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믿음의 경기장에서 분류

믿음의 본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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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7년 05월호>

인생은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모든 것이 달라진다. 정도를 걷고자 하는 사람이 먼저 똑바로 볼 수 있어야 하듯, 그리스도인으로서 정도를 걸으려 한다면 그리스도를 똑바로 바라보아야 한다. 어떤 성도가 이렇게 말했다. "실망하길 원하면 다른 사람을 보고, 낙담하기 원하면 자기 자신을 보라. 그리고 승리하기 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라!" 예수님만이 믿음의 경기장에서 부르심의 상을 위해 달리는 모든 성도들에게 힘의 근원이 되시는 것이다.

히브리서의 저자는 12장에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장엄한 그림을 보여 준다.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를 견디셨다. 하나님의 계시의 중심 가운데 하나인 이 사건이 없었다면 구원도 없었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희생적인 죽음은 그분의 부활의 승리와 함께 모든 성경적이고 효과적인 복음 전파의 핵심 요소가 된다.

1.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승리를 향한 불굴의 인내를 보이신 영웅이셨다. 주님께서는 겉보기에 약해 보이셨지만 사실 내면의 강한 힘을 보여 주셨다. 대못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십자가에서 내려오시는 것이 주님께는 매우 쉬운 일이었다! 언제라도 아버지께 간구하여 『열두 군단이 넘는 천사들을 즉시 보내 달라고 할 수』 있으셨던 것이다(마 26:53).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우리의 생각을 훨씬 넘어선다. 히스키야 시대에 앗시리아의 군대가 유다를 압박하자, 하나님께서는 강력한 앗시리아 군대를 대적하여 한 명의 천사를 보내셨다. 그리고 이 천사는 하룻밤에 십팔만 오천 명의 군인들과 장교들을 죽였다(왕하 19:35). 즉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구하기만 하면 천사들의 군단들이 와서 대적들을 칠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군단"(Legion)이란 단어는 고대 로마의 군대 용어이다. 로마의 전시 편제에 따르면 군단은 3천에서 6천여 명의 군인들로 구성된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구하기만 하셨다면, 단 한 명으로 하룻밤에 십팔만 오천 명을 죽일 수 있는 능력의 천사들이 수만 명 정도는 나타났을 것이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구하지 않으셨다.

주님께서는 친히 고난의 길을 굳게 붙드시어 대속 제물로 바쳐지셔야만 세상에 구원을 가져다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아셨다. 그러므로 고난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으셨던 것이다. 결승점에 도달하기까지 계속 전진하셨다. 골고다 언덕에서 죽음의 대못에 손발이 박히는 순간에도 주님께서는 앞으로 나아가셨고 마지막 숨을 내쉬는 그 순간까지 멈추지 않으셨다(요 19:30).

히브리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내와 승리를 향한 그분의 불굴의 의지를 가장 강조한 책이다. 여기서는 골고다에서의 그 놀라운 상황이 세 부분으로 묘사되어 있다. ① 우주의 주인께서는 흙으로 만들어진 피조물들의 모순된 행동들을 견디셨다. ② 영광의 왕께서는 자신을 멸시와 수치에 내어 주셨으나 참된 왕의 품격에 걸맞게 이 모든 수치를 "개의치 않으셨다." ③ 거룩하시고 완전하신 주님께서는 그러한 것을 "죄인들의 손"에서 견뎌 내셨다(히 12:2,3).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았던 죄인들은 그분을 함부로 다루었고, 죄로 인해 자신의 영광을 잃어버린 그들은 영광의 왕에게서 그분의 영광을 도둑질하기 위해 반기를 들었다. 심지어 주님을 범죄자로 몰아 사형을 집행함으로써 인간 사회에서 추방시키기까지 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 모든 모순과 수치와 추악함을 자진하여 감당하셨다. 아무도 그분께 강압적으로 지시하지 않았다. 오히려 주님께서는 자신을 도울 수 있는 모든 외부적 요소를 스스로 거부하셨다. 이렇듯 미천한 죄인들보다 훨씬 더 고귀한 분이셨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제시하신 숭고한 승리를 쟁취하시기 위해 적들에게 자신의 몸을 내어 주신 것이다. 이는 승리를 향한 주님의 불굴의 인내를 보여 준다. 이런 인내 하나만으로도 그리스도께서는 가장 위대한 영웅이셨다.

2.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믿음의 선두주자요 완벽한 믿음의 본이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믿음의 창시자시요 완성자가 되신다. 그리스도의 대속과 부활을 통해 우리의 믿음이 시작되었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믿음을 지키시고 온전케 하시어 목적지까지 이끄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히브리서 12:2의 『창시자』란 단어에 해당하는 헬라어 " 아르케고스.jpg "(아르케고스)는 히브리서 2:10에서 구원의 "대장"으로 표현된다. 우리 믿음의 목표는 우리의 대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의 본을 따르는 것이다. 아들 하나님께서는 아버지 하나님을 신뢰하시지 않았던 때가 단 한순간도 없었다. 그분은 믿음의 원리들의 창안자시다. 주님은 처음의 영광을 내려놓으시고 인간이라는 의존적인 존재로 살아가시면서 믿음의 삶을 보여 주셨고, 마지막 십자가의 죽음에까지 순종하심으로 완전한 믿음을 보여 주셨다.

하나님의 아들이자 인자이신 주님께서는 어떻게 믿음이 최상의 수준에까지 도달할 수 있는지를 보여 주셨다. 이것은 "다 이루었다."라는 그분의 승리의 외침에서 가장 놀랍게 발견된다. 만일 이 승리의 외침이 부활의 아침에 있었거나 하나님의 영광의 보좌 우편으로 승천하신 이후에 있었다면 더 이해하기 쉬웠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는 골고다에서 승리를 외치셨다. 명백한 패배처럼 보이는 바로 그 순간에 말이다. 당시는 해가 어두워지고 몸과 혼과 영의 고통이 극에 달했던 때였다. 대적들은 그분을 조롱하면서 승리를 자축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예수님께서는 "다 이루었다."라고 외치신 것이다. 온 세상에서 가장 어두운 역사의 순간에 주님께서는 가장 찬란한 승리를 선포하셨다. 히브리서의 저자가 말했듯이, 『믿음은 바라는 것들에 대한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증거』이다(히 11:1). 그러므로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외치신 승리는, 참담한 현실을 넘어 보이지 않는 미래가 이미 실현된 것처럼 선언하신 승리였다. 어떤 사람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골고다에서 보이신 믿음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 순간 믿음은 완성의 단계에 도달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처음으로 진정한 믿음이 무엇인지 보게 된 것이다.

우리는 또한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아들의 완벽한 인간의 모습을 목도하게 된다(요 1:14). 당연한 일이지만 우리는 예수님을 보면서 그분의 신성에만 초점을 맞추어 보는 경향이 있다. 물론 이 땅에서 순례자의 삶을 사셨던 "나사렛 예수"는 "육신으로 나타나신 하나님"이시요(딤전 3:16), "영원히 송축받으실 하나님"이셨다(롬 9:5). 하지만 우리는 그분께서 "육신"으로 나타나신 분이셨다는 것, 즉 사람의 본성과 생명을 지니신 진정한 인간이셨음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신비를 모두 말로 설명하려는 시도는 어리석은 짓이다. 경건의 신비, 즉 하나님께서 육신으로 나타나신 신비를 인간의 머리로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기적들을 행하셨을 뿐 아니라 그 자체가 기적이셨던 분이다. 주님께서는 기적들 중의 기적이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완벽하게 수행하신 한 인간으로서 우리의 본이셨다. 이로써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형상대로 우리의 모습을 따라 사람을 만들자.』(창 1:26)라고 말씀하신 의미를 명확히 이해하게 된다. 이 땅에서 사셨던 그리스도의 생애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이 그리스도처럼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수행하는 데 있음을 보여 준다. 인간으로서의 주님의 삶은 우리도 이 땅에서 그분처럼 온전히 믿음으로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해 준다. 이 얼마나 큰 힘과 용기를 주는 진리인가! 현재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지 예수님처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 드릴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관점으로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을 바라보게 되면, 천상에서의 주님의 중보가 우리에게 얼마나 효과적이고 소중한지를 깨닫게 된다. 『이는 우리의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할 수 없는 분이 아니요, 모든 점에서 우리와 마찬가지로 시험을 받으셨지만 죄는 없으신 분이기 때문이라』(히 4:15).

결론적으로 지상에서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믿음의 경주는 우리가 어떻게 달려가야 하는지를 보여 주는 완벽한 본이다. 그분께서 보이신 인내와 믿음의 본을 깊이 묵상할 때, 우리는 "고난의 경주"라고도 불리는 이 경주를 완주할 큰 힘을 얻게 된다. 결국 우리의 경주는 "예수를 바라보자!"라는 이 한마디로 요약될 수 있다. 이 경주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데서 시작하여 그분을 바라보는 가운데 완성될 것이기 때문이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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