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믿음의 경기장에서 분류

승리자의 영광과 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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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9년 02월호>

필자는 에베소 원형경기장에서 발굴된 낡은 평판 하나가 영국 런던의 한 박물관에 전시된 것을 본 적이 있다. 거기에는 "그가 세 경기에서 싸웠고, 화관 두 개를 받았다."라고 적혀 있었다. 고대 올림픽에서 승자에게 수여되는 화관은 제우스 신전 근처에 있는 소위 가장 성스럽다고 알려진 올리브 나뭇가지의 잎으로 만들어졌다. 이 가지는 한 소년에 의해 "황금 칼"로 잘려져 엄숙한 행사를 집행하는 심판에게 전달되었다고 하는데, 그만큼 우승자에게 주어지는 영광이 대단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영광이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 될 만큼 화려했다 해도, 영원히 지속되지 못하고 썩어 사라져 버릴 것이라면 그런 영광을 잠시 동안 누린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출전 자격

고대 그리스에서 열린 운동 경기에는 노예, 외국인, 범죄자는 출전할 수 없었고, 훌륭한 시민이자 강인한 체력을 가진 "자유인"에게만 출전 자격이 주어졌다. 참가 선수들은 길게는 10개월 정도까지 특별 훈련을 받았는데, 훈련 기간에는 냉철하고 진지하게 자신의 생활을 통제해야만 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믿음의 경기장에는 하늘의 시민권자, 곧 죄로부터 자유롭게 된 성도만이 입장해서 성별에 집중하는 훈련과 더불어 믿음의 경주를 하게 된다. 사도 바울은 당시의 선수들의 훈련과 절제된 생활을 가까이에서 지켜봤던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에게 이렇게 썼다. 『이기려고 애쓰는 사람은 누구나 모든 일에 자제하나니 이제 그들은 썩어질 면류관을 받으려 하지만 우리는 썩지 않을 면류관을 받고자 함이라』(고전 9:25).

그리스도인으로서 승리하려면 자신을 부인해야 함은 물론이거니와 합법적인 것들까지도 절제할 수 있어야 한다(고전 10:23; 8:13). 육신이 성령을 거스르려고 할 때면(갈 5:17) 언제라도 "안 돼!"라고 단호하게 말하고, 주님께는 오직 "네!"라고 대답할 준비도 되어 있어야 한다. 세상을 사랑하고 안락을 추구하며 죄를 즐기는 데 건강과 시간을 낭비했다가는 황망 중에 크게 후회하면서 결산의 날을 맞게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능동적으로 거룩한 생활을 유지하면서 주님을 따르는 제자만이 영적인 근육을 단련시킬 수 있다. 그렇게 훈련한 경주자만이 지치지 않고 끝까지 달려서 결승선에 이를 수 있으며, 심판자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면류관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복음을 전하는 설교자들이 처할 수 있는 위험도 유념해야 한다. 『내가 내 몸을 억제하여 복종하게 함은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한 후에 어떻게 해서든지 내 자신이 버림을 받지 않게 하려는 것이라』(고전 9:27). 말하자면 경기 규칙을 크게 읽어 주고 경기자들을 경기장 안으로 호명하며 나팔을 불어 경기 시작을 알리는 전령 역할은 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경기에 직접 참전하지 않는 설교자들이 있는 것이다. 바울은 자신이 그런 전령 수준에만 머물러 있다가 면류관을 얻지 못할 수도 있는 상황을 경계했기에 자신의 몸을 억제하여 복종하게 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길은 치열한 전쟁과 같아서, 비용을 계산한 뒤에 응당 지불할 준비가 되어 있는 성도만이 주님을 실제로 따를 수 있다(눅 14:25-33). 1881년에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갓 독립하여 왕국을 이룬 루마니아에는 아직 왕을 위한 왕관이 없었다. 그러자 초대 국왕 카롤 1세는 다음과 같이 명령했다. "적들로부터 포획한 대포를 녹여 철 왕관을 만들어 오라. 이 왕관은 전장에서 죽어 간 루마니아 병사들의 생명으로 값을 치르고 산 것임을 보여 주기 위해서니라." 예수님을 위해서 당신의 목숨까지도 미워할 수 있는가? 목숨을 내놓고 싸우지 않으면 승리를 쟁취할 수 없다.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 면류관도 없는 것이다!

경기 규칙

전차 경주를 비롯하여 원형경기장의 모든 경기 규칙은 아주 엄격했다. 그래서 부정행위, 특히 곡선 주로를 임의로 단축시켜 달리지 못 하게 하려고 경주로 측면에 아예 벽을 세우기도 했던 것이다. 경주 거리는 총 일곱 바퀴였고, 각 선수가 한 바퀴를 마칠 때마다 공개적으로 표시하여 관중이 볼 수 있게 했다. 그렇게 정확히 완주하고 남들보다 한발이라도 더 앞서서 결승선을 통과한 선수가 상을 받았는데, 최종 우승자를 발표하는 순간까지 아무도 안도할 수 없었다고 한다. 이는 보라색 옷을 입은 심판진의 까다로운 심사에서 경기 규칙을 조금도 위반하지 않았다는 인정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의 판정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사람의 생각을 일일이 아시고(겔 11:5) 의롭게 심판하시는 분이기에(사 11:3,4, 벧전 2:23), 어느 누구도 이의나 반론을 제기할 수 없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절대로 죄와 타협하지 않으시기에, 우리도 항상 그렇게 깨어 있어야 한다. 거룩하게 행하고 신실하게 복음을 전하는 삶에서 조금도 벗어나서는 안 된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모두 내어 주셨으므로, 우리 역시 남은 생을 주님을 위해 남김없이 드려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한 후에는 모든 판정을 공의롭게 심판하시는 주님께 맡기면 된다.

영국 웨일즈의 한 왕이 썼던 왕관에는 희귀한 새의 깃털 다발이 꽂혀 있었다. 워낙 보기 드문 새라서 그만한 양의 깃털을 모으는 데만도 20년이 걸렸다고 한다. 또한 새가 죽으면 깃털은 곧바로 윤기를 잃었기 때문에, 살아 있는 새에게서 깃털을 뽑아야 했다. 뿐만 아니라 그 새들의 서식지에는 호랑이들도 자주 출몰했기에, 새를 잡는 데 큰 위험을 감수해야 했고, 실제로 열댓 명의 사냥꾼이 죽기도 했다. 이것은 승리자가 면류관을 얻기 위해서 어떤 희생을 치러야 하는지, 또 어떻게 달리고 싸워야 하는지를 잘 보여 준다.

승리자가 받게 될 상과 영광

한 도시에서 우승자가 배출되는 일은 가장 큰 영예였기 때문에, 그 승리자가 받는 상과 영광은 실로 굉장했다. 그를 위한 개선식이 마련되어서 승자를 태운 마차가 시민들의 기나긴 행렬 사이로 지나갔고, 그의 동상을 광장이나 신전에 세울 수 있도록 허락했다. 승리를 축하하는 축제를 열기도 했는데, 그를 위해 시와 노래, 음악이 연주되었으며, 저명한 고대 그리스의 시인 핀다로스 같은 인물들이 경기의 승자들을 위해 직접 노래를 지을 만큼 그들을 향한 환대가 실로 대단했다. 심지어 시의회에 참석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되었고, 어떤 중요한 경기나 축제가 있을 시에는 편히 앉아 관람할 수 있는 귀빈석이 제공되었으며, 면세 특권을 비롯한 각종 특권들도 누릴 수 있었다. 또한 승자들의 이름은 길이길이 기록되었는데, 교회사가 유세비우스는 고대 올림픽 경기의 승자들의 명단을 모두 제시하기도 했다. 즉 올림픽이 최초로 열렸던 B.C. 776년부터 로마의 카라칼라 황제가 마지막으로 치리했던 A.D. 217년까지 약 천 년 동안의 우승자들의 모든 이름을 그들의 신상 정보와 더불어 제시했던 것이다.

그러나 승자에 대한 이런 파격적인 대우는 거듭난 성도들이 영원에서 받게 될 영광스런 보상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믿음의 경기장"에서 승리한 승자들은 구름같이 운집한 하늘의 수많은 군중들로부터 우레와 같은 환호와 박수를 받을 것인데, 지극히 거룩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천상의 무수한 천사들과 성도들이 보는 앞에서 그 승자들의 이름을 일일이 호명하시며 찬란한 면류관을 수여하실 것이다. 또한 영원히 지속될 썩지 않을 금과 은과 보석 등으로 영예와 부가 주어지고(고전 3:12), 승자에게 걸맞은 통치권과 넓은 영토가 제공된다(계 20:6). 이 찬란한 영예는 결코 시들지 않을 것이며 창공의 별들처럼 영원무궁토록 빛날 것이다(단 12:3). 『그러므로 참으로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이러한 약속들을 가졌으니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모든 더러움에서 우리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고후 7:1).

그런데 "상"이라고 하는 것은 경주의 "출발선"이 아니라 "결승선"에서 주어지기 때문에 출전 자체가 수상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구원과 영생은 갈보리 십자가에서 그 값을 치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해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주어지는 것이지만, 그 상급과 영광의 정도는 성도의 신실한 섬김에 따라 반드시 차등이 날 수밖에 없다. 『경기장에서 달리는 사람들이 모두 달릴지라도 한 사람만이 상을 받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너희도 상을 얻게 되도록 달리라』(고전 9:24).

복음은 생명력으로 가득 차 있다. "복음의 근원"이신 하나님께서는 살아 계시고, "복음의 중재자"이신 예수님께서는 부활의 구주이시며, "복음의 능력"이신 성령님께서는 살리는 영이시다. 이런 이유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구원의 은혜는 과거에 한 번 받고서 끝나 버리는 선물이 아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은혜는 무엇인가를 계속 더해 주어서 성도로 하여금 정체해 있거나 주위를 돌아보지 않게 하고, 오직 목표를 향해서만 분투하도록 해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처럼 많은 구름 같은 증인들이 또한 우리를 둘러싸고 있으니, 우리 또한 모든 무거운 것과 쉽게 에워싸는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 우리 앞에 놓인 경주를 하자』(히 12:1). 이 경주는 하나님께서 성도의 의무로 정해 놓으신 것이기에 우리는 결코 "믿음의 삶"과 "경주자로서의 삶"을 분리시킬 수 없다. 만약 달리지 않는 성도가 있다면, 그것은 승자에게 약속하신 상과 면류관을 출발선에서 내던져 버리는 것과 같다. "새로운 출생"(거듭남)은 이제 막 출발선에 선 것과 같기에 부지런히 결승선을 향해 달려야 한다.

각 성도들은 이 의무에 대해 진지하게 숙고해야 한다. 우리의 대적 사탄은 최후의 반역과 심판(계 20:7-10) 때까지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지 않으려 할 것이므로, 우리 역시 결승선에 도착할 때까지는 우리의 싸움과 경주가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승리를 믿음으로 단단히 붙들고, 동시에 사탄이 지닌 파괴력을 결코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우리 앞에 놓인 결승선에 집중하라! 거룩하고 경건한 삶을 살라! 죄와는 어떤 형태로도 타협하지 말라!

물론 우리가 달려야 할 믿음의 경주는 무척 힘들고 어려운 과정이다. 악의 세력들이(엡 6:12) 우리를 단순히 둘러싸는 정도가 아니라 항상 우리를 대적하면서 방해물을 놓고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강인하게 단련시켜서 육신을 억제하고 복종시키는 가운데(고전 9:27), 주 예수 그리스도께만 눈을 고정시키고 분투하는 자만이 면류관을 받을 수 있다. 그렇게 승리한 성도만이 영원한 영광과 더불어 진정한 높임을 받게 될 것이다.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그때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가운데 나타날 것이라』(골 3:4).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