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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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인들의 피와 예수님의 보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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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6년 10월호>

이사야 63:1-4과 34:2-8에 나오는 예언의 말씀을 읽어 보라. 성경은 지상으로 재림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2억 명의 유엔군을 짓밟으실 때 그 피가 약 1.5m 높이에 296km 정도의 길이로 흐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한다(계 14:20). 이것은 "고도의 비유적이고 묵시적인" 표현이 아니라 이제 곧 얼마 지나지 않아 실제로 일어날 일이다(슼 14장, 계 19장). 물론 "피"(blood)라는 주제가 그렇게 달가운 주제는 아니다. 그러나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피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레 17:11, 창 9:6). 1939년이 되어서야 지혈을 돕는 두 가지 요소, 비타민 K와 프로트롬빈(혈액 속의 응혈소)이 아기가 태어난 지 8일째에 최고조에 이른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8일째에 남자 아기들에게 할례를 주라고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셨던 것이다(창 17:12, 레 12:3). 성경에서 "피"라는 단어는 약 392개 구절에서 448회 정도 사용되고 있다. "피"라는 단어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것은 살인과 연관해서이고(창 4:10),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것은 주님께서 돌아오실 때 『피에 적신』 옷을 입으실 것임을 말씀하는 구절에서이다(계 19:13).

그런가 하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신앙도 피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신앙이 다른 모든 세상 종교들과 극명하게 다른 점이다. 오늘날 유대교를 비롯하여 이슬람교, 힌두교, 불교 등은 죄를 용서하기 위해 피가 흘려져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지 않는다. 로마카톨릭도 입으로는 "피의 희생제"를 드린다고 하지만, 그들은 단지 알코올이 들어간 술을 마시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성경은 다음과 같이 분명히 말씀한다. 『율법에 따르면 거의 모든 것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흘림이 없이는 죄사함이 없느니라』(히 9:22). 하늘나라에는 어떻게 갈 수 있는 것인가? 물로는 갈 수 없다(요 3:5,6). 오직 "그리스도의 보혈"로써만 갈 수 있는 것이다(계 1:5,6).

옛말에 "순무에서는 피가 나오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킹제임스성경>에서 유래된 것으로, 하나님께서 카인의 제물을 받지 않으신 것에서 나왔다(창 4:5). 『시간이 흐른 후에 카인은 땅에서 나는 열매를 가져와서 주께 제물로 드렸고』(창 4:3).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피를 원하셨던 것이다. 또한 "피는 물보다 진하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 역시 출애굽기 7:17-21에서 나온 것으로, 모세가 이집트에서 물을 피로 바꾼 사건에서 유래했다. 그러나 출애굽기 7장에서는 비유적인 뜻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실제 물과 실제 피였다.

인간의 역사는 피로 점철된 역사이다. 피 흘림의 연속인 것이다. 사람들은 피를 흘리기를 좋아한다. 카인이 아벨을 죽인 이후로 사람들은 여기저기서 서로를 죽이고 있다. 1986년판 <전쟁사 백과사전>에 따르면, B.C. 3500년 이후로 4,345건의 전쟁이 있었고, 지난 6천여 년 동안 전쟁으로 약 10억 명이 죽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특히 20세기는 더 많은 피가 흘려졌기 때문에 "폭력의 세기"라고 불리기도 한다. 즉 인류사를 통틀어서 1901년에서 2000년까지, 1세기 동안에 다른 500년의 기간을 합쳐 놓은 것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죽은 것이다. 따라서 인류사가 평화, 번영, 진보 등으로 끝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산이다. 뉴스 매체에서 떠들어 대는 "연합"이나 "우주 개척" 등은 백일몽에 불과하다. 이 시대의 끝에는 2억 명의 전사자가 발생하는 전쟁이 도사리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계 9,14,19장).

혹자는 "피는 생각만 해도 역한 느낌이 나요!"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하늘나라에서는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에 대해 노래한다(계 5:9). 영광 중에 있는 성도들은 그들의 선행이나 교회 경력, 세례나 침례, 종교 행위 등에 대해 노래하지 않는다. 자신이 어떤 교파에 속했었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성도들은 자기들을 그들의 죄들에서 씻으신 그 보혈에 대해서만 노래한다(계 1:5).

또한 성경 자체도 피로 점철된 책이다. 성경은 13개의 내전과 34건의 패배와 2백만 명의 전사자를 언급하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장차 아마겟돈 전쟁에서 죽게 될 2억 명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성경은 『주는 전사시요』(출 15:3)라고 말씀하며, 『전쟁에 능력 있으신 주시로다.』(시 24:8)라고 말씀한다. 성경에는 구원보다 "무력 충돌"에 대한 말씀이 훨씬 더 많다.

그리고 이 시대 끝에 가서는 "피를 마시는 일"이 있을 것이다. 즉 대환란 때에 적그리스도의 숭배자들이 제단에서 유대인들을 죽이고(계 6:9) 그 피를 술제물로 바치게 되는 것이다(시 16:4). 이런 가증한 짓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물을 피로 바꾸시어 그들이 그 피를 마시게 하심으로써 갚아 주실 것이다(계 16:3-6). 피를 마시는 행위는 율법 이전과(창 9:4), 율법 아래에서(레 17:10-14), 그리고 율법 이후 은혜 아래에서도(행 15:29) 금지된 사항이다. 그러나 로마카톨릭은 예수님의 피를 실제로 마신다고 주장하는데, 이것은 성경 전체를 위반하는 처사이다.

그리스도의 신앙에서 보혈을 제거하면 세상의 다른 종교들처럼 죽은 종교가 된다. 모세가 율법책의 기록을 모두 마쳤을 때, 그는 율법책과 백성들 모두에게 피를 뿌렸다(히 9:19). 예수님께서 흘리신 보혈을 언급하지 않는 "복음"은 전혀 "좋은 소식"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 그분의 몸속에 있는 피를 한 방울도 남겨 놓지 않으시고 모두 흘리셨다. 그래서 하늘나라로 돌아가셨을 때, 주님께서는 단 한 방울의 피도 갖고 계시지 않았다. 그렇다면 왜 피를 흘리신 것인가? 바로 우리의 죗값을 치르시기 위해서였다(벧전 1:18,19). 『그 안에서 우리가 그의 보혈을 통하여 구속, 곧 죄들의 용서함을 받았느니라』(골 1:14). 대제사장이 매년 자비석에 뿌린 것은 다름 아닌 피였다. 이스라엘이 출애굽할 당시에 죽음의 재앙을 피하기 위해 양쪽 문기둥과 문 윗기둥에 발랐던 것도 피였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죄가 되시기 전(고후 5:21), 겟세마네 동산에서 고뇌 가운데 기도하셨을 때 그분의 땀은 『큰 핏방울처럼 되어 땅에』 떨어졌다(눅 22:44). 하나님께서 아담과 이브의 벌거벗음을 가려 주시려고 흘리게 하셨던 것 역시 피였다. 그들에게 입히실 가죽옷을 위해 동물의 피를 흘리셔야 했던 것이다.

R.B. 티엠과 존 맥아더는 "예수님의 혈관 속에 흘렀던 붉은색 액체는 우리의 구원과 아무 관계가 없다."는 정신 나간 소리를 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실제 붉은 피가 우리를 속죄하고 깨끗하게 하도록 만드셨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피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그를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 가운데서 이전에 지은 죄들을 사하심으로 인하여 그의 의를 선포하려 하심이요』(롬 3:25). 예수님의 보혈과 그 구속 사역을 분리해서 생각할 수는 없다. 또한 예수님의 보혈이 인간의 피와 똑같다면 주님께서는 어떻게 무덤에서 썩지 않고 부활하실 수 있었겠는가! 성경은 『혈과 육은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을 수 없으며』라고 말씀하신다(고전 15:50). 이유가 무엇인가? 인간의 피가 잘못되었기 때문인데, 우리의 피는 우리의 조상 아담에게서 온 것이다(고전 15:47-49). 반면 예수님의 보혈은 그렇지 않다.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께로부터 피를 받으셨기에, 그 피는 "하나님의 피"이다(행 20:28). 그래서 예수님의 보혈에는 "특별한 효능"이 있는 것이다!

"육체의 생명이 피에 있다"는 말씀을(레 17:11) 감안하면,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생명은 어떤 생명인가? 당연히 "영원한 생명"이다(요일 1:1,2; 5:11,20). 이처럼 주님의 보혈은 인간의 피와 같을 수가 없다. 『이는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을 살게 하려 함이라』(고전 15:22). 언젠가 우리가 부활하게 되는 것도 예수 그리스도의 흘려진 보혈을 믿음으로써 의롭게 되었기 때문이고, 또 의롭게 된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하게 되기 때문이다(롬 3:24,25; 4:24,25).

이렇듯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혈을 흘리신 목적은, 첫째, 율법의 요구를 충족시키시기 위해서였다. 황소들과 염소들의 피가 죄를 제거할 수 없지만(히 10:4), 율법은 무언가의 희생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구약에서 하나님께서는 죄를 사하는 근거로 피를 받으셨다(히 9:22). 그러나 죄들을 완전히 제거하기 위해서는 동물들의 피보다 더 좋은 것이 필요했다. 곧 죄가 없으신 분이 우리를 대신해서 죽으시어 피를 흘리셔야 했던 것이다. 이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써, 우리가 하나님께 빚진 것을 스스로 갚지 않아도 되도록 만드셨다. 예수님께서 그 보혈로 그 값을 치러 주신 것이다.

둘째로, 우리를 지옥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였다. 어느 유리 공장의 한 화부(火夫)가 용광로 속에 석탄을 삽으로 퍼 넣고 있었을 때, 한 목사가 그의 동료 화부와 함께 말하는 것을 엿듣게 되었다. 그들은 지옥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그의 동료가 목사에게 물었다. "지옥은 어떤 곳입니까?" 그 목사가 대답했다. "지금 당신이 석탄을 넣고 있는 이 용광로와도 같은 곳입니다!" 그 말을 엿들었던 화부는 다음 주일날 교회로 나가 목사에게 말했다. "저는 죽어서 용광로 같은 지옥에 가고 싶지 않습니다. 구원을 얻고 싶어 이렇게 왔습니다." 참으로 현명한 사람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옥을 믿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 지옥에 간 다음에는 "지옥이 싫다!"고 말해 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 주님께서는 왜 십자가에서 "목마르다"라고 부르짖으셨는가?(요 19:28) 사실 그것은 지옥에 간 사람이 부르짖는 외침이었다(눅 16:24). 그러니까 예수님께서는 바로 당신이 지옥불에 들어가지 말라고 그 보혈을 흘리신 것이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의 보혈에는 능력이 있다. 죄인이 구원받기 위해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만을 신뢰하면, 그 사람 안에는 새로운 욕구를 가진 새 사람이 태어난다(고후 5:17). 물론 그리스도인은 새 사람을 입지 않으려 할 때도 있고(엡 4:24), 자기 몸의 지체들을 주님께 드리길 거절하는 경우도 있으며(롬 6:19), 위에 있는 것들에 마음을 두지 않는 순간도 있다(골 3:2). 그럼에도 새로운 피조물이 그 안에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이전엔 없었던 흥미와 욕구가 새롭게 생기게 된다. 그것이 바로 "보혈의 능력"이다. 전에 없었던 영적 분별력도 생긴다. 보혈은 그 사람이 미래를 보는 관점을 바꾼다. 구원받고 나면 사후의 삶에 대한 소망도 생긴다. 나는 이 세상에 대해선 비관적이지만, 사후의 생에 관한 한 그 누구보다도 낙관적이다. 나는 나 자신이 죄가 없는 몸을 입게 될 것임을(롬 8:29) 알고 있다. 이보다 더 "긍정적인 생각"이 있을 수 있겠는가!

어느 찬송가 가사처럼 "주님의 보혈에는 큰 능력이 있다!" 로마카톨릭과 다른 종교들은 자기 의로 교만하게 하고 거짓 "교회"에 충성하도록 만들 뿐이다. 어떤 종교 행위나 성사, 교회 경력도 전능하신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는 그 "무거운 책임"을 덜어 줄 수 없다. 예수님의 보혈을 통해 새로운 출생을 경험할 때에야 비로소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다. 또한 그리스도인은 보혈의 능력으로 죄와 세상과 마귀의 속박에서 벗어나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다.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을 통하여 흠 없는 자신을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죽은 행실에서 너희 양심을 정결케 하여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히 9:14)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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