것을 믿고 견디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도 때로는 자신을 기쁘게 하고 자기를 만족케 하려는 욕망이 들 때가 있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에서 말하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그리고 생의 자랑에 근거한 육신적인 동기에서 나오는 것들이다.
성경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너희의 순종이 모든 사람에게 알려졌느니라. 그러므로 나도 너희로 인하여 기쁘도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너희가 선한 데 현명하고 악한 데 어리석기를 원하노라』(롬 16:19).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은 악한 일을 멀리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들에 대해서 마음을 쏟으며 노력하는 것이 정상적인 삶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 점에 있어서 무척이나 힘들어한다. 심지어 이익이 경건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볼 때 선한 일에 머리를 쓰고 골몰하는 것보다는 육신적인 일들에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쓰고 있다. 어떻게 하면 손해를 덜 볼까,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남보다 더 잘될까, 어떻게 하면 저 사람을 밟고 일어설 수 있을까 하는 생각들로 가득 찬 세상이다. 이것이 바로 경쟁에 경쟁을 거듭하는 현대인들의 현주소이다.
그러나 성경은 그런 사람에게 악한 일들에 대해서는 오히려 어리석은 자가 되라고 말씀하신다. 악한 일들에 대해서 어리석은 자가 되려면 어떻게 하면 되는가? 그것은 참으로 간단하다. 누구나 상식선에서 알 수 있듯이 무슨 일이 닥쳤을 때 그 일이 옳은 일인지 그른 일인지를 먼저 생각하고 그후에는 더 이상 생각할 필요도 없이 그 일에 대해서 손을 씻으면 간단히 해결된다. 악한 일에 대해서는 인간의 양심과 상식선에서 금방 드러나기 때문에 복잡하게 머리를 쓰며 생각할 필요가 전혀 없다. 물론 요즘은 상식도 통하지 않는 사람들이 판치는 세상이지만 그것은 타락한 성품의 열매일 뿐 그것은 그들의 일이다.
만약 그리스도인이 어떤 일에 연루되었을 때 그것을 분별하기 힘들지만 조금이라도 의심이 가고 확신이 가지 않는 일은 피하는 것이 좋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화평으로 부르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의 몸과 마음을 일부만 내어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몽땅 내어드리고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살아갈 때만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우리 자신을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주신 하나님을 위해서 세상과 일치하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하고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입증해 드려야 한다(롬 12:2).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