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믿음의 경기장에서 분류

영적인 제사장들의 특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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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0년 08월호>

성경은 구약의 제사장들이 여러 가지 특권들을 갖고 있었던 것처럼 신약의 영적인 제사장들에게도 여러 가지 영적인 특권들이 있음을 알려 주신다. 그러나 신약의 제사장직은 구약의 제사장직의 단순한 모방이나 답습이 아니며, 오히려 구원받은 성도가 누리는 더 크고 더 놀라운 복이다. 이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신 제사장으로서의 특권들을 하나하나 짚어 보면서 우리에게 주신 놀라운 복들에 대해 감사를 드리자.

■ 감사와 경배 ■


하나님께 감사와 경배를 드리는 일은 제사장의 가장 중요한 특권이다. “감사”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피조물에게 주신 선물과 복에 관한 것이고, “경배”는 그것들을 주시는 분의 인격과 본성에 집중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감사가 하나님께서 나타내신 영광과 우리를 위해 이루신 위대한 역사에 관하여 영광을 돌리는 일이라면, 경배는 가장 경이로우시고 영광의 중심이신 하나님 자체를 깊이 생각하고 높이는 일이다. 그래서 감사는 구속받은 피조물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행하신 영광스러운 결과를, 경배는 창조주의 본질, 근간, 원천을 찬미하는 것을 강조한다. 또한 감사를 통해 우리의 혼은 구주이신 주님께서 우리 각자를 위해 완성해 주신 것들을 기뻐하고, 경배를 통해 우리의 영은 전능하시고 거룩하시며 사랑이신 주 하나님을 높인다.


이렇듯 경배는 가장 높으신 분의 본성인 사랑과 영원함과 거룩함으로 가득 채우는 일이기에 감사보다 높은 위치를 갖는다. 그래서 경배는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의 교제에서, 피조물이 보여 드릴 수 있는 사랑의 반응의 정점에 있다. 즉 인간을 부르신 영원한 목적의 제1순위가 경배이므로, 구속받고 영광스럽게 된 성도들은 주들 중의 주이신 하나님을 영원부터 영원까지 찬양하는 특권을 받아 크게 기뻐하며 이렇게 외치는 것이다. 『구원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있도다...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세와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영원무궁토록 있나이다. 아멘』(계 7:10,12).

■ 기도 ■


영적인 제사장들의 생활의 중심에는 기도가 있고, 기도는 의무가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특권이다. 기도하는 성도에게는 다른 사람의 죄들이 단순한 혹평이 아닌 “사랑으로 중보할 대상”이 된다. 그는 상대방의 거룩하지 못한 모습에 대하여 거룩한 태도로 대하고, 그것을 육신의 전장이 아닌 기도의 골방으로 가져간다. 그러한 축복의 시내는 그의 골방에서 다른 성도와 가정, 교회, 복음 전파 및 양육 사역으로(엡 6:18,19, 롬 15:30-32), 심지어 세상 정부와 권세자들에게까지 흘러간다(딤전 2:1,2).
기도는 변압기나 분배기와 같다. 즉 하늘의 발전소에서 하나님께로부터 흘러나온 생명과 능력의 전류가 각 가정, 사업장, 공장의 일상으로 전달되는 것이다. 그래서 기도가 없는 삶에는 승리도 없다! 전달받지 못하면 가질 수도 없다! 예수님 안에서 살지 않으면 그분을 위해 어떤 열매도 맺을 수 없다! 해야 할 일들로 인해 마음이 분주하더라도, 기도로 주님과 교제하는 일에 있어서 결코 뒤로 물러서면 안 된다.


그러나 기도 자체가 전부는 아니다. 진정으로 드리지 않는 기도도 있기 때문이다. 성도가 드리는 기도라 해도 아무런 생각이 없거나 의심과 연약한 믿음으로 형식만 갖춘 기도일 수 있다. 무엇보다도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인지 확인하고, 주님의 방법에 따라 주님께서 원하시는 시간에 이루어 주시기를 진심으로 신뢰하며 기다려야 한다. 그런 기도만이 우리에게 유익하다.


기도는 가장 중요한 일이기에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기도하는 사람이 일하는 사람이다. 인생의 모든 전쟁은 “기도의 골방”에서 치러지는데, 우리가 겪는 모든 일이나 주변에 미치는 영향 혹은 문제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바로 거기에서 결정된다. 마찬가지로 사역의 질도 “우리의 기도의 질”에 달려 있다. 신실하게 기도하는 성도들이 교회를 강성하게 만드는 근간이 되는 것이다.

■ 헌금 ■


교회와 선교 사역을 위해 “드리는 일”은 영적인 제사장들 모두의 특권이다. 우리가 주님의 국내외 사역에 지원하는 일은 선택 사항이 아니라 부활하신 주님의 명령이다(고전 9:14). 구원받은 성도는 이 명령에 순종하는 자세를 통해 “구속주께서 자신의 주인 되심”을 자기가 얼마나 진지하고 깊이 있게 인식하고 있는지 가늠해 볼 수 있다.


교회와 선교 사역을 위해 물질을 드리는 일은 어떤 자선 행위가 아니며, 그동안 우리가 받아 온 영적인 복들을 밖으로 내보이는 일이다. 특히 선교 헌금은 주님께서 베푸신 구원과, 그분의 일꾼들이 우리를 위해 일한 섬김에 대해 감사를 표현하는 일이다. 그래서 주님의 그러한 요구는 정당하며, 이에 대해 불순종하는 것은 그분의 권위를 멸시하는 일이다. 심지어 그렇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는 일이기도 하다(말 3:7-10). 물론 헌금은 이렇게 드려야 한다. 『각 사람은 미리 마음속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이나 억지로는 하지 말아야 하리니 이는 하나님께서는 기쁨으로 드리는 자를 사랑하심이니라』(고후 9:7). 우리의 마음이 주님께 대한 감사와 사랑으로 가득하다면 왜 기쁨으로 드리지 못하겠는가? 사실 “주는 것”은 “받는 것”보다 복이 있는 일이다(행 20:35).


특히 드리는 일은 일종의 “희생제”인데, 올바른 마음과 기쁨으로 정한 양을 드릴 때 『향기로운 냄새요, 받으실 만한 희생제요, 하나님을 참으로 기쁘시게 하는 것』(빌 4:18)이 된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받은 것들의 가치를 깊이 알면 알수록, 주님의 사역을 위해 자원하여 드리려는 마음은 더 커지기 마련이다. 구약 시대에 물질을 대하는 태도로 선지자들의 “진위”가 가려졌듯이(미 3:11, 벧후 2:15), 그것은 신약 시대에도 진실함과 신실함을 판단하는 잣대가 된다.
교회와 선교 사역을 위해 드리는 일은 특권이자 영광이다. 우리가 드린 물질이 성경을 배포하고 혼을 구원하는 등 여러 사역에서 큰 역할을 감당했다는 것을 영원에서 알게 될 때 얼마나 기쁘고 영광스럽겠는가! 무엇보다도 사역자들이 싸워서 승리를 얻은 전장과는 수천 킬로미터 떨어져 있었지만, 동역자로서 하나님의 은혜로 그들을 도울 수 있었다는 사실에 얼마나 감격하겠는가!

■ 복음 전파 ■


『이는 제사장의 입술은 지식을 지켜야 하고 사람들은 그의 입에서 율법을 찾아야 함이니, 이는 그가 만군의 주의 사자이기 때문이라』(말 2:7). 이 말씀은 세상이 영적 제사장들인 우리에게서 무엇인가를 기대하고 있다고 알려 주지만, 세상은 그것을 의식하지 못한다. 오히려 그들이 그런 기대를 갖고 있다고 알려 주면 그들은 강하게 부정한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를 잡고 있는 “삶의 본연의 문제”에 관하여 대답해 줘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 『내가 다 빚진 자로다』(롬 1:14). 『만일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정녕 내게 화가 있으리라!』(고전 9:16) 이처럼 영적인 제사장에게는 복음을 전해야 할 임무가 주어져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사로서 생명의 말씀을 세상에 선포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형성된 교회는 국내외로 복음(말씀)을 전하는 일에 힘써야 한다. 이는 말씀이신 예수님의 교회는 말씀이신 예수님을 통해 영양분을 공급받아 힘을 얻으며, 말씀이신 예수님의 명령을 받들기 때문이다.
종교개혁 이후 선교의 정당한 이유와 가능성에 대해 여러 가지 의문들이 제기되었다.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회의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교도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에 선두에 서 있었던 믿음의 영웅들은 논쟁할 가치도 없고 간과해서도 안 되는 대답을 그들의 말과 실행으로 보여 주었다. 진젠도르프, 치겐발크, 윌리엄 캐리, 로버트 모리슨, 데이비드 리빙스턴, 허드슨 테일러 등 하나님의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 세계로 전파한 위대한 기수들이 선교는 가능한 일일 뿐 아니라 가장 시급하게 필요한 일임을 증명해 왔던 것이다.


주님께서도 선교에 관한 명령을 철회하신 적이 없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 16:15). 『보라, 내가 세상 끝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 단단히 묶여 있는 두 말씀 간의 관계가 보이는가? “복음 전파의 명령”과 “복음 전파자에 대한 약속”은 항상 함께 가기 때문에, 둘 중 하나만 주장하고 다른 하나를 부인할 수는 없다. 주님께서 종들인 우리에게 『내가 올 때까지 장사하라.』(눅 19:13)라고 명령하셨으니, 오시기 전에 그만두면 안 된다.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일터에서 발견되어야 한다!


1857년 12월 4일, 아프리카 탐험가이자 선교사인 리빙스턴이 케임브리지대학교를 방문했다. 그는 학생들에게 아프리카 사역에 헌신하기를 호소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개인적으로 하나님께서 이 일을 제게 맡기셨다는 사실을 기뻐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얼마나 큰 희생이냐!’라고 말하지만, 하나님께 진 빚을 아주 조금 갚는 것에 불과한 이 일은 희생이라는 말과 전혀 어울리지 않습니다. 주님께 진 빚을 갚을 수도 없을 뿐더러, 오히려 저에게 가장 깊은 만족을 주고 있는 일을 어떻게 희생이라 부를 수 있겠습니까? 저는 그러한 만족을 통해 가장 큰 능력을 얻었고, 가장 위대한 소망과 기대를 갖는 것이 옳다는 사실을 알았으니,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지요! 저는 결코 희생한 적이 없습니다.” 주님께는 이러한 종들이 필요하다! 형제이든 자매이든 마음속에 거룩한 열정의 불길이 타오르고, 생의 유일한 목표가 복음을 전하는 일에 있으며, 말과 행동으로 복음을 전파하여 왕의 말씀을 원근 각지에 퍼뜨려서 구주께 영광을 돌리는 사람, 바로 그런 사람만이 “진정한 영적 제사장”인 것이다.


약 220년 전 선교의 새로운 시대가 열릴 즈음 어떤 모임에서 한 주님의 일꾼이 이런 질문을 던졌다. “우리는 인도라는 금광을 보고 있는데, 지구의 중심처럼 매우 깊습니다. 누가 그곳을 용감히 탐험하겠습니까?” 이후 위대한 선교사이자, 언어학자, 성경 번역자, 해외 선교의 선구자가 된 윌리엄 캐리가 이렇게 대답했다. “제가 그 광산으로 내려가겠습니다. 다만 여러분들은 제가 타고 내려간 줄을 계속해서 단단히 붙잡아 주셔야 합니다!” 줄을 꽉 붙잡아라! 지속적으로 복음 전파자들을 후원하고 기도하라! 직접 복음을 전파하라! 한 영 안에 굳게 서서 한 마음으로 복음의 믿음을 위하여 함께 싸우라!(빌 1:27)

영적인 제사장들에게 부여하신 특권을 풍성히 누리고 모든 게으름과 나쁜 습관을 내버려야 한다. 뒤로 물러나 관망하는 자세도 버려야 한다. 감사하고 경배하며, 기도하고, 마음과 몸과 물질을 드리며, 복음을 전파하자! 이런 것들은 성도의 의무가 아니라 특권이며,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부어 주신 놀라운 복임을 잊지 말자!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