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믿음의 경기장에서 분류

로마의 원형 경기장을 통해 배우는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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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7년 07월호>

사도 바울을 포함한 신약성경의 기록자들은 영원에 속한 위대한 진리들을 쉽게 이해시키기 위하여, 종종 그 시대 서민들의 사회 및 문화 생활 등을 예화로 사용하였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은 치열한 영적 전쟁을 수행하는 삶이기 때문에, 이를 군인과 운동선수의 모습으로 자주 비교했다. 따라서 그 시대의 군인들과 운동선수들의 특징들을 아는 것은 신약성경의 여러 부분을 이해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된다. 사도들이 살았던 고대 로마 제국 시대는 황제로부터 노예에 이르기까지 전국적으로 원형 경기장에서 이뤄지는 각종 경기 및 시합들에 모두가 열광하는 시대였다. 바울이 서신을 보냈던 교회들과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들이 위치한 대부분의 지역에는 원형 경기장들이 존재했었고 각종 시합들도 진행되고 있었다. 당시 그리스도인들이 살았던 주변 세계는 이런 경기들에 대한 전통과 실행이 널리 퍼져 있었기에 성경에 기록된 비유들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특히 그리스 제국으로부터 이어져 온 범제국적인 경기에는 "올림픽 경기"를 포함하여 4대 주요 경기가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고린도에서 매 2년마다 개최되었던 "고린도 지협 경기"였다. 이에 바울은 『내가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이 된 것은 어떻게 해서든지 몇 사람을 구원하고자 함이라.』(고전 9:22)고 말했듯이, 자신이 "고린도 사람들"처럼 되어서 그들에게 익숙했던 경기들을 구체적인 사례로 들어 진리를 전파했다. 이런 이유로 고린도 교회에 보낸 서신들에는 원형 경기장에서 벌어지는 "시합"과 연관된 내용이 자주 언급된다(고전 4,9,15장).

로마의 원형 경기장은 타원형의 둥근 건물로서 지붕이 없었고, 줄줄이 이어진 좌석들은 계단처럼 올라가며 경기장을 둘러싸고 있었다. 보다 풍족한 양식과 남아도는 시간 속에서 좀 더 자극적인 구경거리를 필요로 했던 로마 시민들은 단순한 경기 이상으로 서로 죽고 죽이는 "전투 경기"를 보기 원했고, 피가 흩뿌려질 때마다 그들은 열광하면서 더욱 잔인해져 갔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검투사들의 목숨을 건 혈투였다. 처음에는 소규모의 모의 전투로 시작하다가 나팔수들의 신호가 나면 그다음 전투로 이어진다. 점점 더 날카롭고 치명적인 무기들이 등장하면서 싸움은 더욱 치열해지는데, 더 강렬한 자극으로 사람들의 흥분 상태를 고조시키기 위해 경기장은 시간이 지날수록 유혈이 낭자한 대결들로 채워져 갔다. 그러는 가운데 마지막 대결은 가장 잔인하고 끔찍한 싸움이 되어 버린다. 가까스로 살아남은 패자들은 아무리 살려 달라고 애원해도, 관중들이 죽이라고 외치면 가차 없이 죽을 수밖에 없었다. 피비린내 나는 대결로 관중을 만족시킨 승자들은 그에 대한 보상으로 종려나무 가지를 받았고, 동시에 상금과 비싼 음식들로 대접을 받았다. 그들은 그것들로 "배부르게 먹고," "부유해졌으며," 하루 동안 "왕들"처럼 대우를 받았던 것이다.

이런 시대적 배경을 알고 있으면 바울이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고린도 교회에게 말한 이유가 무엇인지 더 쉽게 이해하게 된다. 『이제 너희는 배부르고, 부유해졌으며 우리 없이도 왕들처럼 통치하였으니 내가 하나님께 바라는 것은 너희가 통치하게 되는 것이라. 우리 또한 너희와 더불어 통치하리로다. 하나님께서 우리 사도들을 죽이기로 정해 놓은 자같이 맨 마지막에 두신 것 으로 내가 생각하노니 우리로 세상과 천사들과 사람들에게 구경거리 가 되게 하셨음이라』(고전 4:8,9).

지금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과 자기 자신을 원형 경기장에 출전한 선수들로 비교하면서 그들의 교만한 자세에 대해 빈정대고 있다. 특히 고린도 성도들을 "초반"에 경기장으로 들어간 사람들에 비유했는데, 이들은 더 "쉬운" 전투를 치르다가 일찍 끝내고 돌아오는 자들이다. 사도 바울이 아직도 싸워야 하는 검투사라면, 고린도 성도들은 마치 시합이 끝나고 영광을 누리고 있는 자들과 같다. 이에 대해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너희들은 전투가 끝난 사람들처럼 행동하고 있구나. 구경꾼들이 던져 주는 동전들을 받아 챙긴 자들처럼 『부유해졌으며』, 싸움이 끝난 후에 잔치를 벌인 듯이 『배부르고』, 이미 영광을 다 받은 것처럼 『왕들처럼 통치』하고 있구나!"

이에 반해 바울의 모습은 원형 경기장에서 『맨 마지막에』 치러지는, 곧 목숨을 내놓고 싸우는 자들과 같았다. 이들은 이미 『사형 선고』를(고후 1:9) 받은 사형수들처럼 경기 주최자가 『죽이기로 정해 놓은 자』들이기에 목숨을 아끼지 않고 사지로 걸어 나갔다. 따라서 바울에게는, 아무런 죽음의 위협도 없이 "모의 전투"를 실시하는 자들과는 전혀 다른 "진지함"이 있었던 것이다. 바울의 헌신은 매우 확고했으며, 그는 가장 치열한 전투에서도 결코 물러서지 않는 결의에 찬 검투사와 같았다. 『우리가 사면에서 고난을 당하여도 괴로워하지 아니하며 당혹스런 일을 당하여도 절망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림받지 아니하며 내던져져도 멸망하지 아니하며 항상 주 예수의 죽으심을 몸에 지니고 다님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후 4:8-10).

원형 경기장의 또 다른 "하이라이트"는 사형수들을 처형하는 것에 있었는데, 그들을 거대한 말뚝에 무방비 상태로 묶어 놓고 굶주린 맹수들을 풀어 놓으면 끔찍한 광경이 연출되는 것이다. 가끔씩 사형수들에게 무기를 제공해 주기도 했지만, 그것은 가급적이면 천천히 죽어 가는 고통스런 죽음을 가미하기 위한 방편이었을 뿐이다. 이와 같은 구경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세계 전역에서 맹수들이 포획되어 오기도 했는데, 아프리카에서는 사자를 데려왔고, 게르마니아에서는 멧돼지를, 인도에서는 코끼리를 데려왔다. 어떤 축제 때에는 600마리의 곰들과 500마리의 사자들이 동원되기도 했다. 특히 로마의 트라얀 황제가 다키아 왕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 로마의 콜로세움에서 벌인 축제에서는, 120일 동안 12,000여 마리의 짐승들과 10,000여 명의 검투사들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성경적인 믿음을 지켰던 순교자들 역시 이런 방법들로 죽어 갔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나무에 묶인 채 곰들에 의해 갈비뼈가 이리저리 뜯겨 나갔고, 산 채로 껍질이 벗겨졌으며, 뼈가 아스러지는 고통 속에서 압사를 당하기도 했다. 여자들은 주로 황소에 머리카락을 묶인 채로 죽을 때까지 끌려다녔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 15장에서 언급했던 방식은 바로 이런 사실들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내가 만일 사람들의 방식대로 에베소에서 짐승들과 싸웠다면 내게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만일 죽은 자들이 살아나지 못한다면 "우리도 먹고 마시자. 내일이면 죽으리라."고 하였으리라』(고전 15:32). 물론 바울이 실제 짐승들과 싸운 것은 아니었다. 이 구절은 "사람들"을 "짐승들"에 비유하고 있는데, 성경은 사람들을 개, 이리, 여우 등 다양한 동물들로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벧후 2:22, 마 7:15, 눅 13:32). 또한 바울은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기에 로마법상 그런 식의 형벌에 처해질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자신을 원형 경기장에서 짐승들과 맞서는 모습으로 묘사한 이유는, 『견딜 힘을 잃어 심지어는 삶의 절망에까지』 이를 만큼 가해진 『극심한 압박』이 원형 경기장의 순교자들이 당하는 극심한 고통에 비견할 만했기 때문이다(고후 1:8). 우리가 이런 상황을 알지 못했더라면 바울의 삶을 온전히 이해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실로 바울은 순교자와 검투사의 삶을 살았던 믿음의 영웅이었던 것이다.

우리가 명심해야 할 또 한 가지는, 로마서 후반부에서 바울이 일일이 이름을 거명한 약 25명의 형제자매들 중 상당수가 실제로 원형 경기장 안에서 목숨을 잃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네로가 그리스도인들을 대대적으로 박해한 것은(A.D. 64년) 로마서가 기록된 지 불과 몇 년 지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교회사를 통관해 보건대, 신실한 성도들이 먼저 박해를 받았던 것처럼, 바울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의 동역자," "그리스도 안에서 인정받은 자," "주 안에서 많이 수고한 자"라고 묘사했던 성도들 상당수가 그리스도를 위해 순교자가 되었으리라고 보는 것은 결코 무리한 생각이 아니다. 로마서 16장을 보고 있노라면, 네로의 궁중 정원과 원형 극장에서 인간 횃불이 되어 밤하늘을 밝혔을 성도들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그들이 로마의 원형 경기장에서 생명을 내놓기까지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는, 평상시에 믿음의 경기장에서 진지하고 헌신적으로 영적 전투를 치러 왔기 때문이다. 매일의 삶의 실제적인 시험과 유혹에서 승리함으로써 신실함을 입증한 성도만이 "특별한 상황"에서의 맹렬한 시험까지도 견뎌 낼 수 있다. 평범한 일상에서 승리할 수 있는 성도만이 매우 비범한 상황에 직면해서도 승리할 수 있다. 지극히 작은 일에 신실한 성도가 큰일에도 신실할 수 있는 법이다(눅 16:10). 그러므로 작은 일들을 경시하지 말라!(슼 4:10) 마지막 승리를 쟁취하기 위한 믿음은, 바로 오늘 승리의 삶을 살아야 하는 책임까지 포함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이처럼 많은 구름 같은 증인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우리의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히 12:1). 순교자들의 영웅적인 죽음을 동력으로 삼아 결승선에 도달할 때까지 인내로 달려 나가도록 하자!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