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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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일서 3:9의 “죄를 지을 수 없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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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5년 06월호>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 사람 안에 거함이요, 또 죄를 지을 수 없는 것은 그가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났기 때문이라』(요일 3:9).
위의 요한일서 3:9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결코 죄를 짓지 않는다는 이단 교리를 주장하는 데 많이 애용되는 구절이다. 그 이단들은 이러한 교리를 가르침으로써, 죄를 짓고서도 전혀 가책을 받지 않고 자백도 하지 않는, 그들의 마음이 그들 안에서 악을 행하기로 완전히 정해진 종교적 괴물들을 양산해 왔다. 그들의 주장은 “거듭난 사람은 죄를 지을 수 없다. 거듭난 사람의 죄는 진짜 죄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거듭난 사람의 죄는 자백하지 않아도 용서하신다. 하나님께서는 거듭난 사람의 죄를 보지 않으시며 대신 그가 신뢰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피를 보신다. 거듭난 사람의 죄는 그에게 전가되지 않는다.” 등으로 집약될 수 있다. “거듭난 사람은 그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죄들이 용서되었다.”는 말조차도 그들에게는 “모든 죄가 용서되었으니 이후로는 그 무엇을 해도 죄로 여겨지지 않는다.”와 같을 뿐이다.
무척 솔깃한 주장이 아닐 수 없다. 자유인도 그런 자유인이 없는 것이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무엇을 해도 죄가 안 된다니 이보다 기쁜 소식이 또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그들에게는 죄와 싸우는 영적 전쟁이 없다(딤전 6:12, 벧전 5:8,9). 죄로 인한 번민도 없다(롬 7:24). 자신을 날마다 죄로 사로잡아가려 하는 이 죄의 몸을 벗고자 하는 갈망도 없다(롬 8:23). 그럼에도 참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자신들밖에 없다는 것이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인 베드로는 위선의 죄를 범했다(갈 2:12). “거듭난 그리스도인”인 바나바는 베드로의 위선에 끌려갔다(갈 2:13). “거듭난 그리스도인”인 데마는 현 세상을 사랑하여 바울을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다(딤후 4:10). “거듭난 그리스도인”인 아나니아와 삽피라는 성령님께 거짓말했다(행 5:3). “거듭난 그리스도인”인 바울은 자신이 짓는 죄로 인해 번민했다(롬 7:23,24).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죄를 지을 수 없고, 죄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하는 자들은 성경의 증거에 역행하는 것이다. “죄를 짓지 않는” 그들만 참되게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하는 자들 가운데에는 성경에서 말씀하는 그리스도인이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리스도인도 죄를 지을 수 있으며, 죄를 지었으면 자백하여 용서받아야 한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우리에게 아무 죄도 없다고 말하면 우리 자신을 속이는 것이요, 진리가 우리 안에 있지 아니하나 우리가 우리 죄들을 자백하면 그는 신실하시고 의로우셔서 우리 죄들을 용서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만일 우리가 죄를 짓지 아니하였다고 말하면 우리는 그분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이요, 그분의 말씀이 우리 안에 있지 아니하니라』(요일 1:8-10).
요한일서의 이 구절을 기록한 사람은 본문 3:9을 기록한 사도 요한이다. 사도 요한은 1:8에서 『우리가 우리에게 아무 죄도 없다고 말하면 우리 자신을 속이는 것이요』라고 해 놓고서는 3:9에서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라고 “말을 슬쩍 바꾸었다.” 그렇다면 사도 요한은 한 입으로 두 말을 한 것인가? 요한은 두 마음을 품은 위선자였던가? 자신의 서신을 읽는 성도들을 우롱하고 있는 것인가?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죽거나 휴거되기까지 자신의 육신 안에 거하는 죄와 싸울 수밖에 없다. 사도 바울의 고백을 보라! 『내 안에 (곧 내 육신 안에는,) 선한 것이 거하지 않는 줄을 내가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한 것을 어떻게 행하는 것인지는 알지 못하노라』(롬 7:18). 바울은 만일 자신이 원치 않는 것을 행한다면 그것을 행하는 것은 더 이상 자신이 아니라 자기 속에 거하는 죄라고 했다(20절). 바울의 육신 안에 거하는 죄가 그를 죄의 법에게로 사로잡아가 죄를 짓게 한다고 했다(23절). 바울은 여기서 육신의 죄와 무관하며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는 한 사람을 소개한다. 그것은 바울 안에 있는 “속 사람”이다. 『내가 속 사람을 따라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나』(롬 7:22). “거듭난 그리스도인”인 바울 안에는 “속 사람”과 “겉 사람”이 공존하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라. 오히려 우리의 겉 사람이 썩어질지라도 우리의 속 사람은 날마다 새로워지나니』(고후 4:16).
자, 이제 요한일서 3:9로 돌아가 보도록 하자.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 사람 안에 거함이요, 또 죄를 지을 수 없는 것은 그가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났기 때문이라』(요일 3:9).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나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고 죄를 짓지 않는 사람은 바울이 말한 “속 사람”이다. 이 속 사람은 바울이 거듭나기 전에는 바울 안에 존재하지 않았다. 거듭나기 전의 바울은 하나님의 법에 역행하여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고, 감옥에 가두고, 심지어 죽음에까지 내어주었다. 그때 그의 영은 죽어 있었기에 육신의 죄가 시키는 대로 했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의 죽은 영이 성령님에 의해 다시 태어났을 때 바울 안에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는 속 사람이 형성되었던 것이다. 성령님에 의해 태어난 그의 “영”이(요 3:6)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는 속 사람이다. “성령님께서 태어나게 하신 속 사람”이 바로 요한일서 3:9의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난 사람』인 것이다.
요한복음 3:6은 “성령님에 의해 태어나는 영”을 다루고 있고, 요한일서 3:9은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난 사람』으로서의 영, 곧 속 사람을 다루고 있다. 말하자면 요한복음 3:6과 요한일서 3:9은 모두 “거듭남”과 관련된 구절인 것이다.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죄값을 대신 치러 주신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영접하면 성령님께서 그 사람 안에 들어가시어 죄로 죽은 그의 영을 살리시고, 동시에 그의 혼을 죄의 몸으로부터 분리시키는 영적 대수술을 행하신다. 성경은 이를 가리켜 『그리스도의 할례』(골 2:11)라고 말씀하는데, 그때 죄인의 혼은 속 사람인 영에게 붙고 그 속 사람을 따라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기 시작한다(롬 7:22). 그러나 그의 혼은 이전에 몸에 붙어 있던 습성이 있어 육신의 죄가 유혹할 때 간혹 그에 따라가려는 성향을 보이는데, 바로 이것이 『오, 나는 비참한 사람이로다!』(롬 7:24)라며 바울이 슬퍼했던 부분이다. 속 사람을 따라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는 그리스도인은 죄에 끌려가는 자신에 대해 큰 슬픔을 표시하는 것이다.
성경에서는 이와 같이 성령님에 의해 다시 태어난 우리의 영을 “속 사람” 혹은 “새 사람”(골 3:10)이라고 부른다. 이 새 사람(영)은 주님과 연합되어 있으며(고전 6:17), 죄를 짓는 것은 죄가 거하는 그의 겉 사람(육신, 옛 사람)이기에(롬 7:17) “새 사람”은 결코 죄를 지을 수가 없는 것이다!
말하자면 첫 번째 아담의 죄로 인해 죽었다가 성령님에 의해 다시 살려 냄을 받은 이 영은 『살려 주는 영』이라 불리시는 『마지막 아담』(고전 15:45), 곧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골 1:27)와 연합되어 있다. 우리의 다시 살아난 영은 『살려 주는 영』이신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한 영이 된 것이며(『그러나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 고전 6:17), 그래서 새 사람은 우리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뜻하게 된다. 따라서 이 새 사람은 결코 죄를 지을 수가 없다. 죄를 짓는 것은 우리의 육신이다. 죄는 새 사람이 아닌 우리 육신의 옛 본성에 역사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자들아, 타국인 같고 순례자 같은 너희에게 권고하노니 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신의 정욕들을 멀리하라』(벧전 2:11). 하나님의 법을 사랑하고 즐거워하는 새 사람을 따라 살고 싶지만 자꾸만 마귀에게 종속된 육신의 옛 본성을 따라 사는 자신을 보고 괴로워하는 것은 바울의 예를 통해 보듯이 대단히 성경적인 일이다. 그러나 소중한 성도로서의 인생을 언제까지 그런 괴로움 가운데서만 보낼 것인가? 이제부터는 믿음의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새 사람을 따라, 모든 것이 새롭게 된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삶을 시작해야 한다. 이와 같은 승리의 삶은 성도가 성령님을 따라 행할 때에만 약속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그들은 육신을 따라 행하지 아니하고 성령을 따라 행하느니라』(롬 8:1). 이후에 혹여 죄를 짓는다면, 요한일서 1:9 말씀에 따라 죄를 자백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그 죄를 씻어야 한다. 성령님을 따라 행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한다면 승리하는 성도의 삶을 지속할 수 있게 된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