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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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설교자들의 마지막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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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7년 01월호>

성경을 읽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오늘날의 신약 성도들이 대환란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재림이 있기 전의 "마지막 세대"에 살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즉 우리는 지금 "신약 설교자들의 마지막 세대"로서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들 때문에 죽으시고 장사되셨다가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전파하고 있는 것이다(고전 15:1-4). 교회 시대 이후에 전파될 "복음들"은 144,000명의 유대인 복음 전파자들이 전파할 복음과(계 7:4-8, 마 24:14), 한 천사가 대환란 기간에 전파할 복음이다(계 14:6,7). 그러나 둘 다 바울이 전파한 복음과는 확연히 다르다(갈 1:8,9).

대환란 때의 "복음"은 대환란에서 살아남는 자들에게 믿음과 행위를 요구한다(마 24:13).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함께 계명들을 지키는 행위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계 12:17; 14:12). 그러나 이것은 오늘날 교회 시대에 전파되는 복음이 아니다. 오늘날 전파되는 복음은 "왕국이 가까이 왔다!"도 아니고 "창조주를 경배하라!"도 아니다. 이 시대에 전파되는 복음은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행 20:24)이라 불리며, 사도행전 15:11에서 확증된 바 있다. 우리는 바로 이 복음의 메시지를 전파할 수 있는 마지막 세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구약에서 이스라엘이 70년간 포로 생활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진리를 전파한 설교자는 "슬픔의 선지자" 또는 "우는 선지자"라고 불리는 예레미야이다(렘 9:1; 14:17). 그의 임무는 유다에게 말씀을 전파하여 그들로 하여금 다가오는 완전한 파멸에 대비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는 철저하게 "부정적인 복음"을 전파해야 했다. 유대인들의 수도가 괴멸되고 성전이 파멸되며 여자들이 욕을 당하고 노인들이 유린당하고 아이들이 노예로 잡혀가는 것을 예언해야 했는데, 이 모든 일들은 예레미야가 예언했던 그대로 성취되었다(애 1-4장).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결혼도 하지 말고 자녀도 낳지 말라고 하셨다(렘 16:2). 왜냐하면 엄청난 일들이 앞으로 일어날 것이었기 때문인데, 이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향해 나아가실 때 대환란을 통과할 유대인들의 세대에 대해 예언하신 바와도 일맥상통한다(눅 23:28-31).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의 아내와 어미 된 자들이 곳곳에서 살해되도록 하실 것이기 때문에(신 32:22-24,39-42), 예레미야에게는 아내도 얻지 말고 자식들도 낳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성경에는 이름이 "제이"(J)로 시작하는 걸출한 선지자들과 하나님의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예레미야(Jeremiah)도 그중 한 명이다. 그 외에도 야곱(Jacob), 요한(John), 유다(Jude), 요엘(Joel), 야고보(James), 여호사밧(Jehoshaphat), 욥(Job), 요나단(Jonathan), 여호수아(Joshua)가 있으며, 무엇보다도 "제이"로 시작하는 이름뿐 아니라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신 "예수 그리스도"(Jesus Christ)께서 계신다. 앞으로 닥칠 기근과 군사 독재, 군법 강제 집행, 강제 수용소 등에 대해 사람들을 대비시켜야 할, 신약 설교자들의 마지막 세대는 예레미야에게서 교훈을 받아야 한다. 선지자 예레미야에 대해 몇 가지를 살펴보면서 대환란 이전에 활동하고 있는 설교자들의 특징과 갖추어야 할 자세를 배워 보도록 하자.

1. 예레미야는 자기가 좋아서 사역에 뛰어든 것은 아니었다. 『그때 주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말씀하시기를 "내가 뱃속에서 너를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거룩하게 하였고 너를 민족들의 선지자로 정하였노라." 하시기에 그때 내가 말씀드리기를 "아, 주 하나님이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서 말할 수 없나이다." 하였으나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아이라.'고 말하지 말라. 이는 너는 내가 너를 보내는 모든 자에게 갈 것이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령하든지 네가 말할 것임이라』(렘 1:4-7). 만일 예레미야가 사역에 자원해서 뛰어든 것이었다면, 그것은 옛날 미 육군에서 통용되는 방식이었을 것이다. 과거 미 육군에서는 어느 누구도 하기 싫어하는 일이나 위험한 작전에 투입할 병력이 필요할 경우 이런 식으로 선발했다. 즉 하사관이나 장교가 와서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제군들, 다섯 명의 자원자가 필요하다. 거기 너! 너! 너! 그리고 너! 너!" 말하자면 "자원자들"을 직접 "지명해" 준 것이다! 이처럼 주님께서도 "너!"라고 지명하시면서 예레미야를 부르셨다. 예레미야는 빠져나가려고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그는 자기 자신의 동의 없이 설교자가 된 것이다.

2. 예레미야는 아무런 이유 없이 저주를 받아야 했다. 『그러나 나는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이나 소 같아서 그들이 나를 대적하여 계략을 꾸미며 말하기를 "그 나무를 과실과 더불어 진멸하자. 산 자들의 땅에서 그를 끊어 버려서 그의 이름이 더 이상 기억되지 못하게 하자." 함을 내가 알지 못하였나이다』(렘 11:19). 『그때 그들이 말하기를 "오라, 우리가 예레미야를 대적하여 책략을 세우자. 이는 율법이 제사장으로부터, 지혜가 현명한 자로부터, 말씀이 선지자로부터 사라지지 아니할 것임이라. 오라, 우리가 혀로 그를 치고 그의 어떤 말에도 주의를 기울이지 말자." 하였도다』(렘 18:18). 예레미야는 안간힘을 다해서 그의 백성들에게 다가올 하나님의 진노를 그들에게서 돌이키려 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그를 대적했던 것이다. 산헤드린은 왜 스테판을 돌로 쳐서 죽인 것인가? 왜냐하면 그가 다가올 하나님의 진노를 그들에게서 돌이키려고 했기 때문이다. 왜 바울은 유대인들에게 매를 맞았는가?(고후 11:24) 하나님의 진노가 그들에게 임하지 않도록 바울이 그들을 구원받게 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게 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진노를 그들에게서 돌이키시어 그들을 구원하려고 하셨기 때문이다. 『아들을 믿는 사람은 정죄를 받지 아니하나 믿지 않는 사람은 이미 정죄를 받은 것이라. 이는 그 사람이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라』(요 3:18).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그 아들을 믿지 않는 자는 생명을 보지 못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진노가 그 사람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고 하더라』(요 3:36). 예레미야의 백성들이 자기들을 하나님의 진노에서 구하려 했던 그를 죽이려고 음모를 꾸몄으니, 정말로 그는 아무런 까닭 없이 저주받았던 것이다.

3. 예레미야는 공정한 재판도 없이 투옥되어야 했다. 예레미야 38:4-6에서는, 예루살렘의 고관들이 왕에게 와서 예레미야가 백성의 안녕을 구하지 않고 오히려 사기를 꺾어 놓고 있다며 고소하는 부분이 나온다. 그들은 그를 감옥에 집어넣기 원했으며, 이에 왕은 그를 지하 감옥에 넣게 했다. 결국 예레미야는 『진창에 빠졌더라.』(렘 38:6)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이로 인하여 예레미야는 마음에 "쓴 뿌리"가 생겼다. 그는 하나님께 이렇게 항변했다. "왜 저에게 거짓말쟁이처럼 구시는 것입니까?(렘 15:18) 하나님께서는 저를 속이셨습니다!(렘 20:7)" 속이 너무 상한 나머지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더 이상 하나님의 이름으로 말씀을 전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때에 내가 말하기를 "나는 그를 언급하지 아니하고 더 이상 그의 이름을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나 그의 말씀이 내 마음속에서 내 뼈들 속에 사무치는 타는 불 같아서 내가 참기에 지쳤고 견딜 수 없었나이다』(렘 20:9). 물론 예레미야는 돌이키긴 했지만, 정말이지 주 하나님에 대해 쓴 뿌리가 생겼던 것이다. 만일 당신이 신약의 설교자라면 당신 역시 예레미야처럼 공정한 재판도 없이 투옥될 수 있음을 염두에 두라. 따라서 예레미야 같이 마음에 쓴 뿌리를 품지 않으려면, 이런 일을 항상 예상하고 또 대비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4. 예레미야는 함께할 친구들이 없어도 신실했다. 예레미야에게 남은 사람은 고작 두 명뿐이었는데, "바룩"과 "에벧멜렉"이었다. 그 사람들이 전부였다. 사도 바울도 말년에는 오직 의사인 누가만 남아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딤후 4:11) 예수님께서도 지상 생애의 끝 무렵,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열둘 중에서 오직 한 명의 사도만이 그 자리에 함께 있었다(요 19:26). 즉 요한만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서 성경은 오늘날 마지막 날들을 사는 신약 설교자들에게 결코 놓쳐서는 안 될 예언적인 진리를 깨닫게 해 주고 있는데, 우리도 예레미야처럼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5. 예레미야는 보상이 없어도 옳은 일을 행했다. 느부캇넷살이 예루살렘을 완전히 파괴했지만 예레미야에게는 자유를 주었다. 도망자들이 유다에 남아 있던 통치자까지 반란으로 살해했고, 남은 자들은 무서워하면서 주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말씀을 들으려고 예레미야를 찾아왔다. 하지만 그가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했음에도 그들은 경청하려 하지 않았고 도리어 예레미야를 강제로 이집트로 데리고 갔다(렘 43,44장). 그가 반역하는 자들과 함께 이교도들의 땅에 있게 된 것이다. 사도 바울처럼 예레미야는 아내도, 자식도, 집도, 교회 건물도, 의료 보험도, 연금도 없이 죽었다. 특히 바울의 경우보다 더 힘들었던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예레미야가 단 한 명의 회심자도 보지 못한 채 사역을 마감해야 했다는 사실이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그 어떤 보상도 받지 못했지만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하라고 명하신 일을 완수했던 것이다.

중세 암흑시대에 어떤 프랑스 왕이 밀라드(Millard)란 이름의 왈덴시안을 보고는 이렇게 위협했다. "그대의 그런 설교 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짐은 그대를 강에 수장시킬 수도 있소!" 그러자 그 왈덴시안 설교자는 왕에게 이렇게 답변했다고 한다. "폐하께서 그렇게 하신다 할지라도, 폐하께서 가장 빠른 말들을 타고 궁으로 돌아가시는 것보다 더 빨리, 소신은 하늘나라 본향에 도착해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뜻대로 옳은 일을 행했다고 해도 이생에서는 보상을 받지 못하는 일들이 다반사다. 20세기 전반까지 활동했던 훌륭한 설교자, 엉클 버드 로빈슨(Uncle Bud Robinson, 1860-1942)에게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며 비난했다. "버드, 자네가 지금처럼 계속 설교하면 말이지, 쫄쫄 굶어 죽게 될 거야!" 그 신실한 설교자는 굴하지 않고 이렇게 응수했다. "혹 그렇게 된다면 나는 내 수중에 있는 마지막 동전 몇 닢을 털어서라도 식초 한 병과 베이킹 소다 한 병을 사서 마신 다음, 배를 불룩하게 불려서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내가 많이 먹어서 죽었다고 생각하게 만들 걸세! 그런 후에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서 정말 원 없이 먹겠네!"

예레미야는 평생토록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했지만, 자신이 아는 한에는 단 한 명의 회심자도 얻지 못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당시 십 대 소년들이었던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이 바빌론으로 끌려가기 전에 그가 전파한 말씀을 유심히 듣고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그 유대인 소년들은 이교도 왕의 음식으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겠다고 결심했으며, 목숨을 걸고 어떤 타협도 용납하지 않으면서 성별을 지켰다. 심지어 느부캇넷살이 그의 형상을 세워서 경배하라고 명령했을 때에도 그들은 거대한 바위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다니엘이 자신의 생애가 끝날 무렵 예레미야서를 읽고 그 말씀에 따른 약속을 주장함으로써 이스라엘은 그 약속의 땅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단 9:2). 하지만 예레미야는 결코 그런 일을 보지는 못했다. 그는 생전에 전혀 보상을 받지 못한 채 옳은 일을 행하다가 생을 마감했던 것이다. 위대한 성경 번역자 윌리엄 틴데일(William Tyndale, 1494-1536)은 화형대에 묶여 죽게 되었을 때, "주여, 영국 왕의 눈을 열어 주소서!"라고 기도했다. 그가 생전에 "죽기까지 신실함으로써" 받게 된 보상은 목 졸림을 당하고 화형을 당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죽은 지 2년도 채 되지 않아서, 그를 처형하라고 명령했던 왕은 영국에 있는 모든 교회들마다 성경을 비치하게 했고, 또한 읽는 사람을 대기시켜서 누구든지 하나님의 말씀들을 영어로 들을 수 있도록 왕명을 공표했다. 지금도 <틴데일 성경>은 <킹제임스성경>을 통해 전 세계를 누비고 있다. 권위를 인정받은 <킹제임스성경> 어휘의 80-90%는 <틴데일 성경>에서 온 것이었다.

우리는 새 예루살렘에 갔을 때 신실한 섬김에 대해 받을 상급이 무엇인지 잘 안다. 이것에 대해서는 고린도전서 3장, 고린도후서 5장, 디모데후서 2,4장에 잘 나와 있다. 이런 보상은 은사주의자들이 입만 열면 지껄이는 "건강과 부와 번영과 성공"이 아니다. 우리가 받을 상은 죄인들을 회심하게 해서 하늘나라에 가게 함으로써 받게 되는 것이다(살전 2:19, 빌 4:1, 고후 1:14).

물론 당신은 "목사"가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성도는 구주를 위한 증인으로 부르심을 받았음을 명심하라! 우리에겐 시간이 얼마 남아 있지 않다! 눈 깜짝할 사이에 더 이상 복음을 전파하지 못할 때가 올 것이다. 죄인들이 은혜의 복음을 받아들일 수 없는 때가 오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말했다. 『보라, 지금이 기뻐 받아들여진 때요, 보라, 지금이 구원의 날이라』(고후 6:2).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인들의 죄들을 씻기 위해 죽으셨고, 그들을 하늘나라로 데려가시기 위해 부활하셨다. 자, 그렇다면 당신은 지금 이 기쁜 소식을 죄인들에게 전파하고 있는가?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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